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품질로 세계 양식기 시장 석권, 나눔과 베풂 경영으로 베트남에 감동 선사

유진 크레베스

  • 베트남 호치민=글·사진 구자홍│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0-10-29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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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의 양식기 브랜드, 독일의 더블유엠에프(WMF). 쌍둥이칼로 유명한 헹켈스(Zwilling J.A. Henckels).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적 유통업체 이케아(IKEA). 백악관에 식기를 공급하는 미국 전통의 명문 도자기 및 양식기 브랜드 레녹스(LENOX). 그리고 실리트(Silit)와 아우어한(AUERHAHN), 프랑스 쿠존(COUZON)과 이탈리아 삼보넷(sambonet).
    • 이들 브랜드에 양식기를 공급하는 회사가 바로 유진 크레베스다. 유진 크레베스는 세계 최고 양식기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가방과 벨트 등 명품 제품에 들어가는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틀을 마련했다.
    품질로 세계 양식기 시장 석권, 나눔과 베풂 경영으로 베트남에 감동 선사
    베트남의 경제수도 호치민시 중심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20여 분을 이동하면 린쭝 수출자유구역이 나온다. 세계 유수의 양식기 명가에 제품을 공급하는 유진 크레베스 베트남 공장이 여기 있다.

    10월1일, 린쭝 수출자유구역에 들어서자 베트남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길게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인 운전기사는 대만 업체가 운영하는 섬유공장에만 2만명 이상의 베트남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끝없이 이어진 노동자의 행렬에서 중국에 이어 베트남이 새롭게 세계의 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얘기가 실감났다.

    유진 크레베스는 린쭝 수출자유구역에 모두 세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식기를 제조하는 1공장과 2공장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고, 양식기 가운데서도 수요가 가장 많은 나이프 생산라인과 명품 브랜드 액세서리를 제조하는 3공장은 1, 2공장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3공장은 2008년에 인수했다.

    양식기 종주국에서 인정한 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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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공장의 위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유진 크레베스의 사세는 날로 확장하고 있다. 양식기 분야 세계 명품 브랜드로부터 인정받은 데 이어 명품 브랜드에 들어가는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상징이 바로 3공장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 양식기는 다소 생소할지 모른다. 서양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을 때나 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 그렇지만 서양인은 최소 하루 세 번 이상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 바로 양식기다. 이 때문에 양식기의 주 수요처는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음식 문화권이다. 양식기의 종주국 독일은 가장 큰 양식기 시장이다. 인구도 많고, 무엇보다 좋은 양식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독일의 고급 양식기 브랜드는 대부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더블유엠에프(WMF)는 15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쌍둥이칼로 친숙한 헹켈스는 28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서 깊은 회사다. 두 회사 모두 독일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쌓은 이들 회사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하자, 자신들이 직접 생산한 것과 같은 수준의 최고급 제품을 생산해줄 회사를 찾았고, 유진 크레베스를 파트너로 택했다. 유진 크레베스가 생산하는 양식기는 곧 세계 최고라는 말과 동의어인 셈이다.

    유진 크레베스는 연간 더블유엠에프에 1000만달러, 이케아에 800만달러, 헹켈스에 500만달러, 미국 레녹스에 150만달러어치의 양식기를 공급하고 있다. 단순히 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인 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물량은 디자인과 제품을 자체 개발해 공급하는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자개발생산) 방식이다. 유진 크레베스의 제품 개발 능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것이다.

    첨단과학의 집합체, 양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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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크레베스가 생산하는 양식기 제품들.

    1공장 1층에 마련된 쇼룸에는 빨간 벨벳을 배경으로 은은한 조명을 받은 양식기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진열돼 있었다. ‘아까워서 어떻게 저 양식기로 음식을 먹을까’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고급스럽다. 문대기 사장은 “유진 크레베스의 제품은 품질과 기능은 물론 디자인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 제작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쇼룸이 위치한 1공장을 나와 2공장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금형실. 특수강에 만들고자 하는 디자인의 본을 뜨는 과정이었다. 디자이너가 컴퓨터를 이용해 디자인을 마치면 프로그램에 따라 0.00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CNC 밀링머신이 깎아낸다. 금형제작 과정에서 첨단기술과 장인정신이 결합된 유진 크레베스의 기술력이 집대성된다. 그동안 제작한 금형을 모아놓은 금형 창고는 마치 책을 종류별로 분류해놓은 도서관을 연상시켰다.

    수백 종의 금형을 보유하고 있고, 새로운 금형을 바로 제작해낼 수 있는 유진 크레베스는 고객이 어떤 제품을 주문해도 빠른 시간 내에 생산해낼 수 있다.

    밀링머신에서 금형이 제작돼 나오면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을 한다. 얼마나 매끄러운 표면을 유지하느냐가 제품의 완성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베트남 여성 노동자들이 각기 하나씩 갓 제작돼 나온 금형을 앞에 놓고 아이스크림 막대와 같이 생긴 도구로 표면을 밀고 또 밀었다. 모든 금형은 이처럼 최소한 1시간 이상 표면을 다듬는 작업을 한다. 그래야만 세계 최고 수준의 흠결 없는 매끄러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금형 표면작업이 끝나면 이제 절삭기에 금형을 설치하고, 네모반듯하게 잘라놓은 판을 절삭기에 넣어 숟가락과 포크 모양으로 잘라낸다. 처음에는 손잡이 부분만 완성된 가제품이 나온다. 이 가제품을 다시 기계에 넣어 숟가락 모양과 포크 모양으로 절삭한다. 그 다음 압력을 가해 안이 오목하게 파인 숟가락 고유 모양으로 완성한다. 네 개의 살로 이뤄진 포크는 앞뒤를 먼저 잘라내 좌우 살을 만든 뒤 다시 가운데를 잘라내 포크 모양을 완성한다. 이 과정은 모두 사람 손으로 이뤄진다. 절삭기의 정확한 위치에 숟가락과 포크 가제품을 집어넣어 균일한 제품을 뽑아내는 숙련도가 놀라웠다.

    “절삭기마다 적절한 위치 기준이 표시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품을 하나씩 집어넣어 프레스로 누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제품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의 숙련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계 최고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기술력과 함께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대기 사장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의 능력을 자랑했다.

    치보 납품, 그리고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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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기 제조 공정마다 불량품을 골라내는 검수요원이 배치돼 있다.

    유진 크레베스가 베트남에 진출한 것은 1996년.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숙련되지 않은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기계 작동법을 일일이 가르쳐 지금의 제품 생산 능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할 만했다. 1998년부터 공장을 본격 가동했지만, 한동안 주문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유진 크레베스에 선뜻 제품 공급을 맡기는 바이어가 없었기 때문. 1년 이상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하고 발을 구르던 유진 크레베스에 첫 대량 주문이 들어왔다. 그러나 바이어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고심 끝에 10달러 품질의 제품을 2달러에 공급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첫 대량 공급은 성공적이었다. 제품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유럽 전역에 유통망을 확보한 치보(Tchibo)로부터 주문을 따냈다. 유럽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치보에 제품을 납품한다는 것은 곧 품질의 우수성을 공인받은 것과 다름없다. 90일 만에 300만개를 치보에 납품하면서 유진 크레베스는 탄탄대로의 길에 진입한다. 그러나 공장이 본격 가동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 화재라는 시련이 닥쳤다.

    “당시 공장에는 변변한 소방시설이 없었어요. 눈앞이 캄캄한 심정으로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베트남 직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물동이를 날라 불을 끄고 있더라고요. 그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화재 이후 ‘더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더 좋은 품질, 고급 제품 개발에 매진한 결과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장 화재는 오히려 노사가 일치단결해 더 좋은 제품 개발에 매달리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魂이 담긴 제조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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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크레베스는 명품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매주 월요일, 문대기 사장과 간부들은 일찌감치 정문에 도열해 출근하는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한 주를 시작한다. 노사가 서로 얼굴도 익히고 새로운 다짐으로 한 주를 시작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혼연일체’는 생각이나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의식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꾸준한 실천이 뒷받침될 때 얻을 수 있는 관계의 최고 경지가 바로 혼연일체다. 서로 손을 맞잡으며 한 주를 시작하는 출근 전통을 이어오면서 유진 크레베스는 그 어떤 조직보다 강한 결속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불량률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고급 브랜드일수록 우리가 납품한 제품을 일일이 검수합니다. 자신들이 요구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되돌려 보내요. 결국 공정마다 검수요원을 배치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생산과 직접 관련 없는 인력을 더 투입하게 돼 비용은 늘었지만, 불량률을 낮추는 데는 효과적이었습니다.”

    문영기 회장 인터뷰

    “감동이 있는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다”


    품질로 세계 양식기 시장 석권, 나눔과 베풂 경영으로 베트남에 감동 선사
    경제경영 관련 책들은 비즈니스 세계를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과 전술을 총동원해야만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유진 크레베스의 기업 활동은 정반대다. 비즈니스라는 말보다는 사회활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유진 크레베스가 양식기 분야 세계 최고 생산기업으로 올라서는 동안 베트남에서 펼쳐온 활동 하나하나에는 울림이 있다.

    10월7일. 서울 노원구 유진 크레베스 본사에서 만난 문영기 회장은 기업을 대표하는 회장이라기보다 목사나 신부가 더 어울릴 법한 외모였다. 외모뿐 아니라 조용조용한 말투며, 그가 그동안 베트남에서 펼쳐온 활동은 실제로 성직자 이상의 박애와 봉사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많다.

    -유진 크레베스는 양식기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과 극빈층 무료진료 등 어려운 베트남 사람을 위해 최고 수준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더군요.

    “해외에 투자한 기업은 해당 국가와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현지인에게 회사 이미지를 심게 됩니다. 나아가 국가에 대한 이미지도 만들어지지요. 베트남에서 공장을 운영하면서 현지인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10여 년 전에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시작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어린이가 지원받게 됐고 이제는 민간외교 차원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대사관 등 관련 기관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호응해줍니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습니까.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는 수술만 하면 정상인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수술받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베트남 어린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도울 방법이 없을까 찾던 중에 부천 세종병원과 협약을 맺어 한국에 데려와 수술을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됐지요.”

    유진 크레베스가 벌인 베트남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 사업으로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베트남 어린이가 새 생명을 얻었다. 수술을 받고 돌아간 뒤에는 유진 크레베스 베트남 직원과 기관 등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단다. 한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정성이 감동적이었다.

    선의(善意)를 갖고 시작한 나눔과 사랑경영은 더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문영기 회장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고, 베트남 TV와 언론 매체가 유진 크레베스의 활동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유진 크레베스는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을 위한 기업’이란 무형의 자산을 얻었다.

    -심장병 어린이 수술뿐 아니라 극빈층을 위한 무료진료 사업도 펼친다면서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극빈층 진료를 위해 하노이에 선의적십자병원을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연간 1500명이 무료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호치민에 공장이, 하노이에 병원이 있다면 베트남 중부도시 다낭에는 유진 크레베스가 지원하는 태권도체육관이 있다. 다낭시 체육국 요청으로 2005년에 태권도체육관을 완공해 운영해오고 있는데, 2006년부터는 매년‘다낭 선의 전국 태권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처럼 문 회장이 베트남에서 펼쳐온 사회공헌 사업은 끝이 없다. 문 회장의 나눔과 사랑경영은 그가 갖고 있는 소신과 철학에서 비롯됐다.

    “비즈니스는 사고파는 것이지만, 기업 활동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회사가 직원과 사회에 좋은 것을 많이 주면 그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도 커지고 더 노력하게 돼 회사는 더 큰 보상을 받습니다. 사회공헌활동이 당장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직원과 경영진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가 있습니다. 직원은 자부심을 갖고 회사가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고파는 비즈니스로는 10%의 이익을 내기 어렵지만, 주고받는 기업 활동을 통해서는 하나를 주고 5배가 될지, 100배가 될지 가늠키 어려울 만큼 값으로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손익계산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마음과 가슴으로 일해야 책임 있는 기업이란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진 크레베스가 만드는 제품에 혼(魂)을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제품, 감동 스토리가 있는 회사로 만들고자 합니다.”

    유진 크레베스가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돕고,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에 태권도체육관을 짓는 등 나눔과 사랑경영을 꾸준히 펼치자, 예상치 않은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다낭시가 체육관 옆에 있는 시 보유 유휴지를 개발해 사업을 해보라는 제안을 해온 것.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놀랐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라’는 뜻이 담긴 제안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노인을 위한 실버타운으로 개발하는 방안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일 복합타운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유진 크레베스는 이곳에 복합타운을 짓기 위해 국내 건설업체와 손잡고 설계까지 마쳤다. 베트남과 한국의 경제사정을 감안해 착공 시점은 조금 늦춘 상태다.

    유진 크레베스 본사가 위치한 노원구 그레이스빌딩 9, 10, 11층에는 노인전문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심각해지는 노인 문제를 가정에만 맡겨두지 않고 사회가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는 사회공헌활동 가운데 일부다.

    문 회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노인들이 저녁식사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노라니 문득 ‘유진 크레베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하는 회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노인들이 고통 없이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또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좋은 도구를 만드는 회사가 바로 유진 크레베스 아닌가.


    품질로 세계 양식기 시장 석권, 나눔과 베풂 경영으로 베트남에 감동 선사

    양식기 제조는 제조 공정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절삭과 연마, 도금 과정마다 갓 생산된 제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직원이 배치돼 있었다. 불량품을 골라내는 임무를 띠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때그때 공정마다 불량품을 골라내면서 완제품 불량률은 현저히 떨어졌다.

    절삭과 압착공정을 통해 숟가락과 포크가 제 모양을 갖추면 이제 연마공정을 통해 표면을 매끄럽게 한다. 다음 공정은 도금이다. 숟가락과 포크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드는 핵심공정이다. 도금까지 마친 제품은 건조 과정을 거쳐 포장하기 전에 불량품이 없는지 다시 한번 검사한 뒤 포장을 한다.

    3공장 2층에서는 손잡이 부분의 속이 비어 있는 나이프 생산이 한창이었다. 위 아래로 절반씩 만들어진 조각을 자동납땜기로 한데 붙이고 여기에 칼날을 붙여 연마와 도금을 하는 다소 복잡한 과정이었다.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흠결이 없어야만 완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단다. 양식기 제조는 과정마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유진 크레베스가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는 양식기는 하루 25만개, 연간 8000만개에 달한다. 모든 제품은 유럽과 미국 등지에 100% 수출된다. 양식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은 유진 크레베스는 여세를 몰아 명품 액세서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유진 크레베스가 미국의 C사에 제품을 납품하게 된 일화는 어느 분야에서든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 다른 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액세서리 제조 경험이 전혀 없는 문대기 사장은 최고급 양식기 샘플을 들고 명품 브랜드 관계자를 찾아가 설득했다고 한다. “이 정도 양식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력이면, 명품에 들어가는 액세서리 제조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예술품과도 같은 고급 양식기를 요모조모 살펴본 이들은 유진 크레베스의 실력을 인정했고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품질로 세계 양식기 시장 석권, 나눔과 베풂 경영으로 베트남에 감동 선사
    “액세서리 제조 공정은 양식기 공정에 비해 10분의 1 수준입니다. 그만큼 생산성이 높고 품질관리에도 유리합니다. 우리는 도금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명품 액세서리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레베스는 ‘Creative Investment’의 합성어로 앞글자 C를 K로 바꾸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창조적 투자’ 정도. 불모지와도 같던 베트남에서 양식기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유진 크레베스는 이제 명품 액세서리 분야에도 창조적 투자를 시작했다. 유진 크레베스가 명품 양식기 대명사에 이어 명품 액세서리 대명사로 다시 한번 세계 시장을 제패할 날도 멀지 않았다.

    유진 크레베스 사회공헌활동의 원천, 한국선의복지재단

    유진 크레베스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는 배경에는 문영기 회장과 문대기 사장의 모친, 여주기 이사장이 운영하는 한국선의복지재단(이하 선의재단)이 있다.

    선의재단은 따뜻한 마음과 건강, 지식, 기술, 물질 등 저마다 참가하기 쉬운 방법의 선의(善意)를 예탁받아 국내와 북한, 베트남 등지의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선의를 전하겠다는 취지로 1982년 세워졌다.

    여주기 이사장과 여옥기, 조경옥 이사 등 뜻을 같이하는 세 사람이 모여 ‘각 사람의 선의를 예탁받아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자’는 취지에서 선의은행을 출범시킨 것이 모태다. 1984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받았고, 어려운 이웃을 가까이에서 돕기 위해 1987년 선의관악 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이후 선의의 물결은 전국으로 퍼져 경주지회와 경남지회, 대구지회 등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2001년부터는 유진 크레베스와 함께 베트남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초청 무료 수술 사업을 전개해왔고, 2002년에는 미국에 선의복지재단도 세웠다.

    2005년에는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 교류를 위해 베트남 다낭시에 청소년을 위한 태권도 체육관을 준공하고, 하노이시 외곽 빈민 지역인 석선현에는 무료 진료를 위한 하노이 선의 적십자 병원을 열었다. 선의재단은 노령 인구 증가에 따른 노인전문병원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2005년 서울 노원구에 선의노인전문병원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선의재단의 설립 취지는 다음 한 문장에 오롯이 담겨 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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