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경제 가이드’ 퇴직연금 잘 드는 법

사업자는 불꽃 튀는 경쟁 가입자는 미온적 태도

  • 김희연│자유기고가 foolfox@naver.com│

    입력2009-09-10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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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행 3년이 넘은 퇴직연금 제도에 불이 붙지 않고 있다. 금융권의 52개 사업자는 눈에 불을 켠 반면, 가입자인 기업과 개인은 찬찬히 관망 중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제도의 특징을 살펴보고 시장의 현황과 관련 당사자들의 갖가지 표정 뒤에 숨은 속내를 읽어봤다.
    ‘경제 가이드’ 퇴직연금 잘 드는 법
    2005년 12월1일자로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지 만 3년6개월이 지났다. 2009년 6월말 현재 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노동실태현황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의 11.19%인 5만8053개가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상용근로자 76만여 명 중 17.31%(13만여 명)만이 적용을 받고 있다. 전체 적립금 규모는 8조2597억원에 달한다.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는 양상은 뚜렷하지만 공기업을 제외한 대기업의 가입률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노동부는 퇴직연금제의 도입 이유를 근로자의 수급권 강화와 안정적인 노후 보장의 두 축으로 설명한다. 사내에 적립해 장부상으로만 기재돼 있던 기존의 퇴직금과 달리, 퇴직연금은 사외 금융기관에 맡겨 놓아 사업장이 도산하더라도 근로자가 떼일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마친 고령자가 노후에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퇴직금의 본래 취지를 살린다는 의도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이직이나 중간정산을 통해 받은 퇴직금을 생활자금으로 써버리고 만다. 그렇다보니 정작 이 돈이 절실히 필요한 노후에는 기댈 곳이 없어진다. 국민연금이 기본적인 생계를 지탱해준다면 퇴직연금은 생활을 보장받는 방법이 된다. 여기에 개인연금이 포함되면 3층 노후보장 논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현재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으로 나뉜다. 사업장별로 한쪽만, 혹은 복수로 도입한 후 근로자가 하나를 선택할 수가 있게끔 돼 있다. DB와 DC는 적립금을 운영하는 주체가 사용자인 사업자냐, 근로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DC형은 사업자의 사외 적립금 외에 근로자가 추가로 적립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DB형은 기업이 매년 말 예상 퇴직금의 60% 이상, DC형은 매년 1회 이상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납부하도록 돼 있다. DB형은 기존 퇴직금과 동일하게 사전에 급여가 정해져 있고 DC형은 수익에 따라 결정된다. 상품 설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DB형은 안정, DC형은 수익을 추구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근로자는 퇴직연금 제도에 깜깜



    기업의 적립금을 운용하는 퇴직연금 사업자는 현재 은행, 보험, 증권업계에 걸쳐 총 52개에 달한다. 2009년 6월 기준으로 은행이 77만5992명의 가입자를 보유해 선두를 차지하고 있고 생명보험사가 27만여 명으로 2위, 증권사가 20만여 명으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이 중 은행권이 유치한 적립금은 4조2157억원으로 전체의 51%나 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현 52개 인 퇴직연금 사업자가 너무 많아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 간에는 과열이라고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정작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되는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제도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DB와 DC가 무언인지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각각 그 안에 원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상품이 설계돼 있다는 사실도 복잡하게만 여긴다.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예적금, ELS, DLS, 채권 등으로 배분된 상품 가운데 연금사업자가 제시한 안을 막연하게 선택하고 있다.

    출판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신씨는 DC형의 퇴직연금 상품에 가입한 상태다. 그러나 자신이 가입한 상품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회사의 대출거래가 있는 은행에서 세 가지 상품을 제시했는데, 동료들이 많이 가입한 상품 계약서에 덩달아 서명했다. 재정 관련 부서에서 개인별로 설명해주는 과정이 있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신씨는 “퇴직금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담당자가 문제없다고 해서 일단 서명했다”고 말했다.

    미가입 사업장에 다니는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제도에 대해 더욱 캄캄하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한 근로자는 언론을 통해 아는 정도였고, 대기업 계열사의 한 근로자는 퇴직연금이 뭐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에서 2007년 말 서울과 수도권 근로자 7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가입자 가운데서도 퇴직연금 인지 여부에 대한 온도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노후를 아직 먼 미래로 생각하는 20대일수록, 기업 규모가 작거나 임금 소득이 낮을수록 퇴직연금 인지도는 낮았다. 노후와 재테크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어야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근로자들의 관심과 이해 부족은 여러 원인을 내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아직 가입률이 낮아서 피부에 와 닿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퇴직연금 제도는 ‘퇴직연금규약’을 작성해 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 퇴직연금 제도 시행의 근간이 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에서는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과반수 근로자가 소속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협의회,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시행이 가능하다. 일단 제도를 도입한 기업의 근로자는 어떠한 형태로든 설명회를 듣고 동의서를 제출한 후, 나아가 DC형의 경우에는 상품설명까지 받은 것이기에 퇴직연금에 대한 인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 가운데 퇴직연금의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기업은 LG전자다. LG전자는 올 3월 DB형을 선택한 후 산업은행, 대한생명, LIG손해보험, 미래에셋증권 등 9개 사업자를 선정했다. 퇴직보험과 신탁 형태로 적립해온 4000억원의 자금을 연말까지 배분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LG전자의 한 직원은 “기존과 같은 일시불 수령 형태도 가능해서 근로자에게는 수급권이나 지급 형태에 차이가 없다고 들었다. 별 부담 없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이 불화의 씨앗?

    대기업의 경우는 LG전자처럼 이미 사외에 퇴직보험과 신탁 형태로 퇴직금을 위한 적립금을 예치해왔다. 2010년까지만 퇴직보험이 인정되고, 이후에는 퇴직연금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이 자금이 유입되기를 기대하는 실정이다. 6조원이 넘는 퇴직보험을 이미 가지고 있는 보험사들은 그동안의 운용 경험까지 더해, 기존 가입 대기업의 DB형 전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가입자 수는 DC형이 많지만, 적립금 규모는 DB형이 더 많고 특히 보험권의 DB형 비중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기업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2006년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구조조정 특별위원회는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지표에 ‘퇴직연금제도 정착 노력’을 10점 반영해 110점으로 평가하라고 권고했다. 노사 합의에 따른 자율이 아닌 사실상 강제 도입이라는 점에서 13개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위원장이 퇴직연금 가입을 전면 거부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정부투자기관의 길은 결국 갈렸다. 한국조폐공사는 ‘공기업 1호 도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아직 미가입 상태다.

    ‘경제 가이드’ 퇴직연금 잘 드는 법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퇴직연금 사업자 가운데 1위는 은행권이지만 전 업계 통틀어 1위 사업자는 삼성생명이다. 1977년 종퇴보험을 시작한 이후 꾸준하게 퇴직 관련한 상품을 운영해왔다.

    한국조폐공사는 2006년 10월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당시 14개 금융기관이 경쟁해 6개 기관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2009년 6월말 기준으로 DB형에 460여 명, DC형 600여 명이 가입한 상태인데, 최근 들어 DC형으로 이동하는 가입자가 늘고 있다. 초창기에는 자산운용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기존 퇴직금과 비슷한 DB형을 선호하던 근로자들이 매년 컨설팅을 받으면서 DC형으로 이동한 결과다. 한국조폐공사 노사협력실의 최윤호 과장은 “지속적인 자산운용 교육을 통해 근로자들의 금융 마인드가 향상되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 노조는 당시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는 점을 들어 퇴직연금에 반대했다. 또한 DB형은 기업이, DC형은 근로자가 적립금 운용 손실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한전 노조 측의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 DC형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예금자보호법의 대상이지만, DB형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대상이 아니다. DB형의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원리금을 보장한다. 여느 금융기관보다 안정성이 높다고 자부하는 한전 같은 기업으로서는 큰 매력이 없는 셈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퇴직소득세와 연금소득세의 차이다. 퇴직연금제의 소득세는 최종 수령 단계에서 납부하게 된다. 납입과 운용 단계의 과세가 미루어져 최종 수령시 소득세를 내게 되는 것이다. 일시금으로 받게 될 때는 분류과세되지만, 연금으로 나눠 받을 때는 종합소득으로 합산되어 원천징수 5.5%의 연금소득세를, 연간 연금수령액 600만원 초과시에는 종합소득과 합산해 종합과세된다. 연금수령 20년에 투자수익률 5%가 난 근로자의 예를 들면 2억4600만원 이상일 경우 퇴직소득세가 적고, 이하일 경우 연금소득세가 더 적다. 퇴직금이 적고 연금 수령 기간이 길면 연금소득세가 유리한 것이다.

    ‘중간정산’이라는 달콤한 독약도 걸림돌이다. 중간정산을 받아 주택대출이나 생활자금으로 써왔던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제도하에서는 중간정산이 안 된다는 점에 난색을 표한다. 퇴직연금 제도는 중간정산의 대체 수단으로 담보대출과 DC형에 한해 중도인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담보대출은 적립금의 50%까지 가능하다. 중도인출은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가입자 또는 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요양, 기타 천재·사변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에 연금을 지급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으므로 담보대출과 중도인출은 노동부가 권장하는 사항이 아니다. 노후를 저당 잡혀 당장의 편리를 추구하는 중간정산에 대한 근로자의 태도 전향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다수 기업은 어차피 퇴직연금 제도로 전환하게 되겠지만, 미리부터 도입해 근로자의 궁금증이나 불만을 부채질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근로자의 우려를 씻을 수 있는 완충 내지는 보완장치가 마련되어 있고, 앞으로도 법 개정과 관리감독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기획재정부와 노동부에서는 가입 기업뿐 아니라 근로자 개개인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세제 혜택을 준비 중이다.

    가입자들은 관망하는 자세지만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바쁘다. 노동부에서는 현 단계 퇴직연금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단기수익률과 수수료 경쟁, 그리고 리베이트를 들고 있다. 현재 퇴직연금 중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율은 DB형 91.4%, DC형이 64.8%에 달한다. 금융시장의 정상적인 수익률을 넘어서는 높은 수익률을 내걸고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지금 출혈을 해서라도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금융권의 무리한 전략 탓이다.

    단기 수익률 경쟁 과열

    현실적으로 근로자가 손해를 입을 수 있는 DC형의 실적배당형 상품은 주식 직접투자가 금지돼 있고, 간접투자 상품도 위험자산 투자 가능성이 봉쇄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률을 미끼로 한 원리금보장형에 대한 지나친 쏠림 현상은 풀어야 할 숙제다. 노동부 임금복지과 최진광 사무관은 “비정상적인 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제공될 수 없을뿐더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시장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상품권 제공 등 리베이트도 마찬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가입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퇴직연금 사업자 가운데 1위는 은행권이지만 전 업계 통틀어 1위 사업자는 삼성생명이다. 1977년 종퇴보험, 1999년 퇴직보험, 2005년 퇴직연금까지 제도 변화를 겪는 동안 꾸준하게 퇴직 관련 상품을 운영해온 것이 삼성생명의 강점. 장기자산 운용능력이나 인프라, 서비스 면에서 삼성생명을 따를 사업자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삼성생명 퇴직연금연구소의 허준 선임연구원은 “금융권의 퇴직연금 담당자 가운데 삼성생명 출신이 많다. 그만큼 인력도 최상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계열사라는 대형 잠재 고객을 가진 것도 다른 사업자들이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계열사라고 해서 반드시 사업자로 선정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암묵적인 기대를 가질 수는 있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것을 두고도 업계에선 “계열사 유치 가능성을 내다본 결정이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퇴직연금 사업 준비에 가장 열심인 사업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곳은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은 퇴직연금연구소를 설립하고 200명 이상의 전담인력을 구성했다. 본사와 지역본부로 나뉘어 연금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회계사, 노무사, 세무사 등 관련 전문가도 가장 많이 보유한 상태다.

    경쟁사들은 미래에셋이 손익분기점에 대한 고려 없이 과잉 투자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추진본부 본부장인 김대환 상무는 “퇴직연금은 단기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제도이고 프로세스다. 초반 투자 없이 장기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 가이드’ 퇴직연금 잘 드는 법
    1위인 은행권의 표정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전국적으로 잘 갖춰진 지점망으로 인한 편의성과 기업 대출에 따른 기존 고객 확보의 용이함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 게다가 다른 퇴직연금 사업자들도 DB와 DC에 걸쳐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의 다양한 자산관리 상품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은행이 주는 안정적인 이미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현재 은행권에서는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이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우리은행은 초기 대기업 시장을 공략하고 목표기업을 대상으로 1대1 컨설팅을 제공해 실익을 거뒀다. 우리은행 퇴직연금연구소 고재설 소장은 “시장은 우리 예측대로 흘러가고 있다. 각 영업 지점에서 담당자들이 퇴직연금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교육해왔고 연말까지는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년 이후 급속하게 확대될 시장에 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금리나 수수료 결정시 내부통제를 엄격히 해나가고 있는지, 절차를 준수하고 있는지를 철저히 살펴본다. 올해 2월부터는 퇴직연금 종합안내 사이트에 ‘퇴직연금 불공정 신고센터(http:// pension.fss.or.kr/kor/psn/static/singo.jsp)’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금융감독원 보험계리연금실의 황성관 연금팀장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검사를 통해 가입자에게 계약체결을 강요하거나 특별 이익을 제공하는 등의 불건전 영업행위를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퇴직연금 어떻게 활용하나

    퇴직연금 급여는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받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노동부에서는 개인퇴직계좌(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에 넣어 관리할 것을 권장한다. 개인퇴직계좌는 퇴직 일시금을 받은 근로자가 개설할 수 있으며, 과세는 지급 시점까지 유예된다. 가입기간 10년 이상, 55세 이상 가입자에게 연금 형태로 지급되며, 원하는 경우 일시금 수령도 가능하다. 노동부는 평균 재직기간이 5.6년인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이직이나 중간정산시 받은 퇴직금을 모아두었다가 55세 후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편 상용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자 개인이 IRA를 개설하도록 하는 기업형 IRA제도를 선택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근퇴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개정안은 도입절차를 쉽게 하고, 근로자의 수급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근로자가 DB형과 DC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복수 가입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복수의 기업이 동일한 퇴직연금 상품에 가입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기존의 개인퇴직계좌가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발전한다는 점도 눈에 띄며 DB형 근로자와 자영업자도 개인형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가입자가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가입자인 기업과 근로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당국에 대해 더 나은 제도와 관리방안을, 사업자에 대해 더 좋은 상품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받아라’, 이왕이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퇴직연금 상품으로 말이다.

    인터뷰/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손성동 연구실장

    “퇴직연금 가입이 금융맹(盲)을 깨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경제 가이드’ 퇴직연금 잘 드는 법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의 손성동 연구실장은 1994년 삼성생명에 입사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삼성금융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8년에는 퇴직연금 제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동부장관상을 수상했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 작업에도 참여했다. ‘장수사회의 미드필더 퇴직연금’ 등 다수의 보고서를 집필했다.

    ▼ 퇴직연금 시장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연금 사업자인 금융권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입니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1970년 61.9세에서 35년 만인 2005년 78.6세로 늘어났습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집니다. 대책 없이 이대로 가면 국가 재정 부담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도 부각될 것입니다. 꾸준히 조사해본 결과 노후 문제가 현실화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적 압력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퇴직연금 가입도 급격히 팽창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 장부상으로만 퇴직금을 기재해놓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수급권이 강화되겠지만, 사외 적립에 종전과 특별한 차이를 못 느끼는 근로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퇴직금은 임금을 보충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경제활동 시기의 생활자금으로 사용되곤 하지요. 반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퇴직연금이 인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로 제공됩니다. 앞으로 은퇴 후 생활을 책임진다는 퇴직금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근로자가 종사하는 업종의 근속연수, 임금피크제 적용 여부, 개인의 투자 성향별로 다양한 퇴직연금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뒀다 연금으로 받아가기를 권합니다.”

    ▼ DB형과 원리금보장형 상품, 그리고 은행권에 가입자가 몰려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험사가 가지고 있던 대기업의 퇴직보험이 전환된 것과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 경쟁이 원인입니다.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단기 재테크에 유리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것도 한 이유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품의 특징상 증권사가 DB형에, 보험사가 DC형에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통념과는 차이가 있지만 자산관리 노하우가 풍부한 증권사가 가입 기업의 수익 결과를 책임지는 DB형 자산 운용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개인 고객의 연금 설계 경험이 오래된 보험사가 근로자를 상대로 DC형 컨설팅을 더 잘할 수도 있고요. 앞으로 시장 상황이나 금융업종의 특성도 변화할 것입니다. 사업자끼리 공정한 경쟁을 거쳐 근로자에게 더 나은 상품을 제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 52개 연금사업자는 너무 많다고들 합니다. 2010년까지는 퇴직보험이 퇴직연금으로 전환되고, 2010년 이후 설립된 신규 기업은 퇴직연금 제도에 자동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연금사업자 간 경쟁이 지나치다고 보시나요?

    “퇴직연금은 한번 팔고 돌아서는 상품이 아니라, 근로자 생애 전반 동안 끌고 가야 할 하나의 제도입니다. 지속적으로 상품에 대해 컨설팅을 해나갈 수 있는 준비된 사업자가 향후 이 제도를 지탱하게 될 것입니다. 일단 거래하던 기업을 잡아놓고 보자거나 어떻게든 근로자를 유인해놓고 보자는 식의 행태로는 오래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인프라와 인력이 미비한 사업자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지 않을까 합니다.”

    ▼ 근로자에게 퇴직연금 활용에 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맹(盲)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현대사회에서 금융을 모르고서는 자산을 지키기는커녕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퇴직연금 제도를 금융맹을 타파하는 계기로 활용하십시오. 기업과 연금사업자에게 적극적으로 교육을 요구하고, 사업자에게 컨설팅을 받으십시오. 눈에 보이지 않던 퇴직연금의 위력을 확인할 날이 올 것입니다.”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국민연금이 기본적인 생계를 지탱해준다면 퇴직연금은 퇴직한 고령자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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