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닉 혼비 지음/ 이현수 옮김/ 미디어 2.0/ 247쪽/ 1만2000원
‘픽션’의 첫 번째 이야기인 닉 혼비의 ‘작은 나라’는 놀랍게도 석 달 전 인터넷 매체에 발표한 ‘헤이맨, 승리만은 제발! ’이라는 나의 짧은 소설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닉 혼비의 ‘작은 나라’는 축구경기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챔피나라는 나라의 축구팀 이야기로, 열네 살 소년 스테판이 주인공이다. 챔피나는 프랑스어 ‘들판 champ’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들판만한 나라’다.
이 나라 축구 대표선수인 스테판의 아버지가 어쩌다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스테판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대신하게 된 것. 스테판은 책과 글쓰기에만 관심이 있고 축구를 경멸하는 소년. 그런 그가 대표선수로 참가하게 된 것은 매우 시시하지만 절대적인 국가법에 의해서인데,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 나라의 대통령이 바로 그의 어머니였고, 법을 시행하는 국무위원은 아버지를 비롯한 선수들이다. 스테판은 이들의 국가법과도 같은 명령에 의해 강제로 징발되었던 것.
챔피나의 상대국은 주로 세계에서 작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산마리노나 바티칸.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맞붙으면 10대 0으로 지는 이 국가들이 챔피나와 맞붙으면 30대 0으로 이기곤 했다. 웃기는 것은 챔피나 사람들 아무도 패배를 슬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심하게 졌기 때문에 지도 위에 챔피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할 뿐이다. 축구 국가대표로 뛰지 않으면, 챔피나에서 누리는 권리들을 박탈한다는 대통령(어머니)의 명에 의해 대표팀에 투입되기는했어도 스테판은 절대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가만히 서서 선수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늘 그렇듯이 챔피나는 13골을 내주고 전반전을 마쳤다.
그런데 자신을 제외한 선수들이 정신없이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것을 지켜보던 중 스테판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골을 넣는 선수와 골을 넣도록 패스해주는 선수의 움직임에 대해 마치 체스판을 들여다보듯 분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작전 타임 중에 강제로 주어진 발언권으로 팀원들에게 그가 본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감독의 역할을 하게 되고, 그의 작전 지시에 따라 뛴 결과 챔피나는 전반전에 심하게 지던 것이 후반전에는 3골밖에 내주지 않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 이상의 쾌감을 맛본다.
한편, 나의 짧은 소설 ‘헤이맨, 승리만은 제발! ’은 어떤가. 이 작품은 D대학 문창과 축구팀 ‘헤이맨’의 우스꽝스러운 패전기(敗戰記)다. 헤이맨은 여학생 중심의 과 특성상 열한 명의 축구팀을 구성하기에는 남학생이 부족해 조교까지 꾸어와 겨우 구성한데다가, 선수들 대부분이 자나깨나 책과 뒹굴며 시 쓰고 소설 쓰는 골방샌님들이다. 이들은 문창과다운 축구는 ‘지기 위해 뛴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문창과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승리를 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어수룩한 복학생이 한 골을 얼떨결에 실수로 넣는 바람에 무승부라는 반갑지 않은 결과를 맞았고, 어쩔 수 없이 승부를 가리기 위해 페널티킥을 차는 과정에서 신입생 출신 골키퍼가 역시 판단 실수로 날아오는 골을 신들린 듯이 모조리 막아버리는 바람에 기록적인 첫 승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승리를 기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이 오히려 문창과다운 축구의 미학을 저버린 골키퍼에게 달려가 몰매를 선물한다.
소설은 스토리가 전부는 아니다. 작품에는 작가 고유의 문장이 있고, 체취가 있다. 영화와 소설을 종횡무진 오가는 영국 작가 닉 혼비의 ‘작은 나라’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축구에 대한 경멸과 거부를 해소해가는 과정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야기 둘
여름밤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반딧불이 세상입니다!
한 달 전 어둠이 질 무렵,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잔디밭에 누워 한여름 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뉴요커들에게 선사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다. 그레이트 론(Great lawn)의 거대한 풀밭에는 이른 오후 시간부터 뉴요커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콘서트가 시작될 무렵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원한 저음의 바리톤의 노래가 끝나자, 말러의 교향곡이 공원의 밤하늘로 울려 퍼졌다. 콘서트가 끝날 무렵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두 손바닥을 허공을 향해 활짝 펼친 채 어둡고도 푸른 센트럴파크의 숲 속을 거닐었다.
그런데 몇 발 떼지 않아, 내 손과 가슴, 다리와 얼굴을 가로지르며 작은 생명체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었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무와 나무 사이, 어둠과 어둠 사이, 반딧불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뉴욕 필하모닉의 콘서트가 끝나면 센트럴파크 허공을 수놓던 불꽃들이 모두 반딧불이로 환생한 것 같았다.
뉴욕에서 돌아와 막 출간된 ‘픽션’을 펼쳐 들었다. 수록된 열 한편 중 우선 첫 번째와 마지막 작품을 읽었다. 제목들이 모두 호기심을 끌었지만, 9·11테러를 배경으로 추리 형식으로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이라는 매혹적인 장편소설을 발표했던 젊은 작가 조너선 사포란 포어의 단편이 몹시 궁금했다. 작품을 펼치자마자 나는 신기하게도 센트럴파크의 뉴욕 필하모닉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홀려 다녔던 반딧불이와 만났다.
축제 기간에 장식용으로만 사용되던 병 속 반딧불이는 이제 집집마다 들어앉아 조명을 대신했다. (중략) 공원을 옮기는 동안 아이들은 공원에 누워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아무도 이 특권이 왜 필요한지, 이 특권을 부여받은 게 왜 아이들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날 밤 역사상 가장 큰 불꽃놀이가 뉴욕의 하늘을 밝혔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밤새 연주를 펼쳤다. (‘픽션’ 본문 226, 233쪽)
조너선 사포란 포어의 ‘6번째 마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뉴욕시의 사라진 6번째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뉴욕시는 현재 5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설에 따르면 원래는 6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 6번째 마을에 대한 표식은 센트럴파크 어딘가에 있는데, 센트럴파크는 바로 6번째 마을에 있었고, 그 마을이 사라지면서 맨해튼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라틴어 픽티오(fictio)에서 유래한 픽션이 ‘가공한 인물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듯이, 조너선 사포란 포어가 지어낸 뉴욕의 비밀 이야기는 순수하면서도 환상적이다.
2000년대 벽두, 뉴욕과 서울, 도쿄의 소설시장을 강타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현대 도시의 젊은 남녀의 욕망을 짧은 문장과 짧은 분량으로 그려낸 감각적인 소설들이다. 21세기 초고속 인터넷 매체 환경에서 소설은 새로운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 매체와 인터넷 매체가 밀월관계를 도모하고 있고, 본격 소설과 장르소설, 또는 방외소설 간의 가로지르기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한국의 젊은 소설가들은 작품 속에 무협과 추리, 엽기, 판타지, 하드-코어, 하드-보일드 등 장르소설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소설 장르에 대한 실험과 변형을 시도하고 있다.
이야기 셋
보다 유연하고 유쾌한 세상을 꿈꾸는 아버지와 아들들을 위하여!
‘픽션’은 한국 소설계가 처한 작금의 상황과 같은 동시대적인 현장성을 제공한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은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추천 서문을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위험한 대결’의 작가 레모니 스니켓을 비롯해 폴 오스터 이후 현대 미국(뉴욕) 소설의 기대주 조너선 사포란 포어, 현존하는 10대 포스트모던 작가로 SF, 판타지 소설가이자 만화가인 닐 게이먼, E.M. 포스터 수상작가로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닉 혼비 등 이 책에 모인 소설가들은 모두 ‘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작품을 쓰지만, 그들의 작품들이 위치하는 세계는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한 편 한 편 지니고 있는 탄탄한 스토리다. 조너선 사포란 포어가 ‘여섯 번째 마을’에 창조한 뉴욕과 센트럴파크의 비밀 이야기, 닉 혼비가 ‘작은 나라’에서 창조한,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을 만큼 세상에서 가장 작을뿐더러 축구팀을 겨우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몇 안 되는 국민이 사는 나라 소년의 운명적인 축구 이야기, 닐 게이먼이 ‘태양새’에 창조한 기상천외한 미식가 이야기, 클레멘트 프로이트가 ‘그림’을 창조한 못 말리는 부모와 어른들의 끊이지 않는 메모 이야기등 당대 최고의 일러스트들의 개성 넘치는 삽화와 함께 한편 한편 작품을 음미하다 보면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볼 때처럼, 강가의 미루나무 이파리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볼 때처럼 행복한 충만감이 가슴과 눈과 귀에 가득 차오른다.
듀엣 연주처럼 소설가와 일러스트작가가 펼쳐 보이는 이야기 잔치 속에는 재치와 유머, 순수와 환상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작품마다 소년의 눈으로 보는 세계와 그 소년이 20~30년 후 부모가 되어 보는 세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 소설이나 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나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들과 아버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