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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색 여행기 2題

경영 컨설턴트 김경준이 동행한 엄홍길 히말라야 원정

산은 겸허한 자에게만 정상을 허락한다

  • 김경준 딜로이트 상무 kjunkim@hanmail.net

경영 컨설턴트 김경준이 동행한 엄홍길 히말라야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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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다란 계곡 사이로 빙하 녹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고, 하늘 닿은 곳에는 하얀 설산(雪山)이 끝없이 이어졌다. 계곡 따라 난 길로 딸랑딸랑 종소리를 내며 야크들이 오가는 풍경은 이국적이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트레킹 종반에 죽음의 공포를 코앞까지 느꼈던 나로선 엄 대장의 말이 엄숙하게 다가왔다. ‘인간은 최선을 다하고, 산이 허락하면 정상을 잠시 빌린다.’
경영 컨설턴트 김경준이 동행한 엄홍길 히말라야 원정
“김상무님, 히말라야 함께 갑시다. 나에 대해 책을 썼으면 적어도 히말라야 공기는 같이 숨쉬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엄홍길 대장의 히말라야 초대는 갑작스러웠다. 엄 대장은 세계 여덟 번째, 아시아 최초로 해발 8000m 이상의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완등(完登)한 산악인이다. 나는 엄 대장의 도전정신과 리더십을 기업경영과 조직관리의 관점에서 해석해 ‘엄홍길의 정상경영학-거친 산 오를 땐 독재자가 된다’는 책을 낸 바 있다. 기회가 있으면 히말라야를 한 번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침 엄 대장이 불쑥 제안한 것이다. 엄 대장의 리더십을 히말라야 현장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2000년 여름, K2 등정으로 14좌를 오른 후 새 목표를 세웠다. 위성봉이지만 독립봉의 성격이 강한 얄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를 올라, 세계 최초로 ‘14+2 프로젝트’를 달성하는 것. 얄룽캉은 2004년 정복했으니 이제 로체샤르만 남았다. 원정 일정은 2006년 3월16일 서울을 떠나 3월29일 베이스캠프 도착, 4월 말에서 5월 초에 정상 공격, 5월25일 서울로 귀환이다. 필자는 서울에서 함께 출발해 추쿵(Chukung)까지 따라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선뜻 따라나서겠다고 했지만 우선 체력이 걱정스러웠다. 출발일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평일에 운동하고 주말에 등산하는 것밖에 준비할 게 없었다. 등산장비도 문제였다. 10년 가까이 사용한 등산화와 등산복밖에 없었다. 엄 대장과 상의하니 안치영 대원을 소개해줬고, 등산용품점이 몰려 있는 종로5가에서 그와 만났다. 그가 골라주는 등산화, 바지, 재킷, 우모복, 배낭, 내복, 양말, 헤드랜턴, 물통, 선글라스, 등산용 스틱을 구입했다. 모자를 3개나 샀는데, 카트만두용 모자, 캐러밴용 모자, 밤에 쓰는 보온용 모자였다.

‘로마군은 병참으로 이긴다’



물건을 다 고르고 계산하니 200만원이 넘었다. 안 대원은 “개인장비 사는 데 돈 아까워하지 말라. 고산 등반에서 개인장비는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며 엄청난 장비 구입 가격에 놀란 나를 다독였다. 실제 히말라야에 가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산악인이 쓰는 선글라스는 멋을 내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 없이는 낮에 단 5분도 견딜 수 없었다. 3000m 이상 고도에서 방한용 모자를 잠깐이라도 벗는다면 고소증 희생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셈이었다.

3월16일, 드디어 떠나는 날. 일행은 3월8일 선발대로 떠난 이인·안치영 대원을 제외하고 엄홍길 대장, 정오승·남영모·박홍기 대원과 아리랑TV의 안석환 카메라 감독, 황응기·김민수 PD, 그리고 나까지 8명이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면 선발대 2명, MBC 교양제작국 3명, 재일교포 5명을 포함해 총 15명이 등정할 예정이었다.

비행기는 태국 방콕을 경유해 카트만두로 들어갔다. 공항에 내리자 이번 등반에 참가할 셰르파(네팔 안내인)들이 나와 엄 대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능숙한 네팔어로 인사를 나누는 엄 대장은 마치 귀향한 네팔 사람 같았다. 엄 대장은 종종 자신이 전생에 네팔인이었던 것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 보니 농담 같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나니 엄 대장과 대원들은 더욱 바빠졌다. 떠나기 전 사흘 동안 7t이 넘는 짐을 점검하고 꾸려야 하는 마지막 병참기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텐트, 아이젠, 산소통, 의약품, 고소식량, 쌀, 김치 같은 기초물품부터 철사, 못, 이쑤시개, 손톱깎이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까지 수백가지 품목을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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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딜로이트 상무 kjun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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