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내 책은…’나 홀로 즐기는 삶 _ 강혜선 지음, 태학사, 411쪽, 1만6000원내가 쓴 책을 스스로 소개하는 일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아 사뭇 겸연쩍다. 이런 마음을 애써 누르며 이 책을 어떻게 썼고, 왜 세상에 내놓았는지 말해보겠다. 나는 한국한문학, 특히 조선후기 한문 산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데 주력해온 연구자다. 대학에서 한문학을 가르치고, 한문학 관련 논문을 쓰는 그런 인생을 제법 살았다. 그러는 동안 학술적인 논문 방식을 벗어나, 나의 감성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옛 문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고, 또 지금의 독자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옛 문인들의 어떤 글을 접했을 때 내 눈이, 마음이 절로 이끌려가서 절로 찬성의 뜻을 보내지 않을 수 없어서 글을 썼고, 그 글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내가 내 방식대로 고인(古人)을 찾아내고 그 삶을 경청하고, 혼자 고인을 마음의 벗으로 삼아온 과정이다.
널리 알려진 허목, 강세황,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같은 문인들의 삶을 경청하기도 했고 신정하, 김려, 심능숙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문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들의 꿈과 삶의 자취를 좇아가며, 그들이 제각각 보여준 ‘인생에 대한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
제1부 ‘나를 그리는 사람’에는 옛 문인들의 자아인식, 자아성찰, 인생관이 드러나는 글을 모았다. 제2부 ‘사랑하는 나의 집’에는 옛 문인들이 어떤 집을 짓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려볼 수 있는 글을 모았다. 제3부 ‘필묵 사이에 넘치는 정’에는 옛 문인들이 가족 또는 벗과 진실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글을 모았고, 제4부 ‘국화 그림자의 운치’에는 옛 문인들의 개성적인 취향과 특별한 체험이 드러난 글을 모았다.
책 제목은 표암 강세황의 글귀 “세상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나 홀로 즐길 뿐(人那得知, 我自爲樂)”에서 취했다. 표암은 72세 때 김생이라는 젊은이에게 이런 글을 써준 적이 있다.
“사람이 스스로 즐거워하는 바가 같지 않다. … 시와 서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재물을 즐기는 사람이 있으며, 시와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김생이 좋아하는 것도 이 몇 가지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오직 스스로 좋아할 만한 것을 선택하는 데 달려 있다.”
스스로 좋아할 만한 것을 제대로 알고, 또 홀로 즐기는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그런 삶은 타인의 눈과 입에 의해 가늠되는 인생의 성공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생각해보면, 글을 쓸 때마다 무엇보다 옛 글을 읽는 즐거움이 매우 컸다. 그 글들을 통해 옛 문인들의 삶을, 생활을 그려보면서 나 역시 인생에 대한 사랑을 조금 조금 배워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옛 문인들이 보여준 인생에 대한 사랑을 엿보고, 나름대로 자기의 인생을 사랑하고 가꾸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강혜선│성신여대 국문과 교수│
New Books읽기의 역사 _ 스티븐 로저 피셔 지음, 신기식 옮김‘보바리 부인’의 저자 플로베르는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하듯 정신은 읽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으로 된다”고 했다.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쐐기문자를 사용하던 고대부터 현대까지 읽기의 역사를 일별하며 ‘읽기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의 대다수는 역사가 시작된 뒤에도 꽤 오랫동안 읽지 못했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읽기가 대중화됐지만, 이때는 ‘낭독’이 읽기의 전부로 여겨졌다. 읽기가 문자의 재현에서 벗어나 “내부지향적이고 조용하며 개인적인 지식추구, 내밀한 탐색”이 된 것은 서구에 ‘기독교 문화’가 형성된 고대 후기부터다. 저자의 전작 ‘언어의 역사’ ‘쓰기의 역사’에 이은 ‘역사’ 3부작 마지막 책이다.
도서출판 지영사, 488쪽, 1만8000원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 _ 마이클 에이더스 지음, 김동광 옮김미국 러트거스대에서 역사학을 강의하며 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저자가 대탐험시대부터 이어져온 서양 우위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분석했다. 저자는 산업혁명 전후로 유럽인이 획득한 물질적 업적이 ‘서양의 지배’를 구축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종이 나침반 무기 철도 선박 등의 발명품과 천문학 수학 의학 같은 과학지식, 철학 및 노동에 대한 태도, 시간개념 등 광범위한 분야의 과학적 기술적 척도를 사용해 비서양 사회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겼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성취는 경멸의 대상이 됐고, 가치 체계와 조직 형태는 비판받았으며, 그 지역 사람들은 자연스레 정복과 통치의 객체가 됐다. 서양인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비서양인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문명화 사명도 제국주의 팽창의 배경이 됐다.
도서출판 산처럼, 652쪽, 3만5000원개념사란 무엇인가 _ 나인호 지음최근 2~3년 사이 한국 학계에서 ‘개념사’라는 키워드가 화제다. 2008년 국제 개념사 학술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렸고, 관련 서적과 잡지 출간도 봇물을 이뤘다. 독일 보훔대 역사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개념사를 연구한 저자는 이 책에서 널리 쓰이되 여전히 모호한 개념사의 개념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개념사는 “언어와 역사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탐구하는 역사의미론의 한 분야”다. 전통적 역사학에서 언어는 단지 과거가 실제로 어떠했는지 파악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역사의미론에 의하면 오히려 언어가 역사적 실재를 구성한다. 저자는 역사 행위자들이 특정 개념을 사용하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여러 의미를 파헤쳐, 그들의 경험과 기대,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 세계관과 가치관, 사고방식이나 심성, 그리고 희망과 공포 등을 읽어낸다.
역사비평사, 400쪽, 1만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