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무색의 정치인 박희태 한나라당 전 대표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9-12-02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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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유권자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살리기’ 구호 먹혀
    • 당이 박근혜의 정치적 힘에 영향 받는 건 어쩔 수 없어
    • 정치는 바른 것이어야지만 타협할 줄 알아야
    무색의 정치인 박희태 한나라당 전 대표
    박희태(71)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인터뷰에 응한 것을 후회하기라도 하듯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영화에 나오는 로마 원로원 의원처럼 나른하고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는 뭘 물으면 간단히 부인해버리거나 질문 의도에 맞지 않는 답변을 하거나 아주 짧게 말함으로써 묻는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드는 희한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좋게 얘기하면 호인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주관이 없는 정치인이었다. 긍정적으로 보면 화합형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보신형이었다.

    그는 10월28일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이로써 6선 의원의 반열에 올랐다. 이상득 의원과 더불어 한나라당 내 최다선이다. 지난해 공천 부적합자로 분류돼 출마도 못했던 사람이 당 대표를 지내고 총선 후 1년 반 만에 재선거에 나가 의원 배지를 달다니, 한나라당도 참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는 정당이다.

    그는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무슨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면서 초장부터 김을 뺐다.

    ▼ 원외에 있다가 원내로 들어온 소감이 어떻습니까.

    “(당) 대표를 했기 때문에 원외에 있었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국회에 계속 있었으니.”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11월3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기자들에게 “나도 똑같은 박 전 대표인데, 난 왜 이리 인기가 없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연은 이렇다. 그날 아침 기자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본회의장으로 걸어오자 벌떼처럼 달라붙어 일제히 세종시 관련 질문을 던졌다. 박 전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보도진 때문에 길이 막혀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던 그가 기자들 등 뒤에서 그런 우스갯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해 묻자 그는 “‘나는 왜 인기가 없나’라는 말은 했지만, ‘나도 박 전 대표인데’라는 말은 기자들이 갖다 붙인 것”이라고 했다. “왜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자들이 거기로만 몰리고 나한테는 안 오니…”라고 질문 취지에 맞지 않는 답변을 했다.

    “투표율에 문제가 생겼다”

    경남 양산에서 출마한 그는 3만801표를 얻어 38.1%의 득표율을 올렸고 민주당 송인배 후보는 2만7502표(34.5%)를 얻었다.

    ▼ 뒤늦게나마 축하합니다.

    “허허허, 멋쩍네.”

    ▼ 상당히 고전하셨죠? 3300표 차이였죠. 의원님의 정치적 입지나 경력을 감안하면 표 차이가 별로 안 난 거죠?

    “그 지역에 처음 간 겁니다. 두 달 동안 선거운동 한 것치고는 많이 나왔죠. 워낙 생소한 지역이니. 상대 후보는 세 번째 나온 사람이고요.”

    ▼ 일반적인 예상은 크게 이긴다는 것 아니었나요?

    “여론조사에선 언제나 10~15% 앞섰습니다. 그런데 투표율에 문제가 생겼죠. 지난 총선 때보다 높았거든요. 막판에 투표율이 10% 올라갔어요.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투표율이 높은 걸 두고 ‘문제가 생겼다’라고 표현하다니.

    ▼ (양산에) 갈 때는 자신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주민들이 지역발전을 희망한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들고 간 건 ‘발전’이라는 두 글자입니다. 시민들에게 ‘큰 양산’을 만들겠다고 호소하고 다녔죠. 그러려면 정치적으로 큰 힘이 있어야 한다고. 내가 여당 대표도 지냈고 최다선이니 지역발전에 몽땅 쏟아 붓겠다고 했죠.”

    ▼ 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느껴졌습니까.

    “글쎄요. 상대방 구호가 ‘노 대통령을 살립시다’였어요. 벽보에 써 붙였어요. 그게 젊은 층에 먹혀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가 “선거 치른 지 며칠 안 돼 큰 이야기를 할 처지가 못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인터뷰가 재미없게 진행될 조짐이었다.

    10·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두 곳, 민주당은 세 곳에서 승리했다. 수도권인 경기 수원과 안산에서 민주당이 이긴 걸 두고 언론은 여당의 참패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패배가 아니라 ‘호각지세’라고 주장했다.

    “재·보선에서는 여당이 이기기 어렵습니다. 은연중에 견제심리가 발동하지요. 노무현 대통령 때 우리가 33대 0으로 이겼잖습니까. 33번 선거해 다 이겼습니다. 난 이번에 선전했다고 봐요.”

    ▼ 충북에서 패한 데는 세종시 영향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4개 시군으로 이뤄진 복합선거구예요. 지역적 이해관계가 최우선으로 작용하죠. 세종시 권외입니다.”

    ▼ 정서가 통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남도와 북도는 정서가 달라요.”

    “아무도 문제제기 안 했다”

    ▼ 요즘 세종시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충청도 전체가 비슷한 양상인데요

    “일반론이 아닐까 싶어요.”

    ▼ 세종시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지금은 아무런 의견이 없습니다. 정부와 대통령이 뭐라 설명했는지 선거 치르느라 따라가지도 못했고. 연내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겠다고 하니 그거 보고 이야기해야겠죠.”

    ▼ 의원님 생각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이제까지 당에서는 원안대로 하는 걸로 알고 있었지. 이제껏 그렇게 이야기를 해왔고. 수정 문제가 제기된 게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정운찬 총리 취임 이후죠. 그전엔 당에서 논의를 안 했어요. 그냥 원래대로 추진하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아무도 문제제기를 안 했어요.”

    ▼ 박근혜 전 대표 의견에 가까운 건가요?

    “(웃음) 같은 박씨라고 그럽니까?”

    ▼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이 없습니까.

    “이제 안이 나오면 잘 생각해봐야지.”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질문을 계속했다.

    ▼ 쟁점이 크게 두 가지 아닌가요? 중앙행정부처의 지방 이전이 타당하냐. 문제가 있다고 국민과 한 약속을 깨는 게 타당하냐.

    “글쎄요. 거기에 대해선 독자적인 얘기를 할 게 없는데….”

    ▼ 과거 한나라당 지도부가 충청표를 의식해 잘못된 내용임에도 통과시킨 것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죠?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의원들한테 들어본 적도 없고. 세종시 문제에 대해선 아무것도 얘기할 게 없습니다.”

    소신이 없다는 것이 그의 소신인가.

    ▼ 지난 4월 재·보선 참패 후 당내 개혁파로부터 쇄신대상으로 지목당했었지요?

    “쇄신이라는 말은 내가 끄집어낸 말입니다. 당을 쇄신해 다시 국민의 신임을 얻도록 하겠다고 내가 쓴 용어입니다. 쇄신특위를 구성해 쇄신방안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 주요 쇄신방안이 뭐지요?

    “당헌을 개정하고 잘못된 정치관행을 고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습니다. 당시는 전당대회 문제가 초점이었는데, 쇄신위에서는 전당대회 시기에 대해 결론을 내지 않았습니다.”

    ▼ 물러나라는 얘기에 섭섭하셨겠습니다.

    “뭐 물러나라는 얘기도 있었고 물러나지 말라는 얘기도 있었고….”

    “이재오와 나는 그럴 사이가 아니다”

    ▼ 이재오계에서 불만이 컸죠?

    “모르겠어요. 당내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특히 누구 계라고 꼬집어 얘기할 처지가 아닙니다.”

    ▼ 이재오 전 의원의 거취가 논란의 중심에 있었죠. 당시 대표로서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나는 한 번도 이재오 의원 개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재오 의원과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 데 함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당시 이재오 전 의원 쪽에서는 “박희태 대표가 (당에) 들어오라는 얘기를 해야 들어간다”라고 했지요?

    “모르겠어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재오 의원과 내가 그럴 사이가 아닙니다.”

    ▼ 대표 재임 중 가장 위기라고 생각한 적은 언제였습니까.

    “초기에 당내 계파 갈등이 있을 때, 친박 친이가 대립할 때가 위기였지요. 제가 그걸 수습했습니다. 친박 당선자들을 모두 복당시키고 그분들에게 당협위원장을 맡기는 등 인사에서 탕평책을 썼습니다. 그렇게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내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지금도 친박 친이는 계속 부딪치고 있잖아요?

    “(웃음) 많이 좋아졌죠. 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도 있지만 앞으로 서로 손잡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정당이 일사불란하게 아무 소리가 안 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물도 조용히 흐를 때가 있고 소용돌이 칠 때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게 명령에 따라 결정되는 것보다는 서로 의견도 내고 토론도 해서 하나의 통일된 의견으로 화합해나가는 게 당이 건전하게 발전하는 모습이죠.”

    ▼ 박근혜 전 대표가 대중적 영향력이 크고 과거 유력한 대선후보였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의원 중 한 명 아닙니까. 그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당 전체가 왔다갔다하는 건 비정상적인 상황 아닌가요. 의원님이 대표 하실 때 말입니다.

    “국민적 인기가 있으니, 그런 정치적 힘에 영향 받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 당 대표도 어쩔 수 없나 보죠?

    “그런 걸 고려하고 당을 이끌고 나가야지요.”

    ▼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어떤 벽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런 건 느껴보지 못했어요.”

    ▼ 김무성 원내대표 안도 화합의 카드였지요?

    “그렇죠.”

    ▼ 그것도 박 전 대표의 말 한마디에 물거품이 됐지요?

    “허허허. 그럴 수도 있고….”

    “대통령과 의견 상충된 적 없다”

    ▼ 박근혜니 이재오니 이상득이니 해서 이른바 실세들이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 아니냐, 의원님에 대해서도 관리형 대표라는 평이 있었지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많고.”

    ▼ 대표로 있으면서 실세들에게 휘둘린 적이 없습니까.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한 사람은 없었어요. 누구 명을 따를 생각도 없었고.”

    그는 대선 당시 친이계로 알려졌지만, 핵심 친이계는 아니다. 겉보기엔 친이계와 친박계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선지 그는 화합의 명수로 자처한다.

    “내가 화합을 내세워 당 대표로 당선됐지요. 당 동지들이 그 점에 관해서만은 신뢰했던 것 같아요.”

    ▼ 개혁파 의원들이 조기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했는데, 거부하신 이유가 뭐지요?

    “제가 거부한 일 없습니다.”

    ▼ 지도부에서 안 받아들인 것 아닙니까.

    “지도부에서 안 받아준 게 아니죠. (조기전당대회 개최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서 추진되지 않았던 거죠.”

    ▼ 그쪽에선 당 지도부에 대해 ‘기득권 사수’라고 비판했죠?

    “기득권은 무슨….”

    ▼ 청와대에는 몇 번이나 들어가셨죠?

    “모르겠네. 여러 번 들어가서.”

    ▼ 생산적인 대화가 오갔습니까. 아니면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습니까.

    “대화를 하러 가는 가지, 지시나 명령을 받으러 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당 대표가 이런저런 건의를 해도 대통령이 잘 안 받아준 걸로 알려졌는데요?

    “여러 문제에 대해 대화를 많이 했죠. 일방적인 대화는 없었습니다. 대화가 막힌 적도 없고요.”

    ▼ 의견이 상충된 적도 없었습니까.

    “상충된 일이 없어요.”

    ▼ 당내에서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에 대한 불만이 자주 제기됐지요?

    “다른 사람이 얘기했는지 몰라도 내 입으로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습니다.”

    ▼ 하긴 의원님이 당 대표로 있으면서 청와대를 비판한 적이 없었지요?

    “예. 없었습니다.”

    ▼ 의원님에 대해 ‘색깔 없는 정치인’이라는 지적이 있지요?

    “무색이 가장 강한 색깔입니다.”

    ▼ 두드러져 보이지 않죠, 그런 정치인은?

    “모든 색깔을 다 받아들이는 게 무색 아닙니까. 허허.”

    무색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의 정치적 캐릭터를 이보다 정확히 짚어내는 말도 없으리라. 그가 대표로 재임할 때 한나라당이 맥이 없고 중심을 못 잡는다는 얘기가 나온 데는 그의 무색 리더십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왜 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했는데 그 사유가 분명치 않았다. 당 주변에서는 ‘고령’이 이유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똑같은 5선으로 그보다 세 살 많은 이상득 의원은 공천돼 뒷말이 나왔다.

    “모르겠습니다. 왜 탈락했는지.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무색의 정치인 박희태 한나라당 전 대표

    박희태 의원은 ‘색깔 없는 정치인’이라는 지적에 대해 “모든 색깔을 다 받아들이는 게 무색”이라고 응수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요?

    “(웃음) 물론이죠. 그때 지역구에서 선거운동하고 있었어요.”

    ▼ 왜 그렇게 됐지요? 대선 때 선거대책위원장까지 지냈는데….

    “그러니까, 허허, 전혀 짚이는 바가 없어요. 이해 안 되는 탈락자가 저말고도 여러 사람 있었지요. 누가 설명을 해줘야지 알지. 그때 공천 문제로 당 안팎 여론이 좋지 않았잖아요. 나보고 선거대책위원장 맡아달라고 해서 했죠. 공천 떨어진 사람이 남 선거운동하러 다녔죠.”

    ▼ 개혁공천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개악이라고 하는 경우는 없지. 늘 개혁이라고 합리화하지.”

    ▼ 공천 탈락 후 핵심 당직자 집에 찾아가 비례대표 출마를 희망하셨다면서요?

    “제가요?”

    ▼ 언론에 그렇게 보도됐던데요.

    “떨어지고 난 후 저에 대해 비례대표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걸 한번 확인해본 거겠지.”

    ▼ 참 무던하신 성격입니다.

    “다 참았으니 이번에 다시 들어온 것 아닙니까.(웃음)”

    이심전심인가보다. 내가 “정치 얘기 하니 딱딱하네요” 하자, 그가 “재미없죠. 내가 하지 말자 했잖습니까”라고 응수한다.

    ▼ 다른 얘기를 하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 검찰 수사에 대해 비판하셨죠? 검사 출신이니 남다른 견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검찰 수사방식은 일단 수사를 끝낸 뒤에 중간발표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브리핑했잖습니까. 매일매일 수사상황을.”

    ▼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취재요청 때문이라고….

    “그렇다고 매일 얘기하면 어떡합니까. 검찰이 그렇게 나오니 상대방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수사내용에 대해 반박한 거죠. 장외토론식 수사가 되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당사자의 명예를 지속적으로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이런 수사방식은 처음 봤다’고 말했지요. 당내 검사 출신 의원들이 제 말에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 그런 잘못된 수사방식이 노 전 대통령 자살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까.

    “뭐, 자살 이전에 한 얘기니까. 겉보기에 딱해서 그랬어요. 수사가 토론이나 언쟁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사내용을 매일매일 발표하니 상대방도 괴로울 것 아닙니까.”

    “대통령 말에 불복해 장래가 있겠나”

    그의 검사 경력은 정치인 경력보다 많다. 1961년 사법고시 13회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된 후 1988년까지 27년간 검찰에 몸담았다. 마지막 직책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그에 앞서 지방검찰청장을 세 번 지냈다. 정치인이 된 지는 22년 됐다.

    -최근 검찰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방식에 대해 비난여론이 일고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스폰서 의혹으로 낙마한 데 이어 김준규 검찰총장이 기자들에게 돈봉투를 돌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글쎄, 과거에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는 볼 수 없고요. 세상이 좀 맑아지니까 과거엔 그냥 넘어갔던 일이 문제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 공인의식의 문제 아닐까요?

    “공인의식이 해이해졌다기보다는 세상의 변화에 맞게 처신하지 못하고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검사들의 스폰서 문화는 오래전부터 굳어진 것 아닌가요. 술 사주고 용돈 대주고.

    “친구들한테 술 한잔 얻어먹기도 하고….”

    ▼ 친구들 차원이 아니라….

    “뭐, 걸리는 사람들과는 거의 안 했습니다.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과 만나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사건에 관련된 사람, 그리고 변호사들은 안 만났습니다. 검사는 변호사를 상대하면 안 됩니다.”

    ▼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잘못된 관행이라고 생각한 게 있다면요?

    “엘리트의식을 갖고 행동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88년 4월 총선을 통해서다. 민정당 후보로 경남 남해·하동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그 경위가 재미있다. 일종의 차출이었다.

    “나는 국회의원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밤 법무장관이 불러 갔더니 ‘(여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했다’며 출마하라고 하더군요.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인 통보였지요. 어떻게 내가 공천됐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통보만 받았다는 겁니다. 공천심사위원회에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는데 (위원들이) 완전히 격리돼 연락이 안 됐습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대통령이 결재까지 했는데 검사가 대통령 말에 불복해 장래가 있겠나’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 장관 만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인가 됐어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기로 부산에 내려갔는데, 11시에 비서가 들어와 ‘방금 라디오에서 공천자로 발표됐다’며 ‘오보 아니냐’고 묻는 겁니다. (웃음) 글쎄, 놔둬봐, 했지.”

    “국회의장, 시켜줄랍니까”

    ▼ 오랜 세월 정치를 했는데, 정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자님은 ‘정치는 바를 정(正)’이라고,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했습니다. 국회 들어와 그 말을 신봉했습니다. 그런데 하다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웃음).”

    ▼ 왜요?

    “바르지 않은 길로도 많이 가는 것 같고….”

    ▼ 꼭 바른 것만이 정치는 아니라는 말씀이죠?

    “예. 정치는 바른 것이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협이다, 그게 내 소신입니다.”

    ▼ 타협은 바른 것과 종종 충돌하죠?

    “그렇죠. 자신의 바른 것과 남의 바른 것 사이에서 타협하는 거니까.”

    ▼ 타협을 하다보면 굴절될 수도 있죠?

    “처음 생각과 달라질 수도 있죠. 그러나 자신이 바른 것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으니.”

    ▼ 그게 바로 박근혜 의원의 문제점 아닌가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 자기 바른 것만 내세우는 것 아닌가요? 전체적인 화합보다는.

    “글쎄요. 나는 대학 다닐 때 정치학 교수한테 ‘정치는 타협’이라고 배웠어요.”

    ▼ 정치를 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입니까.

    “얻은 것은 인간을 좀 더 공부하게 됐다는 것, 잃은 것은 명예도 있고… 뭐 욕을 안 먹을 수 없으니….”

    ▼ 좌우명이 뭡니까.

    “물과 같이 살아야겠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노자가 한 말이라는데, 물은 낮은 데로만 흘러가잖아요. 자세를 낮춰서. 그런데 계속 흘러가면서 세력이 불어나 강으로 가지요. 물은 자기 형태를 고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만물 생명의 근원입니다.”

    ▼ 지금까지 세력을 형성하거나 대립하거나 부딪친 적이 거의 없으시죠?

    “그렇습니다. 성품도 그렇지만 우리가 처음 국회 들어올 때만 해도 무슨 계파를 만들거나 계파에 소속되는 건 금기시됐습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은.”

    ▼ 제왕적 당 총재 때문에 그랬던 거죠?

    “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계파 만들면 징계사유가 될 정도로. 3김이라는 압도적인 거물들이 정계를 지배할 때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 3김 정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폐해도 컸지요?

    “긍정적인 건 국민의 오랜 숙원인 정치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거죠. 부정적인 건 지나치게 오래 잡다보니 뒷세대가 크지 못한 거죠.”

    그는 한나라당에 있으면서 원내총무, 부총재, 대표최고위원,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이제 남은 건 국회의장뿐이다.

    “허허, 모르겠어요. 진짜 이제 할 것도 없긴 없네.”

    ▼ 이력이나 비중으로 봐선 국회의장을 하셔야겠죠.

    “시켜줄랍니까.(웃음)”

    ▼ 앞으로 언제까지 의원 하실 겁니까.

    “글쎄, 이제 막 된 사람한테. 조금 지나봅시다.”

    ▼ 정치가 마약 같다고도 하죠?

    “그런 면이 있나 봐요. 스스로 작심하고 그만두면 다시 안 하는데, 타의로 정치를 떠나면 다시 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여기서 인터뷰를 끝내겠다고 하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는 “고생했다”는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일어나면서 한마디했다. “진짜 색깔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무색무취시네요.” 그의 반응은 건조했다. “모든 색깔을 다 받아들이면 무색이 된다대요.”

    박희태 의원은 ‘색깔 없는 정치인’이라는 지적에 대해 “모든 색깔을 다 받아들이는 게 무색”이라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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