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실었느냐 화물열차의 검은 문들은 탄탄히 잠겨졌다 바람 속을 달리는 화물열차의 지붕 위에 우리 제각기 드러누워 한결같이 쳐다보는 하나씩의 별 두만강 저쪽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쟈무스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험한 땅에서 험한 변 치르고 눈보라 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남도 사람들과 북어쪼가리 초담배 밀가루떡이랑 나눠서 요기하며 내사 서울이 그리워 고향과는 딴 방향으로 흔들려 간다 푸르른 바다와 거리 거리를 설움 많은 이민열차의 흐린 창으로 그저 서러이 내다보던 골짝 골짝을 갈 때와 마찬가지로 헐벗은 채 돌아오는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헐벗은 나요 나라에 기쁜 일 많아 울지를 못하는 함경도 사내 총을 안고 뽈가의 노래를 부르던 슬라브의 늙은 병정은 잠이 들었나 바람 속을 달리는 화물열차의 지붕 위에 우리 제각기 드러누워 한결같이 쳐다보는 하나씩의 별 -이용악 ‘하나씩의 별’ |

김 할머니는 중국 송화강 상류, 러시아 국경 가까이에 있는 헐벗은 도시 자무스에서 평생을 살았다. 간절히 ‘저 지붕 위’에 올라앉고 싶었지만 김 할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 내려왔든 머물렀든 마찬가지였을까. 아니, 그 선택 자체가 생사(生死)의 기로였을까.
대구의 13평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수해 할머니는 지금 행복해 보였다. 실제로 잘 웃고 쾌활하고 건강에 신경 써서 하루 한 시간씩 운동하고 노래책을 펼쳐놓고 최신 가요를 배우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고 집안을 정갈하게 꾸며놓고 산다.
“중국서 가끔 친구들이 옵니다. 거기서는 재벌이라도 나맨치 잘살지 못합네다. 집도 주고 돈도 주고…. 나라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네다. 보답할 길이 없습네다.”
러시아에 면해 있는 춥고 삭막한 국경도시 자무스(한자로는 ‘가목사(佳木斯·자무쓰)’라 쓴다)에서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김수해 할머니는 77세이던 재작년 비로소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15세에 떠났으니 실로 62년 만이었다. 눈을 의심할 만큼 발전한 조국이었다. 어린 처녀가 중국에는 왜 갔나? 그 이야기야말로 책 열 권으로 써놔도 모자랄 사연이다. 떠나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잊을 수 없는 그날 밤
그는 9남매의 맏이였다. “우리 어매가 모두 열둘을 낳았는데 셋은 없애고 아홉만을 낳아 길렀소. 그중 내가 맏이요.” 아아.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를 김수해 할머니 세대말고 앞으로 또 누가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무릎 아래로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갈게요. 저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김 할머니는 포항 근처 흥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가난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딸이지만 부지런하고 힘 좋고 겁 없는 아이였다. “내가 물힘이 좀 있었잖소. 헤엄을 아주 잘했제. 열두 살 때부터 물에 들어갔소. 처음엔 미역하고 천초(우뭇가사리)를 뜯다가 나중에는 전복 따는 법도 배웠소.”
당시엔 흥해 앞바다에도 해녀가 있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해녀들이었는데 바다를 좋아한 수해는 그들에게서 잠수기술을 익혔다. 여름엔 바다에서 일하다가 10월이 돼 추워지면 산에 올라 나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