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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②

SKY보다 어려운 김일성대, 졸업하면 권력층 ‘일등사윗감’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SKY보다 어려운 김일성대, 졸업하면 권력층 ‘일등사윗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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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보다 어려운 김일성대,          졸업하면 권력층 ‘일등사윗감’

김대 정문. 위쪽 ‘김일성종합대학’ 글씨는 김정일국방위원장 작품이다.

군대보다 고된 김일성대 기숙사생활

기숙사생의 일과는 대략 이렇다.

오전 5시30분 기상구령이 떨어지면 밖에 대대별로 모여 아침운동을 한다. 이어 2학년까지 저학년 학생들은 내부와 외부 청소를 한다. 청소 결과는 연대 참모들이 검열해 점수를 매긴다. 화장실 변기는 손으로 닦아야 하며 수도꼭지도 벽돌가루를 연마제로 써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침 먹는 것도 순탄치는 않다.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절도 있게 행진하지 못하면 연대 참모들이 계속 반복 훈련시킨다.

저녁에는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9시 반부터는 야간 점검을 받는다. 하루 점검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야간 점검이다. 기숙사생들은 복도에 한 줄로 쭉 늘어서서 점호를 받는다. 이어 대대장부터 참모까지 차례로 한마디씩 하고 들어가면 30~40분은 훌쩍 넘긴다. 점호 시간에 졸다가 넘어지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점호가 끝나면 하급생들이 진짜로 긴장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날 청소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 또는 대대 참모에게 승인받지 않고 외출한 사실이 있으면 같은 호실을 쓰는 학생 모두 연좌제로 처벌받는다.

이런 처벌도 있다. 각 호실 문턱으로 물이 넘쳐 흘러들지 않을 정도의 높이, 즉 2~3㎝ 높이로 약 80m 길이의 복도에 양동이로 물을 붓는다. 이 물을 밀대 등을 사용하지 말고 오직 손 걸레질로만 훔쳐내야 한다. 그리고 마른걸레로 물기를 철저히 없애야 한다. 이 청소를 하고 나면 새벽 1시가 넘는다.

군에서 단련된 제대군인조차 “대학이 어떻게 군대보다 더할 때가 있느냐”고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처벌청소보다 더 싫은 일도 있다. 기숙사는 상급생 호실과 하급생 호실이 서로 붙어있는데 방 칸막이가 합판이었다. 혹여 처벌받지 않고 점검이 끝나 호실에 들어오면 옆방에서 “야! 203호”하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병에 걸릴 정도였다. 입학 초기에 뭣 모르고 “예”하고 대답하면 “방금 대답한 새끼 여기 오라”는 호령이 날아들었다. 기다리는 것은 “걸레 빨아오라” “물 떠오라”는 식의 심부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야! 203호”하고 부르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별로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대답이 없으면 “방금 소리 났는데. 니들 다 죽었어”하면서 슬리퍼 질질 끌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점차 적응한 뒤 우리는 부르는 소리가 나면 서로 눈짓으로 순번을 정해 대답하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기껏 하는 반항이 식수를 떠오라고 시키는 상급생에게 반항의 표시로 화장실 욕조 물을 퍼서 가져다주는 정도. 그런데 이 방법도 곧 들통이 났다. 그 학생은 이가 몇 대 부러져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한 뒤 집에 내려가 석 달 동안 치료받고 왔다. 구타를 한 상급생들은 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상급생들은 우리가 물을 떠가면 꼭 먼저 마셔보게 했다.

살벌한 대학 과정을 견디면서 김대 학생들은 고난과 역경에 강한 사람들로 단련돼간다. 간부가 돼서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식의 처벌을 내려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배운다고 할 수 있다.

뇌물로 학점을 사기도

안타깝게도 김대에서 공부의 중요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나의 경우 대학 졸업 때까지 모두 30개 과목을 배웠다. 이 중 점수가 나오는 과목은 24개. 나머지 6개는 합격, 불합격으로만 평가한다. 30개 과목 중 대학 전체 공통과목이 17개, 전공과목은 13개 정도 된다. 김일성주의노작, 김일성주의기본, 혁명역사, 주체철학, 제2외국어 등이 공통과목이다. 조국통일 및 남조선문제, 미일제국주의 조선침략사, 환경보호와 같은 이색과목도 공통과목에 포함된다.

졸업시험은 김일성주의노작, 외국어, 전공과목, 졸업논문이라는 4개 과목에 한해 치른다.

1980년대까지는 대학에 공부하는 분위기가 그나마 좀 서 있었다. 대학 입학 초기에는 과목 졸업시험에서 두 과목을 낙제했다고 유급시키고 그 뒤에도 낙제를 면치 못하자 퇴학당하는 학생도 보았다. 남한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유명 집안의 자식인데도 그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대학에서 공부 분위기는 확연히 사라졌다.

이전에는 교수에게 뇌물을 주고 좋은 학점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만 배급이 끊긴 교수들 중에 뇌물을 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교수에게 당해 여러모로 보아 분명 최우수를 받았어야 할 과목에서 중간 성적밖에 못 받았다. 물론 뇌물을 쓴 제대군인은 모두 최우수 성적인 5점을 받았다.

이것 때문에 당시 적잖게 분노했지만 이것이 돈 있는 사람이 점수도 잘 받는 사회 부조리에 대해 점점 더 의식화되는 계기가 됐다. 그 교수에게 고마운 생각도 약간 있다. 그가 아니었으면 과연 나의 인생이 오늘에 이르렀을까.

뇌물 받는 교수들이라고 어찌 심적 고뇌가 없으랴. 김대에 있는 2600여 명의 교수는 나름 북한의 최고 지성이라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었다. 교수 체면에 장사도 할 수 없고 가족을 살릴 길은 양심을 파는 일뿐인 걸. 그럼에도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교수들도 있었다. 뼈만 앙상한 몸을 겨우 끌고 대학에 출근하는 노교수들을 보면서 “선생님, 뇌물을 받더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굶어 돌아가시기엔 너무 아깝습니다”라고 속으로 외친 적도 있었다.

공부하는 분위기는 제대군인들이 다 흐려놓곤 한다. 입학시험도 제대군인들끼리 따로 친다. 상대평가인 셈이다. 이렇게 입학한 제대군인들은 최고의 수재인 직통생들을 공부로는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뇌물을 들고 교수들을 찾아다닐 생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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