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봄이 왔다고 누구나 봄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봄이 찾아들지 못하면 봄은 그저 풍경일 뿐. 천안함 사고로 수몰된 장병들의 가족 친지 연인 동료들의 마음에도 봄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애인, 내 전우를 잃은 이들의 마음에 봄이 들어앉을 자리가 있겠는가. 또 그들을 구하려다 희생된 이들 가족에게 화사한 봄날은 외려 잔인하지 않겠는가.
천안함의 꼬리와 머리 부분이 인양되고 한국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등 5개국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조사가 이뤄지면 천안함이 왜 두 동강이 나 침몰했는지 원인이 밝혀질 것이다. 물론 밝혀진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일 것이고, 끝내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익명의 정부 고위관계자도, 군 관계자도 더는 설(說)을 흘려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 역시 책임질 수 없는 발언을 중지해야 한다. 언론도 특종이랍시고 ‘소설’을 쓰면 안 된다. 더 이상의 혼란은 나라꼴만 우습게 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와 다르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과학적이고 아주 치밀한, 객관적 조사결과를 내야 한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선진국 전문가와 유엔까지 합심해서 조사를 철저하게 하되, 어느 누구도 조사결과를 부인할 수 없도록 조사하고, 정부는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죄지은 사람들이 인정 안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죄지은 사람들’이 북한을 상정한 표현인가? 청와대 측은 “사고발생의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심증을 갖고 한 말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태영 국방장관의 국회 답변이 북한의 어뢰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비치자 ‘VIP 메모’로 북한 연계설에 제동을 건 것(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했든, 청와대비서관이 대통령 뜻을 헤아려 메모를 보냈든)을 보면 청와대의 해명을 의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런 이 대통령을 두고 보수우파 측은 못마땅한 기색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에 해외전문가를 참여시키고 민간 인사를 합동조사단 책임자로 앉히라고 지시하자 성명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더욱 큰 혼선을 빚을 수 있고, 우리 군의 사기를 저하시킴은 물론 군사기밀을 무차별적으로 노출시켜 안보에 심각한 위해(危害)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갖가지 루머와 국민의 불신은 군의 조사 결함 때문이 아니라 정부기관 간의 시각차가 근본원인”이라며 “침몰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익명으로 어떤 예단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북의 연계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고 예단하는 자가당착적 입장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한 우익인사는 “(북한 개입설에 신중한 이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진보 쪽의 누군가는 “MB가 이상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상하긴 뭐가 이상 하냐”고 했다. ‘이상하다’는 쪽은 당연히 보수우파 쪽에 설 대통령이 북한 연계설에 신중한 것이 그렇다는 것이고, ‘뭐가 이상하냐’고 하는 쪽은 대통령 말 다르고, 국방장관 말 다르니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것이다. 나쁘진 않지만 석연찮다는 얘기다.
사고 이후 보수 쪽은 모든 정황을 북한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데 맞춰 해석하고, 진보 쪽은 북한은 관계없을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는 이 대통령 말대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조사결과’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따라서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가능성은 열어놓되 한쪽으로 몰아가는 건 위험하다. 그 점에서 현재로서는 이 대통령의 신중한 자세가 옳다고 본다. 그를 지지하든, 지지 안 하든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지도자의 합리적 자세는 존중되어야 한다. 모처럼 중심을 잡은 대통령에게 ‘이상하다’고 돌려 말하는 것도, ‘우리 편이 아니다’라며 목청을 높이는 것도 옳지 않다. 사고원인이 밝혀진 이후의 조치와 그것에 대한 평가는 다음 문제다.
1971년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 국방부의 비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입수해 연재기사로 게재했다. 이에 미국 법무부는 연방 제1심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서류의 공표를 금지하는 임시명령을 받아내 기사연재를 중지시켰다. 국가기밀에 대한 폭로가 미국의 안보이익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워싱턴포스트’(이 신문도 보고서를 입수하고 있었다)와 함께 연합해 법원의 보도금지명령에 대항했고, 결국 연방대법원은 6대 3의 판결로 두 신문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민의 알 권리가 국가기밀에 우선한다”는 게 판결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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