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노민상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

“태환이가 올림픽 금메달 딴 후 내 훈련 방식은 ‘죽일 짓’ 돼버렸다”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9-09-11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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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200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박태환은 극심한 부진을 보이며 자유형 400m·1500m에서 예선 탈락했다. 200m에서도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자유형 400m는 박태환이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연달아 우승한 종목. 200m도 베이징올림픽에서 그에게 은메달을 선물했다. 그러나 1년 전의 영광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힘찬 스트로크도, 불꽃같은 막판 스퍼트도 실종됐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던 선수가 1년 만에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을까.
    노민상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
    실망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인사도, 악수도 하기 전에 그는 고개부터 숙였다. 8월12일,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돌아온 지 닷새째 되던 날이다. 서울 송파구 송파동 ‘노민상 수영연구소’에서 마주 앉은 노민상(53) 감독은 피곤해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체구에 눈이 퀭했다. 로마에서 돌아와 하루도 맘 편히 못 쉬었다고 했다. “시차 적응은 다 했느냐”고 묻자 “이런저런 고민하느라 원형탈모가 생겼다”고 한다. 한가로이 ‘시차’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 계속 “내 책임이다. 다들 얼마나 실망하셨겠느냐. 죄송한 마음뿐”이라는 사과가 끼어들었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로마에서도 그랬다. 박태환 선수의 경기가 끝나고 처음 전화가 연결됐을 때 그는 연거푸 “죄송하다”고 했다. 한국 와서 만날 약속을 그때 잡았다. “돌아가면 혼날 건 혼나고 맞을 건 맞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하는 그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노 감독은 지난해 올림픽을 마치고 뜻 맞는 수영계 후배 한 명과 연구소를 열었다. 자택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이름은 번듯하지만, 실상 보니 초라하다. 주택가 한편, 1층엔 식당, 2층엔 보습학원이 있는 건물 3층에 조그맣게 그의 ‘연구소’가 있었다. 바로 옆 사무실은 ‘대박유통’이 쓰고 있는, 그런 장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마다 붙어있는 박태환의 사진이 이곳이 ‘노민상 수영연구소’임을 알려줬다.



    박태환은 노 감독에게 단순한 제자가 아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3년 전. 당시 박태환은 천식을 앓는 초등학교 1학년생 꼬마였고, 노 감독은 수영계 주류에서 한없이 떨어져 있는 무명 지도자였다. 학창 시절 수영을 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 그는 고등학교 중퇴 후 지도자 생활에 나섰다. 주목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수영팀과 크고 작은 수영클럽 코치를 전전하며 ‘변방의 잡초처럼’ 떠돌았다. 운전을 하다 다른 차에 들이받혀 갈비뼈와 쇄골, 양쪽 발까지 부러지는 대형사고도 당했다. 몇 년간 힘겨운 재활훈련 끝에 간신히 다시 수영장에 섰을 때, 마흔 살 그의 앞에 나타난 꼬마가 박태환이다. 그때부터 박태환은 그에게 꿈이자 미래이고 열정의 대상이었다.

    ▼ 계속 죄송하다고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도자인데 결과가 안 나왔으니 책임져야지요. 귀국 기자회견 때도 말했지만, 이건 제 잘못입니다. 이런저런 얘기하기 전에 먼저 그거부터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요.”

    첫 훈련하던 날 “큰일 났구나” 느껴

    ▼ 로마에 갈 때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요?

    “(함께 훈련할) 시간이 없었고 촉박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너무 쫓겼어요. 태환이가 태릉에 6월15일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7월17일에 출국했으니 도리가 없었지요.”

    두 이야기가 묘하게 뒤틀린다. 노 감독이 계속 ‘제 책임’이라고 하는 건, 역설적으로 그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결과에 대해 ‘노 감독 탓’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그는 박태환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다.

    널리 알려졌듯 지난해 10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을 위해 SK 후원의 ‘전담팀’이 구성됐다. 전용 밴과 사무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전담하는 박사, 마사지 스태프까지 지원됐다. 박태환은 수영연맹에 태릉선수촌 밖 개인훈련 의사를 밝혔고, 연맹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올해 두 차례 미국 전지훈련을 가서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수영팀의 데이브 살로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 노 감독은 이 기간 박태환의 훈련 계획, 훈련 결과 등에 대한 정보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 태릉에 들어오기 전 훈련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했다고는 하는데…. 태릉 들어온 뒤 태환이 상태 보고 데이브 살로 감독을 의심했습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감독님이신데, 아이 몸 상태가 무산소역치라든지 내성훈련 같은 걸 체계적으로 받은 몸이 아니었거든요. 큰일 났구나 싶었지요.”

    노민상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

    박태환을 7세 때부터 가르쳐온 노민상 감독은 지금도 그를 ‘아이’라고 부른다. 노 감독과 박태환이 함께 훈련하던 모습.

    ▼ 꼭 해야 하는 훈련이 아예 빠져있었다는 말씀인가요?

    “수영은 200m 400m 1500m 종목에 따라 훈련 방식이 다 달라요. 그 거리에 맞는 특정 훈련이 있지요. 그걸 안 하고 지구력 강화 훈련만 한 거 같아요. 다른 걸 왜 안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 그래도 국가대표팀 소속인데, 선수가 어떤 훈련을 받는지 안 받는지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요.

    “전지훈련 나가면 나간다, 들어오면 들어온다 일방적으로 통보만 받았어요. 그쪽(SK 전담팀)에서 저하고 말 한마디 하자고 요청한 적 없으니…. 한국에 있어도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다 선수촌 밖에서 하는데 제가 알 수가 있나요. 그렇게 훈련한 결과 좀 달라고 해도 준 적 없고…. 보여달라고 하면 갖다준다 하고는 함흥차사고….”

    ▼ 그래서 6월 중순에야 비로소 선수 상태를 알았다는 말씀이군요.

    “태릉 들어온 첫날부터 계속 운동이 안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무산소역치 같은 건 베이징올림픽 전에 충분히 소화하던 수준의 훈련도 못 따라왔지요.”

    ‘무산소역치’란 운동장을 뛸 때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숨이 가빠지고 젖산이 쌓여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시점을 가리킨다. 무산소역치 이상의 강도로 운동을 계속하면 오래지 않아 속도가 떨어지게 된다. 수영 기록을 단축하려면 무산소역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박태환은 자신의 최고 기록을 내기에도 힘에 부친 상태였다.

    “내 훈련 방식은 죽일 짓이 돼 있었다”

    ▼ 박태환 선수는 문제를 몰랐을까요?

    “아직 어린 나이니까 몰랐을 수도 있죠. 미국 훈련이 그래요. 선수가 해야지, 지도자가 독려하고 이끌어주고 그런 게 없어요. 사실 태환이 입장에서야 미국이라는 데가 좋잖아요. 태릉에 오면 갇혀서, 통제 속에서 해야 하니까 밖에 있고 싶었겠지요. 이번 경기 끝나고 스스로 느낀 바가 많았을 겁니다.”

    ▼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감독님이 좀 더 적극적으로 훈련 방식 등에 대해 얘기를 할 수는 없었나요?

    “박태환이 세계적인 감독한테 훈련받는다고 다들 칭찬하는데…. 그때 누가 제 이야기 하기나 했나요? 사람들이 세계 수영과 우리 수영을 보는 시각이 달라요. 미국에서 코치가 선수한테 1만5000m를 훈련시키면 ‘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가 1만6000m, 1만7000m씩 훈련시키면 아주 죽도록 욕먹을 짓입니다.”

    ▼ 선수 학대한다고요?

    “그렇죠. 베이징올림픽 출전할 때 태환이 기록은 세계랭킹 3위였어요. 당시 1위는 데이브 살로가 가르친 선수였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겼잖아요. 왜 그랬죠?…”

    그는 격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다 갑자기 말을 끊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선수를 한 명만 더 길러냈으면 말이 되는데… 한 명은 우연일 수 있으니….”

    목소리가 탄식처럼 잦아들었다.

    ▼ 선수가 훌륭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지 훈련 방식이 좋았던 건 아니라는 말이 많다는 거지요?

    “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래서 전 아무 말도 못했어요. 발언권이 없는 거예요. 뭘 던지면 맞을 수밖에 없는 거고….”

    수영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적 없는 그는 독학으로 지도법을 익혔다. 영어로 된 전문서적을 구해다가 한 단어 한 단어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수영지도자 강습회도 열심히 쫓아다녔다. 노 감독의 집에는 지금도 그때 원서를 번역해 파일로 만든 자료가 수십 권 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공부에 매달리며, 그렇게 길러낸 제자가 박태환이다. 그의 지도법으로 박태환이 성공했지만, 환희의 순간마다 그의 ‘무학’은 번번이 노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박태환은 지난해 2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노 감독은 매일 1만5000m씩 수영을 시켰다. 50m 풀장을 150번 왕복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훈련량이다. 초기에는 1만6000m, 1만7000m씩도 시켰다고 한다. 그와 함께 이렇게 훈련한 끝에 금메달을 땄는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노 감독의 지도 방식은 ‘선수 죽이는 짓’이 돼 있었다.

    그는 여기까지 얘기하다 “담배 한 대 피워도 되느냐”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노 감독이 이런 상실감을 느낀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도 박태환은 그와 함께 훈련해 3관왕에 오르는 등 메달 7개를 따면서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뒤 전담팀을 구성해 태릉을 떠났었다.

    “어른들이 끼어들어서 그랬지요. 잘하는 애를 이리저리 흔들어놓고, 어른들은 다 빠져버리고 애한테 뒤집어씌우고….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에요. 저는 태환이를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 아이가 7살 때부터 봤습니다. 한 번 잘못했다고, 또 두 번 잘못했다고 마음이 변하겠습니까.”

    “박태환을 갖는 자가 수영계를 지배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파벌 쪽으로 흘러갔다. 박태환은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대표팀과 전담팀 사이에서 힘들었다. 파벌싸움이 너무 심해 코치도 선임할 수 없었고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놓았다. 수영계에서 파벌이 노골화된 건, 사실 박태환의 선전 때문이다.

    사연은 도하 아시안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올림픽 금메달을 노릴 수 있을 만큼 세계적인 선수 반열에 오르자 국내 지도자들이 몰려들었다. 학벌도 경력도 없는 노 감독이 박태환의 성과를 발판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오른 것을 질시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박태환을 차지하면 수영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의식이 공공연하게 퍼졌다. 그때 한 스포츠업체가 30억원의 스폰서십을 제시하며 박태환 전담팀을 꾸렸고, 전직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이 코치를 맡았다. 노 감독은 자신을 밀어내려는 일군의 지도자들이 박태환을 빼가기 위한 음모를 세웠다고 생각했다.

    ▼ 당시 선수촌 안에서 감독님이 전직 국가대표 감독한테 폭행당하는 일까지 있었지요?

    “그때 저를 때린 분이 어떻게 보면 태환이를 이렇게까지 끌고 간 거예요. 그분이 외부 스폰서 데려와서 전담팀 제시하고, 태환이를 데려간 거 아니에요. 제가 그 사실을 알고 그분한테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맞잖아요’ 하니까 갑자기 때렸죠.”

    노 감독은 입원했고, 박태환은 끝내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당시 전담팀은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았다. 박석기 전 대표팀 감독이 11개월 동안 맡았다가 물러나고, 다시 유운겸 전 대표팀 감독이 4개월 정도 함께 하다 갈라섰다. 그때마다 잡음이 났다. 박태환이 훈련을 소홀히 하고 연예인과 놀러다닌다는 스캔들도 연일 보도됐다. 결국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노민상 감독 밑으로 들어왔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6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계속한 끝에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뒤 다시 헤어졌다.

    ▼ 아시안게임 끝나고 처음 박태환 선수가 선수촌을 나갔을 때는 그래도 항의를 하고, 목소리를 내셨던 건가요.

    “사실요…. 좀 그런게…. 그때 한 신문에 뭐라고 나왔냐면,‘수영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놈이 태환이 붙잡아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저런다.’ 그렇게 썼더군요. 인터넷 댓글이라도 그렇게 지독한 댓글은 못 달 텐데, 정말 그랬어요. 상처를 받았지요. 또 그런 상황이 됐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합니까. 나가려면 나가라, 전담팀이 알아서 해라 하는 수밖에요.”

    ▼ 박태환 선수 본인한테는 뭐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나요?

    “…….”

    그는 한참동안 말을 아끼다 “돈이 걸려 있는 문제잖아요” 한마디 했다. “누군들 전담 매니저에, 마사지사에, 영양사 두고 돈 받으면서…그렇게 훈련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전 월급쟁이예요. 태환이를 도와줄 수가 없어요. 누가 태환이를 도와준다면 고마운 일 아닙니까. 훈련만 잘 된다면….”

    SK 전담팀 예산 15억원

    그는 불쑥 SK 박태환 전담팀 1년 예산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자신도 몰랐는데 로마에서 한 기자가 귀띔해줬다고 한다.

    “연간 15억이랍디다.” 많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상상이상이었다. 그에 비해 대한수영연맹 1년 예산은 2억원에 불과하다.

    ▼ 박태환 선수가 전담팀을 선택하는 데 돈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씀이지요?

    “어른들이 잘못했다는 게 그런 겁니다. 태환이는 속이 깊은 아이예요. 수영 선수로 성공한 뒤 한 인터뷰에서 ‘돈 많이 벌면 아버지에게 집을 사드리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죠. …이 얘기는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태환이 안정된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얘기합시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얘기를 다 하면 태환이가 상처를 너무 받을 거예요. 그 아이가 수영 그만두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박태환 선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얘기는 되도록 피하려 했다. “어른들이 얼른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서 ‘아이’가 안정을 되찾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박태환을 꼬박꼬박 ‘아이’라고 불렀다. 오랫동안 입에 밴 습관 같았다. 주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박태환 선수가 전담팀 훈련을 선택하며 논란이 된 ‘수용소 같은 선수촌’ 생활 얘기를 꺼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박태환 선수의 한 측근은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중국 식으로 안에 가둬놓고 가르친다. 태환이가 그런 걸 못 견딘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 선수촌 훈련이 너무 고되서 탈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그런 면도 있었겠지요. 선수촌 들어가면 다 똑같습니다. 저도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요. 선수들은 5시까지 풀에 나오지요. 5시30분까지 스트레칭하고, 7시10분까지 수영해요. 그러고는 학교에 갑니다. 대부분 아침도 못 먹어요. 샌드위치랑 우유 들고 나가는 거예요. 태환이도 중3 때 대표팀 뽑힌 뒤부터 늘 똑같은 생활을 했지요.”

    ▼ 오후 훈련은 어떤가요.

    “오전 수업 마치고 들어오면 점심 먹고요. 오후 3시 되면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갑니다. 1시간 하고 4시에 수영장으로 이동해서 또 스트레칭하고 물에 들어가지요. 보통 7시쯤이면 끝나요. 그러면 저녁 먹고, 자고…. 물론 힘들지요. 하지만 그런 열정이 없으면 실력이 안 늘어요.”

    ▼ 그런 식의 집중훈련을 1년에 몇 달이나 하는 거죠?

    “1년 내내 합니다. 수영대표팀은 어디 나가서 훈련 할 곳이 없거든요. 수영장 빌릴 예산도 없으니까…. 큰 대회를 앞두고는 학교도 안 가지요. 훈련하고 휴식하고, 다시 훈련하고 휴식하고…. 하지만 그걸 강압적이라고 얘기하면 안 됩니다. 국가대표로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으면 그건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나라에서 돈을 주고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게 싫으면 태극마크를 반납해야지요.”

    박태환은 처음에 선수촌 생활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넉넉지 못하게 생활한 그가 국가대표에 선발됐을 때 노 감독은 “태환아, 이제 태릉선수촌에서 뭐든 원없이 먹을 수 있을 거다. 네 실력을 이제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런던올림픽 때는 정말 믿어달라”

    ▼ 그래도 외국 선수들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사생활도 즐기며 운동을 할 텐데….

    “제가 이번에 귀국 기자회견 하면서 태환이 대신 변명을 했지요. 어린 나이에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았겠느냐고.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운동은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지요. 한국 선수에게는 한국 스타일이 가장 잘 맞다고 봅니다.”

    ▼ 박태환 선수가 다시 선수촌에 들어가면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우리가 함께 가장 잘했던 대로 운동할 겁니다. 우선 체력테스트를 해서 금메달 땄을 때의 데이터와 비교할 거예요. 그걸 바탕으로 좋은 점은 그냥 가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면서 운동량을 늘려야지요. 첫 목표는 내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입니다. 도하 때처럼 7개 종목에 출전할 거예요. 그곳에서 부활을 보여주고, 런던 올림픽으로 나아가야지요.”

    노 감독은 이미 박태환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세워놓고 있었다. 다시는 손놓고 있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박태환이 태릉으로 돌아온다면’ 이번엔 어른으로서 그의 훈련과 관리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 박태환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면 좀 쉬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경기를 마치자마자 바로 한 얘기지요. 지금은 본인 생각도 바뀌었을 겁니다. 로마에서 한국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한테 태릉 입촌 시간을 물었다고 해요. 바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요.” (이날 인터뷰까지는 박태환의 입촌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박태환은 귀국 후 일주일을 쉰 뒤 16일 태릉선수촌에 입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박태환이 훈련만 체계적으로 한다면 다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거라고 자신했다. 세계 유명 선수들도 혀를 내두르는 탄력성을 바탕으로 다시 막판 스퍼트를 가다듬겠다고 했다.

    ▼ 훈련만 체계적으로 하면 런던올림픽 금메달은 자신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럼요. 런던 이후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런던까지는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박태환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물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말수가 준, 조금은 낯설어졌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얘기를 건넸다.

    “태환아. 선생님이 늘 말했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金)은 ‘지금’이라고. 지난 일은 다 지나간 거다. 너는 할 수 있어. 선생님과 함께 다시 열심히 하자. 그리고 런던올림픽에서 승리한 다음에 정말 멋지게 살아라. 선생님은 내가 못한 걸 네가 다 했으면 좋겠어. 올림픽 2연패 하고, IOC위원도 하고. 그리고 대학교수도 꼭 해라. 네 꿈, 그게 곧 선생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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