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1997년 법 제정되고 13년간 유예
- 사측이 지급하는 노조전임자 급여 연간 4288억원(2007년)
- 노조전임자 월급이 현장 노동자보다 많다?
- 노동계, “법 적용되면 노조 활동 위축” 주장
- 재계, “노사정위원회의 ‘타임오프제’ 악용될 소지 많다”
지난 7월 17일 경기도 분당 KT 본사에서 노조원들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문제의 법조항은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중 노조전임자 급여지원과 관련된 제24조 제2항과 제81조 제4호다. 노조법은 1997년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이 폐지, 하나로 통합되면서 제정됐다.
제24조 (노동조합의 전임자)
①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전임자)는 그 전임기간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 된다.
제81조(부당노동행위) 사용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부당노동행위)를 할 수 없다.
4.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다만,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사용자와 협의 또는 교섭하는 것을 사용자가 허용함은 무방하며, 또한 근로자의 후생자금 또는 경제상의 불행 기타 재액의 방지와 구제 등을 위한 기금의 기부와 최소한의 규모의 노동조합사무소의 제공은 예외로 한다.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다.
노조 일만 하는 사람(노조전임자)은 회사(사용자)에서 월급을 받아선 안 된다. 노조전임자의 월급은 노조의 몫이다. 받아서도 안 되지만 줘서도 안 된다.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돼 처벌을 받는다. 사용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임금을 지급하는 식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노조 활동에 개입하거나 노조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없다.
노동계의 반대로 유예
내년 1월1일 시행을 앞둔 이 법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극과 극을 달린다. 노동계는 법조항 자체를 없애라고 하고 재계는 조속한 법집행을 주문한다. 지난 13년간 똑같은 논쟁이 반복돼왔다.
이미 만들어진 법의 시행을 두고 갈등이 생기고 심지어 10년 넘게 법의 집행이 유예되어온 이유는 딱 하나다.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 이유는 간단하다. 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사용자 측이 부담하던 노조전임자 급여를 노조가 책임져야 한다. 노동계는 이 법이 시행되면 현실적으로 노조 활동이 재정상의 이유로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중소 규모 노조가 무력화될 수 있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기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으로 규제할 일이 아니며 각 기업의 여건에 따라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입장은 “더 이상 법집행을 유예하지 말자”는 쪽이다. 노사 간의 독립적인 역할과 지위가 만들어지려면 이 법의 시행이 꼭 필요하다는 것.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에도 재계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재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법제팀 관계자의 얘기다.
“노사관계라는 것은 근로자가 생산에 필요한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이게 깨지면 노사관계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순 없다. 현실적으로 기업은 노조의 일방적인 파업과 위력 앞에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힘이 센 대기업 노조의 경우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사실상 합법화할 가능성이 크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사측이 부담하다보니 그동안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먼저 노조전임자의 수가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노조는 평균 150명의 조합원당 1명꼴로 노조전임자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와 노동시장 구조가 비슷한 일본보다 3배 이상 많은 숫자다. 현재 일본은 노조전임자 급여를 전액 노조가 부담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행한 ‘노조전임자 관련 개선방안을 위한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도 이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을 상대로 조사한 당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노조가 자체 지급하는 전교조에 비해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에 노조전임자가 휠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전임자 1인당 조합원 수를 비교한 결과 현대자동차는 205.5명, 현대중공업은 199.1명인 데 비해 전교조는 712.2명이었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전교조에 비해 세 배 이상 많은 전임자를 두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단체협상에서 정해 놓은 노조전임자수보다 실제 노조전임자 수가 더 많았다.
재계에서는 이 외에도 사측에 의한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이 노조 내 계파 형성, 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 등 투쟁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에 상당한 원인을 제공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노조전임자 급여에 대한 부담이 없다보니 노조 활동이 방만해졌고 노조전임자가 노조원들을 위한 활동보다 대정부투쟁 등 노동현장과는 관련이 없는 활동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노동계에 변화의 바람 분다
최근 노동계 내부에서 사용자에 의한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투쟁의 산물이나 권리로 인식하던 노동계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7월13일 국회에서 열린 노사상생포럼(이하 포럼)에서였다. 포럼은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인하대 교수),최영기 전 노동연구원장,이철수 서울대 교수,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주완 변호사 등 학계 법조계 노동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이 가치중립을 지키며 노사관계 선진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이날 포럼에 나온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과 정연수 서울메트로 노조위원장은 “노동운동의 자주성과 자생력 확보를 위해 전임자 임금은 노조 스스로 조합비에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전임자 임금 문제는 노사 자율로 결정해야 한다”는 양대 노총(한국노총, 민주노총)의 공식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게다가 이들 두 사람이 속한 노조는 지난 수십 년간 국내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대표해온 곳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3월19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산하 NCC 노동조합 김주석 지회장(가운데)이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민주노총 탈퇴 기자회견을 열고 “민노총은 정치투쟁을 멈추고 노조 본연의 활동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정 위원장도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위한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의 말이다.
“자주적 노조로 가기 위해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불가피하다. 전임자 임금이 조합원 주머니에서 나간다면 (조합원들은) 전문성을 갖추고 조합원을 위해 일하는 전임자를 뽑게 된다. 노조가 전임자 임금 자체 충당을 통해 자주성을 확립해나간다면 국가경제와 국정 전반에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포럼의 멤버인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용자가 지급하는 전임자 임금과 각종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노조가 사용자를 뒤에서 비난하는 뒷간식 노사관계는 글로벌 관행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노조의 자주성을 논하기 부끄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임원급 대우받는 노조전임자
사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문제는 하느냐 마느냐는 당위의 문제를 떠나 사용자 측에 큰 경제적 부담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노동부가 발표한 ‘2007년도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사측이 지급한 노조전임자 임금은 무려 4288억원에 달했다. 2005년에 3439억원이던 것이 2년 만에 849억원이나 늘었다. 게다가 상당수 대기업 노조의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이 일반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덕적 해이니 노동귀족이니 하는 식의 도덕성 시비가 불거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조전임자의 55.5%가 평균임금 수준을 받고 있으며 평균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는 곳도 28.2%에 달했다. 일을 하는 근로자보다 노조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는 대기업 노조에서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4월 경총이 발표한 자료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동조합이 부담해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단체협약시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조위원장에 대한 임원급 대우, 접대비, 차량 및 기사 제공 등의 무리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으며 노조전임자에 대해 연월차휴가수당 및 연장근로수당 외에도 출퇴근 시간 등의 면제, 전임자 특별수당, 차량지원, 출장비(유류비 지원), 전임기간 종료시 상위직급으로의 복귀 등의 요구사항도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근로를 하지 않는 노조전임자는 법률상 연월차휴가수당 및 연장근로수당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사업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파업 중에도 상당수 대기업 노조전임자는 특별근무수당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7월 노사정위원회는 사실상의 정부안인 ‘공익위원 단일안’을 내놓고 중재에 나섰다. 정부 차원의 합의안 도출이 여의치 않자 ‘단일안’으로 수위를 조금 낮췄다.
단일안은 기본적으로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노무 관리적 성격을 가진 활동에 한해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타임오프제’(유급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도입한다고 제시했다. 근무시간으로 인정되는 노조 활동으로는 ▲근로자 고충처리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활동 ▲단체교섭 준비 및 체결에 관한 활동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활동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조합 가입 권유 등의 조직활동과 조합홍보, 노조 자체 회의, 상급활동 참여 등 노조의 자체 활동은 유급 처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이승욱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원칙적인 기준이 법에 나열식으로 제시돼 있고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을 어느 규모에 한해 ‘타임오프’로 인정할 것이냐는 노사 간의 교섭에 맡겨진다”고 단일안을 설명했다.
찬밥신세 된 노사정위 단일안
그러나 재계와 노동계 모두 노사정위원회의 단일안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재계의 반발이 크다. “타임오프제의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포괄적이며 개념도 모호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 재계의 한 관계자는 “노사관계의 상황에 따라 대통령령에 의해 노동면제 사유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해놓고 있어 사실상의 임금 지급으로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난 2월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용산참사 정권규탄과 MB악법저지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다른 나라에서는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누가 지급하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각국의 노조전임자 제도는 우리나라의 풀타임 노조전임자와는 기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근로시간이 면제되는 정도에서 노조전임자 활동이 보장되고 있다. 근로제공을 전혀 하지 않는 우리나라식의 노조전임자는 노사 협력적 기능을 가진 노사협의회 활동가 정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산별노조 등 개별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노조전임자에 대해 사용자가 급여를 지원하는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은 노조가 부담하고 있으며,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 노조에 대한 어떠한 방식의 경비지원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되며, 위반시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두고 있다.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다. 1949년 노동조합법을 개정한 일본은 사용자로부터 경비원조를 받는 노조의 조합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사용자의 경비원조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사용자가 초기업단위 노조의 조직에 대해 어떠한 금전 및 물질적 지원도 하지 않으며, 노조 측에서도 노조의 자주성 유지를 위해 사용자 측에 금전 등 기타 물질적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노조의 재정자립 절실
지난 13년간 이 법의 적용이 유예된 데는 노조의 재정적인 어려움에 대한 일종의 배려가 깔려 있었다.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사측에서 받아온 노조가 갑작스러운급여지급 금지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노조법 부칙에서 급여지급 금지 규정의 적용이 유예되는 대신 유예된 기간에 노조와 사용자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도록 노력하고 그 재원을 노조의 재정자립에 사용토록 규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13년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기간 노조전임자의 수는 늘었고 노사분규는 증가했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산별노조 등 대단위 노조 형태로 환경이 바뀌면서 노동운동의 성격도 조합원의 권익을 위한 활동보다는 정치투쟁, 대(對)정부투쟁이 늘어나는 식으로 변해갔다.
상황이 이쯤 되자 재계에서는 “그동안 노조가 재정자립에 대한 어떠한 의욕과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더 이상 이 법의 집행을 늦출 명분이 사라졌다는 것.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가 외국 정부나 기업과의 교류, 외국인직접투자(FDI)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재계 쪽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