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중국을 봐라.’ 과거 같으면 과장이라는 비판이 나오겠지만 요즘은 낯설지 않은 말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켜간 경제, 일본과 한국 등 주요 수출국 경기를 견인하는 힘, 올해 들어 폭등한 증시 등은 중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만방에 과시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전경.
중국은 지난해 세계를 덮친 글로벌 금융위기 쓰나미 이후 오히려 위상이 높아졌다. 수출 감소 등으로 한때 휘청거렸지만 금융시장 개방이 제한적이어서 상대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피해가 적었다. 미국 영국 등 서방 선진국들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경제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복하는지가 관심이다. 과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발표하는 금리 숫자에 세계 경제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처럼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지표나 경기동향이 세계의 주목 대상이 됐으며 시시각각 외신을 타고 전달된다.
9월에 개최되는 17차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7전 4중전회)에서는 향후 권력구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은다. 바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중앙군사위 부주석 임명 여부다. 지금까지 차세대 최고 지도자는 먼저 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 군사위 주석 등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다.
과거 같으면 중국 공산당의 내부 행사 로 치부됐을 공산당 중앙위 중간 전체회의에서 누가 권력을 승계하고 어떤 내용들이 논의될지가 세계의 이목을 끌 만큼 중국은 세계무대의 중심에 섰다.
G8→G20→G2에 담긴 중국 위상 변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등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를 합친 8개국 모임인 G8 정상들은 해마다 모인다. 하지만 여기에 중국은 없다.
중국이 개혁 개방 30년 동안 연평균 9.8%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며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G8에는 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은 ‘G8의 시대’가 ‘G20의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G8 회담은 계속 열리겠지만 세계 경제 무대에서 큰 목소리를 낼 중국이 빠져 무게 중심은 G20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G20에는 G8 국가는 물론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신흥 경제 강국이 모두 포함돼 있다. 한국도 참가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린다.
중국이 명시적으로 앞장서서 G8을 공격하진 않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질서를 구축할 때에 G20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해 간접적으로 G8에서 G20으로의 시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이 그동안 미국 주도로 운영됐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개혁을 주장한 것도 새로 짜인 틀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중국은 재정난에 빠진 IMF가 기금 확충을 위해 채권을 발행하면 400억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고위 지도자들은 런던 G20 정상회담을 전후해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 도전하는 내용의 발언을 잇달아 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강화된 중국의 위상을 보여줬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회의 기간 중 “국제금융의 새로운 시스템 구축과 기축 통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자들이 평소 말을 아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직설적이고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을 털어놓은 것이다.
회의가 열리기 전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은 “새로운 기축 통화를 위한 ‘슈퍼 통화’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리들은 ‘슈퍼 통화’에 대해 IMF의 특별인출권(SDR)의 기능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저우 행장의 말은 은행 홈페이지에 발표한 형식이기는 했지만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다)하던 태도를 바꿔 굴기(·#54366;起·떨쳐 일어남)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중국이 2조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하는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룬 자신감이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7월27일과 28일 이틀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간 전략과 경제대화는 중국으로서는 이른바 G20시대를 넘어 ‘G2’ 시대 또는 ‘차이메리카(Chimerica·중국과 미국의 합성어)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번 대화는 형식상으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의 전략대화 및 전략경제대화를 합친 성격이다. 하지만 양국 대표의 격을 장관급에서 국무장관과 부총리급으로 높이고 대화 범위도 양국 현안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안으로까지 확대했다. 사실상 ‘21세기 양대 강국 간 대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개막 특별연설에서 중국을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표현해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임을 천명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양국은 이번 대화를 통해 양국 관계의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눴다. 이는 양국 수교 30년의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21세기 전면적 협력의 초석을 닦았다”고 그 의미를 분석했다. 미국 대표였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양국은 21세기를 향한 긍정적이고 협력적인, 그리고 포괄적인 관계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중국 지도부는 ‘G2’ 라는 표현에 대해 사실과 맞지 않다고 부인한다. 나아가 중국에 대해 책임만 지우기 위한 음모가 깔려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중국이 은연 중에 보이는 태도 변화는 ‘G2’ 개념을 즐기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읽게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월 미중전략대회에 중국대표로 참석한 왕치산 부총리에게 농구공을 선물로 주고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전국 주요 70개 도시의 주택가격을 조사해 발표하는 ‘주택판매 가격지수’가 7월 1.0% 상승해 2개월 연속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지난해 12월 0.4% 감소로 돌아선 후 6개월 만에 상승세로 반전한 것이다. 올 6월부터 중국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은 지난해 가격 수준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6월의 경우 도시별 가격 동향은 베이징(北京)이 지난해 6월 가격의 99.3%까지 회복됐으며 상하이(上海) 99.4%, 선전(深土川) 98.4% 등이다.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103.1%),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104.4%), 닝샤(寧夏)회족자치구의 인촨(銀川·103.8%), 허난(河南)성 뤄양(洛陽·103.9%) 등 상당수 도시는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 주택 판매 면적 증가율은 33.4%, 판매액 증가율은 57.1%에 달했다. 이 같은 부동산시장 상황을 반영하듯 중국 최대 부동산업체 완커(萬科)는 상반기 순이익이 22%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부동산과 함께 경기 동향의 주요 지표인 주식시장도 완연한 회복세다. 상하이 증시의 종합주가지수는 8월 초 3400 이상까지 오르며 작년 5월23일 3473.09 이후 최고를 나타냈다. 증시에 핫머니(단기성 투기자금) 등이 유입돼 거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경기선행지표인 구매관리자지수(PMI)는 7월 53.3으로 6월의 53.2보다 0.1 높아졌으며 3월 이후 5개월 째 50을 넘었다. 중국 ‘물류 및 구매연합회’가 매월 발표하는 PMI 지수는 50을 넘으면 산업이 확장, 50 이하면 축소될 것을 반영한다.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올 상반기(1~6월) 경제지표를 보면 중국 경제는 저점을 지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먼저 사회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은 33.5%로 지난해 상반기의 증가율보다 7.2%포인트나 높았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4조위안 규모의 내수 부양책 등에 힘입어 중국의 건축철강재 가격이 15주 연속 올라, 7월에는 11.9%가 상승했으며 월간 기준으로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7년 2분기 이후 줄곧 내리막이던 중국의 분기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2분기에 7.9%로 8분기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1분기 6.1%에 비해서는 1.8%포인트나 올라 중국 경제가 ‘V자 형’ 회복세를 나타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올해 8% 성장 목표 달성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중국 경제에 대한 성장률 전망도 낙관적이다. 지난해의 9.0%나 혹은 두 자릿수를 회복하지는 못하겠지만 8% 이상으로 내다보는 연구기관도 적지 않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각각 7.2%와 7.0%로 전망해 비교적 보수적인 반면 IMF와 메릴린치가 8.0%, 골드만 삭스는 8.3%로 예측했다.
중국 경제의 동향을 보면서 세계 경제를 전망한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벗어나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낙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진핑, 후진타오 후계자로 확정될까
후진타오 주석은 2004년 15전 4중전회에서 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돼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잇는 1인자로 확정됐다. 시진핑 부주석이 이번 회의에서 군사위에 입성할지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다.
시 부주석은 2007년 17차 공산당대회에서 다크호스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후 주석과 같이 공산주의청년단 계열로 당시까지 ‘리틀 후’로 불렸던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를 제치고 서열도 앞섰다. 이전까지는 리 부총리가 후 주석이 점찍어놓은 후계자라는 설도 없지 않았다.
시 부주석은 개혁 개방 초기의 공신 쉬중쉰(習仲勛)의 아들이다. 따라서 시 부주석이 후계자가 되면 태자당 계열이 처음으로 중국 권력의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된다. 시 부주석이 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되면 2012년 18차 공산당대회에서 5세대 지도부가 구성될 때 태자당이 권력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 시 부주석의 거취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쉬유위(徐友漁) 연구원은 “태자당의 득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시 국가 부주석의 군사위 부주석 임명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 부주석과 후 주석이 다른 점은 후 주석은 사실상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낙점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 부주석은 아직까지 ‘경쟁 중’이다. 언제든 낙마하거나 경쟁자에 의해 추월당할 여지가 없지 않다.
베이징리궁(北京理工)대의 후싱더우(胡星斗) 교수가 전망한 올해 17전 4중전회의 주요 3가지 예상 의제 중 첫째는 10월1일 국경절 기념행사 준비다. 다음은 신장(新疆) 등 소수민족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안정 보호조치를 강구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좋고 빠른(又好又快) 성장’을 유지하고 올해 ‘바오바(保八·8% 경제성장 유지)’를 이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후 교수는 전망했다. 후 교수는 중국 사회에서 집단 시위가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이른바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중국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17전 4중전회에서는 당내 민주화 문제도 상당부분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후 주석도 공산당 창당 88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지난 6월29일 당내 민주화를 촉구했다. 후 주석은 이날 제14차 집단학습 모임을 주재하면서 정치국과 중앙위원회 위원들에게 당내 민주화 추진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혁명 1세대를 자처하는 원로가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비판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10월1일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이런 내용의 글이 나오는 것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당내외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산당은 4중전회 기간 중 논의를 거쳐 회의 폐막 직후 중앙군사위원회를 개최해 시 국가부주석을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임명할지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3억 인구 대국 중국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집권 공산당 당내 행사에도 주목이 쏠리는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