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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⑦

백기 왕전 열전

인명살상 담보로 한 명장의 탄생에 하늘이 진노하니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백기 왕전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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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 왕전 열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병마용갱.

백기가 적군의 ‘목을 베었다’는 대목엔 24만, 13만 등의 목숨이 숫자로 기록돼있다. 심지어 2만명을 강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한다. 이러한 폭력성은 진나라 영토 확장에 이은 시황제 천하통일의 디딤돌이다. 전쟁에서 한 살인은 전쟁영웅의 명성과 후광에 가리어진다. 살인을 살인이라 하지 않는다.

전쟁 승리, 하늘엔 죄

중국대륙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세력 다툼을 할 당시 전쟁은 잔혹했다. 살상당한 군인의 육체는 숫자로 셀 수 있을망정, 그 영혼의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생각한다면 그토록 많은 인명을 살상한 장군의 이름이 아름답기만 할까? 나는 그 이름에서 피비린내를 맡는다.

춘추시대에 공자가 군주의 인(仁)과 덕(德)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 한 모든 노력이 이러한 폭력 앞에서 좌절된다. 군주의 뜻과 장군의 칼이 만나면 선비의 인과 덕은 무너져 내린다. 군대의 지휘권을 가진 장군은 군주에게 자신의 권력을 노리는 가장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뛰어난 군주는 뛰어난 장수를 토사구팽(兎死狗烹)한다. 사나운 사냥개로 부려먹다 적당한 때가 되면 내치는 일은 고금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하다. 적군을 사납게 물어버리는 사냥개가 언젠가 자신을 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결코 나눠 갖고 싶지 않은 권력의 속성이 제왕으로 하여금 장수를 토사구팽하도록 만든다.

우리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두고도 여러 이론이 있다. 선조가 자신을 정치적 적으로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 전사한 것처럼 위장하고 여생을 숨어 살았다는 얘기도 나돈다. 이런 추측들은 ‘사기열전’에 나오는 백기의 최후가 그 시발점이 됐다고 봐도 된다. 백기 이후 뛰어난 장군들은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걸었다.



백기의 뛰어난 전술이 돋보인 전투가 있다. 소왕 26년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할 때, 한나라의 상당이라는 곳에 사는 백성들이 진나라의 군사를 두려워하여 조나라로 피신한다. 조나라는 진나라를 치고 상당의 백성들을 보호해주었다. 조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진나라가 다시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지만, 조나라의 염파 장군이 누벽을 쌓고 대적한다.

조나라의 염파는 진나라의 거센 공세를 지연전으로 이끄는 전술을 펼친다. 이때 훗날 백기의 정치적 라이벌이 되는 진나라 재상 응후가 조나라에 사람을 보내 이간책을 쓴다. 진나라의 간계에 넘어간 조나라 조정은 염파 대신에 성격이 급한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한다. 진나라는 다시 백기를 대장군으로, 왕홀을 부장으로 하는 군대를 편성해 조나라를 공격한다. 조나라의 조괄은 성급하게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가 백기에게 대패한다. 이때의 정황은 끔찍하다. 사마천은 이렇게 기록했다.

“9월이 되자, 조나라 군대가 식량을 보급받지 못한 지 46일이나 됐다. 내부에서는 서로 죽여 살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나라 군대는 탈출하려고 네 개 부대를 만들어 진나라의 보루를 네댓 번 공격했지만,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장군 조괄은 직접 정예군을 이끌고 맨 앞에 나가 싸웠으나 진나라 군대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마침내 조괄의 군사가 패배하니 병졸 40만명이 무안군(백기)에게 항복했다. 무안군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진나라가 상당을 점령한 일이 있었는데, 상당의 백성들은 진나라로 귀속되는 것을 싫어하여 조나라로 돌아갔다. 조나라 병사들은 마음을 잘 바꾸기 때문에 모두 죽여버리지 않으면 뒤에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백기는 사람들을 (항복한 병사들을 잠시) 속여 모조리 산 채로 땅속에 묻어 죽이고, 남겨진 어린아이 240명만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머리를 베인 자와 포로가 된 자는 이때를 전후로 45만명이나 됐다. 조나라 사람들은 두려워 벌벌 떨었다.”

세 치 혀가 화근

40만 인명을 생매장한 이 끔찍한 전투의 후일담을 적으면서 사마천은, 백기가 하늘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백기의 출세가도를 질투하는 재상 응후가 불화살처럼 날아가는 백기의 군대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는 왕에게 진나라 군사는 잦은 전쟁으로 지쳤으니 화친을 맺어 군사를 잠시 쉬게 하라고 간언했다. 왕이 응후의 말을 받아들임에 따라 백기는 칼을 잠시 손에서 놓는다. 재상 응후와는 이 일로 사이가 벌어진다. 그 벌어진 틈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스민다.

진나라는 다시 조나라 한단을 공격했다. 이때 병든 백기는 전쟁에 나갈 수 없었다. 진나라 왕릉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장수 다섯을 잃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 사이 백기가 병에서 회복하자 왕은 왕릉 대신에 백기를 장군으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백기는 여러 불리한 정황을 들어 한단을 공격하지 말 것을 청한다.

백기는 군대의 진퇴, 즉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명장이었다. 하지만 정복욕에 눈이 먼 왕은 백기에게 계속 출전 명령을 내렸다. 백기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 말하고, 일부러 병이 든 척하면서 왕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결국 백기의 예상대로 진나라는 수많은 전사자를 내고 대패했다.

이때 백기가 말실수를 한다. 세 치 혀에서 나온 한 마디의 말에 진나라 영웅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다. “왕이 내 말을 듣지 않은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왕이 이 말을 듣고 진노한 것은 당연하다. 이 말은 최고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백기는 전쟁 영웅일지 모르나, 정치인은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인생을 잘 살아가는 법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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