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TOPOKKI의 무한변신

“떡볶이 팔아서 돈이 되느냐고요? 안 팔아봤으면 말을 마세요”

  • 김희연│르포라이터 foolfox@naver.com│

    입력2009-09-10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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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사분식, 골목떡볶이, 개미분식. 동네마다 하나쯤 있는 자그마한 떡볶이집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 ‘올리브 떡볶이’ ‘신떡’ ‘해피궁’…. 독특한 이름을 단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우후죽순 들어선다. 떡볶이는 어린 시절 추억의 음식을 넘어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TOPOKKI의 무한변신
    ‘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 압구정점. 저녁식사 하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20~30대 여성이 가득하다. 인근 회사에서 간식을 사러 온 것으로 보이는 손님도 몇 명 다녀간다. 회사원 김용자씨는 이곳 떡볶이가 맛있다는 소문을 들은 터에 우연히 지나다 간판이 보여 들어왔다고 했다.

    “떡볶이 먹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누군가 ‘아딸’이라는 곳이 있다고 소개하더라고요. 듣던 대로 바삭한 튀김 맛이 색다르네요.”

    ‘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는 간단하게 줄여 ‘아딸’로 통한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다. ‘아딸’은 현재 500여 개 체인점을 운영한다. 메뉴는 쌀떡볶이와 밀떡볶이, 튀김, 찹쌀순대다.

    ‘아딸’의 모태는 1972년 경기 파주시에서 문을 연 ‘문산 튀김집’이다. 이영석씨가 튀김을 팔던 이 가게가 서울에 진출한 때는 2000년. 딸 이현경씨(‘아딸’ 이사)와 사위 이경수씨(‘아딸’ 대표)가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분식집을 낸 것이다. 튀김과 떡볶이가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부부는 2002년 TV에 출연했다. 이경수 대표는 방송 출연을 계기로 마음속으로 구상해왔던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아딸’은 이렇게 탄생했다.

    남녀노소 입맛을 들볶다



    3월28~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2009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이 열렸다. 떡볶이를 주제로 한 행사에 사람이 얼마나 몰릴까 싶었지만, 이틀 동안 5만명 넘는 사람이 다녀갔다.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떡볶이의 향연이었다. 치즈, 녹차, 칼슘을 첨가한 떡볶이는 침을 꼴깍 삼켜야 할 만큼 먹음직스러웠다.

    TOPOKKI의 무한변신

    정부는 떡볶이의 세계화를 추진 중이다.

    TOPOKKI의 세계화

    떡볶이 프랜차이즈 사업은 2005년부터 활성화했다. 길거리 음식이 기업의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 10월 20호점을 낸 ‘아딸’은 그로부터 채 2년이 안 된 2007년 8월 100호점을 냈다. ‘아딸’이 승승장구하자 아류가 등장한다. 2005년부터 가맹점을 모은 ‘신떡’ ‘독대떡볶이’가 대표적이다.

    1999년 대구에서 시작해 2003년 상경한 ‘신떡’도 성장 속도가 ‘아딸’ 못지않다. ‘신떡’의 떡볶이는 몹시 맵다. 고추장맛을 강조한 ‘신떡’은 2005년 법인을 세우고 2년 만에 100호점을 돌파했다. ‘신떡’은 달콤한 음료수를 떡볶이에 곁들여 낸다. 떡볶이와 음료수를 함께 먹는 이 세트 메뉴가 가장 인기다.

    BBQ치킨으로 대박을 터뜨린 ㈜제너시스도 지난해 떡볶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올리브 떡볶이’가 제너시스의 프랜차이즈다. ‘올리브 떡볶이’는 ‘엄마가 아이에게 먹이고 싶은 떡볶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양질의 식재료와 천연 감미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맥주전문점 ‘와바’를 운영 중인 인토외식산업은 최근 떡볶이 브랜드인 ‘해피궁’을 인수했다. 외식업체들이 앞 다퉈 떡볶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정부도 한식 세계화 정책의 일환으로 떡볶이의 세계화를 추진 중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식세계화추진단이 5월 출범했는데,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을 맡았다. 추진단에선 정부와 식품업계 종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주관한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도 이 같은 정부의 의지가 담긴 행사였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 부설 떡볶이연구소는 떡볶이 조리법의 표준화를 연구 중이다.

    떡볶이 장사는 오랫동안 정부의 규제 대상이었다. 어린이가 먹는 불량식품으로 각종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법. 떡볶이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온 뒤 떡볶이 프랜차이즈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제너시스는 “55개국에 진출한 BBQ의 인프라를 토대로 떡볶이를 세계에 팔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늘어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아딸’의 이경수 대표는 “사계절 전국에서 팔 수 있으며 유행을 타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회자될 때 닭을 파는 업소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낄 만큼 매출이 줄었다. 반면 떡볶이 비즈니스는 재료 수급이 안정적인데다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다.

    떡볶이 프랜차이즈는 다른 외식산업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 제너시스는 점포 임대료를 제외하면 1930만원으로 창업이 가능하다고 밝힌다. 떡볶이를 포장해가는 고객이 많아서 매장이 넓지 않아도 된다. 조리가 쉬운 것도 떡볶이의 장점이다. 가맹점으로 등록하면 본사에서 주방 설비를 지원하고, 재료와 소스를 반가공 상태로 공급한다.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언제든 같은 맛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떡볶이는 한국의 맛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어른이 된 뒤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를 보면 군침이 돈다. 순대도 마찬가지다. 위생에 대해서 걱정하면서도 한국인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소문난 떡볶이집의 떡볶이는 ‘마약 떡볶이’라고 불릴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TOPOKKI의 무한변신

    ‘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 매장.

    떡볶이의 무한변신

    연세대와 신촌기차역 중간에 고정관념을 깨는 분식집이 있다. 가게 이름은 ‘허브감탄’. 이름도 독특하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분식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허브감탄’에서 떡볶이를 먹던 회사원 조아라씨는 “수년 동안 근처를 지나면서도 분식집일 거라곤 여기지 않았다. 친구 소개로 왔는데 맛이 괜찮다. 허브가 들어있어 건강에 좋을 것 같다”면서 웃었다.

    ‘허브감탄’은 ‘아딸’이 2004년 론칭한 ‘카페형 분식점’으로 신촌점이 1호다. 허브떡볶이 외에 허브튀김, 허브탕수육, 허브그린샐러드, 우동, 생과일빙수를 판매한다. ‘아딸’이 가정과 직장에서 먹는 간식이라면 ‘허브감탄’의 분식은 매장에서 즐기는 고급음식이다. 투(two) 트랙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셈이다.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강조하는 게 바로 ‘청결한 매장’이다. 카페 혹은 아이스크림가게로 착각할 만큼 밝은 분위기가 고객을 유인하는 비결이다.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주 고객은 10~30대의 여성이다. 여성에게 호감을 주는 매장의 분위기가 ‘떡볶이 프랜차이즈’ 전성시대를 연 것이다.

    떡볶이는 이제 건강도 생각한다. ‘아딸’은 오징어튀김을 만들 때 100%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다고 자랑한다. 화학조미료와 유해한 첨가제도 쓰지 않는단다. 또 100% 냉동냉장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강조한다. ‘아딸’은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통과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포장부터가 다르다. ‘아딸’과 ‘올리브 떡볶이’는 포장할 때 비닐봉투에 떡볶이를 담지 않는다. 폴리머 밀폐용기에 담아 종이봉투에 넣어준다. 중국음식점처럼 배달해주는 업체도 있다. 일산에 사는 윤여정씨는 “떡볶이가 생각나면 ‘독대떡볶이’에서 배달시켜 먹는다”고 말했다.

    떡볶이 프랜차이즈는 가격도 합리적이다. 1인분에 2000원 선. 치즈를 곁들인 떡볶이를 먹어도 5000원이 넘지 않는다. 순대와 팥빙수를 추가로 주문해도 둘이서 1만원이면 거뜬하다. 소비자 처지에서 비용 대비 효용이 높다는 것은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떡볶이 비즈니스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가게마다 떡볶이 맛이 엇비슷할 것 같지만 업체별로 맛은 천차만별이다. ‘해피궁’은 전략상품인 명품떡볶이 외에 자장떡볶이, 카레떡볶이로 군침을 돌게 한다. 아카시아꿀을 넣은 꿀떡볶이와 마늘의 아린 맛이 일품인 마늘간장떡볶이, 칠리소스와 땅콩을 넣은 강정떡볶이도 입에 착착 붙는다.

    ‘신떡’도 자장맛, 카레맛 떡볶이를 갖추고 있다. ‘신떡’의 대표 상품은 해물쟁반떡볶이와 순대쟁반. 쟁반 메뉴는 둘이서 먹기에 딱 알맞다. 매운맛을 콘셉트로 한 ‘신떡’의 라면과 우동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어야 한다. 대구가 고향인 ‘신천할매떡볶이’도 맵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올리브 떡볶이’는 굴소스와 간장양념으로 볶아낸 궁중떡볶이를 라인업으로 갖췄다. 크림소스를 넣은 화이트떡볶이는 파스타와 떡의 퓨전이다. 이 업체는 컵에 음료수와 떡볶이를 분리해서 함께 넣은 콜떡이라는 메뉴도 출시했다. BBQ로 유명한 회사답게 닭꼬치도 먹을 만하다.

    떡볶이의 진화는 무궁무진하다. 입소문으로 대박을 터뜨린 재야의 고수들이 앞 다퉈 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만큼 저변이 넓다는 얘기다.

    떡볶이의 원조는 궁중요리

    ‘2009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 때 ‘세계 떡볶이 요리 경연대회’가 열렸다. 예선을 통과한 30명이 정면승부를 벌였는데, ‘복분자 소스와 파슬리 허브오일을 곁들인 떡볶이 샐러드’가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학생부 대상은 ‘매콤한 토마토 떡볶이에 곁들인 두부크로켓과 라코타 치즈소스’가 받았다.

    떡볶이의 원조는 궁중에서 가래떡을 간장으로 볶은 것이다. 고추장이 가미된 건 100여 년 전의 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간식이 떡볶이가 아닐까? 고추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름난 분식집마다 갖은 재료로 떡볶이를 일신하고 있다. 떡볶이의 진화는 앞으로도 숨가쁘게 이뤄질 것이다. 떡볶이의 사촌 격인 해물떡찜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승승장구하는 게 좋은 사례다.

    그러나 무턱대고 떡볶이 사업에 나서선 안 된다. 비 온 뒤 죽순 올라오듯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등장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문 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떡볶이는 이제 어엿한 외식산업이다. 비즈니스를 하려면 자본과 설비는 물론이고 운영 노하우도 두 눈 부릅뜨고 살펴봐야 한다.

    철판 위에 떡을 얹은 뒤 대파를 썰어 넣고 고추장으로 볶아내던 학교 앞 분식점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떡볶이가 대세가 됐다. 막걸리도 세계화하고 있다. 뉴욕에서, 런던에서, 파리에서 떡볶이를 마주할 날도 멀지 않았다. 샹젤리제에서 막걸리에 곁들여 먹는 떡볶이는 과연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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