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호(號)를 5년 동안 이끌어갈 선장이 되겠노라고 공표한 네 사람의 캠프는 벌써부터 총소리 없는 전쟁터 같다. 기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며 필자에게 대놓고 상대 캠프의 분위기를 묻는 이도 있었다. 누가 기사의 맨 앞에 등장하는지, 이런 ‘사소한’ 문제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지지율 순서대로 (기사를) 쓰실 겁니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어 상대적으로 느긋한 이명박 전 시장 진영을 제외한 세 곳 캠프의 핵심 참모들이 진반농반의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아뇨. 세종대왕이 정한 ‘가나다’ 순서대로 쓸 겁니다. 그게 공평할 것 같네요.”
박근혜, 손학규, 이명박, 정동영. 글을 싣는 순서는 그렇게 정해졌다.
1997년 12월2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15대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둔 터라 1분 1초가 아까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인 근혜씨와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박씨가 15대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를 가늠케 하는 자리이자 그가 공개적으로 정치 참여의 뜻을 밝힌 순간이기도 하다.
당시 각 대통령후보 진영은 너나 할 것 없이 박씨를 영입대상 1순위로 손꼽았다.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가 남다른 대구·경북 지역 표심(票心)을 흔들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 박태준 총재를 앞세워 박 전 대통령 가족에게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씨가 이회창 후보를 만나면서 다른 후보들은 ‘닭 쫓던 뭐’ 신세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