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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방산업계 전방위 검찰수사는 국방개혁 신호탄?

  • 김종대│D&D Focus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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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사가 도마에 오른 까닭

‘지난 정권 비자금 추적’부터 실세들 뛰어든 ‘개혁 논쟁’까지

1993년 7월9일,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이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1974년 시작된 한국군의 전력증강사업 율곡사업은 국가안보라는 보호막에 가려져 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에야 처음으로 감사를 받았다.

이러한 강도 높은 조사의 배경에 ‘청와대의 의중’이 있다는 점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조사대상 업체만 50여 개가 넘고, 조사대상자는 현역군인과 공무원, 민간인을 합쳐 수백 명에 달한다. 오죽하면 수사를 담당하는 군 관계자가 “사건이 하도 많아 조사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할 지경이었다. 이인규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집에 못 들어갈 상황에 대비해 하루에 양말 네 켤레를 싸들고 출근했다고 전해지지만, 찾아낸 건 별로 없었다. 대신 F-15K 제조회사인 보잉사의 한 협력업체는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당시 수사를 받은 한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다른 서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보잉사 거래내역이 담긴 서류만 찾았다. 아마도 보잉사를 통해 해외에 비자금을 조성한 흔적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유독 보잉사 관련 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두드러진 이유는 지난 정부에서 가장 많은 무기도입 사업을 수주한 회사가 보잉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이 도입하고 있는 F-15K 전투기, 조기경보기 등 규모가 가장 큰 방산사업이 보잉사 제품을 직구매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인식은 정치권으로 확산되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국방위원들은 집중적으로 F-15K 전투기 도입의혹을 제기했다. 한 여당 의원 보좌관은 “국정감사 직전에 당 대표로부터 ‘F-15K 도입의혹을 잘 파헤쳐보라’며 기초 자료를 건네받았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정치권 관계자들이 F-15K 도입에 대해 제기하는 의혹은 최초 4조원대로 예상됐던 사업규모가 5조원을 넘긴 배경이다. 한물간 전투기 도입에 1조원을 추가로 지출한 것은 보잉사를 통해 과거 정권이 수천억원대의 리베이트를 받기 위한 것이었고, 이것이 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사용됐거나 현재 관리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F-15K 전투기사업에 대한 의혹’이라는 문서가 한나라당 김효재 의원을 통해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적으로 제시된 바도 있다.



5조원짜리 전투기 사업 가운데 1조원이면 20%다. 바로 이 같은 내용이 최근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는 깎을 수 있다”는 말의 배경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의 항명성 편지가 작성되기 직전인 7월 말 ‘장관 보고 없이’ 청와대에 다녀온 장수만 차관을 통해 국방부에도 알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리베이트 20% 발언’이 이상희 전 장관의 편지 작성에 하나의 동기가 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비자금은 안 나오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세무조사를 통해 세금을 추징당하거나 군시기밀 유출로 처벌 위기에 몰린 방산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줄을 잇는다. 서두에 거론한 최근의 수사결과 가운데 상당수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수효과’였던 셈이다. 1년이 넘는 수사 기간에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었다는 사실은 “정치논리로 시작한 수사 때문에 공연한 피해자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최근의 군수비리 조사가 정치논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과 관련한 방산비리에 대해서는 왜 이제까지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월말 구속영장이 발부된 방위산업체 로우테크놀러지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막내동서, 처제, 장남 등이 복잡하게 관련된 ‘이상한 방위산업’을 진행해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 업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최근에 와서야 본격화됐다.

이 업체가 개발했다는 육군 교육용 훈련장비와 개량형 야간표적지시기는 미국에서 도입한 것임에도 국내에서 개발한 것처럼 속여 몇 배의 폭리를 취하고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이 업체가 특허를 도용하고 폭리를 취한 부당이익은 무려 220억원. 그동안 검찰이 숱하게 뒤진 군수비리 가운데 단일 사업으로는 단연 최대 규모다. ‘이중 잣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말했듯 최근 군수비리 수사의 배경에는 국방 분야의 비효율성이나 구시대적인 행태에 관한 청와대의 인식이 깔려 있다. 8월말 이 전 장관의 항명성 편지에서 엿보인 ‘국방개혁에 대한 청와대와 국방부의 갈등’도 이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청와대의 목표는 단순히 군수납품이나 무기도입 과정의 비리를 척결하는 것이 아니라, 군 전력의 소요기획, 예산편성 및 집행 등 전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11월10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했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제껏 내가 국방예산 효율화 방안 마련을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아직까지 이루어진 것이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 재차 지시하니 제대로 만들어 보고하라.”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필자에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정확히 무엇을 개혁하자는 것인지 지시받은 바 없고, 대신 여러 가지 말이 한꺼번에 나오는 바람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대통령 본인이 현재의 국방경영에 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청와대 등에서 국방개혁 문제를 지휘하는 참모들은 개혁 전반에 대해 체계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좌충우돌 뛰어드는 형국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관계자가 말한 문제의 초점은 국방 운영의 효율화에 대한 청와대 지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핵심이 예산인지, 소요인지, 조직개편이나 인력감축인지 종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부서에서 제각기 자신이 국방개혁을 컨트롤하겠다고 나서면서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는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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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D&D Focus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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