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좌우할 위험요인이라는 데에는 다른 의견이 없다. 따라서 복지 논쟁의 초점은 어떻게 우리 사회공동체가 위험요인에 대비하고 예방할 수 있느냐에 모아져야 한다. 그러고 보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쥐덫 위에 놓인 공짜 치즈”라며 맹렬히 반대하는 무상급식 문제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복지의 본질적 문제는 복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국정철학과 복지 확대에 소요되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데 있다. 우파 성장론자들은 대체로 복지를 낭비거나 시혜의 차원으로 인식한다. 나라 곳간 형편은 생각지 않고 복지에 돈을 펑펑 쓰다가는 과거 아르헨티나나 최근의 그리스, 스페인, 일본처럼 국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유럽 국가나 일본의 위기가 꼭 과잉복지 탓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있지만 선후야 어떻든 재정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복지가 국가 위기를 불러오는 것은 분명한 만큼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복지에 돈을 펑펑 썼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이들은 복지가 지나치면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노동의욕이나 재활욕구를 저하시키는 복지병(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또한 일리 있는 걱정이지만 낮은 복지 수준의 우리 형편에서는 생뚱맞은 얘기가 될 수 있다. 서울시내 공립 초·중·고 학생 124만8708명의 10%가 넘는 13만6451명이 점심값을 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복지병 걱정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닌가.
김종인 전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가 경험한 몇 십 년 동안 고도의 압축성장 속에는 엄청난 모순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한 번도 시정해본 적이 없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두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하는 등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지만 사회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출산율이 낮아서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경제적인 파이가 크다고 해서 일류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이 역동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두 개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는 “낙수효과(trickle down)는 없다”고 말한다. 부자들이 돈을 벌게 놔두면 결국 그 돈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똑똑 떨어져’ 가난한 사람도 혜택을 입는다는 가설은 실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부(富)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밑으로 끌어내려야 하고, 그 역할을 하는 게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그는 복지가 외려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는 경제 선순환의 출발점이고 성장 정책”이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즉 빈곤층뿐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을 아우르는 복지정책은 대다수 국민의 가계지출을 줄임으로써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소비를 촉진하고 내수를 진작하면 투자가 확대되고 일자리가 증가하는 경제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국가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모든 얘기는 말짱 헛것이 되기 십상이다. 기존 재원의 우선순위를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국민의 세 부담 증가 없이 복지 확대는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세 부담을 늘리지 않고 보편적 복지를 하겠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 의원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도 재원계획이 구체적이지 못하면 복지담론을 선점해 정치적 이득을 취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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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국민은 복지를 원한다. 중산층도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위험 사회’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복지 하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등을 돌린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담론보다 내가 세금을 더 내면 어떤 혜택을 더 받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 그것이 이익이 됨을 구체적이고 세밀한 청사진으로 납득시키는 일이다. 현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복지는 어차피 미래 권력의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