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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마지막회

“아버지가 무서워요, 그래서 없앴어요”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아버지가 무서워요, 그래서 없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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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화가 치솟는 일이 많다. 문제는 이런 분노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것이다.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 그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분노를 절제하고 참아내는 것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폭력을 휘두르면 폭력을 배운다.

이런 아이들은 커서 신경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면 손이나 다리를 떨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누적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닥쳐오면 가공할 폭력으로 터져나온다.

신경증 환자의 잠재된 폭력성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B. 술에 취하면 어머니와 자신을 상습적으로 때리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그후 B의 아버지는 술에 절어 일찍 세상을 떴고, 어머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폭력의 근원이 사라진 가정, 생각해보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이던 B는 어머니가 돌아왔는데도 가출하고 만다. 문제는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면 분노를 자제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학습한 결과였다.



초등학교 때 가출했으니 그후의 삶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따위의 말은 그에겐 사치였고, 쓸데없는 소리였다. 자연히 남을 욕하게 되고 직장을 탓했다. 20대부터 절도범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B는 40대까지 범죄행각을 멈추지 못했다. 주로 여주인이 운영하는 간이주점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아 금품을 갈취했다. 사고가 터진 날엔 일이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주인이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반항하자 주방에서 쓰던 칼로 그녀를 찔렀다. 첫 살인이었다.

“죽이려는 뜻은 없었어요. 그런데 여자가 소리를 치자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어요. 저항하니까 죽인 게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났고, 참을 수 없었어요.”

담담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B에게서 나는 아버지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고서는 몸서리가 쳐졌다. 분노를 절제하는 방법을 부모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피의자 C는 ‘물품음란증’ 환자였다. 여자가 사용하는 물건을 손에 넣어야 화가 풀렸다. 이것이 점차 심해져 나중엔 여성의 체취가 묻은 속옷을 탐했고, 결국 잠든 여성의 속옷을 훔치려다 살인까지 저질렀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는 어디서부터 삐뚤어졌을까.

그의 아버지도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참다 못한 어머니는 이혼을 요구했고, 결국 가정은 해체됐다. 아버지가 변변치 못하면 아이들은 주눅 들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자랑스러워야 한다. 가난한 아버지라도 아이들 마음에는 바로 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가정에 대한 열등감은 아이를 정상적으로 성장시키지 못하는 법이다.

‘물품음란증’ ‘충동장애자’

C의 물품음란증은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춘기 때 여자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울 수 없었다. 기가 죽어 성장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다. 이런 아이는 이성에게 접근해 이성에 대한 갈증을 풀기보다 환상 속에서 갈증을 해소한다. C는 그런 관심을 여성의 물품을 모으는 것으로 풀었다. 그는 여성의 속옷, 스타킹을 닥치는 대로 모았다.

이런 습관은 자연히 여성의 물품을 훔치는 것으로 진전됐다. 잠든 여성의 집에 침입, 속옷을 벗긴 뒤 가지고 나오기도 했고, 때론 칼로 옷을 찢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환상 속에서 성적 욕구를 푼 데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이것이 강간으로 이어졌고, 어느 날 놀라 소리 지르는 여성을 살해하고 말았다.

환상의 세계엔 옳고 그름이 없다. 환상에 몰입할수록 방법은 점점 엽기적으로 진화한다. 아버지의 타락, 폭력에 노출된 어린 시절, 억압,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몰입. 이런 과정이 C의 인생에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결국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여성을 살해한 후 시체를 강간한 D는 ‘충동장애자’였다. D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심리적 빈곤감을 느끼며 자랐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절도와 강간을 일삼다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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