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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 마지막회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보바리 부인 vs 채털리 부인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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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총족될 수 없는 서글픈 환상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무한 질주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각색한 영화 ‘레이디 채털리’의 한 장면.

허영의 대명사, 보바리 부인은 소설 속 주인공과 닮은 삶을 그토록 살고 싶어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결코 닮고 싶어 하지 않는 소설 속 주인공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는 보바리 같은 여자가 아니에요’라는 말은 보바리처럼 허영과 싸구려 낭만에 빠지지 않겠다는 여성의 독립선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난 저렇게는 되기 싫어, 하지만 저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시대를 초월해 보바리 부인이 잃지 않은 매력은 바로 그 대목, ‘절대로 닮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눈을 돌리게 되는’ 그를 향한 독자의 부끄러운 쾌감(guilty pleasure)에 있다.

엠마는 그녀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을 절대 유혹하지 못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신분 높은 사람을 유혹하려 든다. … 그녀의 유혹은 … 사회적 상승이라는 꿈의 구현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교활하게, 그리고 자기기만의 방식으로 남편과 정부들을 고르고 있다는 것이다. 본의였건 본의가 아니었건 간에 그녀가 누릴 수 있는 행동의 자유는 보통 이상이다.

-알랭 뷔진느 편집, 김계영·고광식 옮김, ‘보바리’ 중에서

보바리에 대한 가장 일반화된 비판은 그녀가 ‘자기 아닌 것들’로 자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즉 보바리는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소설 속 여주인공들을 통해 진정한 삶을 갈망한다는 것, 그녀가 사춘기 시절에 탐독한 시시한 책들이 그녀에게서 모든 자발성을 파괴해버렸다는 식의 비판들이다. 보바리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판단이 공존한다. 그녀의 망상이 그녀의 현실을 파괴해버렸다는 비판, 오직 ‘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라는 환상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기에 평생 동안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비판. 그러나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이야말로 보바리가 발굴하고 실현한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평생 ‘자기’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된다는 상상 속에서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 아닐까. 보바리가 상상한 ‘나이고 싶은 타자’가 다양하지 못했음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보바리가 ‘타자를 꿈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 아닐까.



“나는 그녀를 탈보바리화했다고 생각합니다. 보바리즘은 불만족입니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마담 보바리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불만의 여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 그녀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초라함을 의식하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전적으로 여자의 욕망에 대해 굳게 닫혀 있는 시골 소시민 사회의 장벽과 맞섭니다.”

- 이자벨 위페르(영화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 부인 역할을 맡았던 배우)

루앙에서 회중시계에 장식 줄을 묶음으로 달고 다니는 귀부인들을 보자 그녀도 장식 줄을 샀다. 그녀는 벽난로 선반 위에 청색 유리로 된 커다란 꽃병 한 쌍을 갖다 놓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자 이번에는 은도금 골무를 담은 상아 바느질고리를 갖고 싶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중에서

보바리 부인을 둘러싼 또 하나의 스캔들은 단지 불륜이나 외설 때문이 아닌, 보바리 부인의 가열찬 ‘쇼핑 중독’이다. 보바리 부인이 비소를 먹고 자살하는 직접적인 이유도 엄청난 쇼핑으로 인해 눈더미처럼 불어난 빚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사랑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처럼, 물건을 향한 욕망도 그랬다. 엠마 보바리가 ‘현대인의 초상’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치지 않는 구매욕, 그리고 그녀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인 ‘피할 수 없는 권태’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기를, 자신에게 로맨스 소설 같은 아름다운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보바리이지만, 그녀의 간절한 기다림의 속도를 실제 세상은 따라줄 수 없다. 플로베르는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바리의 위로받지 못한 슬픔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 가련한 보바리는 아마도 바로 이 시간에 프랑스의 수많은 마을에서 고통 받으며 울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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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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