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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16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It’이던 그들, ‘He’가 되고‘She’가 되다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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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대부, 더글러스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미국 저항운동의 아버지이자 흑인 문학의 창시자인 프레더릭 더글러스.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누구인가? 그는 무엇보다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 Written by Himself, 1845)의 저자다.

더글러스는 적지 않은 분량의 저술을 남겼지만, 100여 쪽에 불과한 이 조그만 책자야말로 그를 무명의 탈주 노예에서 오늘날 미국 흑인문학 전통의 창시자요 저항운동의 아버지로서 흑인은 물론 백인에게도 존경받는 존재로서 우뚝 서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노예제의 사슬에 묶여 있던 볼티모어에서 북부 뉴욕으로 탈출해 자유를 찾기까지 흑인 노예로서 자신의 고달픈 삶의 행로를 담은 이 자전적 이야기는 1845년 출간되자마자 즉각 베스트셀러가 됐고, 곧 불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로 번역돼 유럽 세계에 미국 노예제도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잘 알려진 대로 더글러스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1831년 ‘해방자’를 창간해 북부 노예폐지 운동의 지도자로 나선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의 권면에 의해서였다.



1838년 볼티모어를 탈출한 후 뉴욕을 경유해 뉴베드퍼드에 정착한 더글러스는 그곳 흑인 사회의 중심인물이 돼 노예제 폐지 운동에 앞장섰다. 1841년 고래잡이 전진기지로 유명한 낸터키트 반노예제 집회에서 더글러스의 연설을 우연히 듣게 된 개리슨은 그의 뛰어난 말솜씨에 매료돼 매사추세츠 주 반노예제협회의 순회 연사로 그를 초빙했다.

더글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1841년부터 뉴잉글랜드와 뉴욕 주 일대를 돌며 노예제의 폐지를 역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노예제를 지지하는 일부 인사들은 더글러스의 뛰어난 언변을 들어 탈주 노예로서의 그의 신분에 의문을 표했다. 노예는 말하자면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로서의 삶이 철저히 억압됐는데, 어떻게 단시간 내에 그런 웅변 능력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그 의문의 핵심이었다. ‘인생 이야기’는 일차적으로 이 의문을 불식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다. 19세기 미국 사회에서 노예는 어떤 존재로 인식됐는가. 더글러스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청중에게 대체로 ‘재산(chattel)’-‘물건(thing)’-남부의 ‘소유물(property)’로 소개됐고, 사회자는 그들에게 ‘그것(It)’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요컨대 노예는 백인의 소유물이요, 무인칭 대명사 ‘It’로 지칭되는 물건,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대로 ‘소리를 내는 도구’일 뿐이지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노예가 인간이라기보다는 물건 혹은 고작해야 동물과 진배없는 존재로 간주됐다는 것은 흑인 고유의 문학 양식인 노예 체험기(slave narratives)의 장르적 특징에서도 확인된다.

탈주 노예들이 쓴 노예 체험기의 서두는 거의 한결같이 자신이 태어난 출생년도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점에서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 역시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기실, 노예 체험기는 노예의 탈주 체험을 다룬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종의 자서전이지만, 자신의 삶의 기원을 정확히 모르는 자의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없다.

노예제의 문제점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스탠리 엘킨스(Stanley Elkins)는 노예제는 나치의 수용소와 같이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제도로서 백인 주인에 대한 절대 복종이 요구됐기 때문에 남부의 노예는 온순하고 주인에게 충직하고 의존적이나, 무책임하고 속이기 잘하는 삼보(Sambo) 타입의 성격을 길러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예는 ‘it’ 일 뿐

노예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미성숙한 ‘영원한 어린이(perpetual child)’이기 때문에 당연히 백인의 지도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노예제 옹호론자의 논리였다.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흑인 노예는 생리적으로 아둔하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쓰는 언어 능력과 사고 능력이 결여돼 있다는 것 또한 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이미지의 중요 항목 가운데 하나였다.

더글러스를 가짜 탈주 노예라고 비난하고 나선 북부 백인들의 뇌리에는 말하자면 이런 인종주의적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더글러스는 함께 일하는 백인 노예 폐지론자들 역시 예외 없이 이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을 발견하고, 흑인 노예가 메이슨 딕슨 라인을 넘어서 북부로 도망쳐온다고 해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님을 점차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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