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北, 현대아산 직원 석방 대가로 300만달러 요구했다”

[현정은-리종혁·원동연 면담록]으로 본 남북관계 막전막후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12-04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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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는 점잖은데, 이명박 대통령은…”
    • “주변인들이 이 대통령을 잘 보좌하지 못한다”
    • “미국 사람들은 속이 깊다”
    • “비핵·개방3000 입안자 임태희씨는…”
    • “정지이 선생, 미술은 집어던졌나?”
    말과 소문이 뱀처럼 뒤틀렸다. 알 만한 인사들이 ‘대북 밀사’로 북측 인사를 만났다고 지목받았다. 싱가포르에서 남북이 정상회담을 논의했다는 게 골자다. 대북 밀사 구실을 했다고 이름이 오르내린 이들은 하나같이 사실무근이라면서 접촉 사실을 부인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임태희 노동부 장관, 김숙 국가정보원 1차장,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대통령국민통합특보), 인명진 목사, 이상득 의원,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총장….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는 막혀 있었다. 길들이기 vs 길들이기 싸움이 거셌다. 남북관계가 변곡점을 찍은 때는 8월4~23일.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씨 석방 협의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및 북한 조문단 파견이 길을 열었다.

    변곡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 8월4일 금강산에서 리종혁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면담한 뒤, 8월16일 묘향산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8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북한 조문단을 접견했다.



    여기자 석방 협상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거치면서 북미 대화가 전환점을 맞았듯, 현대와 북한의 대화는 억류자 유씨를 매개로 이뤄졌다. 현대와 북한은 7월초 중국 선양(瀋陽)에서 석방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예택 현대아산 상무(관광경협본부장)가 7월1~3일 북측 인사를 만나 석방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아산은 “북측 인사들에게 수산물을 서해상으로 반입해 판매하는 사업을 타진했을 뿐”이라고 관련 사실을 부인한다.

    남북관계의 변곡점은 8월4일 금강산에서 열린 ‘현정은-리종혁·원동연 면담’이었다. 이 면담을 기점으로 북한은 유화 공세에 나섰으며, 남북 당국 간 대화가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면 이 면담에선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신동아’는 ‘현정은-리종혁·원동연 면담록’을 단독입수했다. 이 면담록엔 남북관계 뒷얘기를 비롯해 현안을 들여다보는 북한의 시각이 담겼다.

    면담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2시40분까지 외금강호텔 2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현대 측에선 현 회장·정지이 현대 U·I 전무·서예택 현대아산 상무가, 북측에선 리종혁 부위원장과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 ·한봉철 명승지개발지도국 참사가 참석했다.

    현 회장은 면담에 앞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내는 서신을 리 부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리 부위원장은 “오래간만에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정몽헌 회장 선생 돌아가신 지 6주기 되는 날인데, 저희들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리종혁 그 사이에 마음고생 많으셨죠? 멀리서나마 관심 갖고 주시하고 있습니다.

    현정은 금강산 사고 이후 힘들었어요. 북측을 이해시키려고 하면, 저희 보고 북측을 대변한다고 욕도 많이 먹고요.

    리종혁 현대아산이 최근에 여러 가지 곤란한 조건에서도 대북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끌어가시는데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대그룹이 선구자적이고 개척자적인 역할을 해왔고, 그 사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현정은 금강산 관광이라도 먼저 빨리 시작했으면 해요.

    리종혁 먼저 말씀하실 것이 있나요?

    현정은 아니요.

    리종혁 그럼, 저희들이 먼저 말하겠습니다.

    리 부위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활동하던 북한 대남라인 중 지금껏 건재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대남 민간교류 일선에서 활동한 고위급 인사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모습을 감춘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부부장, 권호웅 내각 참사 등과 달리 3월 제12기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대의원으로 재선출됐다. 리 부위원장이 준비해 온 문건을 들여다보면서 현 회장에게 말했다.

    리종혁 금강산 올 때마다 늘 느끼는 문제지만 통일대국 건설에 헌신하신 정주영 회장 선생과 정몽헌 회장 선생의 공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남협력 사업의 축지를 개척하고 6·15 시대를 열게 하신 정주영 선생과 정몽헌 선생이 민족 앞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도 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주영 선생과 정몽헌 선생을 잊지 않으시고 잘 기억해보라고 하십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주영 선생, 정몽헌 회장 선생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현정은 회장 선생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 대해서 잊지 않고 관심을 돌리고 계십니다. 북남관계가 사실 어려운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에서 정몽헌 회장 선생의 추모행사가 진행될 수 있게끔 해주시고, 장군님의 한량없는 믿음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현정은 네. 감사합니다.

    리종혁 그리고 우리는 현정은 회장 선생과 현대의 여러분이 정주영 선생, 정몽헌 선생의 뜻을 이어서 통일애국의 길로 꿋꿋이 나가고 있는 데 대해서 그리고 대북 협력사업의 의지를 계속 견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높이 평가합니다. 사실 저희는 회장 선생이 여러 차례 평양 방문 의사를 표명하셨기 때문에 저희가 어떻게 하면 실현시킬 수 있겠는가 하고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북남관계에 조성된 이런 정세로 해서 실현시키지 못하다가 마침 임동원 선생이 하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평양에 올 때, 현정은 회장 선생도 같이 오셨으면 했댔는데, 이것도 역시 남측 당국에 의해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실정에서 저희들은 회장 선생이 별도로 평양에 한번 오실 수 없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 따로 평양에 오실 수 있으면 그 기회에 현재 산적되어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협의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만 문제는 남측 당국이 승인하겠는가 하는 문젠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정은 남측 당국에서는 저 보고 빨리 가보라고 했어요. 승인 문제는 없어요.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 손길승 전 SK 회장 등의 방북을 추진했다. 하지만 남측 당국에 의해 방북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리 부위원장의 발언은 오해가 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병 상임이사는 “6월2일 임동원 전 원장 등이 방북하는 것으로 정부의 승인이 떨어졌으나 북한이 핵실험(5월25일)을 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밝혔다.

    -현 회장도 함께 방북하려고 했나?

    “현 회장 방북을 요구한 것은 북측이다. 현 회장도 함께 방북하는 것으로 정부에 신청서를 넣었으나 현 회장 방북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실험이 벌어졌다. 정부가 핵실험 뒤 임 전 원장 일행의 방북 승인을 취소한 것도 아니었다. 정부 쪽에서 이런 상황에서 방북하는 게 바람직한지 모르겠다고 물어왔고 결국엔 ‘안 가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구(舊) 여권 인사들이 유씨 석방에 도움을 줬다는 얘기가 있다.

    “‘왜 억류하고 있느냐, 풀어줘야 한다’는 뜻은 전했다. 그 수준일 것이다. 어떤 역할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현 회장의 8월 평양 방문은 북측의 선(先)제안으로 이뤄졌다. 리 부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을 거론하면서 현 회장에게 “빠른 시일에 오라”고 말했다.

    리종혁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에 오셨으면 하는 생각인데…. 오늘 오시다가 보도를 들으셨을 겁니다.

    현정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리종혁 (웃으면서) 네.

    현정은 평양에 도착하셨나요?

    리종혁 아마 오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양에 오시는 경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진지하게 협의하고 싶은 생각이기 때문에 일행을 너무 많이 데리고 오시지는 마시고, 아무래도 정지이 선생은 같이 또 오고….

    정지이 (웃으면서) 초청해주시면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에 오라”

    8월16일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이 만난 자리엔 현 회장의 맏딸 정 전무가 있었다. 정 전무는 2005년, 2007년에도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회동에 동석했다. 현 회장은 정 전무와 함께 오라는 말을 듣고 김 위원장이 나오리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장은 “어서 좋은 사람 만나라”는 덕담과 함께 정 전무에게 선물도 챙겨줬다고 한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날 때도 아들인 고 정몽헌 회장이 동석하곤 했다.

    리종혁실무적인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는 비서관 1명 정도를 데리고 오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현대그룹과 아태와의 관계는 그 무슨 그룹과의 관계라기보다도 현대가문과의 관계 아닙니까? 여직까지 호상 믿음과 신뢰에 기초해서 모든 사업이 이루어진 만큼,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번 좀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하기를 희망합니다. 순수 현대아산 문제라기보다도…. 이제 말씀이 남측 당국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는데, 그럼 좋고…. 만약 남측 당국에서 방문 목적 갖고 고려할 것 같으면 명분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현정은남쪽에서는 제가 가는 것에 대해 아무 이의가 없습니다. 언제라도 가라고 합니다.

    리종혁현재 현대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유성진 문제 같은 것도 있으니까, 당국에서 신경 쓸 것 같으면 그런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가시겠다고 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먼저 초청장을 보내드릴 수도 있지만은 저희들이 먼저 초청하는 형식으로 하면 또 신경 쓸 것 같은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좋게는 회장님이 오실 의향을 표시해서 이번에 왔던 김에 의향을 표시하니까 북측에서도 쾌히 접수하고 초청하겠다고 그러더라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현정은유 직원 문제도 좀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는데요. 여론도 안 좋고요.

    이 대목에서 원동연 실장이 처음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그는 북한의 대남라인에서 ‘뜨는 인사’다. 한 북한전문가는 “2007년 대선 직전 이해찬 전 총리와 핫라인을 구축했다가 낙마한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부부장의 전성기 때가 오버랩된다”고 말했다. 최 전 부부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철직됐으며 처형설도 나돌았다. 원 실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단 일원으로 서울에 왔으며, 최근의 남북접촉 때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아태평화위원장을 수행했다. 일부 언론 보도대로라면 싱가포르 남북회동 때 김숙 국정원 1차장의 카운터파트였다. ‘동아일보’는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원 실장이 최근 통일전선부 부부장,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고 보도했다.

    원동연 빨리 오셔야죠? 빨리 오셔서….(웃음)

    리종혁 언제쯤 가능하실 수 있겠습니까?

    현정은 저는 아무 때나 상관이 없거든요.

    리종혁 우리한테 편리한 것은 8·15 전후로 해서, 전에도 좋고요.

    현정은 편하신 날짜를 정해주세요.

    원동연 우리가 날짜를 정하면 따를 수 있겠습니까?

    현정은 네.

    리종혁 8·15가 무슨 요일이에요?

    현정은 토요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유 직원 문제가 그전에 해결돼서, 이명박 대통령이 8·15때 말씀하실 때 대북 메시지가 포함됐으면 합니다.

    리종혁 오실 수만 있으면, 가급적이면 빨리, 8월11일쯤….

    원동연 8월10일부터 15일 그 사이로, 올라가서 날짜 타진해보겠습니다. 그 사이에 아무 때나 날짜 잡으면 오실 수 있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혹시 8·15 조금 지나도 일없지요?

    리종혁 아무래도 사정이 있으시겠으니까 사정 고려해서 알려주십시오.

    현정은 네.

    정지이 북측에서도 8·15 행사가 있나요?

    원동연 8·15 공식행사는 없습니다.

    리종혁 ‘아리랑’을 하니까 오시면 그것도 한번 보셔야지요. 오시는 경로는 어떻게 하는 게 편리하십니까?

    개성으로 올라가면 편리하긴 한데요.

    원동연 개성도 무방합니다. 현 선생님 편리하신 대로, 함께 오실 성원으로 누구를 생각하시는지요?

    리종혁 그전부터 이야기하던 대로 직접적인 연락이나 사무를 맡아볼 비서관을 만들어두지 않으셨나요?

    “임태희, 곽승준 1대1로 만났다”

    6월 말 중국 선양에서 북측 인사들과 유씨 석방 문제를 논의한 여권 인사 K씨는 “북한이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을 못마땅해 한다”면서 “조 사장은 현 회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개성공단만 오가지 않았느냐. 남측 정부와 북측 당국 모두에서 조 사장을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북한은 조 사장이 정부의 추천으로 현대아산 사장직에 오른 사람으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은 북측이 조 사장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정은 조건식 사장에 대해서 뭘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요. 조 사장은 정부에서 추천하신 분이 전혀 아니에요.

    리종혁 어떻게 해서 조건식 사장이 되게 되었습니까?

    현정은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추천해서, 저희가 사업을 하려면 관리들 도움 없이는 힘들거든요. 이분이 관리를 오래하셔서 발이 넓어요. 통일부 직원도 물론 잘 알고, 국정원 직원들도 잘 알고, 통하는 데가 많기 때문에 저희가 훨씬 일하기가 편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이 사람을 썼거든요. 지금 정부는 처음에는 먼저 정권에서 차관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오해를 했어요. 저희에게 먼저 정부에서 이 사람을 억지로 쓰게 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처음에는 굉장히 안 좋아했어요. 그것을 우리가 얘기해서 오해를 풀었거든요. 그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아는 분을 통해 사장감을 알아보다가 관리 출신을 쓰니까 통일부와 얘기도 잘될 것 같아 제가 쓴 거예요. 제가 결정한 거예요. 지금 정부는 정부대로 많이 오해를 했다가 오해가 풀렸죠. 근데 북쪽에서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리종혁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밖에 없지요.

    현정은 정부 사람이라고 저한테 누가 쓰라고 권하거나 한 것, 전혀 없었어요.

    리종혁 통일부 차관할 때도 좀 뭐…. 발언이라든가 그런 데서….

    현정은 그건 언론에 잘못 난 것, 기자가 잘못 쓴 것이 있더라고요.

    원동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현정은 실제로는 이걸 풀려고 얼마나 애쓰면서 돌아다니는데요.

    원동연 진심으로 현대사업을 하고 있고, 현 선생님의 대리인처럼 우리가 믿고 일해도 되나요? 앞으로 현대아산 사업도 계속 맡기실 거고요.

    현정은 네. 그분이 진심으로 열심히 풀려고 너무너무 노력하고 있어요.

    리종혁 현대아산 사장 된 다음에도 뭐 이런 저런 자극적인 발언들이 나오더군요. 금강산 사고 관련해서 좋지 않게….

    북한 통일전선부에서 근무하다 탈북해 지금은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소에서 일하는 한 인사는 “통일전선부 간부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 신문을 더 열심히 읽는다”면서 “주요 인사의 발언은 토씨 하나까지 검토한다”고 말했다.

    현정은 아산 사장이 되기 전에 무슨 세미나에서 한 것인데, 그런 뜻이 아니었대요, 본인은. 기자가 포인트를 잘못 찍어서 기사를 쓰는 바람에 한번 언론에 잘못 난 적이 있더라고요.

    리종혁 최근에는 뭐 다른 것 없었지요. 그만큼 우리가 관심을 갖고, 말귀 하나, 토 하나 빠짐없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현정은 언론을 그대로 다 믿으시면 안돼요. 기자들이 자기 멋대로 막 쓰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원동연 통일부에 있을 때도 어쨌든 대북 강경파로 알려졌잖습니까?

    현정은 그렇지 않아요. 저와 조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 있는 분들을 다 하나씩 만났습니다. 곽승준씨, 임태희씨 등을 1대1로 만나 많이 얘기를 해서 강경하시던 분들이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리종혁 기업활동 경험이 없잖습니까?

    현정은 기업은 안 했습니다.

    원동연 기업을 하지 않은 관리를 임명한 것이….

    현정은 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도움 없이는 일을 못하거든요. 그전에는 그게 부족해 가지고 일부러 쓴 것이에요.

    리종혁 사람이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는데, 회장님이 믿으신다고 하니까….

    현정은 믿어주세요.

    원동연 우리는 회장님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생각했습니다.

    현정은 네. 저희가 필요해서 쓴 것입니다.

    원동연 그전에 만난 적은 없었나요?

    현정은 사장이 되기 전에 만난 적도 전혀 없습니다. 일하다보면, 정부 관료들과 부딪히다보면 일을 안 풀어주니까 애먹는 경우가 많아 필요했습니다.

    조 사장은 이날 현 회장과 함께 금강산을 찾았으나 면담엔 참여하지 못했다. 8월10~17일 평양 방문 때도 조 사장은 배제됐다.

    리종혁 그전에 사장하시던 분은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현정은 지금 고문으로 계시는데…. 현대경제연구원이라고. 거기서 일하고 계십니다. 먼저 대북관계에 일하던 분들이 중심에서 벗어나 한직으로 갔다고나 할까요?

    리종혁 인원도 많이 축소했죠?

    현정은 아산요? 많이 했죠. 70% 줄였습니다. 계속 적자를 보고 있으니까. 연말까지나 버티지 연말이 지나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리종혁 다른 계열사들은 어떻습니까?

    현정은 다른 계열사도 잘되면 좋은데 현대상선이 지금 안 좋습니다.

    리종혁 거기가 매출이 제일 높지 않습니까?

    현정은 네. 매출의 거의 80%인데 매출이 거의 없어서…. 경기가 좋아져야 하는데….

    원동연 평양 방문 관련해 다른 것 제기되는 것 없습니까?

    현정은 위원장님 만나기 힘들겠죠?

    리종혁 보고는 드리겠습니다.

    현정은 건강하셔야 할 텐데….

    리종혁 네. 요즘은 뭐 예전과 같이 동서남북 다니시면서…. 그 외에 생각되는 것 있으시면 이번 기회에 다 말씀하십시오.

    현대아산은 ‘현정은-리종혁 면담’에서 현 회장의 평양 방문 논의만 이뤄졌다고 밝혔으나 아태와 현대는 이날 별도의 사업 얘기도 나눴다. 한국가스공사의 대북사업은 그간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현정은 저희 러시아 가스공사하고 가스가 북측을 통해서 오는 것을 남쪽 정부에서도 추진하는 것 같은데…. 만약 올 수가 있다면 북측에도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리종혁 정부와는 전혀 접촉이 없는데요 뭐…. 여론이 그렇게 돌더만요…. 그리고 지난번에 러시아에 가셨댔죠? 거기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된 것이 있습니까?

    남·북·러 삼각경협

    현정은 FESCO 그룹이라고 저희랑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를 운항하는 회사가 있어요. 한 7년 했는데요, 그 그룹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 그룹이 블라디보스토크에 항만을 개발한다고 해서…. 8월 며칠 한국에 들어오기는 하는데, 항만개발, 그리고 몇 달 전에 저희가 북측 근로자를 쓰는 거 이야기를 했지 않습니까.

    리종혁 항만공사에 우리 인력 쓰는 문제 말인가요?

    이 대목에서 서예택 상무가 보충설명을 하면서 처음으로 말을 꺼낸다.

    서예택 제가 보충 설명을 드리면요. 러시아에 개스프럼이라는 국영회사가 있습니다. 거기서 블라디보스토크에 파이프라인 공사를 합니다. 전체가 650km가 되는데 그중에 50km를 한국가스공사에 발주하겠다고 약속이 돼 있습니다. 거기에 한국 건설회사가 참가하는데 한국가스공사에서 현대아산이 북측 인력을 송출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어떻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북측 인력을 러시아 PNG사업에 투입할 수 있다면 현대와 사업하고 싶고, 이를 경험 삼아 파이프라인이 북측을 경유하는 공사를 할 때 러시아에서 쓰던 인력을 북측 경유 파이프라인 공사에 투입하면 잘되지 않느냐, 이 제안이 있어서 민경련에 지난 4월에 제안서를 제출했고요. 민경련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남측 인원 방북금지가 되면서 멈췄던 것 같습니다. 민경련 실무자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종혁 인원은 얼마나 필요합니까?

    서예택 초기에 파이프 용접 인원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초기에 300~500명 정도를 제안했습니다. 파이프 용접 전문 인력이 북측에 없을 것으로 생각돼 저희가 3개월 정도 파이프 용접 기술을 가르친 다음에 현장에 투입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체적 의도를 민경련 측에 설명해드렸습니다.

    리종혁 러시아 측과는 최종합의를 본겁니까?

    서예택 네. 러시아 개스프럼과 한국 가스공사와 이야기가 됐고요, 얼마 전에, 7월에 러시아 개스프럼 회장이 한국에도 왔었습니다.

    현정은 개스프럼 사람들이 평양에도 갔다고 들었는데 이야기는 하지 않고 돌아왔데요?

    서예택 제가 들은 바로는 5월25일에 평양에 도착했는데 그날 핵실험을 하는 바람에 바로 철수했다고 합니다.

    리종혁 아~(웃으며) 그건 뭐…. 우리가 나가라고 하지 않고 지들이 간 거지. 그 다음에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현정은 금강산, 개성관광이 바로 추진되면 백두산도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종혁 관광이 다시 추진되는 문제는 우리보다는 남측 당국에 달려 있으니까. 무슨 새로운 움직임이 있습니까?

    “남측 강경보수파들이…”

    현 회장은 8월10~17일 평양 방문 때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 및 비로봉 관광 개시 금강산 관광 편의와 안전 보장 ▲육로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해제 ▲개성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 관광 개시 ▲추석 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합의했다. 북한은 관광 재개의 키를 남측 정부가 쥐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김 위원장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현 회장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식으로 합의 내용을 선전했다. 한 북한전문가는 “현 회장이 정부가 협상할 일을 합의하고 왔다. 원칙을 강조해온 정부가 불쾌했을 것이다. 정부가 관광 사업 재개를 허용하지 않은 데는 이런 부분도 일부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北, 현대아산 직원 석방 대가로 300만달러 요구했다”

    2007년 11월16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과 중국 잡지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현정은 그래도 현대아산과 아태가 협의가 됐다고 하면 저희가 정부에 이야기할 명분이 생깁니다.

    원동연 7월에 당국이 발표하는 것을 보니까 진상조사가 되기 전에는 관광이 안 될 것같이 이야기하던데….

    현정은 그것은 형식적으로라도 하는 모양을 취하면 될 듯합니다. 거기에 남측 당국이 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동연 어디에?

    현정은 진상조사단 등에 남측 당국 관계자가 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종혁 진상조사를 아직도 계속 제기하고 있습니까?

    현정은 그때보다는 많이 완화는 됐습니다.

    서예택 보충설명을 드리자면, 사고가 난 직후에는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남측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진상규명입니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자초지종에 대해서 북측이 설명해주면 된다는 것이고, 지금 현장에 가봐야 현장이 보존돼 있지도 않고, 진상조사는 안 된다는 것은 남쪽 당국에서 알고 있습니다.

    현정은 재발 방지라는 거 하나만 써주면 될 것 같습니다.

    서예택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고요. 재발 방지와 관광객들의 신변안전보호 이 정도입니다. 뭐 남측의 검찰이나 경찰이 들어와 조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에 금강산지구 군부대 대변인이 발표한 것과 작년 12월 개성에서 국방위원회에서 내려와 설명해준 것들을 한번에 모아서 사고내용이 이렇다고 자초지종이 이렇다고 설명해주시면 됩니다.

    현정은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남측 강경보수파들이 있으니 그들을 이해시켜야 하니까요.

    리종혁 그것을 설명하는데 현대아산뿐만 아니라 당국이 껴야 한다는 것이군요.

    현정은 당국이 푸는 모양새를 취해야 하니까요. 금강산 사건이 처음 났을 때는 저희가 무서워 말을 못할 정도로 강경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 지금은 많이 누그러지고 생각도 많이 유연해져서 잘돼야 한다고 말하는 분이 많습니다.

    리종혁 우선 관광이 다시 재개되어야 다른 이야기들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거군요.

    원동연 개성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정은 출입제한조치를 풀어주시면…. 그게 먼저 풀어지면 개성관광도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원동연 공단 문제는 현대가 어느 정도 관여가 돼 있습니까?

    현정은 저희는 없고요. 건설만 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2단계를 할 때는 저희가 관여를 하려고 합니다. 남쪽은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합치게 될 것입니다. 사장이 누가 오게 될지는 모릅니다.

    원동연 남측 당국이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협상하려는 당국자가 없는 것 같아요.

    북한은 개성공단을 문 닫을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창섭 개성공단기업협의회 명예회장은 “노동자 4만명이 개성에서 일한다. 공단이 문 닫으면 그 사람들을 배치할 곳이 없다. 북측도 경제활동엔 의지가 강하다. 북한이 먼저 문 닫을 일 없다”고 단언했다.

    현정은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먼저 정권에서 한 거라고. 처음에는 나들섬인가 남쪽에 있는 것을 새로 구상했습니다. 먼저 정권 것이라고 선을 긋고 했는데 나들섬이 남쪽에서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인지가 돼서인지 지금은 인식이 바뀌어서 개성공단을 인정하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예택 개성공단 실무접촉은 현대 유 직원 문제가 먼저 해결된 다음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개성 실무접촉에서 남측이 계속 들고나오는 것이 유 직원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논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거든요. 남측의 국민 여론은 직원이 나오지 못하는데 다른 것 해서 뭐하느냐 이런 것입니다. 유 직원 문제가 해결되면 개성공단 실무접촉에 진전이 있을 것입니다.

    동시다발 접촉

    리종혁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거란 말이죠?

    서예택 그렇습니다. 그래야지만 명분이 있지 지금처럼 유 직원이 나오지 않고서는 조금도 진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원동연 개성 문제가 미국 문제가 해결되면서 그 다음 단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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