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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재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영국 환경산업의 상징 에덴프로젝트

  • 성기영│해외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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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아니라 도서관 같다”

겨울에도 7~8℃ 이상을 유지하고 여름에도 25도를 넘지 않는 기온과 건조한 날씨 덕분에 이런 기후에서만 자랄 수 있는 지중해성 작물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작물들은 올리브나 와인용 포도, 게다가 와인 병마개를 만드는 코르크나무처럼 유럽인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중해관에서 만난 콜롬비아 출신의 안드레아 듀케이(43)씨는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게 마련인 식물 종자들을 하나하나 자녀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수백 종류의 과일나무와 열매들을 그냥 보기 좋게 전시했다기보다는 각 종자가 나름대로 이야기를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요. 식물원이라기보다는 도서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중해관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화학섬유를 이용해 촘촘하게 짠 그물을 전시한 것이 눈에 띈다. 겉보기에는 무슨 설치미술 작품 같은데 덧붙여놓은 설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수백 년 전 칠레의 한 마을에서 안개를 이용해 물을 생산하던 일종의 집수시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벽 공기를 타고 촘촘한 그물에 안개가 맺혀 물방울이 되면 이를 한 방울 한 방울 모아 파이프로 연결해 농업용수로 사용했던 것이다. 물이 귀한 고산지역에서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고안해낸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러한 19세기적 생존 방식은 오늘날 21세기적 형태의, 이른바 ‘안개 타워’ 아이디어로 재창조됐다. 최근 녹색 디자인 공모전에서 선을 보인 안개 타워는 칠레 서쪽 해안가에 세워질 400m 높이의 나선형 타워를 말한다. 이 타워를 통해 400m 상공에서 취수한 물을 지상으로 가져온 후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 칠레 농업지역에서 관개용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중해관에서는 이렇게 지중해 기후에 적합한 식물뿐 아니라 건조한 지중해 기후에 적응하는 삶의 방식의 과거와 현재를 스토리 텔링 기법을 동원해 관람객에게 전해준다. 식물원보다는 도서관 같다는 느낌은 바로 이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같은 시각, 지중해관 한복판에 마련된 간이극장에서는 실제로 어린이와 부모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전문 이야기 강사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린이들은 식물도감에 밑줄을 쳐가며 읽는 것 같은 지루함이 아니라 동화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판타지와 흥미를 느끼며 ‘비옴’을 탐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식물원의 규모와 다양한 식물군에 입이 벌어진 관람객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은 에덴프로젝트 주변에 흩어진 대형 야외정원이다. 연면적 13ha, 축구장 30개를 합쳐놓은 넓이에 해당하는 이 야외정원은 이 프로젝트 전체 면적의 4분의 3을 차지한다는 것이 에덴 측의 설명이다.

에덴프로젝트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내부 전시물, 그러니까 소프트웨어만 돌아보고 감탄하고 돌아서기 쉽다. 그러나 야외 구조와 하드웨어까지 꼼꼼히 둘러보면 남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까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에덴프로젝트는 환경과 교육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크리에이티브(creative) 산업’을 주도하는 영국이 자랑하는 대표적 현대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이나 런던 아이(London Eye)만큼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건축학적인 맥락에서 따지면 이들 시설에 못지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현대 건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첨단 플라스틱과 첨단 금속의 결합

에덴프로젝트의 책임 디자인을 맡은 건축가는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인 니콜라스 그림쇼(Nicholas Grimshaw)다. 니콜라스 그림쇼는 유럽 대륙과 영국을 잇는 도버해협 횡단열차의 런던 기착역인 워털루의 설계를 맡았던 주인공이다. 400m가 넘는 역사(驛舍)에 기하학적 모양의 유리 지붕을 입혀 건축계의 찬사를 받은 경력이 에덴프로젝트에도 그를 끌어들인 것이다.

당초 설계를 맡은 디자이너들에게 떨어진 임무는 딱 두 가지였다. 최소 면적에 최대의 식물군을 담을 것, 그리고 최소한의 철골 구조를 사용해 최고로 튼튼한 구조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동시에 인공식물원이니만큼 채광이나 온도, 습도 등 기후 조건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것이 현재 벌집 모양의 8개 돔 구조로 이뤄진 ‘비옴’이다. 벌집 모양의 육각형 구조가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견고한 기하학적 모형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이에 따라 외부에는 비중이 가벼운 특수 철골을 이용해 수백 개의 육각형으로 골격을 만들었다. 가장 큰 육각형 골조는 지름이 무려 11m에 달한다. 그리고 그 위에 탄력성 좋은 첨단 투명 플라스틱인 불소수지필름(ETFE)을 씌워 햇볕이 충분히 공급되도록 했다.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

전 세계의 모든 나무가 집합한 에덴프로젝트. 보유한 수종만 1100개에 이른다.

특히 ETFE는 유리 이상의 강도와 유연성을 동시에 갖춰 에덴프로젝트와 같은 대형 식물원을 짓는 데 최적의 자재로 꼽히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화제를 모았던 수영장 워터큐브나 주경기장 냐오차오에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TFE는 유리 무게의 100분의 1도 안 되지만 유리보다 더 많은 빛을 통과시켜 온실을 만드는 데 최적의 재질로 꼽힌다. 또 화학적으로는 정전기가 없어 먼지와 새들의 분비물이 빗물에 쉽게 씻겨나가는 자정(自淨)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각각의 패널에는 세 겹으로 붙인 ETFE가 설치되어 공기베개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이중창보다 양호한 보온효과를 내는 것도 장점이다.

이렇게 유리보다 훨씬 가벼운 첨단 플라스틱과 첨단 금속을 이용한 설계 공법을 결합해 조립식 완구 모양의 첨단온실을 만들어냈다. 이 온실은 실내에 기둥 하나 세우지 않고도 최고 100m 높이까지 돔을 지탱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초현대식 건축기법이 동원된 대형 프로젝트가 이 산골짜기에 들어선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에덴프로젝트가 위치한 세인트 오스텔은 대도시와 거리가 멀어 일반 관광객을 유치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주변 지형이래야 거친 바위산이 전부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런 첨단 환경 프로젝트와는 애당초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10여 년 전 에덴프로젝트가 들어선 이 지역은 이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 쓸데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당초 이 지역은 도자기용 점토를 캐내던 광산 지역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 도자기산업의 발전과 함께 급성장하면서 160년간이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 지역은 도자기산업이 쇠퇴하면서 버려진 폐광으로 전락한다. 지역 경제 역시 걷잡을 수 없는 침체 국면으로 빠져든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50만명의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었지만 인구의 23%가 연금생활자였고 1인당 GDP도 영국 평균의 6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 후 이 지역은 영국 4대 빈곤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폐광지역이다보니 지질과 지층이 모두 불안정해 변변한 건물을 짓기도 힘들었다. 토양과 배수시설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도무지 해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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