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은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국 은행들이 대출 기간을 연장해주지 않고 오히려 상환을 요구하자 정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던 것.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들 은행을 국유화하거나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현재는 이들 은행이 채권자인 외국 은행과 채무 조정 협상을 벌이고 있다.
카자흐스탄 은행의 유동성 위기는 곧 건전성 위기를 불러왔다. 올 2월 카자흐스탄 정부가 텡게(KZT)/달러화 환율 목표치를 120텡게에서 150텡게로 평가절하한 것은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 됐다. 외화로 대출을 받았던 가계나 기업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그만큼 커지면서 연체 비율이 높아진 것. 이에 따라 부실채권이 크게 증가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카자흐스탄 은행 산업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가 살아나고 있다. 최근 유럽재건개발은행(EBRD)이 카자흐스탄 2위 은행인 KKB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4000만달러를 청약한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올 2월 경제 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국민총생산(GDP)의 18%인 180억달러를 순차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경제위기에 적극 대응한 덕분이다.
BCC가 돋보이는 것은 카자흐스탄의 다른 은행이 외형 성장을 추구하는 상황에서도 보수적인 경영으로 일관했다는 점. BCC의 티무르 이시무라토프 국제본부장은 “다른 은행들이 2002년 이후 자산을 늘리기 위해 대출을 급격히 확대해왔지만 BCC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다른 은행의 외형 확대 경쟁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2006~07년 국내 은행이 너도나도 성장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를 돌이켜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BCC에선 과거의 ‘아픔’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티무르 본부장의 설명이다.
“BCC는 1998년 부실에 빠진 정부 소유 은행 두 곳을 매입해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당시 두 은행은 주택 담보 대출을 많이 해 연체율이 높은 상태였다. BCC도 경영을 잘못해 부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언제든 다른 은행에 매각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때부터 경영진은 BCC가 이런 불행을 다시 겪지 않도록 절대 공격 경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해왔다.”
BCC의 이런 경영 방침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뒤늦게 빛을 발한 셈이 됐다. 티무르 본부장은 “다른 은행에 비해 외채가 많지 않은데다 충당금도 충분히 쌓아놓았고, 국민은행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기 때문에 유동성과 건전성에서 전혀 문제가 없어 정부의 지분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고 자랑했다.
특히 BCC는 건설업 대출 비중이 낮아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충격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카자흐스탄 은행의 평균 건설업 대출 비중은 28.7%나 된다. 반면 BCC는 16.5%에 불과하다. 다른 은행들이 아파트 건설 붐을 타고 건설업체에 돈을 쏟아 부었으나 BCC는 거품이 꺼질 것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한 셈이다.

최동수 이사는 “건설 붐을 타고 아파트 수요가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카자흐스탄 전체 인구가 1600만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건설업의 장기 전망은 썩 좋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마티 시내에서는 시공 회사의 부도로 아파트를 짓다만 현장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BCC의 경영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면 강정원 행장(KB금융지주 회장 직무 대행 겸임)이 이끄는 국민은행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예감하게 된다. 두 은행의 경영 스타일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BCC 경영진이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로 금융위기 상황에서 재평가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강 행장의 경영 철학이 뒤늦게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