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국가도 기업도 골프도 베풀어야 운이 열린다

  • 윤은기│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경영학 박사 yoonek18@chol.com│

    입력2009-12-08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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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확실성이 무겁게 내려앉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지속가능’이란 단어가 절실하다. 기업과 환경뿐 아니라 가정과 개인, 그리고 골프에까지 지속가능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흥했다 망하는 게 역사이고, 전성기를 구가하다가도 어리석은 짓에 발목 잡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인생이니, 눈물 삼키며 골프채 놓는 일 없으려면 세계적인 기업들의 지속가능 경영 철학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가도 기업도 골프도 베풀어야 운이 열린다
    “열심히 일하고 골프만 계속할 수 있으면 행복한 거 아닐까?”

    자주 어울려 골프를 쳤던 한 CEO가 갑자기 사망해 함께 문상을 다녀온 지인들에게서 나온 이야기다. 골프를 계속하려면 첫째 건강해야 하고, 둘째 어느 정도 재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 함께 어울릴 친구가 있어야 하며, 넷째 집안에 우환이 없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 이 네 가지를 다 갖추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함께 골프를 하던 무리에서 한두 명씩 빠지면서 친목 골프모임이 해체되는 일도 적지 않다. 건강 악화 때문인 경우도 있고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진 경우도 있다. IMF 구제금융 사태나 최근의 금융위기로 인해 골프채를 놓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더러는 회원들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 그러기도 하고, 내기 골프에서 속임수를 썼다가 망신을 당해 필드에 안 나오는 이도 있다.

    요즘 기업에서 지속가능 경영을 중시하는데, 사실 골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가능’이다. 골프나 경영이나 지속가능의 원리와 철학은 매한가지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고객과 사회에 기여하고 사랑받는 것이 지속경영을 가능케 하듯 필드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사랑받는 것이 중요하다. ‘베풀고 또 베풀고 또 베푸는 사람이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필드에서 인기 있고 존중받는 사람은 권력자도 아니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힘이 센 사람도 아니다. 끝없이 상대방을 배려하고 베푸는 사람이다.

    세계적 일류기업들은 전략적으로 지속가능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의 활동범위가 글로벌화하고 다양한 사회적 구성체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한 결과다.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도 기업의 경영방식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했다. 기업은 준법 경영, 윤리 경영, 사회공헌 경영, 환경친화 경영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한편 끊임없이 혁신 경영과 창조 경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조직구성원, 주주, 고객 및 거래처, 여러 사회단체, 그리고 정부와 생산적이고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이들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받는 기업이 일류기업이 될 수 있다.

    ‘인간위주’ ‘인간존중’



    기업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자. ‘우리는 50억 인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앞장설 것이다. 우리는 주로 농산물과 같은 기초적 원자재의 구매, 저장, 수송 및 유통을 통해 이 과업을 수행할 것이다.’ 세계적 곡물회사 카길의 기업 사명이다. 사람은 단지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가치를 창조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존재다. 미국의 특급 배달업체인 페덱스의 경영철학은 ‘인간위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훈은 ‘인간-봉사-이익’이다. ‘사원들을 보살펴주면 그들은 고객이 원하는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고 또 고객은 회사의 미래를 확실하게 다지는 데 필요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경영진은 이 같은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사원들에게 ‘당신이 돼보고 싶은 존재가 되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휴렛패커드(HP)도 유사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인간존중, 인간중시는 우리 회사 철학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타임레코더를 폐지하고 플렉서블 타임(Flexible Time·근무시간연동제)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직원들의 작업 스케줄을 각자의 생활패턴에 맞출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회사의 경영진은 직원을 신뢰하는 것이 경영성과를 달성하는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기업이 사회공헌을 꾸준히 하면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 이런 기업의 종사자들은 자긍심이 높아지며 그것이 곧 기업 성공의 원동력이라는 믿음이 기업들로 하여금 사회공헌을 계속하게 한다.

    오늘날 기업은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기업시민정신’을 갖고 올바른 경영을 펼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을 상실한다. 기업이 지나치게 양적 팽창이나 이윤추구에만 몰두하면 사회적 저항에 부딪힌다.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근무하고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시민정신을 갖고 운영되는 기업은 종업원과 고객, 더 나아가 지역주민과 사회로부터 사랑과 존중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기업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원천이다. 아무리 기업의 역사가 오래되고 매출규모가 크다 해도 사회적 저항이 거세지면 위기에 봉착하기 쉽다. 특히 한때 잘나가는 것만 믿고 교만이나 자만에 빠지면 위험하다.

    내 골프 인생의 전환점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국가나 기업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개인에도 적용된다. 역사적 전환점을 통해 집단이나 개인은 크게 발전하기도 하고 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흥망성쇠는 바로 역사적 전환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골프에 있어 역사적 전환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골프를 처음 권유하고 머리를 얹어준 사람이 첫 전환점을 마련할 것이다. 골퍼라면 누구나 머리 얹어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나의 경우 모 대학의 C교수다. 1980년대 경영컨설턴트로 활동하던 내게 C교수는 골프의 매력을 만남과 소통,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관리, 골프와 경영의 유사성 등으로 설명하면서 입문을 권했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자, 1988년 서울 여의도 88골프연습장 티켓과 함께 자신이 쓰던 토미 아머 골프채를 넘겨주며 나를 골프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나는 건성건성 연습한 지 수개월 만에 머리를 얹으러 나갔는데, C교수와 언론인 J, 사업가 L회장이 동반했다. 이분들은 당시 대부분 (핸디캡이 9 이하인) 싱글 핸디캐퍼 수준이었던 반면, 나는 공이 제대로 맞지 않아 큰 망신을 당했다.

    어쨌든 그 뒤로도 종종 필드에 나가긴 했지만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중·고등학교 동기생이나 대학 선후배들과 친목회 수준의 골프를 하다가 현재 ㈜삼탄 인도네시아 현지 사장으로 있는 이찬의 사장으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받고 골프 수준이 크게 달라졌다. 당시 경제평론가 엄길청 교수와도 함께 어울렸는데 엄 교수 실력은 나와 비슷한 90타 전후였다. 몇 년째 이 실력을 유지하면서도 꽃구경하고 잔디 밟는 재미로 필드를 다녔는데, 이찬의 사장이 어느 날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골프를 하려거든 잘 하든가 아니면 끊는 게 좋다. 남의 문제를 풀어주겠다는 경영컨설턴트들이 골프장에서 늘 90타 전후를 치고 다닌다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골프를 하면 결국 시간낭비 아닌가?”

    이 사장은 전공이 통계학이었는데 골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까지 분석해가며 우리를 압박했고 나는 크게 공감했다. 특히 ‘한두 번 완전히 미치지 않으면 영원히 싱글이 될 수 없는 것이 골프’라는 말에 공감해 열심히 연습장에 나갔고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세 번째 전환점은 고려대 체육학과 박영민 교수와의 만남이다. 지금도 전국골프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국내 최초의 TV골프 해설가이고 골프이론 저술가이며 골프관련 단체의 리더로 활동해온 정통파 지도자다. 나는 이분과 2년 정도 주말 골프를 함께 했는데 골프 룰과 매너에 대해 깊이 있는 지도를 받았다. “룰을 모르고 골프를 하는 것은 교통법규를 모르고 운전하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말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새겨져있는 박 교수의 골프명언이다.

    2010년의 중요성

    국가도 기업도 골프도 베풀어야 운이 열린다

    동양인 최초로 PGA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머쥔 양용은 선수.

    그 후 내 골프 역사는 박학다식한 최고 지성인 이어령 교수님, 정치계뿐만 아니라 골프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김종필(JP) 전 총리 등 여러 귀인과의 만남으로 채워졌다. 한동안 유명세를 떨친 쟈니 윤씨의 골프쇼에도 초대받았던 나는 SBS 골프 채널 진행자와 J골프 진행자로 활동했고,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써오다 마침내 골프칼럼니스트 협회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골프 역사에도 몇 차례 전환점이 있었다. 그중 가장 극적인 것은 ‘맨발의 투혼’을 보여준 박세리 선수의 미국 LPGA 대회 우승이다. 당시 외환위기로 위축되어있던 국민들에게 박 선수의 ‘위기탈출’ 장면은 커다란 희망을 안겼고, 수많은 골프 꿈나무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세계 여자 골프계를 휩쓸고 있다. 최경주 선수의 맹활약과 더불어 올해는 양용은 선수가 동양인 최초로 PGA 메이저대회 우승을 하면서 새로운 금자탑을 쌓았다.

    한편 공휴일에 골프를 친 게 말썽이 되어 총리가 물러나는 등 적지 않은 공직자들이 골프로 인해 낙마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건을 통해 한국 골프는 이제 경기수준에서나 골프 산업 및 골프장 운영수준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한두 개 있던 골프장을 갈아엎고 콩밭으로 만들려던 계획을 JP가 말려 골프장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한 미군들이 주말마다 일본으로 골프 치러 나가고 외국 손님이 와도 갈 곳이 술집밖에 없으면 곤란합니다.” “골프장을 콩밭으로 만들기는 쉽지만 다시 인허가를 통해 골프장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멀리 내다보면 골프장을 국민 여가 산업으로 키워야 합니다.” 군인들의 등에 떠밀려 JP가 당시 박정희 의장에게 건의를 했다고 한다. JP와 라운드하면서 들은 얘기다. 박정희 의장의 답변은 이랬다고 한다. “임자가 알아서 해봐!” 이렇게 살아남은 골프장들이 대한민국 산업발전 그리고 정치변천과 함께 골프강국의 모태가 되었다.

    2010년은 한일합방 100주년인 동시에 6·25전쟁 60주년의 해다. 밖으로는 독일 통일 20주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60년 만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했다. 내년에는 유엔 및 유엔 참전 16개국에 감사를 표하는 행사를 우리나라와 해당 국가에서 의미 있게 진행해야 한다. ‘우리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실질적 도움을 제공하면서 우호적 관계를 한 차원 높여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키고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 현대사는 자랑스러운 성공의 역사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시기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새마을 운동 정신,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정보문화 선진화 정신이 지금까지의 성공을 이끌어냈듯 이제는 ‘선진국을 향해 새롭게 뛰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2010년은 ‘10주기’ 단위로 끊어지는 역사적 이벤트가 많은 해다. 특히 G20 정상회담의 새로운 출범에 맞춰 개최국으로 기여하는 의미 있는 해다. 2010년의 주요 이벤트를 묶어 국민통합과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그동안 세계는 선진국 7개 국가 모임인 G7을 중심으로 글로벌 의제를 논의해왔다. 그러다 규모가 커지고 복잡 다양해진 글로벌 경제와 국제문제를 다루기 위해 주요 20개국이 참가하는 G20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G20 재무장관회의로 시작되었지만 내년부터는 G20 정상회의로 격상되면서 G7에서 G20으로 역사가 바뀌는 것이다. 이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나라가 개최국이자 의장국이 된 것이다. 이는 올림픽 개최나 월드컵 개최를 뛰어넘는 엄청난 국가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제 2010년이 다가오고 있다. ‘뉴 밀레니엄’ 못지않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해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국운, 사운, 가운, 골운, 뻗쳐라 팍팍!

    국가도 기업도 역사고 개인도 역사가 있다. 또한 이들의 역사 속에는 흥망성쇠의 요소가 들어있다. 골프에 입문했으면 그 사람에게도 골프 역사가 있다. 머리 얹는 날부터 시작해 ‘파백(破百·100타 이하로 진입)’의 기쁨, 최초의 싱글 기록, 이글, 홀인원, 이븐파, 에이지 슛(자기 나이와 같거나 그보다 적은 타수를 치는 것) 등이 있고 각종 모임에서 수상자가 되기도 한다. 국내 한 재벌가의 딸과 전직 고위 공무원의 아들은 부모들의 골프모임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했다.

    국가도 기업도 골프도 베풀어야 운이 열린다
    윤은기

    약력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경영학 박사, 한국골프칼럼 니스트협회 회장

    저서: ‘時테크’ ‘스마트 경영’ ‘윤은기의 골프마인드, 경영마인드’ 외 다수


    이제 저무는 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해 나라에도 기업에도 가정에도 필드에도 운이 뻗치는 역사가 일어나면 좋겠다. 나라에는 국운(國運)이 있고 회사에는 사운(社運)이 있으며 가정에는 가운(家運)이 있다. 이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 필드에는 무엇이 있을까? 골운(골프+행운)이 있어야 한다.

    홀인원도 좋은 만남도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운을 좋게 하려면 무엇보다 배려하고 베풀어야 한다. 국덕(國德)을 베풀면 국운이 열리고 사덕(社德)을 베풀면 사운이 열린다. 필드에서도 덕을 베풀면 운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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