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역사와 시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유대인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입력2010-11-03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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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시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유대인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br>박재선 지음, 해누리, 551쪽, 1만5000원

    예수, 콜럼버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이들의 공통점은? 인류 역사에서 뭔가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들이다.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공통 요소다.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세계 투자계의 ‘큰손’ 조지 소로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현존 세계 질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도 유대인이다.

    ‘0.25%=25%’라는 야릇한 등식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0.25%는 세계 인구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25%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유대인의 비율. 노벨상 수상자 4명 중 1명이 유대인이라니 놀라운 숫자 아닌가.

    어린 자녀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막 돌아온 광경을 살펴보자. 한국 엄마는 대개 “오늘 뭘 배웠니?”라 묻는다. 유대인 엄마는 대체로 “오늘 선생님께 뭘 물었니?”라 질문한다. 자녀의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창의성, 통찰력은 인간 지력(知力)의 최고봉이다. 유대인은 자녀를 어릴 때부터 이렇게 키워 노벨상이라는 최고의 지적(知的) 열매를 따게 한다.

    필자가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이 나라에서 유독 유대인과 고려인(한국인)이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대인과 고려인의 박사학위 취득자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인구는 많지 않지만 강한 민족, 오랜 고난을 이기고 생존한 민족…. 유대인을 묘사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한국인과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은 유대인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 정체성은 종교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의 저자 박재선은 유대인 문제에 관한 최고급 전문가다. 이미 ‘세계사의 주역 유대인’(1999년), ‘제2의 가나안 유대인의 미국’(2002년) 등의 저서를 내 유대인에 대한 전문성을 알린 바 있다.

    외교관 출신인 저자는 외교부에서 프랑스어에 가장 능통한 외교관으로 손꼽혔다. 여러 정상회담에서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주불(駐佛) 한국대사관 공사, 주 유네스코대표부 상주 대표, 외교부 구주국장, 주 세네갈 대사, 주 보스턴 총영사, 주 모로코 대사 등을 역임했다.

    바쁜 외교관 생활에서도 저자는 유대인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힘이 지배하는 냉엄한 외교무대에서 유대인의 실상을 모르고는 외교활동의 이면을 파헤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사(正史)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 세계 비밀결사체의 야사(野史)를 추적하는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 저서는 그의 오랜 학구적 열정의 산물이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에서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렸다는 점에서 독자는 편안하게 유대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유대인의 정체성은 민족이 아닌 종교라고 파악한다. 혈통이 유대인이라도 유대교를 믿지 않으면 유대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한다. 유대인이냐 아니냐 최종 판단은 유대교 성직자인 랍비의 몫이란다. 유대교는 포교를 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유대인이라는 선민(選民)만이 믿는 종교이므로 굳이 이교도에게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배타적인 특성 때문에 유대인은 유럽 기독교에 의해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섹스에 관한 유대교의 시각은 기독교와 다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구약 가르침에 따라 성(性)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며 섹스를 인간생활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인간 욕망의 분출을 억제하는 기독교 섹스관(觀)을 위선이라고 비판한다. 돈에 대해서도 그렇다. ‘유대인은 돈만 아는 수전노’라고 눈총을 받지만 유대인 자신들은 “돈이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은 도구가 된다”고 믿는다. 돈에 침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죄악시하던 중세 기독교 인습이 온당치 못하다고 꼬집는다.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유대인의 창의성 교육을 꼽는다. 유대인은 맹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은 교육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식에 대한 근본 개념을 이해시키고 기초 학문을 중시한다. 저자는 실제로 만나본 여러 유대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을 만나서 무엇을 물어보면 이들 대부분은 즉답을 피하고 질문자에게 다른 각도에서 반문한다. 일문일답식이 아닌 토론이 양자 간 대화에서도 적용된다. 이들은 토론 교육과 함께 깊고 다양한 사고력을 유도해 각자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게 한다. 한국인처럼 모든 사람이 같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각자가 독자적인 연구를 하며 창의력을 키운다. 즉, 다수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만의 창조성을 배양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

    언론 장악한 유대 권력

    ‘미국은 로비의 천국, 유대 로비는 최고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는 등록된 로비스트만도 20여만명이나 된다. 로비스트의 역할은 접촉, 전략, 조직 동원, 정보, 감시 등으로 분업화되어 있다. 유대계 로비단체인 ‘에이팩(AIPAC)’ 등은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을 갖고 지원활동을 벌인다. 미국 유대인의 조상은 주로 유럽에서 핍박받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자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그만 땅에 건국한 이스라엘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진정한 힘은 정보와 금력에서 비롯된다. 정보산업의 핵심인 언론을 유대인이 장악하는 형국은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호주, 아르헨티나 등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에는 현재 1700여 종의 일간지가 발행되는데 이 가운데 50여 개만이 유대인 소유다. 이 숫자만 보면 비중이 미미하다. 그러나 유대인 자본의 신문사에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대표적인 선두그룹 신문사들이 거의 포함됐다. 미국 여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입김을 미칠 수 있겠다.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정치평론가인 윌리엄 새파이어, 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받은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 워터게이트 사건을 심층 취재한 칼 번스틴 등 유력 신문기자가 유대인이다. 방송계의 유대 인맥으로는 전설적인 여성 앵커 바버라 월터스, 토크쇼의 간판스타 래리 킹, 여성 방송인 인기 1위인 케이티 쿠릭 등이 꼽힌다. 영국 로이터통신의 설립자는 유대교 랍비의 아들이다.

    예술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유대인도 수두룩하다. 특히 음악에서 그렇다. 아메리칸 클래식의 창시자인 조지 거슈윈,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과 게오르그 솔티 등이 작곡과 지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기악 연주 부문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피아니스트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아서 루빈슈타인, 다니엘 바렌보임,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등이다. 들고 다니는 현악기는 방랑생활을 하던 유대인에게는 필수 악기여서 이 분야의 거장이 적잖다. 바이올린의 야샤 하이페츠, 에후디 메뉴인, 아이작 스턴, 이츠하크 펄먼, 핑커스 주커만 등이 유대인 혈통자다. 뮤지컬은 20세기 들어 유대계 작곡가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음악 장르다.

    선민의식이 반(反)유대주의 자초

    왜 유대인은 탄압받았을까. 3가지 요인으로 나뉜다. 첫째, 종교적인 이유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뿌리는 같다. 구약은 함께 쓴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여러 선지자 중 하나로 간주한다. 그러니 기독교 시각에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둘째, 사회적인 측면이다. 세계 각국에 흩어진 유대인은 각국 사회에 일정 부분 동화해야 하는데도 유대교 계율을 우선시함으로써 공동체 화합을 거부하는 무리로 찍혔다.

    셋째, 인종 및 정치적 요인이다. 유대인을 열등한 피지배층으로 격하시킬 필요성으로 말미암아 탄압받았다. 특히 독일의 히틀러는 유대인을 헐뜯음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막대한 패전 배상 책임을 떠안아 암담해하던 독일인을 결속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야사에 따르면 히틀러의 어머니가 유대인 의사의 치료 소홀로 사망했다는 설, 청년 히틀러가 유대인 매춘부에게서 매독을 옮아 고생했다는 설이 있다.

    이 책은 미국의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와 로젠버그 부부의 핵 간첩사건 등 국제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역사적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에 대해서도 50여 쪽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라 불리는 모사드가 탁월한 이유는 확실한 주적(主敵) 의식과 투철한 국가관을 가졌다는 데 있단다.

    세계의 주요 사건에는 으레 “유대인의 음모가 개입됐다”는 말이 뒤따른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사임,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의문사 때에 그런 소문이 나돌았다. 유대인의 세계 지배 책략을 담은 ‘시온 의정서’에 대한 진위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음모론의 원인에 대해서도 자세히 분석한다.

    저자가 오랜 세월 흘린 땀의 결실은 책 말미에 붙은 ‘세계 유대인 명사록(名士錄)’에서도 확인된다. 160여 쪽에 달하는 이 부록은 노벨상 수상자, 정치가, 관료, 법조인, 학자, 언론인, 문인,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군에 따라 분류했다. 8쪽에 걸쳐 소개한 참고도서 및 자료 목록도 열성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역사와 시사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을 경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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