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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⑩

‘황비홍(黃飛鴻)’

천당이냐 지옥이냐, 대륙이 풀지 못한 100년 묵은 과제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황비홍(黃飛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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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黃飛鴻)’

광저우 시내 한가운데 있는 중산 기념당. 앞에 있는 것이 광저우 출신 쑨원의 동상이다.

이러한 신중함이 종종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소극적인 기질로 나타나기도 한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중국인은 좀처럼 자신이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다(不敢爲天下先). 한국인처럼 불같이 달려들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부딪쳐보는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 자신이 먼저 실험용 돌이 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보고난 뒤 길을 가려고 한다.

중국 최초의 개항장

그런데 광둥 사람은 다르다. 광둥 사람의 기질을 반영한 광둥 사투리가 있다. 중국어로 ‘나 먼저 가’라고 말하거나 ‘나 먼저 갈게’라고 말할 때,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의 어순은 ‘我先走’이다. 주어, 부사, 동사의 순서다. 그런데 같은 말을 광둥어로는 ‘我走先’이라고 한다. 동사가 부사보다 먼저 온다. 행동을 먼저 하고 그 결과는 뒤에 따지는 광둥 사람의 기질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다른 지역 중국인과 달리 광둥 사람은 기꺼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하겠다고 나선다(敢爲天下先). 그래서 광둥 사람을 상징하는 한자로, 흔히 ‘앞 선(先)’자와 ‘빠를 쾌(快)’자를 든다.

돈벌이와 부를 중시하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광둥 사람의 기질이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과 만나면서 광저우는 날개를 달았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초고속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광저우는 중국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첨병이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고, 그런 만큼 개혁개방의 혜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누렸다.

그러나 멀리 보면 광저우가 지금처럼 발달하게 된 토대는 청나라 때 만들어졌다. 1685년 중국은 영국의 끈질긴 통상 요구에 따라 마침내 외국과의 무역을 위해 광저우를 개방했다. 이로써 광저우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외국에 개방된 항구로 중국이 해양세력, 특히 서양과 만나는 창구 노릇을 했다. 중국 최초의 개항장으로서 서구 근대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광저우는 중국과 서구가 대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광저우가 근대 이후 숱한 혁명의 발상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근대 위기를 가장 먼저, 가장 절실하게 체험한 광저우 일대에서는 청나라를 타도하고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는 혁명 운동이 끊임없이 시도됐다. 이곳에서 홍수전(洪秀全)은 중국 전통사상과 기독교를 결합한 태평천국 운동을 시작했고, 쑨원(孫文)은 공화제 혁명을 일으켰다. 캉유웨이(康有爲)는 서구 침략으로 인한 근대 위기에 맞서 유교적 대동사회를 실현해 중국을 개혁하려 했고, 그의 제자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인을 근대적 국민, 민족주의 의식을 지닌 국민으로 만들어 중국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은 광둥에 농민교습소를 차려 농민혁명의 씨앗을 끼웠고, 광둥 코뮨을 세우기도 했다.

서구의 침략으로 인해 시작된 위기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의 개혁 실험이 광저우인들에 의해 혹은 광저우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에 광저우 도처에 널려 있는 혁명 유적지를 광저우 사람은 자랑스러워한다. 광저우에서 싹튼 근대 개혁과 혁명의 씨앗들은 속속 내지로 북송되어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그 열매를 맺었다. 근대 정치도 그렇고, 근대 문화도 그러했다.

쉬커(徐克) 감독의 1991년 히트작 ‘황비홍(黃飛鴻)’은 광저우 이야기이자 중국 이야기다. 중국이 서구와 만나는 창구이자 중국 근대의 발상지인 광저우 일대 지역에서 전설이 된 광저우의 영웅 황비홍(중국어 발음으로는 황페이훙)의 이야기이자, 우주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던 문명의 제국 중국이 서양 오랑캐에게 형편없이 무너지면서 재기를 모색하는 중국의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 속 황비홍은 광저우의 무술 고수 황비홍인 동시에 중국 자체다.

기네스북에 오른 ‘황비홍’

광저우에서 남서쪽으로 30km쯤, 버스로 약 1시간 이동하면 포산(佛山)이다. 바로 황비홍의 고향이다. 2001년 이곳에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겼다. ‘황비홍 기념관’이다. 황비홍이 의술을 펴던 중의원 바오쯔린(寶芝林)과 무술을 연마하던 곳을 재현해놓았다. 기념관 안의 모든 것이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지만, 마당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 자칭 ‘황비홍의 후예’라는 사람들과 황비홍이 이곳 출신이라는 것만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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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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