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인사파동으로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그때마다 청와대 민정라인의 검증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출범 18개월을 맞은 이명박 정권 민정라인의 면면, 내부 헤게모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집중 취재했다.
5월18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로비 의혹과 관련해 대검에 소환됐던 이명박 정부의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기업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실무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공직후보자를 발표하기 전 철저한 내부 인사검증을 통해 도덕성에 큰 흠결이 발견됐을 경우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기능이 청와대에 살아 있어야 한다. 청와대 검증시스템을 제대로 가동함으로써 인사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인사 쪽이 더 세다”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 의혹으로 낙마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유독 인사검증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내내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여권 인사는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다”고 말한다. 인사 추천하는 쪽에서 명단이 오면 제대로 검증해서 견제하는 구실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인사 라인이 민정보다 더 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천성관 후보자 낙마 직후 한 여권 인사의 말이다.
“근본적 원인은 권한의 불균형에 있는 것 같다. 권력 실세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직후보자 추천 라인이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라인보다 힘이 더 세다고 본다. 인사 쪽의 ‘입맛’에 맞춰 검증을 한 결과 아니겠나.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을 논하기에 앞서 당장 시급한 것은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 라인에 권한을 보장하고 힘의 균형을 맞춰주는 일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을 담당했던 전직 행정관은 이명박 정권 들어 민정기능이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는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독립적으로 검증했다. 나중에 비서실장 주재 인사추천위원회가 열리면 결과만 보고했다. 눈치를 볼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인사 쪽에서 오는 명단에 사실상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으니 눈치를 보면서 검증을 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번번이 깨질 수밖에…”라고 덧붙였다.
사실 노무현 정권의 민정라인도 후한 점수를 받긴 힘들다. 노 정권 때 ‘코드 인사’는 기승을 부렸고 고위 공직후보자들은 각종 의혹으로 줄줄이 낙마했다. 2005년 1월7일 이기준 교육부총리는 아들의 대학 특례 입학과 부동산 임대소득 탈세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3월7일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위장전입에 의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옷을 벗었다.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도 ‘신동아’의 위장전입 의혹 보도 직후 사임했다.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퇴진했다. 2006년 8월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제자 논문표절 의혹이 일자 13일 만에 물러났다. “노무현 정권 때 민정라인이 독립적으로 검증했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
盧정권보다도 못하다?
노 정권의 민정라인은 노건평씨,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 대통령 측근의 비리에도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도 “이명박 정권의 민정라인이 노 정권 때보다 오히려 더 못하다”는 목소리는 현 여권에 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노무현 정권은 인사 파동 이후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우선 청와대에 인사추천회의 제도를 도입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인사추천회의는 존안자료나 인사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작성한 공직후보자 평가결과를 심사했다. 비서실장과 인사수석 외에 민정수석, 정책실장, 시민사회수석, 홍보수석, 총무비서관이 참석했다. 여기서 3배수로 압축된 명단을 대통령에게 보고해 최종 낙점을 받는 형식이었다.
인사추천회의 가동 이후에도 인사 파동이 계속되자 노무현 정권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매뉴얼’을 다듬어 ‘현장검증’을 강조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아들이 경기 수원에서 건물 임대업을 하면서도 증여세를 내지 않고 있다는 의혹은 현장에 가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지적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권, 김영삼 정권 때도 고위 공직후보자 여럿이 언론 검증이나 국회 인사청문회에 덜미가 잡혔다. 이는 1993년 실시된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가 기폭제가 됐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산하에는 5명의 비서관 및 1명의 감사팀장이 있다. 민정1비서관, 민정2비서관, 법무비서관, 치안비서관, 민원제도개선비서관, 감사팀장이 그들이다. 공직사회 감찰과 고위 공직후보자 검증은 민정2비서관이 담당한다. 조성욱 민정2비서관은 검사출신으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있다 지난해 8월 임명됐다. 이번 검찰총장 인사의 경우 청와대 근무를 마치면 검찰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검사 출신이 검찰총수를 검증한 셈이다. 민정2비서관실 내에서 인사검증 실무를 맡는 곳은 공직기강팀이다. 12명으로 구성된 이 팀을 이끄는 인물은 장석명 팀장이다. 그런데 그는 서울시청에서 기획담당관, 정책기획관 직무대행 등을 역임한 이른바 ‘S라인’ 출신이다.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했다가 서울 영등포구 부구청장을 잠시 지낸 뒤 지난해 3월 청와대에 들어와 공직기강팀장을 맡고 있다.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검증 실패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그간 공직기강팀장은 대부분 검찰·경찰·감사원 같은 사정기관의 고참 공직자가 맡아왔다. 이 때문에 “인사검증 경험이 없는 인사가 팀장으로 있으니 허점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14일 천성관 후보자가 전격 사퇴한 다음날 인사검증 총책임자인 정동기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조 비서관이나 장 팀장은 별다른 거취표명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이 ‘대표로’ 책임을 지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사검증 담당부서는 이중삼중으로 촘촘하게 점검하면서 의문점이 있으면 당사자의 소명을 듣고 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12명으로 꾸려진 공직기강팀 요원만으로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인원 문제도 그렇거니와 신원조회, 부동산 보유 현황 파악, 계좌추적, 병역 확인, 사생활 파악의 경우 권한이 없거나 절차가 까다롭다. 이 때문에 정부 각 기관의 지원에 많은 부분을 기대야 한다. 청와대에 파견된 각 부처 및 검찰·경찰·국세청·금융감독원·국정원·기무사·법무부 출입국 관리소의 직원들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받고 그 내용을 꼼꼼히 검토하게 된다.
파견 인력 중 책임자급이 자기 기관으로 갈 후보자들의 업무능력과 통솔력 등을 담은 내부 평가서도 제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정라인은 이 과정에서 뭔가 짚이는 부분이 있으면 현장 확인을 하거나 본인에게서 해명을 들은 뒤 자체 판단을 보태 인사검증 보고서를 내게 된다. 아무리 자료 전산화가 잘되어 있더라도 여러 후보자에 대한 검증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천성관 후보자 낙마 이후 여권에서 ‘검증 시간 부족’ 이야기가 나왔다. 인사검증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전직 청와대 참모의 말이다.
“한 사람을 정밀 검증하기 위해서는 짧게 잡아도 일주일은 필요하다. 어떤 때는 특정 후보자를 열심히 검증하는 도중 느닷없이 새로운 명단을 넘겨주며 3, 4일 안에 보고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권력 내부의 파워게임에 의해 막판에 치고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 이런 일을 자주 당하다 보면 ‘정밀검증’ 보다는 ‘속도검증’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부처에서 올라오는 1차 검증 결과가 부실하더라도 거듭 확인할 시간이 없다. 요구하는 일정에 대략 맞춰 보고서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못됐을 경우 원망은 몽땅 청와대 검증팀으로 돌아온다.”
현재 청와대는 인사검증 시스템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첫 결과물은 고위 공직후보자가 작성하는 ‘자기검증 진술서’의 강화인 것으로 알려진다. 자기검증 진술서의 질문 항목을 대폭 늘리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나 언론 검증에서 자주 문제시되는 여러 항목, 예를 들어 재산 병역 세금 국민연금 의료보험 소득공제 논문 등에 하자가 없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기의 허물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보자들은 문제를 숨겼다가 청문회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경우 패가망신할 수 있는 만큼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진술서를 작성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인사비서관실 추천, 민정2비서관실 검증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을 중·장기 과제로 잡고 있다. 민정수석 산하의 검증 기능을 인사비서관실처럼 대통령실장 직속으로 확대 개편해 확실한 견제 기능을 갖도록 하자는 방안이 제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사 추천팀과 검증팀을 한 명의 비서관 산하로 통합해 수시로 소통하면서 흠결을 사전에 걸러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사전 인사검증에 국정원과 경찰이 적극 개입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8월초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가 내정되는 과정에 경찰이 검찰총장 후보자 5명을 상대로 검증작업에 참여했고 고검장·검사장 승진 대상자 후보들에 대해서도 검증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모든 현장검증은 국정원과 경찰에 맡길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러나 한 여권 인사는 “국정원이나 경찰이 검증에 참여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온 바대로 민정 라인을 돕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報恩인사’ 논란
이처럼 인사검증 부분에서만 보면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실이 제대로 기(氣)를 펴지 못하는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인사검증은 민정수석실의 중요한 기능이긴 해도 전부는 아니다. 과거 정권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눈과 귀 구실을 하면서 통치체계의 중추신경이 되는 곳은 여전히 민정수석실이다.
민정2비서관 산하에는 공직기강팀 외에 특별감찰반이라고도 불리는 팀이 있다. 공직사회 전반을 대상으로 수시 감찰활동을 벌이는 곳이다. 공무원의 금품수수, 인사청탁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찾아낸다. 이 팀의 활동 영역은 무한대다. 지난 4월 로또복권의 각종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로또 사업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 팀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장영섭 선임행정관이다. 장 행정관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 사건을 수사, 무혐의 결정을 내린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8월 청와대에 입성할 때 ‘보은(報恩)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정1비서관실의 경우 국내 여론을 수렴하고 대응책을 찾는 업무를 맡는다. 또한 대통령 친인척 관리업무도 이 곳 소관이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장다사로 비서관이 민정1비서관실을 이끌고 있는데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등 권력기관과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17명이 포진해 있다. 민정1비서관실이 수집하는 여론동향은 곧 정책에 반영된다.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사회 전반을 흔드는 대형 이슈가 발생했을 때 민정수석실은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각 지역별로도 민심을 파악하고 대응전략을 검토한다.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가 18대 총선 공천 개입 의혹으로 구속된 이후 이 대통령은 친인척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1비서관실에서 이 업무를 챙기는 곳이 ‘친인척전담관리팀’이다. 이 팀의 김두진 팀장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안전을 책임졌던 경찰 경감 출신이다. 친인척전담팀은 이 대통령 친가 쪽 8촌 이내, 외가 쪽 4촌 이내, 김윤옥 여사 쪽 6촌 이내를 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모두 1200명 규모라고 한다. 이 가운데 100여 명을 ‘집중 관리대상’으로 선별해 동향을 세밀히 점검한다.
“항상 감시받는 느낌”
민정수석실 산하 법무비서관실은 법원 및 검찰 관련 업무를, 치안비서관실은 경찰 관련 업무를 청와대 차원에서 관장한다. 민원제도개선비서관실은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신문고 코너나 편지 등을 통해 청와대로 들어오는 각종 민원을 처리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다.
그런데 지금 민정수석실에서는 청와대 내부 감찰을 담당하는 감사팀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 출범 당시 내부 감찰은 이 대통령 측근인 박영준 당시 기획조정비서관(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몫이었다. 박 전 비서관이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권력사유화 발언으로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대통령실 직제개편이 이뤄졌을 때 내부감찰 담당 인원과 기능은 고스란히 민정수석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정가에서는 장다사로 비서관이 정무수석실에서 민정수석실로 이동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감사팀의 팀장은 배건기 선임행정관이고 그의 산하에 7명의 팀원이 활동하고 있다. 배 팀장은 지난 3월 발생한 청와대 행정관 성(性) 접대 파문으로 시작된 ‘100일 감찰’을 주도했다. 장기간에 걸친 정밀감찰 치고는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지만 청와대 참모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배 팀장도 김두진 친인척전담팀장과 마찬가지로 경찰 출신으로 이 대통령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그는 서울시청 출입 경찰관이었다. 이후 이 대통령이 2006년 시장 임기를 마친 뒤 대권 도전에 나서자 배 팀장은 경위를 끝으로 사표를 던지고 이명박 후보 경호를 맡았다.
청와대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전체 직원이 400여 명 정도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시 감사팀이 7명이나 되는 것은 예방을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조금 심한 것 아니냐.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없지 않다”는 불만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팀이 민정수석실로 이동한 직후에는 민정2비서관실 산하에 있는 공직사회 감찰팀의 업무영역을 침범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역할
각 부처나 기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직원은 각종 정책 결정시 친정 부처의 의견을 반영하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최근 민정1비서관실에 근무하던 H총경이 경찰청으로 원대 복귀했을 때 정부의 모 경제부처에서 그 자리를 자기 부처 몫으로 달라고 강력히 건의했다. 그러자 경찰청이 완강히 반대해 경찰 몫으로 유지키로 결정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실제로 민정수석실에서 근무 해 본 사람들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혀를 내두른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여권 인사는 “민정수석실 직원들은 공직사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청와대 안에서도 ‘공공의 적’처럼 돼 있다”고 했다.
한편 국무총리실에도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유사한 역할의 조직이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그것이다. 검찰·경찰·국세청 등에서 파견된 40여 명의 인원이 관가를 샅샅이 뒤지며 직무 사정과 감찰을 벌인다는 점에서 공무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는 별개의 사정기관으로 비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