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소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대회의실
■ 사 회 :황준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장
■ 패 널 :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 미래연 산업노동전략센터 연구위원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 미래연 과학기술전략센터 연구위원
김 경 bimpeers 대표
김혜정 아워홈 농공산유통팀
임경민 (사)나눔과미래 인턴
조지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황준욱 반갑습니다. 2030패널로 참석한 네 분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서로 처음 만난 자리다보니 서로 소개도 좀 하고 분위기를 따듯하게 한 뒤 토론을 시작하죠. 저는 황준욱입니다. 1984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신동아’와 함께 이 토론을 주최한 미래전략연구원에서 산업노동전략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조지연님은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라는데 명함엔 참생각대학생정책자문단 운영위원장이라고 적혔네요. 뭐하는 곳인가요?
조지연 대학생들이 모여서 사회 담론을 하는 곳입니다. 06학번이에요.
황준욱 요즘 학생들은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군요.
조지연 예. 그렇습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영어교육과 관련해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국회의 관련 상임위에 대안도 제안했고요.
황준욱 김혜정님. 아워홈은 어떤 회사인가요?
김혜정 96학번이고요. LG유통의 식품사업부가 8년 전 분사해 만든 회사입니다. 아워홈이라는 이름으로 급식사업, 식품제조, 식품유통, 식자재유통, 프랜차이즈 사업을 합니다. 급식사업에선 CJ보다 앞서 있고요.
황준욱 임경민님은 나눔과미래에서 인턴으로 일한다면서요. 인턴은 할 만한가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임경민 나눔과미래는 홈리스 임시 주거지원 사업, 쉽게 말해서 노숙인에게 주거를 지원하는 일을 합니다. 뉴타운 개발과 관련해서 세입자, 가옥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주민권익 옹호활동도 벌이고요. 시민에게 임대주택 관련 정보도 알려드리고 있어요. 일은 아주 재미있어요. 할 만합니다. 저는 02학번입니다.
황준욱 좋은 일을 하는군요. 많은 사람이 공유하게 홈페이지 주소를 일러주십시오.
임경민 www.plain21.net입니다.
황준욱 BIMpeers 김경 대표님은 네트워크 관련 일을 하는 것 같은데요?
김경 BIM은, 빌딩 인포메이션 모델링(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의 약자입니다. 건축·건설 분야의 정보기술을 다루는, 창업한 지 갓 2년 된 신생기업입니다. 기술세미나엔 자주 참석했지만 이런 토론은 처음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약간 걱정이에요. 저는 94학번입니다.
황준욱 너무 걱정 마세요. 이런 토론은 저도 처음입니다. 정연정 연구위원님은 배재대에서 일한다고요?
정연정 40대 중반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87학번입니다. 세대를 구분하면 7080이죠. 재작년에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뤄진 2030비전전략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20,30대의 정치 참여 문제를 담당했는데, 2030이 중견세대로 자랐을 때 정치지형, 참여지형이 어떻게 바뀔지를 들여다봤습니다. 오늘 토론이 그런 골치 아픈 주제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겠지만,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덕분에 젊은 친구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
황준욱 옥우석 연구위원님은 인천대 무역학과에 계신데요.
옥우석 예. 김경 대표님하고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런 토론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즐겁습니다. 86학번으로 40대에 접어든 지 꽤 됐지만 2030의 스틸(still·영화필름 중 한 컷만 현상한 사진)을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황준욱 피터팬 신드롬이군요.
옥우석 그렇지요. 2030의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부합니다. 하하. 프랑스에서 공부했고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잠깐 근무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교수로 일합니다. 전공은 통상·무역이고요. 노동시장도 연구하고 있어요.
황준욱 김형찬 연구위원님은 고려대 철학과에 계신다고요.
김형찬 한국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공이 조선유학 쪽입니다. 82학번입니다.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좀 했는데 아무튼 오랜만에 와서 좋고, 토론을 끝낸 뒤 맥주집도 간다니까 옛 생각도 날 것 같고 좋습니다.
2030은 어떻게 소통하나
황준욱 저는 세대라는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특성을 보이는 사람이 나이별로 집단을 이룰 때 세대라는 말을 쓰는 것 같더군요. 정연정 교수님이 7080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2030, 즉 20,30대를 가리키는 표현도 다양한 것 같습니다. 처음 나온 말이 X세대 아니었던가요. 1971년부터 1984년까지의 출생자, 그러니까 386세대 다음 연령대를 가리키는 호칭이 X세대였습니다. 그 뒤로 N세대라는 말도 나왔죠. X세대라는 말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고, 특정화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담긴 반면, N세대라는 말의 N은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것으로 개방성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어떤 한 가지 특성으로 2030을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2030의 네트워크 방식, 그러니까 소통 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전자통신기기를 활용하는 게 특히 그렇고요. 2030세대는 타인과의 소통, 사회와의 소통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임경민 소통이라는 게 별것 있나요.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네이트온(인터넷 메신저) 같은 데 접속해서 수시로 연락하는 거죠. 인터넷 뉴스의 댓글도 소통의 도구죠. 뉴스의 댓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구나, 그런 식으로 저 아닌,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소통하는 게 20대의 전유물은 아니겠지만요.
황준욱 댓글이 의사소통 수단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나요?
임경민 훌륭한 포털사이트가 몇 개 있어요. 댓글로 대화, 소통하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 다른 생각들을 알게 되는 거죠.
황준욱 조지연님은 온라인에서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나요?
조지연 네이트온을 씁니다. 모르는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사이트도 많아요.
황준욱 94학번인 김경 대표님도 클라이언트나 조직에서 소통할 때 온라인을 많이 사용합니까?
김경 예.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2030세대가 개인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트위터(twitter·블로그의 인터페이스, 미니홈페이지의 친구맺기 기능, 메신저 기능을 한데 모아놓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여럿이 참여하고, 또 볼 수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 취향으로 유도되거든요. 오프라인의 모임과 다르게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 단절할 수 있는 관계다보니 삶이 개인화하는 거예요. 정보기술의 발달로 소통이 용이해진 측면은 있습니다만 연대의식 같은 건 오히려 약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황준욱 네트워크 속에 있지만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거군요.
김경 굉장히 개방적이긴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뒤로 숨을 수 있는 거죠.
정연정 저는 의견이 조금 다릅니다. 정보기술과 결합한 2030의 행위패턴이 개인화했다고 보는 분이 많은데, 그들의 개인성이 소외, 고립을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라고 봐요. 그 안에도 커뮤니티라든지 집단성이 항상 따라다니거든요. 자기 폭로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군집성이 따라다니고 집단화가 이뤄집니다. 네트워크는 다른 세대도 활용해요. 40대, 50대는 과거의 연고를 찾는 수단으로 정보기술을 사용합니다. 동창회 같은 게 그렇죠. 20대, 30대들은 연고를 찾기보다는 자기 표출을 네트워크에서 합니다. 내가 관심 가진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스팅하는 거죠. 그런 과정을 통해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연고와는 상관없는 집단화가 이뤄집니다. 2030은 자신의 일상생활과 관련한 이슈에 문제의식이 집중돼 있고, 그것을 인터넷이라는 기술에 접목해 연대(solidarity)합니다.
임경민 좋은 말씀인 것 같습니다. 집단성, 동질성을 거론했는데 저는 한시성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단은 이슈가 마무리되면 시한폭탄처럼 사라지곤 하죠. 그런 한계를 갖고 있어요. 연고를 공유하지 않고, 같은 지역 출신도 아니고, 친구 관계도 아니면서 네트워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공통의 관심사가 사라지면 금방 관계가 단절됩니다. 그러곤 또 다른 한시적 집단을 만듭니다. 이런 식의 인간관계가 반복되면 깊이 있는 소통은 이뤄지기 어렵겠죠.
정연정 의사소통하는 상대방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보면 연대감이 약하다고는 볼 수 없어요. 나이 든 세대는 얼굴을 보고 만나야만 신뢰가 생기는 데 반해 젊은이들은 네트워크 안에서 생활상의 문제를 공유하면서도 정서적 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스와밍(swarming)이라는 신조어가 있어요. 옛날처럼 집단행동을 할 때 며칠씩 모여서 준비하고 현수막 만드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벌떼가 분봉하듯 모여들어요. ‘번개’를 쳐서 술자리를 갖는 식으로 시위를 벌이는 거죠. 한번 으싸으싸하고 쫙 빠져나갑니다. 과거와 견줘보면 조금 다르지만 그것도 표출이고, 연대이면서 소통입니다.
옥우석 2030의 소통에 연대적 가치가 있다, 없다는 걸 논의하기보다는 그들의 연대적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는지를 중심으로 토론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2030의 집단성과 관련한 사례로 2002년 월드컵과 지난해 촛불시위 얘기를 많이 합니다. 과연 그런 것들이 지속적인 힘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아니면 이벤트적인 어떤 하나의 사건에 불과한지 궁금합니다.
김혜정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의견을 표출하고 연대감을 느끼는 건 긍정적인 일입니다. 30대 직장여성은 정보를 수집할 때 인터넷의 카페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육아, 소비와 관련한 정보를 대부분 인터넷 카페에서 얻거든요. 옛날 같으면 부모님에게 배웠던 부분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고 익히는 거죠. 필자와 독자가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고민을 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신뢰하는 겁니다. 좀 전에 어떤 분이 한시성을 거론했는데 소통관계가 끊어지는 게 아니라 구성원이 바뀌는 거죠. 2030의 연대가 지속적인 힘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옥우석 2002년엔 월드컵뿐 아니라 대선도 있었죠.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인데 한국정치가 보여준 역동성은 굉장했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역동성이었죠. 2030세대가 연대의식을 결여했으며,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보지 않아요. 물론 2030은 실용적이죠. 한국에서 지금 드러나는 부분은 과거의 어떤 권위주의, 즉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을 과도하게 지배하던 시대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사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과거엔 사회가 만든 제도에 의해 네트워킹이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굉장히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네트워킹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면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수 있어요. 사회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젊은 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도 고민해야 할 사안입니다.
정연정 과거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법적 규제였습니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성장했습니다만 2030이 그런 식의 조절장치를 받아들일까요. 앞선 세대들은 7080에게 자율적 조정 메커니즘을 만들어낼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미네르바 사건이라든지 악성댓글 문제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성찰하거나 고민한 뒤 사적 영역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규제와 제도를 만들어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이런 과거의 메커니즘을 2030이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2030은 훈련이 좀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도 과거의 방식으로 제도화에 나서면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옥우석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규제, 법률, 규율을 통해서 해결할 사안이 절대로 아니에요.
황준욱 참생각대학생정책자문단의 활동은 7080세대가 대학을 다닐 때의 정치참여 양식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조지연 권위주의 시대 때와는 많이 다르겠죠. 길거리로 나가는 것만이 대학생의 역할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생각대학생정책자문단은 정책을 결정하는 입법부, 행정부에 자료를 요청하고 그 자료를 분석한 뒤 저희의 생각을 담아서 대안을 냅니다. 대안을 가지고 길거리로 나가서 캠페인 하는 방식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희들끼리만 논의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입법부, 행정부에 대안을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20대가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외로운 존재고, 잠재적으로는 연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황준욱 그런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결과물이 나오기가 사실 어렵지 않나요?
조지연 물론 저희가 대안을 낸다고 해서 다음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배우는 게 많아요. 그게 효과적이냐고 물었는데 제일 효과적인 건 저희가 피선거권을 얻어 정책결정자가 되는 거겠죠. 정책결정자가 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건 대학생 처지에선 비현실적인 얘기죠. 사회를 배우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지 효과만을 따지면 오히려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황준욱 7080은 과거에 급한 부분이 조금 있었어요. 2030은 옛날보다 사안을 길게 보는 것 같네요.
김형찬 네트워킹, 소통방식이 과거와 달라진 점에 초점을 맞춰서 뭔가를 자꾸 해석해내려고 하는데 조지연 학생 얘기만 들어봐도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건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이 넓어진 것이죠. 2030의 소통방식에서 특징을 찾는다면 네트워크의 폭이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는 것, 지식을 늘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폭이 넓어짐으로써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사안에 따라서 쉽게 만나고 쉽게 흩어지는 관계를 통해 과연 사회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자랑할 일이 결코 아니지만 한국은 혈연, 지연, 학연의 사회였습니다. 네트워크가 그런 것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요. 거리응원, 촛불시위를 열정적 에너지의 표출로도 볼 수 있지만 한편에선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 나라가 한 가지 이슈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뒤덮여버릴 수 있는가,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2030은 어떻게 문화를 소비하나
황준욱 토론 끝날 때까지 양면성 얘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이나 스포츠 부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2030은 아이포드 같은 도구를 사용해 개인화한 기호를 충족하는 것 같으면서도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국가대표팀에 집단적으로 열광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요. 임경민님은 대중문화나 스포츠에 관심이 많나요?
임경민 먹고사는 데 바빠서….
황준욱 전혀 관심이 없어요?
임경민 글쎄요. 관심이야 있죠. 오늘 어디랑 경기한다는 건 알죠. 그런데 삶에서 비중을 차지한다기보다는 스포츠뉴스에서 결과만 보는 정도예요. 대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어요. ‘스펙’을 채워야 해서 즐길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극장은 가격이 싸니까 괜찮겠지요, S석이 8만원씩 하는데 공연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황준욱 시간이나 비용이 문제가 되나요?
임경민 뮤지컬이라든지 오페라, 물론 보고 싶죠. 하지만 대학 등록금 대출받은 거 갚기도 빠듯한데…. 주중엔 바쁘잖아요. 주말엔 쉬기 바쁘고요.
황준욱 김혜정님은 뮤지컬 좋아하세요?
김혜정 20대 때는 비용이 문제가 됐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가요. 뮤지컬, 오페라에 관심이 많지만 시간도 없고 시간이 나더라도 자기 계발에 힘써야 하기 때문에 TV로만 즐기고 있어요.
황준욱 대학생들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어요? 공연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나요?
조지연 여건이 안 돼요. 4학년이라서 학교에선 할머니 소리를 들어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친구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거든요.
정연정 언론을 보면 2030의 마니아 문화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나요? 대중성이 없는 가수, 음악장르라고 하더라도 네트워크 안에서 마니아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동영상도 나눠보고 그러잖아요. 오히려 문화에 대한 열정이 과거보다 강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런데 학생들과 대화해보면 TV도 잘 안 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음악을 듣거나 그것과 관련한 대화를 나눕니다. 2030은 특정 분야에 관심을 집중하는 어떤 마니아적 측면을 가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대가 아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황준욱 장기하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마니아적으로 출발한 뒤 상업화에 나서는 예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앨범을 팔잖아요. 2030은 그런 식의 문화 구매행위에 익숙한가요?
임경민 어둠의 경로를 통하지요.
황준욱 어둠의 경로요?
정연정 어둠의 경로가 뭐예요?
김경 불법 다운로드를 말하는 거죠. 요즘말로 본방, 그러니까 실제 방송 시간에 TV를 안 볼 뿐이지 볼 건 다 봅니다. ‘무한도전’ ‘1박2일’을 다운로드 해서 편한 시간대에 보는 겁니다. 7080이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방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 2030은 마니아층을 제외하고는 공연 관람 같은 데는 노력을 안 기울이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 것말고도 볼 게 너무나 많거든요. 하루 종일 인터넷에 접속해 마우스만 클릭해도 볼거리가 넘쳐납니다.
김형찬 다들 삶에 바쁘시고 지치셔서 공연을 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황준욱 인터넷으로 다 보신대요.
김형찬 기자로 일할 때 공연담당을 자청해서 잠깐 했었는데 진짜로 좋았어요. 공연 관람이 꼭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이 사람 공연은 꼭 봐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돈 좀 아꼈다가 비싼 책, 비싼 음반 사듯이 1년에 한두 번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임경민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가치 순위가 다른 겁니다. 순위에서 많이 밀린다는 거죠. 저는 싼것을 좋아해서 그 돈이면 PC방에서 애니메이션을 다운로드해서 볼 겁니다. 만약에 제가 진짜 좋아한다면 투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연극이라든지 뮤지컬, 오페라는 순위가 낮지요, 확실히.
김형찬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예요. 같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꼭 돈이 많이 들어서라기보다 즐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사회적으로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죠. 소련 시절의 러시아를 예로 들면 농사짓는 가난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1년에 한두 번씩 말끔하게 차려입고 발레를 보러 갑니다. 그게 삶의 기쁨이고 문화를 즐기는 것인데 우리는 옛 소련보다 먹고살 만한데도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옥우석 저는 김경씨와 임경민씨 생각에 동의합니다. 뮤지컬보다 재미있는 게 많은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고급문화를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분이 조금 죄송스러운 표현이지만 잘난 체하기 위해서 고급문화를 선택합니다. 저는 2030들이 그런 부분에서 저희 세대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해요.
정연정 제가 대학교 다닐 때는 프랑스영화 같은 거 보러 다니면 노블해 보이고, 있어 보이고 그랬습니다. 저도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유럽영화를 보고 그랬습니다. 7080은 문화소비를 통해서 부여받는 사회적 이미지 같은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황준욱 2030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다운로드해서 봤다, 이런 것은 자랑거리가 되지 않나요? 형태나 방식은 달라졌지만 문화행위를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는 것은….
정연정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운로드를 잘 한다고 해서 부잣집 아들인가보다, 집안이 좋은가보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옥우석 그게 자랑거리가 될까요?
임경민 예컨대 제가 어둠의 경로를 통해 힘든 자료를 구해서 봤다고 해요, ‘나 그거 봤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려 자랑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웃음을 사겠죠. 저말고도 본 사람이 수없이 많을 거 아닙니까? ‘그걸 이제야 봤느냐?’란 댓글밖에 안 달릴 겁니다.
황준욱 잘 알겠습니다.
옥우석 조금 다른 얘기지만 기성세대들은 실명으로 자기를 알리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2030은 익명성 속에서 자기를 알리는 걸 굉장히 즐기는 것 같아요.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닉네임을 쓰잖아요. 처음에 들어가서 배꼽 잡고 나왔어요. ‘안 졸리나 졸려’ 같은 아이디가 얼마나 웃기던지. 이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튀어볼까 연구하는데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 몰라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만족감을 느끼는 겁니다. 깜짝 놀란 게 외국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거의 실시간으로 동영상에 한글 자막을 덧씌워 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무런 보수도 없고,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몰라요. ‘안 졸리나 졸려’ 같은 식으로만 누가 번역했다는 걸 드러내죠. 기성세대들이 자신을 뽐내는 방식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정연정 날카로운 현실풍자도 대단합니다. 대부업체가 TV광고를 하잖아요. 무이자 광고를 패러디한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연체를 했더니 ‘무’가 ‘깍두기’로 바뀌더군요. 광고가 터무니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걸 표출한 거죠. 2030은 풍자 같은 것에도 익숙한 것 같습니다.
2030의 먹고사는 문제
황준욱 주제를 경제 분야로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일자리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7080이 그랬습니다. 지금은 좋은 일자리를 갖기가 상당히 어려워졌고, 주택 문제는 과거보다 더 나빠진 것 같습니다. 2030패널들은 요즘 어떤 걱정을 하나요?
임경민 1980년대 초중반생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꽃을 피우기 전에 말라버린 싹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창 공부해야 할 때 외환위기가 터져서 집안이 몰락하고 대학을 졸업하려니까 고용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승리하는 모습만 보면서 자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많이 벌면 자신이 위에 설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다보니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남보다 내가 우선이 되는 겁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앞서가야 88만원 세대, 요즘은 7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집단에 끼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달려왔는데 막상 졸업하니 고용빙하기가 찾아온 겁니다. 이력서를 100통 넘게 쓰고 면접을 20번 넘게 보니 실감 나더군요. 내가 대학 4년 동안 뭘 했나, 나름대로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았는데…, 나는 도대체 뭘 한 건가 그런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사회엔 이미 어떤 구조가 구축돼 있고 그걸 깨뜨리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서민에서 출발하면 그 위로 올라가기는 매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해요. 결국 사회 탓, 남 탓하게 되는 거죠. 이명박 대통령께서 학교에 다닐 때는 등록금 이자를 없애주겠다고 말씀했는데 약간 눈 가리고 아웅 식인 것 같아요. 이자를 유예해줘도 졸업하면 빚은 그대로 남거든요. 대학 등록금 자체가 지나치게 비싸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저를 예로 들면 졸업한 지 6개월 지났는데 빚이 700만원가량 남았습니다. 결혼하고, 집도 사야 하는데, 88만원 세대로 살다보니 결혼은 어떻게 하고, 아이는 어떻게 키울 것이며, 집은 또 어떻게 장만할지 막막합니다. 윗세대들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도전의식, 끈기가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다 같이 더불어 잘살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요? 그런 사회는 없는 건가요?
황준욱 잘 들었습니다. 김혜정님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습니다. 직장에 들어갈 때 순탄했나요?
김혜정 외환위기 직후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50군데 정도에 이력서를 넣었고, 어떤 회사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습니다. 솔직히 지금 20대를 보면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직장을 가진 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예요. 40대가 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10년 동안 노후대책을 마련하고 자녀를 교육시켜야 합니다. 육아 문제와 관련해서도 고민이 많고요. 출산 장려 목적으로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는데 현실적인 건 직장마다 육아시설을 갖추게끔 하는 것입니다. 육아 문제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하고도 자녀 두기를 고민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가정컨대 월 30만원을 정부에서 육아비로 주더라도 물가를 고려하면 크게 보탬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는 다행스러운 경우인데, 아이를 다른 데 맡기고 직장에 나오는 분들은 비용이 월 120만원가량 든다고 합니다. 다른 직장인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입의 50%가 육아비로 나간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런데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합니다. 88만원 세대란 말이 회자되는 건 아시죠? 적자를 보면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를 키우고 난 뒤엔 직장을 다시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황준욱 맞벌이를 안 하면 살기가 어렵죠?
김혜정 예. 어쩔 수 없이 맞벌이하는 사람도 많죠. 결혼하고 많은 문제에 부닥치다보니, ‘초식남’ ‘건어물녀’라는 말이 요즘 유행인데, 그렇게 살 걸 그랬다는 생각도 가끔씩 들거든요. 자녀를 두고 가정을 꾸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분도 많겠지만, 경제·사회적인 이유로 결혼을 못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못 한다기보다 안 하는 사람도 많고요. (초식남은 온화하게 풀을 뜯는 초식동물처럼 사는 남자를 가리킨다. 이성을 사귀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한다. 결혼, 출산에 관심이 별로 없다. 건어물녀는 직장에선 세련되고 능력 있지만 일이 끝나면 데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집에 와서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머리를 대충 묶고 맥주를 마시면서 오징어 등 건어물을 즐겨 먹는 여성을 일컫는다. 경제·사회구조가 초식남, 건어물녀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황준욱 김경 대표는 고용주인데, 사업을 일구는 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떤 대안이 되지 않을까요? 창업할 때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김경 여전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스템에서 창업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정부에선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늘 밝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다릅니다. 요즘 20대들은 모험정신이 없어서 창업도 못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건 앞뒤가 안 맞는 얘기죠.
황준욱 고용주이긴 하지만 불안감도 있을 것 같아요.
김경 저는 엔지니어 출신인데 경영을 하면 기술 연마가 뒤떨어지죠. 내가 실패하면 돌아갈 자리가 있을까하는 불안감을 항상 갖고 있어요. 하지만 날마다 걱정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일단 선택한 길에서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황준욱 자기 계발을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은 없나요? 부업을 갖겠다는 생각은요?
김경 여력이 없어요. 학교에 이따금 출강하는 게 부업이라면 부업이죠. 학생들하고 대화하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4학년 친구가 “학자금 융자 때문에 빚이 2000만원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 대학생의 부모님 중 상당수가 재정적으로 튼튼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가난의 대물림, 즉 공부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대학원 시스템이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하는 환경도 아니고요. 30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죠. 94학번인 제가 졸업할 때가 딱 외환위기였습니다. 건설경기가 무너지면서 다들 전공을 버리고 보험설계사 같은 쪽으로 진출했습니다. 30대 중반이 돼서 자리를 좀 잡을 만하니까 금융위기가 터졌고, 펀드는 반토막이 났습니다. 대신 집값은 두 배로 올랐고요.
황준욱 세 분이 암울한 말씀만 했는데 조지연님은 대학생으로서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조지연 대학 4년 동안 국가장학금을 받아서 빚은 없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했는데, 어머니가 취업할 생각이나 하라고 질타하십니다. 취업 압박이 대단히 커요. 지방대에 다닌다는 점도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 같고요. 서울대, 고려대 다니는 친구들도 자리를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들 스펙 쌓는 데만 열중하고 있죠. 인턴은 원래 일종의 직업 훈련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턴도 스펙이 됐습니다. 이력서에 인턴 경력 수십 개를 써 넣는 친구도 있어요. 좋은 곳의 인턴으로 뽑히기 위해 인턴 경력을 쌓기도 하고요.
황준욱 인턴을 위한 인턴도 등장한 셈이군요.
조지연 얼마 전 졸업앨범을 찍었는데 저처럼 4년 만에 졸업하는 친구가 별로 없어요. 휴학이 필수가 됐죠. 나이가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인 선배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턴 제도가 문제는 참 많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정연정 경제적 문제가 실제 생활에 뼈저리게 접목된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의 경제관념에도 문제가 있어요. 일자리가 나오면 급하게 학생들에게 연락을 합니다. 일단 그곳에서 일하면서 좀 버티다가 좋은 자리 알아보자는 식으로 말하면 당최 설득이 되지 않아요. 그런 데는 안 간다는 겁니다. 기업의 사이즈가 마음에 안 들고 완전고용이 아니어서 싫다는 거죠. 인턴도 임금으로 보상받는 것 아닌가요. 얼마 전 한 퓨전레스토랑에 갔더니 손님 대부분이 대학생이더군요. 학자금이 없어서 힘들다고 말하는데 그 식당은 결코 싸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김경 20대 패널들이 스펙 얘기를 꺼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의 스펙은 좋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 처지에서 보기엔 사정이 좀 달라요. 중소기업은 실제 업무에 곧바로 투입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공대 컴퓨터공학과 나온 사람이 토익은 900점이 넘지만 실제로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해요. 무의미한 스펙이죠. 대학생들이 준비하는 스펙이라는 게 사회적 낭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지연 학생 때는 모르겠으나 졸업한 뒤 하는 인턴은 임금이 너무 적어요. 채용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요. 인턴 할 바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기는 친구도 많습니다. 예컨대 29세에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서른 살이 된 뒤 다른 회사의 인턴으로 옮기고 서른두 살에 또 옮기고 그러다 보면 정규직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인턴 하다가 다른 인턴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인턴으로 옮겨 다니면서 나이를 먹으면 참담할 것 같습니다.
황준욱 임경민님이 말씀하실 게 있는 표정인데요.
임경민 조지연씨가 저를 보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나이는 먹어가는데….
황준욱 말씀하세요.
임경민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청년인턴입니다. 원래 인턴이라는 게 어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수습의 단계 아닌가요. 인턴이 끝나면 정규직이 되든지 레지던트가 되든지 빛을 봐야 하는데 이건 그게 아닙니다. 한시적으로 실업률을 낮추려고 국가가 내놓은 정책인 것 같습니다. 희생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저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인턴이라도 해야 등록금 융자받은 걸 갚을 수 있으니까요. 돈이 적든 많든 간에 기회를 준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인턴 기간이 10개월입니다. 12개월을 일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더군요. 인턴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많죠. ‘가을부터는 일하면서 구직활동을 하겠습니다’라고 윗분들에게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해라, 우리가 네 발목 잡을 수는 없다’고 말하시더군요. 그런데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10개월간 배운 게 너무나 아까울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이라고 여기면 되겠지만 이런 식으로 옮겨 다니다보면 전문성이 떨어지겠죠.
황준욱 경제학자인 옥우석 교수가 비전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옥우석 비전을 내놓지는 못 하겠지만 할 말은 많습니다. 일단 등록금 문제부터 시작할게요. 등록금 문제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간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대학이 뭐를 갖고 경쟁할까요? 업적, 연구성과는 포장용이죠. 실제로는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경쟁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대학의 평판이 높아지거든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는 내실 있게 경쟁할 수 있어요. 동문회 조직도 크고, 사회적 평판도 높아서 펀드레이징(fund-raising)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학들이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고자 쓰는 방법이 뭘까요? 등록금을 올리는 겁니다. 물론 등록금을 올려서 교육, 연구에 투자하면 좋겠지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올린 등록금을 캠퍼스를 현란하게 만들어 홍보하는 데 씁니다. 이런 구조는 잘못된 거라고 봐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그런 경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김형찬 교수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어떤 분이 고려대 경영대에 강의하러 갔다가 완전히 촌놈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마이크를 찾았더니 학생들이 왜 찾느냐는 식의 표정을 지었답니다. 그 강의실은 연극무대처럼 천장에서 무선 센서가 따라다니는 시스템을 갖춰놓았다더군요. 대학에, 그것도 강의동에 그런 설비가 과연 필요할까요? 고려대는 감당할 수 있겠지만 아래로 내려오면 바짓가랑이가 찢어집니다. 두 번째는 정연정 교수님 말씀에 대한 반박입니다. 취업 기회가 있는데도 학생들이 취업을 망설인다고 말하셨죠. 저는 학생들이 굉장히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가 이중화했습니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인생이 잘못될 수도 있어요. 7080은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여기겠지만 학생들 처지에선 한번의 선택이 평생의 소득을 좌우하는 상황이거든요. 굉장히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대기업 위주로 취업을 생각하는 게 현명한 거죠. 첫 직장이 시원찮은 곳이면 직장을 옮길 때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커요. 중소기업은 일자리가 있는데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과거 같지 않아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2030은 학습효과에 따라서 안정적인 곳만 찾습니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면 인턴제도가 굉장히 낭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에서 학생들한테 용돈 주는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재학 중에 하는 인턴은 졸업 후에 하는 인턴보다는 유리한 점이 많겠습니다만 인턴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가서 놀다왔다고 말합니다. 전문대학, 직업학교 제도를 활성화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황준욱 짧게 해주십시오.
옥우석 육아는 비용보다 기회의 문제입니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쉬면 정규직으로 되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정연정 장기적이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은 곳에는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2030세대들의 선택이 딜레마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치관은 바뀌어야 해요. 대학이 과도한 시설투자를 해서 등록금이 올라간다고 말씀하셨는데 대학 서열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2030도 사회가 강제해온 서열 의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형찬 조금 전에 고려대를 거론하셨는데 우리 학교도 어렵습니다. 고려대, 서울대 같은 학교는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거든요. 외국 대학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외국인 유학생도 더 많이 유치하고 그래야 합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음에도 2030이 힘들어하는 건 사회구조 때문입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렇듯 불안정한 상황에선 사회가 올바르게 유지되지 못합니다. 외환위기 때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국가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합의가 이뤄져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2030이 바라는 것, 2030에게 바라는 것
황준욱 2030패널들은 사회, 정부에 이것만은 꼭 해달라는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미래연 패널들은 2030의 의견에 첨언하거나 2030에게 바라는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혜정 옥우석 교수님이 육아 문제와 관련해 비용보다 기회의 문제가 더 크다고 말씀하셨는데 실감 나는 얘기입니다. 출산휴가로 3개월을 쉬면서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육아 문제는 한국의 미래가 걸린 일 아닐까요?
임경민 정연정 교수님께서 등록금은 비싸다면서 왜 값비싼 레스토랑을 가냐, 학교에서 추천해줘도 취업을 왜 안 하느냐고 그러셨는데 그건 정 교수님이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절대빈곤 사회를 벗어났으니 괜찮다, 과거보다 배가 부르다는 것도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경 2030이 마음껏 창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20대들은 사회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들도 사회의 윗단에 오르고 싶어 합니다. 30대들은 강남 집값은 왜 이렇게 오르느냐고 욕하면서도 강남에 살고 싶어하고요. 7080이나 더 윗세대가 2030에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말입니다.
조지연 미래에 대한 투자는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의와는 좀 다른 얘기지만 그것의 일환으로 민주시민교육 같은 것도 활성화했으면 좋겠어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투자도 늘려야 하고요.
정연정 사회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문제도 적지 않지만 이면엔 사람들의 사고, 관습,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2030이 새로운 사고,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옥우석 2030이 부딪힌 문제는 한국의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30은 저희 세대와 비교해서 창의적입니다. 그래서 감탄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즉자적으로 ‘아, 이게 좋다, 나쁘다’를 판단한 다음 멈춰 설 때가 많아요. 제가 오해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전문적인 부분에서 조금 더 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형찬 절대빈곤은 오래전에 넘어섰으니까 선진국이 되고자 한다면 그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1970, 1980년대의 발전모델을 고수하면서 낙오자를 만들어가는 시스템으로는 선진국이 될 가망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황준욱 생경한 주제를 놓고 처음 뵌 분들이 장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제 아이가 스무 살입니다. 예전엔 아이와 소통이 잘 안 됐습니다. 그런데 아이 처지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더니 소통이 이뤄지더군요. 저는 세대를 나누는 것엔 반대하지만 특정 연령대의 비슷한 생각을 하는 그룹이 있다면 사회가 그 그룹의 처지에서 사안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080의 노후를 짊어질 사람들이 2030입니다. 저희 세대가 연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2030이 생산을 많이 해줘야죠. 따라서 2030의 문제는 7080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2030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미래전략연구원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전문가·학자 90여 명이 포진해 ▲학제적 연구 ▲실천적 연구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적 연구를 표방하는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다. www.kif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