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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에 빠진 일본

  • 남원상│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기자 surreal@donga.com│

‘롤리타’에 빠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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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한 등장인물 이름인 ‘롤리타’는 나이가 어린 소녀에 대한 성인 남성의 비이상적인 성적 관심 등 소아성애 성도착증을 뜻한다. 최근 일본에선 롤리타 현상이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까지 급속히 파급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롤리타’에 빠진 일본
2009년 8월4일 일본 도쿄의 그랜드프린스호텔 아카사카. 신문, 잡지, 방송 등 언론 취재진이 몰려든 가운데 호텔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이 호텔에서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의 본선이 열렸다.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는 일본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를 선발한다는 취지의 대회다.

올해 이 대회는 12회째를 맞았다. 대회에 대한 일본인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대회를 후원하거나 협력한 기업 프로필도 화려했다. 아사히TV와 영화사인 도에이를 비롯해 소프트뱅크, 음반사인 에이벡스, EMI뮤직 저팬, 워너뮤직 저팬 등 11개 기업이 후원했다. 협력사에는 롯데, 캐세이패시픽, 미즈노, 베네통 등 일본 국내외 15개 기업이 포함됐다.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의 참가자격은 12세부터 20세까지, ‘소녀’로 불릴 만한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올해 대회에 지원한 소녀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총 9만4810명에 달했다. 이 중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21명의 후보가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열두 번째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의 영예를 차지한 주인공은 미야자키(宮崎) 현 출신의 중학교 1학년생 구도 아야노(13) 양이었다. 구도 양은 본선의 ‘모델 부문’에서도 수상해 역대 그랑프리 수상자 중 최초로 2개 부문을 휩쓸었다. 구도 양의 수상 장면은 곧바로 일본의 인터넷, TV를 통해 소개됐고 신문, 잡지들은 이 소식을 앞 다퉈 전했다. 열세 살의 미소녀는 하루아침에 전국적인 톱스타로 부상했다. 구도 양 이외에 본선 각 부문에서 상을 받은 소녀들도 화제가 됐다. 수상자 7명은 모두 12~15세에 불과했다.

후보들이 주로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나이가 어린 점을 고려할 때 ‘귀엽고 깜찍한 소녀를 뽑는, 재롱잔치 수준의 대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본에서 미소녀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대회를 보는 시각은 사뭇 달라진다. 미소녀는 일본 연예계, 애니메이션, 게임 등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다. 큰 눈망울에 앳되고 청순한 얼굴. 하지만 묘한 ‘섹시함’을 겸비해 남성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캐릭터가 바로 미소녀다. 미소녀엔 ‘성(性)적인 매력’도 내포돼 있는 것이다.



성적 매력 가진 미소녀 선발대회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가 단순히 ‘예쁘장한 소녀’를 가려 뽑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시상 부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엔 적절한 후보가 없어서 ‘해당자 없음’으로 발표됐지만, 이 대회엔 ‘그라비아 부문’이라는 상이 마련돼 있다. 그라비아는 원래 사진 기법을 뜻하는 용어다. 그러나 일본에선 젊은 여성의 수영복 화보집, 동영상 DVD 등을 뜻하는 말로 통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일본으로부터 이 말이 유입돼 ‘그라비아 모델’ ‘그라비아 화보’ 등으로 쓰이고 있다.

‘그라비아 부문’은 초등학생도 참가하는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에서 수영복 자태도 심사기준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이 부문 역대 수상자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수영복 화보집 등을 발간하며 그라비아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또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 홈페이지에는 역대 수상자 프로필에 키와 더불어 소위 ‘B-W-H 스리 사이즈’(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길이)가 소개돼 있다. 미소녀를 판단하는 기준에 얼굴 못지않게 몸매도 중요한 부분임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에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두고 ‘여성의 성상품화’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상파TV 방송사가 방영을 중단하는 등 대회 규모가 축소되고 대중의 관심도 낮아졌다. 케이블TV로 방영되며 계속 열리긴 하지만, 여성계를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 같은 국내 분위기에 비춰볼 때, 초등학생도 후보로 나서는 일본의 ‘미소녀 선발대회’는 충격적이다.

미소녀와 ‘로리콘’

하지만 일본에선 이 대회를 두고 청소년의 성상품화라는 비판이나 논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소녀들은 스타의 꿈을 안고 도전하며 연예계에서도 신인 발굴을 위해 큰 기대를 거는 미인대회다. 여러 대기업이 후원하고 전국에서 응모자가 9만4810명에 이르렀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미소녀에 대한 거리낌 없는 선호 현상은 일본 사회 전반에 깊숙이 배어든 ‘로리콘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로리콘’(ロリコン)은 ‘롤리타 콤플렉스’를 줄인 일본식 외래어다. 롤리타 콤플렉스는 원래 유아, 소녀 등 나이가 어린 여성에 대한 (연령대가 높은 성인)남성의 성적 관심 등 소아성애 성도착증을 뜻한다. 원래 롤리타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소설 ‘롤리타’에 나온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이 소설은 1955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간됐으나 내용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판매가 금지됐다. 그러나 1958년 미국에서 다시 발간돼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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