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기후변화로 생존 위협받는 메콩 삼각주 구하기 작전

  • 구자홍│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

    입력2009-12-08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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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0년 동안 베트남의 평균온도는 0.7℃ 높아졌고, 2050년까지 2℃, 2100년까지 3℃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균 바다 수위 역시 현재까지 20cm 상승했고, 2100년이면 1m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경기도 두 배가 넘는 면적에 3모작으로 대규모 경작이 이뤄지고, 1700만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는 베트남 남부 메콩 삼각주는 해수면과 표고차가 크지 않아 해수면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기후변화에 따른 세계 5대 피해대상국으로 꼽히고 있다.
    기후변화로 생존 위협받는 메콩 삼각주 구하기 작전
    베트남 호치민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가다 착륙을 20여 분 앞둔 시점에 창밖을 내다보면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 바둑판 모양으로 잘 정리된 메콩 삼각주가 보인다. 바다로 흐르는 강에서는 연신 황토물이 쏟아져 내려와 강과 맞닿아 있는 바다 부분이 부채꼴 모양으로 누렇게 물들어 있다.

    여기가 바로 베트남 최대 곡창지대인 메콩 삼각주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양국에 걸쳐 있는 메콩 삼각주의 최대 너비는 300㎞로, 해마다 60㎝씩 바다 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우기 때마다 메콩 강이 범람했지만, 최근 범람에 대비한 시설이 확충되면서 경작지가 늘어 곡창지대를 이루게 됐다. 메콩 삼각주를 끼고 있는 베트남 남부 지역은 평야지대다. 베트남 남부 중심에 위치한 베트남 최대 도시 호치민 역시 평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호치민에 68층 높이로 건설되고 있는 Bitexco Financial Tower 29층에 올라 호치민 시내를 내려다보면 호치민과 그 주변 지역이 얼마나 편평한 땅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구릉이나 언덕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평선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전국 어디에 가든 산에 가로막혀 지평선을 거의 볼 수 없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호치민에서 Bitexco Financial Tower를 건설하고 있는 현대건설 곽임구 현장소장은 “호치민에서부터 메콩 삼각주까지 끝없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며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에 힘입어 베트남 남부 지역은 세계적인 곡창지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호치민 시내에는 메콩 강 지류인 사이공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이공 강을 따라 동남쪽으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내려가면 붕따우가 나온다. 호치민에서 붕따우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만날 수 있다. 호치민에서 붕따우로 향하는 길은 호치민을 중심으로 우측 도로를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가도록 돼 있다.



    메콩 삼각주로 향하는 길은 호치민 좌측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호치민 인근 신도시인 푸미흥을 지나 1A 국도를 따라 동남쪽으로 2시간 정도 내려가다보면 메콩 삼각주 초입에 위치한 미토에 도착한다. 띠엔 쟝(Tien Giang)성의 작은 수도인 미토는 메콩 삼각주에서 호치민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수상가옥의 도시 미토

    미토는 베트남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메콩 삼각주 투어를 위해 꼭 들르는 곳이다. 메콩 강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수상가옥과 메콩 강 복판에 자리 잡은 다섯 개의 섬을 도는 투어가 가장 인기가 높다.

    미토에서 가이드를 담당한 롼(Ms. Loan)은 “메콩 강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강”이라며 “저 높은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남중국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관통해 이곳까지 흐른다”고 했다.

    미토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70km를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캄보디아에 닿고, 50km를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남중국해로 이어진다. 메콩 강은 강이라기보다는 흙탕물의 바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광대했다.

    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나가보니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가에 나무기둥을 세워 얼기설기 지어놓은 수상가옥들이 강을 따라 수백 채 줄지어 있고, 가옥마다 빨래가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집집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듯했다. 롼은 수상가옥은 땅을 소유하지 못한 주민들이 임시방편의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놓은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어요. 하나는 집이 없어 1년 365일 수상가옥에 살아야만 하는 가난한 주민들이고, 다른 하나는 수상가옥과 농지에 있는 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수상가옥에 사는 주민들은 주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간다고 한다. 그러나 태풍으로 큰 비가 내려 홍수가 나면 이들 역시 집을 떠나 잠시 뭍으로 피해야 한다.

    “과거에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별됐는데, 요즘은 기상이변으로 (건기와 우기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게 됐어요. 그래서 수상가옥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답니다.”

    호치민에서 기자와 동행하며 통역을 맡아준 흐엉이 거들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메콩 삼각주에 거주하는 농민들은 홍수에 대한 염려가 크다고 해요. 해수면이 높아지고, 또 강우량이 많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홍수나 태풍 피해가 더 커졌거든요. 과학자들은 메콩 강 수면이 2100년이면 1m까지 높아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평지 4만㎢ 가 침수되고, 메콩 삼각주에 거주하는 인구의 10%가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답니다.”

    메콩 삼각주에 거주하는 인구는 2009년 4월을 기준으로 1700만명이 조금 넘는다. 메콩 강 해수면이 올라가면 이들 가운데 170만명가량이 집을 잃거나 농경지를 잃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이들과 연관돼 상업 등에 종사하는 2차 피해자까지 감안하면 그 피해 규모는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 있다.

    메콩 강 수위는 보통 5월 말부터 높아지기 시작해 9월 말에는 최고 수위에 다다른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태풍이 올라오는 시기가 점점 늦어져 10월과 11월에도 태풍이 올라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취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11월 초 뉴스를 통해 베트남에 태풍이 덮쳐 많은 인명 피해가 나고, 이재민이 속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11월부터는 건기에 들어간다”고 했던 롼의 설명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이제는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셈이다.

    벤 째의 기후변화 대책

    미토 남쪽 메콩 강 어귀에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벤 째(Ben Tre)성은 코코넛 과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벤 째성은 최근 기후변화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지금도 바닷물 침입과 가뭄으로 인해 예전의 아름다운 풍경을 유지하기 힘들게 됐다고 한다.

    흐엉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5년 전부터 벤 째성과 메콩 삼각주 지역에 자연 재앙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바닷물 침입이나 가뭄, 태풍과 열대저기압 등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2005년에는 바닷물이 메콩 삼각주에 침입해 토질이 나빠지면서 과일 재배에 큰 타격을 받았고, 2006년에는 태풍 두리안의 영향으로 큰 해를 입었다고 한다.

    벤 째성 인민위원회(우리나라의 시청 격)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해산물 생산에 기술을 접목시키는 한편 관개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또 해풍에 견딜 수 있도록 숲을 가꾸고, 태풍과 홍수 방재시스템도 정비하고 있다.

    홍수와 태풍으로 인해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지하수를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 또 주민들에게는 기후변화 현상과 피해 방지 요령을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벤 째성 차원의 이 같은 자구책만으로는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일개 성 단위에서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침수에 취약한 호치민 시티

    기후변화로 생존 위협받는 메콩 삼각주 구하기 작전

    풍요의 땅으로 여겨졌던 메콩 삼각주 지역이 기후변화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메콩 삼각주의 침수 가능성을 예고한 보고서가 최근 잇따라 발표됐다. 7월16일자 베트남 일간신문 투오이 쩨는 “베트남 호치민시 77% 40년 뒤 침수된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내보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최근 보고서를 근거로 기후변화에 따른 잦은 태풍과 해수면 26cm 상승 등으로 2050년까지 호치민시의 77%가 침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호치민시의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ADB 산하 국제환경관리센터 소속 제레미 C. 리드 연구원은 “호치민시는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침수를 당한 적이 있는데다 기후변화로 예전보다 물난리 발생 건수가 훨씬 많아졌고, 피해 강도면에서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호치민시 대부분이 침수취약지역이라는 특성도 이런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전문가들은 메콩 강 수위가 65cm 오르면 호치민시 전체 면적의 12.8% 가 침수되고 75cm 오르면 19%가 잠기며, 1m 높아지면 37.8%가 침수될 것으로 예측했다.

    메콩 삼각주 지역의 쌀 생산량은 베트남 전체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태국에 이어 쌀 수출국 2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메콩 삼각주의 대규모 쌀 경작 덕이었다. 또 수산물과 과일 생산량도 각각 60%와 80%를 차지할 만큼 국가경제에 중요한 버팀목이다.

    풍요의 땅으로 여겨졌던 메콩 삼각주 지역이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으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공장을 많이 지어 매연을 내보낸 것도 아니고, 자동차를 많이 굴려 배출가스로 지구온난화에 일조한 것도 아닌데, 베트남의 메콩 삼각주가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베트남이 기후변화와 관련해 국제사회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뚜렷한 오염원을 배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생존 위협받는 메콩 삼각주 구하기 작전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면 할수록 메콩 삼각주에 거주하는 베트남 국민의 삶의 터전은 더욱 공고히 지켜질 수 있다.

    기후변화협약과 교토의정서

    국제사회는 공조를 통해 베트남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나름의 대책을 강구해왔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기본협약(UNFCCC)과 교토의정서를 채택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1988년 유엔환경위원회와 세계기상기구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를 공동 설치해 활동을 시작했고,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제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3년 12월 47번째로 가입했고, 2009년 3월 현재 192개국이 가입했다.

    기후변화협약은 모든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 보장을 기본원칙으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과 부담을 명시하고 개발도상국의 특수사정을 배려하고 있다. 자본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베트남과 같은 개도국의 경우 자국 부담만으로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국제사회 차원의 원조 등을 명시해놓고 있다.

    베트남 정부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최대 곡창지대인 메콩 삼각주의 상당부분이 물에 잠겨 대재앙이 오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액션 플랜을 마련해 발표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준비단계를 거쳐,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실행단계, 2015년 이후 발전단계 등 3단계로 구분된다.

    기후변화협약이 일반적인 원칙을 담은 ‘법’에 해당한다면,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구속력을 부여한 ‘시행령’과 같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의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량 달성을 위해 공동이행제도, 청정개발체제, 배출권거래제 등을 포함한 교토메커니즘을 도입했다. 즉 선진국이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자국 내에서만 모두 이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 배출권의 거래나 공동사업을 통한 감축분의 이전 등을 인정한 것이다.

    1994년 11월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베트남은 2002년 9월 교토의정서를 비준해 기후변화협약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정부는 청정개발체제 활동을 통해 환경보호는 물론 선진국으로부터 추가적인 투자와 기술이전을 받아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CDM 프로젝트 급증 예상

    기후변화에 따른 최대 피해국으로 유엔의 적극적인 청정개발체제 지원대상국 가운데 하나로 지정된 베트남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마련한 3단계 프로그램 실행예산 1억3500만달러 가운데 외자에서 50%를 조달할 계획을 갖고 있다. 나머지는 자체 예산 40%와 민간예산 10%로 조달할 예정이다. 기후변화를 매개로 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코트라가 작성한 ‘동남아 청정개발체제(CDM) 시장현황과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3월 현재 베트남에는 10여 개의 CDM 프로젝트 개발기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에 등록된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3건에 불과하지만, 베트남 국내에서 승인된 건수가 180건에 달해 향후 기후변화협약에 등록되는 프로젝트가 급증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기후변화협약에 등록된 3건의 프로젝트는 일본과 영국 컨소시엄, 일본, 베트남 단독 추진 각각 1건씩이다. 투자 분야는 원유탐사지역 가스회수와 매립지 가스, 수력발전 등이다.

    한국 기업들도 기술경쟁력이 있는 발전소 건설과 에너지 효율화, 절전분야 프로젝트 등에 특화해 베트남에서 추진하고 있는 CDM 프로젝트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면 할수록 메콩 삼각주에 거주하는 베트남 국민의 삶의 터전은 더욱 공고히 지켜질 수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미토 주민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수장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분발이 촉구되는 시점이다.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과정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 상생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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