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뇌부를 비판하는 기사에 권력기관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신동아’ 11월호의 관련기사에 대해 국가정보원 측의 대응방식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위였다. 국가기밀이나 안보 위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기사에 이렇듯 과도하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는 국회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정원 수뇌부 내부의 알력과 잡음에 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던 시점이었고, 기자 역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 같은 기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적잖은 언론에서 관련 내용을 공개적으로 보도했고, ‘신동아’ 편집실 역시 국가최고정보기관의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기사화를 결정했다. (국정원 수뇌부는 석 달 뒤인 지난 1월 원장을 포함해 대부분 교체됐고, 인사배경에는 어김없이 당시 수뇌부 내부의 알력과 조직장악력 미비 문제가 거론됐다.)
기사가 게재된 후 국정원 측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기사 게재의 배경이나 의도를 캐묻는 국정원 측 인사들의 전화가 편집실에 쏟아졌고, 그 가운데는 기자 개인의 성향 등을 ‘취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사의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거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정보가 공개됐다는 항의는 한 차례도 없었다.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법률로 정해진 이의제기 절차 역시 진행되지 않았다.
‘신동아’2008년 11월호의 관련 기사.
그 직후 국정원 측의 움직임은 ‘선을 넘은’ 것이었다. 취재기자 개인과 사적인 인연이 있는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 국정원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감찰실로 소환해 일일이 조사를 벌인 것. 국정원 측은 이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결과를 제출받기도 했다. 기사 게재시점을 전후해 기자와 통화한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A씨였을까
권력기관에 비판적인 기사가 적지 않은 ‘신동아’의 매체특성상 관계당국과 대립하는 경우도 잦은 편이지만, 취재기자 개인의 가까운 지인들을 압박하는 방식은 전례가 없었다. 기사와 관련해 접촉한 사실이 없었으므로 이들에 대한 조사는 별다른 결과 없이 마무리된 듯하지만, 거꾸로 놓고 보면 ‘앞으로도 민감한 기사를 게재하면 언제든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압력으로 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이 무렵 한 국정원 관계자는 “조직 특성상 안보 관련 보도보다 오히려 원장의 이름이 제목에 박히는 수뇌부 관련 기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사건은 국정원이 직원 A(55)씨를 감찰실로 소환해 조사를 벌인 일이었다. 1979년 탈북한 이래 오랜 연구활동으로 북한학계에서 명성을 쌓은 전문가이기도 한 A씨는, 기자와는 수년 전 한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다. 서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대학에서 북한학을 강의하는 등 젊은 탈북 전문가들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해온 터라, 기자는 탈북자 사회의 흐름이나 그의 전문분야인 북한 군사문제에 관해 자문이 필요할 때 간혹 그를 만나곤 했다.
A씨가 감찰을 받고 있다고 했을 때 기자가 놀란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기자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그의 신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A씨가 당시 몇몇 세미나 자리에서 탈북한 전문가가 상당수 재직하고 있는 국정원의 비공식 산하 연구소 연구위원 직함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소 직원들은 비밀을 취급하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보안관리에 저촉을 받지 않으며 외부활동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기자가 A씨를 만났다는 사실을 국정원 측이 어떻게 파악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국정원 직원 전체의 통화내역을 조회하지 않은 한 A씨를 감찰대상으로 지목한 근거를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 해당 기사의 수많은 주요 취재원을 두고 A씨만이 감찰을 받은 이유는 더욱 궁금했다. 다만 다른 취재원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A씨와의 점심약속 사실을 취재용 PC에 파일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는 점이다. 이 역시 A씨를 ‘보안이 필요한 주요 취재원’으로 생각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 얘기가 안보 위협?
마지막으로 해당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A씨를 통해 확인된 내용이 극히 미미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기자는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의 한 번잡한 냉면집에서 그를 만나 40분 남짓 점심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다. 당시 뜨거운 이슈였던 탈북자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가운데 A씨로부터 처음 들은 국정원 관련 내용은 얼마 전부터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청사 지하 사우나에 뜨거운 물을 받아두지 않는다거나 엘리베이터도 격층으로 운행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국정원 산하단체 소속이므로 청사에 드나든 적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기자는, 교차확인을 거쳐 이들 내용을 기사에 부분적으로 반영했다. 총 11쪽, 1만2000자에 가까운 기사 가운데 해당 내용은 200자 정도로 극히 일부였고, 국정원 수뇌부 내부문제나 정부 핵심의 개편방향 논의 등 기사의 핵심내용은 다른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 것이었다.
조사과정에서 국정원 측은 A씨가 식사자리에서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장의 국정원 3차장 발령 가능성, 국장급 간부의 퇴직, 원장의 지휘스타일 등에 대해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모두 당시 이미 구체적으로 공개된 언론기사들을 잡담 삼아 나눈 것에 불과했다. A씨의 소속단체로 생각했던 연구소장의 3차장 인사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A씨와 나눈 이야기가 업무상 기밀이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정보와는 무관했기 때문에, 기자는 감찰조사 결과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기간 계속된 감찰은 지난해 12월22일 해임이라는 최고수위 처분으로 이어졌고,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A씨는 17년간 일했던 직장을 떠났다. A씨 역시 “해임처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언론인 접촉을 사전 신고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어 감봉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신동아 편집실은 국정원 측에 엄중히 항의했고, 일부분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달받았다. 이와 함께 사건을 즉각 기사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이후 진행될 법적 불복조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A씨 본인의 우려 때문에 보류해야 했다.
“워낙 분위기가 안 좋았다”
지난해 12월 국정원은 A씨에게 해임을 통보하면서 기자와의 접촉·대화 외에도 ▲허가절차 없이 한 단체 기관지에 칼럼 게재 ▲석 달간 서울소재 모 대학에 주1회 무단 출강 등을 징계이유로 들었다. 이러한 행동이 국정원법 등 관련규정의 비밀 엄수 의무, 영리업무 금지를 위반했기 때문에 ‘직원으로서의 품위나 위신을 손상하였기에’ 국정원직원법 24조에 의거해 징계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A씨는 언론 접촉 외의 다른 징계사유들은 본인이 “신동아 기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사표를 쓰라”는 국정원 측의 요구를 거절한 이후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기자 접촉만으로는 해임이라는 중징계에 설득력이 부족할 것을 염려해 소소한 규정위반을 뒤져 갖다붙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외부기고의 경우 그간 국정원 내부에서 권장하던 일이었으며, 대학 출강은 이미 국정원의 정식허가를 얻어 다른 대학에 강의를 나가던 중에 일과시간이 끝난 저녁 7시 강의를 잠시 맡았을 뿐이라는 것. 대학으로부터 받은 돈은 매달 10여만원에 불과한 교통비였기 때문에 영리업무가 아닌데다, 관행적으로 묵인돼오던 일이라 허가절차를 깜빡한 것이라고 A씨는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A씨는 자신이 신동아 기사를 비롯해 당시 쏟아져 나오던 국정원 관련보도에 대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우나 온수나 엘리베이터 격층 운행이 업무상 기밀이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정보라는 데 동의할 수 없고, 다른 이유들 역시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내릴 만한 사유가 아니지 않으냐는 반문이다. A씨는 “이어지는 언론보도에 책임질 누군가를 만들어 수뇌부에 ‘보여줘야 했던’ 담당부서가 조급한 마음에 도를 넘은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여러 보도로 내부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보도
해임 결정에 불복해 법적인 절차를 밟기로 한 이후 A씨는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청구했다. 현행법상 해임된 공직자가 법원에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하려면 그전에 반드시 소청심사를 거치도록 돼 있다. 통상의 경우 제기된 소청심사는 행안부 소청심사위원회가 직접 담당하지만, 국가정보원의 경우는 원장 본인이 결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정원장이 내린 처분을 국정원장이 다시 심사하는 묘한 구조인 셈.
국정원장으로부터 해임처분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A씨는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에 해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해임이라는 중징계가 자신의 행위에 비해 지나치고, 자신이 17년간 국정원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국가에 누를 끼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임처분은 국정원장의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취지였다.
재판과정에서 국정원 측은 징계사유에 명기되지 않은 A씨의 개인문제를 거론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였다. 또한 국정원 측은 A씨가 식사자리에서 국장급 간부의 실명을 기자에게 유출했다고 주장했지만, 기자는 2001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훈·포장 수여자 명단 형식으로 언론에 보도된 이 간부의 실명을 당시부터 알고 있었고, ‘신동아’ 2007년 2월호에 실린 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에서 이니셜과 직함으로 거명한 바도 있다.
7월24일 서울행정법원 합의6부는 A씨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우선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허가절차를 밟지 않고 게재한 칼럼이나 출강한 강의의 내용 자체는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특별히 해한다고 보기 어렵고, 징계절차가 신동아 기사 게재 이후에 개시된 점 등 원고에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의 행동이 “(국정원법 등이) 규정하고 있는 비밀엄수나 영리업무 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내부 상황을 언론인에게 누설함으로써 국정원 직원으로 더 이상 복무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을 만큼 신뢰관계가 깨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
이에 관해 ‘연합뉴스’는 7월28일 ‘국정원 ‘속사정’ 유출 직원 “해임 정당” 판결’ 이라는 제목으로 1심 결과를 보도했다. 기사를 작성한 ‘연합뉴스’ 기자는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A씨가 유출했다는 이야기가 매우 사소한 부분이어서, 해임은 지나치다는 생각으로 기사화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기자는 “기사가 나간 이후 A씨의 설명을 들었는데 국정원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일종의 ‘트집 잡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현재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절차를 진행 중이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
8월4일, ‘신동아’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정리해 국정원 측에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과 반론을 요청했다. 8월7일 국정원 관계자는 전화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므로 우리 쪽에서는 할 말이 없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이 관계자는 “반론을 포기하는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라고 답했다.
A씨의 1심 재판 과정에서 기자는 기억하고 있는 사건의 사실관계와 의견을 진술서로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다음은 그 한 대목이다.
“국가정보원의 조직문화, 대한민국 핵심기관의 일처리 방식은 제 상식과는 완전히 어긋났고, A씨가 제게 엄청난 보안사항을 누설한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바로 이 부분, 제가 국정원의 상식과 원칙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실수입니다.…차라리 국정원이 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면 훨씬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듯합니다. 이렇게 보면 국정원으로서는 취재기자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