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즉 고전이란 오랜 시간 계속해서 사랑받아온 예술장르를 뜻한다. 이 중 유일하게 귀로 듣는 예술인 클래식 음악은 문학, 미술, 무용, 영화 같은 다른 예술장르와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위에 항상 존재해온 클래식 음악을 파헤쳐보고 이 무한한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자.
웅장하고 다채로운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영화가 많다. ‘아마데우스’ ‘스머프’ ‘세븐’(위쪽부터).
20세기 초, 점점 발전하는 영화 매체를 위해 여러 작곡가가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교과서 앞부분에 늘 등장하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에는 작곡가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의 음악이 있었고, 할리우드는 오스트리아의 천재작곡가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를 영입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화화할 때는 영국 작곡가 월튼(Sir William Walton)이 참여하기도 했다. 모두 영화사의 초기에 기반을 잡은 뛰어난 작곡가였다.
이후 더 많은 영화음악 작곡가가 등장했고, 또 기존의 클래식 음악을 영화에 삽입하는 작업도 활발했다. 대중은 처음 듣는 음악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익숙한 음악이 나오면 반가워했다. 또 검증된 걸작들이 영상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감동을 자아내는 효과도 있었다. 어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쓸 음악을 위해 클래식 음악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것은 영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자, 선배 예술가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속에 클래식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신기하게도 그 대부분이 명장면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로크 음악들
영화 속 클래식 음악 중에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유난히 많다.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명확하고 고풍스럽다는 이유도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영상과 강한 대조를 이루기 위해 음악이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바로크 시대 영국에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이라는 작곡가가 있었다. 그가 작곡한 ‘론도’는 ‘압델레이저’라는 연극을 위한 음악이다. 많은 사람이 이름만 듣고는 이 곡을 얼른 떠올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영화‘오만과 편견’을 보자.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소설 ‘오만과 편견’은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두꺼운 책을 고작 두 시간짜리 영화로 보게 해주다니. 그것도 최신작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한 아름다운 여배우 키아라 나이틀리가 나온다. 그녀가 처음 초대받은 마을 무도회 장면을 기억해보자. 여기에서 우리는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듣게 된다. 한 악사가 바이올린으로 구슬픈 곡을 연주하는 장면인데 실제로 이 곡은 바이올린곡이 아니라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바로 헨리 퍼셀이 작곡한 ‘론도’다.
그렇다면 작곡가나 제목이 익숙하지 않은 이 곡이 왜 귀에는 낯설지 않을까? 그 이유는 우리가 중학교 음악시간에 필수로 배우는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 이 선율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역시 영국 작곡가인 브리튼(Benjamin Britten)은 오래전 퍼셀이 만든 멜로디를 가지고 오케스트라의 구성을 설명하는 곡을 만들었다. 론도의 선율이 먼저 나오고 “자, 이건 현악기입니다. 다음은 목관악기입니다”라는 식으로 내레이션이 들어간 곡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이 곡을 가르치며, 당연히 음악시험 문제로도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해진 선율이 영화를 통해 다시 들려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기억을 되짚는다. “아,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아니다. 이 곡은 헨리 퍼셀의 ‘론도’다.
동시대를 살았던 파헬벨(Johann Pachelbel)의 최고 히트작은 ‘캐논 변주곡’일 것이다. 이 곡은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겔리온’에 삽입된 적이 있는데 로봇 파일럿인 주인공들이 학교 특별활동시간에 이 곡을 연주한다. 같은 음을 여러 번 반복하는 첼로 파트를 위로하는 대사가 아주 사실적이다. 연주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 곡에서 정말로 첼로의 음이 8개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살인과 바흐 음악의 묘한 어울림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자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음악은 영화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 ‘세븐’은 암울하고 충격적인 연쇄살인 이야기다. 고참형사가 살인자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 시작한다. 친분이 있는 도서관 경비원이 오래된 턴테이블로 음악을 틀어주는데, 그 곡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다. 너무나도 지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로 연출된 이 장면은 시종일관 긴장되고 어두운 이 영화의 백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진 ‘바시르와 왈츠를’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전쟁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빛난다. 피아노로 느리게 연주되는 ‘라르고’는 군인들이 레바논의 한 마을에서 과수원 사이로 이동할 때 흐른다. 나무들 사이로 새어들어 오는 빛은 군복과 무기들을 어루만지듯 움직이고 있다. 잠복해 있던 누군가가 바추카포를 들고 연합군을 공격하자 군인들은 그쪽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사격이 멈추자 수많은 총알을 맞고 쓰러져 있는 소년이 보인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장면에 흐르는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바흐와 함께 바로크 음악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작곡가로 ‘음악의 어머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이 있다(사실 그는 남자다). 그가 작곡한 하프시코드 음악 중 하나인 ‘사라방드’는 많은 영화에 단골로 사용되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은 느린 진행으로 유명한 걸작인데 한 인간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영화다. 처음엔 우연히 권총결투를 하게 된 주인공이 우여곡절로 성공의 길에 오르지만 결국 결투로 파멸한다. 주인공이 한쪽 다리를 잃고 마차에 오를 때 등장하는 엔딩 타이틀이 ‘사라방드’다. 이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비통한 음악은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어쩌면 이러한 감동은 직전에 등장하는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피아노 트리오 2번이 먼저 분위기를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마지막 장면에도 헨델의 ‘사라방드’는 비장한 효과를 내고 있다. 어린 소녀가 예언에 의해 지구를 구해낼 때 나오는 음악이다. 하지만 실제로 하프시코드로 연주되는 ‘사라방드’는 그렇게 비통하지는 않다.
바흐와 베토벤(오른쪽) 음악은 영화에서도 자주 차용된다.
고전파 시대에는 천재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최고로 표현한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 ‘아마데우스’는 ‘신의 은총을 받은 아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이 곧 제목이 된 이 영화는 그의 경쟁자였던 살리에리-적어도 살리에리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드라마틱한 가설을 영화화했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최고의 음악영화로 군림하고 있다.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 장모의 잔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아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고음역의 아리아를 작곡했다는 재미있는 설정, 살리에리가 빈사(瀕死) 상태인 모차르트가 흥얼거리는 ‘레퀴엠’을 받아 적는 장면 등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또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음악은 영화 속에서도 그의 인생처럼 운명의 전환점에 등장한다. 모든 감정행위가 금지된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퀄리브리엄’에서 주인공은 난생 처음으로 음악이라는 것을 듣고 감정이 흔들린다. 그때 골동품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다. 마지막 합창 부분이 아니라 1악장의 첫 부분이다. 듣는 이를 항상 긴장시키는 조용한 시작부분을 사용한 것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유명한 장송행진곡으로 세상의 종말을 다룬 영화 ‘노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태양의 일부가 폭발하면서 지구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직전, 혼돈스러운 세상을 비추는 화면과는 달리 음향은 베토벤의 음악만을 들려준다. 평소에도 심오하다고 느낀 이 음악이 이렇게 심오하게 사용된 적은 없었다.
베토벤의 일생을 직접 다룬 영화들도 빼놓을 수 없다. 게리 올드만이 주연한 ‘불멸의 연인’에는 피아노 소나타가 많이 등장하고, 에드 해리스가 주연한 ‘카핑 베토벤’에는 인류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들과 합창교향곡이 감동적으로 등장한다.
왈츠를 사랑한 영화들
왈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라는 왈츠의 왕이 등장했다. 그의 음악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역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일 것이다. 큐브릭은 이 곡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클래식 음악을 영화 속에 적절하게 사용한 감독은 보기 드물다. 스탠리 큐브릭의 화제작 ‘2001년 오딧세이’에서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주공간에서 날아다니며 일하는 장면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잔잔하게 흐른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왈츠가 삽입되어 다소 코믹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후배 감독 여럿이 이 장면을 오마주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사용된 음악은 또 다른 슈트라우스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웅장한 트럼펫 서주다. 이 관현악곡은 유인원이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하며 인간으로 발전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에 흐른다. 니체의 철학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음악으로 만든 곡이 이 장면에 삽입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이 때문에 이종격투기 선수나 마이클 잭슨이 등장할 때 어울릴 정도로 웅장한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새까만 고릴라가 저절로 생각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선정적인 장면들로 인해 한때 상영되지 못했던 ‘아이즈 와이드 셧’은 큐브릭의 유작인데, 그는 여기서 또 하나의 왈츠를 히트시켰다.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에 포함되어 있는 왈츠다. 이 곡은 한국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와 많은 CF에 삽입되기도 했는데 그 어렵다는 현대음악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구실을 했다.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 1/2’에서도 삽입된 바 있는 바그너(Richard Wagner)의 ‘발퀴레의 비상’은 ‘니벨룽의 반지’라는 거대한 4부작 오페라에 들어있는 곡이다. 유난히 전의를 불태우게 하는 이 곡은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헬기를 타고 해변에 융단폭격을 하는 장면에서 한 장교가 이 음악을 틀어놓는다. 이 전쟁광은 심지어 전투 중에 서핑을 즐긴다. 히틀러가 좋아했던 바그너의 음악은 결국 영화에서 인간성의 몰락을 표현하는 데 쓰인 것이다.
현악기의 악마적 매력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 파가니니(Niccolo Paganini)는 천재적인 명인의 실력을 갖춘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짓궂게도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어려운 곡을 많이 작곡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이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다. 이 중에 마지막 24번째 곡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삽입되었다. 보는 이를 상당히 불편하게 할 정도로 인간의 추악한 면들을 보여준 이 영화에서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는 묘한 생동감과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 그리고 종교의 추악한 면들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 폴 토마스 엔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도 바이올린 음악이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절정에 오른 연기를 볼 수 있는 이 영화에서는 브람스(Johannes Brahms)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3악장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장 충격적인 엔딩 중 하나로 손꼽힌다. 평생 자신을 괴롭히던 위선적인 목사를 살해한 주인공이 중얼거린다. “이제 다 끝났다”라고. 화면이 암전되자마자 신나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주되기 때문에 관객은 폭발적인 통쾌함을 느끼거나,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며 극장을 나선다. 음악이 선사하는 극단적인 감정의 대비일 것이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첼로음악도 영화에서 불편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한때 ‘신이 내린 걸작’이라고 평가받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을 기억하는가? 지하철역에서 혼자 첼로를 연주하는 남자. 그는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교육자였던 코다이(Zoltan Kodaly)의 ‘무반주 첼로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다. 첼로의 현 네 줄 중에서 아래 두 줄을 반음 더 내려서 조율하고 연주하는 독특한 곡인데, 첼리스트들에게 난곡으로 알려져 있다. 너무도 멋지고 강렬한 이 음악으로 영화가 시작되지만, 정작 연주하던 그는 첫 장면부터 자신이 배신한 여인에게 살해당한다. 그가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무성영화시대 영화를 배경으로 극장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헨델(오른쪽)의 ‘사라방드’는 많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한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 가장 사랑받는 장르는 애니메이션이다. 에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는 오래전부터 클래식 음악을 많이 사용해왔다. 이 중 1940년에 탄생한 놀라운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는 클래식음악으로 만든 일종의 뮤직비디오다. 이 영화에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림스키 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의 ‘세헤라자데’,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심지어 현대음악의 걸작인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클래식이 영상과 더불어 등장한다. 마치 그 음악들이 원래부터 만화를 위해 존재한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시도들은 당시에는 상당한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
순수음악을 추상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만화캐릭터로 한정시켰다거나, 디즈니가 자신이 예술가인 줄 착각한다는 것이 혹평의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고, 2000년에는 더욱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아 2000’이 등장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디즈니는 최근에도 보로딘(Alekandr Borodin)의 현악사중주 2번으로 ‘성냥팔이 소녀’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여러 번 했다.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아톰’을 그려낸 데즈카 오사무다. 무소르크스키(Modest Musorgskii)의 ‘전람회의 그림’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 있는가 하면 차이코프스키(Piotr Ilich Tchaikovsky)의 교향곡 4번을 소재로 한 뮤직비디오도 고전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어릴 때 즐겨 보던 만화영화 ‘개구장이 스머프’에도 클래식 음악이 적잖게 등장한다. 요정 스머프를 사냥하는 연금술사 가가멜이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시 ‘세헤라자데’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앞부분을 붙여놓은 곡이다.
또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는 원래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라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도 여러 편 만들어졌다. 최근에 등장한 인형 애니메이션 ‘피터와 늑대’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고전이 될 정도로 훌륭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페라 음악이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원래부터 내용이 있는 오페라 음악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삽입되면서 더 많은 내용과 의미를 표현하게 된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브 몽탕의 유작인 ‘마농의 샘’에는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이 하모니카로 연주된다. 두 작품의 내용은 다르지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이라는 주제는 분명히 연관되어 있고, 음악은 이 같은 주제를 더욱 부각시켰다.
액션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보기 드문 코믹연기를 선사한 ‘오스카’는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둘러싼 희극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오프닝엔 로시니(Gioacchino Rossini)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아리아 ‘나는야 만물박사’가 멋진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뚱뚱한 가수가 나와 땀을 닦아가며 노래하는 장면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메모리즈’에서는 우주시대의 공포물에 오페라 여가수 캐릭터를 사용해서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부르게 한다. 일본을 소재로 한 원작 오페라에 대한 일본 예술가의 보답인 셈이다.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영화음악들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클래식 음악을 전달한 영화도 있다. 장인의 혼이 담긴 바이올린이 수많은 시간과 문화를 여행하는 영화 ‘레드 바이올린’은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John Corgliano)는 이 영화를 위해 여러 작곡가의 스타일로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처럼, 파가니니의 카프리스처럼 자신의 주제를 변주해나간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마치 유명한 클래식을 연이어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코릴리아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이제는 수많은 영화음악이 고전, 즉 클래식 음악의 반열에 올라있다. ‘대부’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한 니노 로타(Nino Rota)의 음악들은 이미 고전이 되었으며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ET’나 ‘스타워즈’ 같은 영화음악들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콘서트 때 자주 연주하는 명곡들이다. 이 영화음악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일 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훌륭한 우리 시대의 걸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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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20세기에 등장해 모두의 사랑을 받는 거대한 산업이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으며 이들의 행복한 만남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순수예술이 다른 내용과 결합해 원래의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지만, 그 전달력의 장점은 절대 무시될 수 없는 힘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클래식 음악이 영화에 삽입되어 대중에게 전해진다. 음악은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화가 음악의 전달을 돕는 것이다. 그것이 각기 다른 예술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