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모나코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1-03-22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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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레이스 켈리의 전설로 유명한 모나코는 세계적인 카지노 강국이다.
    • 한때 국가재정의 90%를 카지노 수익에 의존했을 정도로 카지노 산업이 발달해 있다.
    •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몰리는 모나코 카지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 경기 침체 여파로 손님이 줄자 좀 더 대중적인 마케팅 전략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 뼛속 깊이 체험한 모나코 카지노의 매력을 소개한다.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청록의 바다가 뒤척거린다. 바다는 하늘과 맞닿은 쪽에서부터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햇살과 볼을 비비는 물결이 은빛 조각으로 잘게 바스러진다. 선착장에 코를 박은 수백 척의 호화요트는 단잠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부지런한 보트 한 척이 바다에 허연 고랑을 내며 달려간다. 이곳은 인류문명의 발상지, 지중해. ‘카지노 천국’ 모나코의 젖줄이다.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숙소에서 나와 천천히 걸었다. 나라 길이가 3㎞ 남짓한 터라 웬만한 데는 걸어가면 된다. 선(SUN) 카지노는 해안가 페어몬트호텔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카지노의 테이블 게임은 오후 6시에 시작된다. 이른 시각이라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다. 카지노 구조는 폐쇄형이 많은데, 이곳은 입구에 들어서면 실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개방형 구조다. 모나코 카지노에선 슬롯머신보다 테이블 게임이 더 인기 있다. 선 카지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블랙잭 테이블에 끼어들었다. 일단 100유로를 칩으로 바꿨다. 둘러앉은 손님은 우리 일행 3명을 포함해 6명. 옆에서 같이 게임하는 백발노인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뉴욕 출신의 미국인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오랫동안 증권 업무에 종사했다는 그는 은퇴 후 이곳에 정착해 매일 카지노에 출근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올해 83세라는데 표정에서 여유가 넘친다. 베팅하는 품이 많이 해본 솜씨다. 그는 무리하지 않고 한 판에 몇십유로씩만 걸었다.

    이 판의 최소 베팅액은 5유로(1유로는 약 1600원). 최대 베팅액은 500유로다. 우리 일행은 한 판에 10유로씩 걸었다. 몇 번 해보니 붙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딜러가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블랙 잭(딜러로부터 받아든 카드 두 장의 합이 21인 경우)도 자주 나온다. 견습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딜러는 미숙했다. 카드를 섞거나 나눠줄 때 종종 카드를 떨어뜨렸다. 손님들에게 질 때가 많았다. 덕분에 우리는 100유로로 2시간가량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은 150유로를 따기까지 했다.

    그레이스 켈리, F1 그랑프리, 카지노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모나코 카지노의 대명사 몬테카를로 카지노.

    모나코는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면적은 여의도(시가지 기준 2.9㎢)의 3분의 2인 2㎢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는 고작 3만여 명. 하지만 1인당 GDP가 2007년에 이미 3만달러를 넘었을 정도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다.

    모나코는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이탈리아와도 가깝다. 시내 중심부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프랑스의 니스가 나타나고 동쪽으로 20분쯤 가면 이탈리아 국경이 보인다. 중간에 멍통이라는 프랑스 마을을 지나야 한다.

    모나코 왕실의 뿌리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그리말디 가문이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이후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가 됐다.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고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프랑스인이다. 정부 관리를 비롯한 공무원 중에도 프랑스인이 많다. 모나코엔 경찰만 있고 군대가 없다. 프랑스가 국방을 맡고 있기 때문. 외교도 프랑스에 의존하고 있다. 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수반을 임명할 때도 프랑스 정부와 협의한다. 모나코가 입헌군주제의 독립국임에도 프랑스 보호령이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모나코에서 가장 유명한 것 세 가지를 꼽는다면 1950년대 모나코 국왕과의 결혼으로 전설이 된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상자기사 참조), F1 그랑프리, 그리고 카지노다. 모나코 시내도로를 코스로 이용하는 모나코 그랑프리는 82년 역사의 유서 깊은 대회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스’로 일컬어진다.

    유럽 최고의 부자들을 잡아라

    모나코가 ‘카지노 천국’으로 불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모두 5개의 카지노가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유럽 최대의 카지노로 꼽힌다. 모나코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500만명. 그중 호텔에 장기 투숙하는 사람이 35만명에 달한다.

    모나코의 카지노 산업은 한때 이 나라 재정수입의 90%를 차지했을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주요 고객이 전세계의 상류층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카지노 앞에는 늘 최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다. 돈 많이 쓰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선지 몰라도 모나코는 치안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경찰관 수백 명이 24시간 시내를 순찰한다. 기자도 몇 번이나 거리에서 경찰관들을 목격했다. 남성 2명, 여성 1명으로 구성된 3인조다. 인접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달리 거리도 청결한 편이다. 카지노에서 얼마를 따든 세금을 내지 않는 것도 매력적이다.

    모나코 카지노의 대명사인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독일의 바덴바덴 카지노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카지노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반 모나코는 가난한 왕국이었다. 1860년대 초 국왕 샤를 3세는 국부 창출의 수단으로 프랑스인 블랑에게 카지노를 짓게 했다. 당시 인근 도시인 니스와 칸은 유럽의 겨울휴양지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두 도시에서 휴가를 즐기는 상류층 관광객을 카지노를 미끼로 모나코로 끌어들이자는 전략이었다. 뛰어난 건축가이자 경영자이던 블랑은 유럽 최고 부자들을 끌어들인다는 목표에 걸맞게 호화롭고 웅장한 건물을 세웠다. 단순히 카지노 업장만 개설한 게 아니라 호텔을 짓고 그 안에 오페라극장까지 설치했다. 아울러 프랑스 정부의 협조를 얻어 니스와 몬테카를로를 연결하는 철로를 깔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니스와 칸에 머물던 부호들이 모나코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모나코 카지노는 유럽 최고의 휴양시설로 자리 잡았다. 애초 조그만 게임장으로 출발했던 카지노 산업은 종합리조트 산업으로 발전했다. 카지노로 재기에 성공한 모나코는 관광산업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이후 금융업과 제조업 쪽으로도 진출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모나코 은행들에는 세계적 부호들의 예금이 넘쳐나고, 의약품 전자 컴퓨터 플라스틱 화장품 등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다.

    “초창기엔 국가재정의 대부분을 카지노 수익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4%대로 떨어졌다. 일부러 낮춘 게 아니라 다른 산업들이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몬테카를로 SBM 사장인 버나드 램버트의 말이다(인터뷰 기사 참조). SBM은 카지노와 호텔, 식당, 온천을 경영하는 모나코 최대의 종합리조트회사다. SBM이 운영하는 5개의 카지노 이름은 몬테카를로를 비롯해 카페 드 파리, 선, 몬테카를로 베이, 스포팅이다. SBM은 원래 온천휴양사업으로 유명한 회사다. 회사 이름만 봐도 그렇다. SBM은 SOCIETE DES BAINS DE MER의 약자인데 이는 여러 개의 해수 온천을 가진 회사를 뜻한다.

    인터뷰 | SBM 버나드 램버트 사장

    “늘 새롭고 젊은 카지노를 지향한다”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모나코 카지노를 경영하는 SBM은 정부가 최대 주주인 민영기업이다.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임명된다. 모나코에서 가장 많은 종업원을 거느린 회사이기도 하다. 약 35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규모가 꽤 큰 회사임에도 사장 집무실은 좁았다. 창밖으로 몬테카를로 카지노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풍채 좋은 버나드 램버트 사장의 손바닥은 솥뚜껑만했다. 불그스레한 얼굴엔 깊은 연륜이 묻어났다. 그는 시종 미소를 머금은 채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 카지노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되나.

    “2009~10 회계연도 회사 전체 수익이 3억7000만유로다. 그중 2억유로가 카지노 매출이다. 비율로 보면 전체의 52%가 카지노이고 호텔이 40%를 차지한다. 기타 사업이 8%다. 카지노 산업은 경기를 많이 탄다. 2000년대 들어와 상승세를 타다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이후 손님이 크게 줄었다. 2007년을 정점으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다시 올라갈 조짐이 보인다.”

    ‘2009~10 SBM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모나코 카지노 수익의 51%가 슬롯머신에서 나온다. 나머지 49%가 테이블 게임. 카지노 수익은 전년도에 비해 5% 감소했다. 테이블 게임에선 10% 늘었지만, 슬롯머신에서 16%나 줄어들었다. 호텔 수익은 11% 떨어졌다. 호텔 영업은 숙박과 음식, 기타사업으로 나뉘는데, 수익 비중이 각각 36%, 51%, 13%다. 가장 큰 감소세를 보인 것은 숙박으로 17%가 줄었다. 2009~10년 호텔 수익은 1억5400만유로다.

    ▼ 나라별 고객 분포도는?

    “유럽 관광객이 가장 많다. 이탈리아 사람이 가장 많고,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중동, 일본 순이다. 일본에 비하면 한국인 관광객은 적은 편이다. 한국인은 대부분 일시 체류하는 사람들이다.”

    ▼ 모나코 카지노의 특징은?

    “프랑스에는 190개의 카지노가 있는데 94%가 슬롯머신 기계다. 모나코는 테이블 게임이 강세다. 슬롯머신과 테이블 비율이 반반이다. 수입은 슬롯머신 쪽이 조금 더 많다. 모나코 카지노는 최고급을 지향한다. 주 고객이 상류층이다. 그게 다른 나라 카지노와 다르다.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대중의 꿈이자 환상이다.”

    ▼ 여기서도 잭팟이 터지나.

    “2009년 80만유로짜리가 터진 적이 있다. 그 전까지는 70만유로짜리가 가장 컸다.”

    ▼ 나라에 세금은 얼마나 내나.

    “전체 수익금의 15~20%를 낸다. 지난해 2600만유로를 냈다. 이는 국가재정의 4%다.”

    ▼ 모나코는 세금이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모나코 국민은 직접세(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외국인 영주권자들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하지만 법인세율은 상당히 높다.”

    ▼ 모나코라는 나라의 매력이라면?

    “안전하고 깨끗하다. 부자들이 머무르기 좋은 곳이다. 그렇다고 관광만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아니다. 각종 제조업과 금융업이 발달해 있다.”

    ▼ 카지노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10여 년 전만 해도 한 달, 두 달씩 장기체류하는 고객이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 며칠씩 묵고 간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이들을 잡아둘 수 없다. 모나코 카지노의 슬롯머신은 1200여 대다. 프랑스는 카지노 규정을 맘대로 못 바꾸기 때문에 오래된 기계가 많다. 반면 모나코의 슬롯머신은 대부분 최신형 프로그램을 깔고 있다. 늘 새롭고 젊은 카지노를 추구한다.”

    ▼ 그레이스 켈리와 카지노 중 어느 쪽이 더 모나코 관광산업에 기여했나?

    “(웃음) 둘 다 큰 기여를 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불행한 죽음으로 영원한 전설이 됐다.”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몬테카를로 카지노 맞은편에 있는 카페 드 파리 카지노.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면 모나코 카지노의 절정기는 지난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카지노 산업이 특화돼 있긴 하지만 ‘카지노로 먹고산다’는 얘기는 과장된 것이다. 1980년대 유럽경제가 호황기였을 때 모나코는 유럽인에게 최고의 휴식처였다. 1년 저축해 모나코에서 한 달 동안 쉬는 게 꿈이었다. 휴가를 즐기는 그들에게 카지노는 멋진 오락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나코 카지노는 예전처럼 시끌벅적하지 않다. 수년간 계속된 경기 침체 여파로 관광객이 줄다보니 덩달아 카지노 손님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테이블 게임이 강세

    카페 드 파리 카지노는 요란스러웠다. 천장은 온통 거울이고 벽면은 갖가지 색깔로 치장돼 있다. 조명도 시시각각 바뀐다. ‘The Wizard of Oz’ ‘Sex and The City’ 따위의 최신형 슬롯머신이 즐비하다. 요즘 머신 프로그램의 대세는 보너스다. 다양한 보너스로 고객에게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보너스로 점수가 올라가면 그만큼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 는다. 바꿔 말하면 돈 잃는 속도가 그만큼 느려지는 것이다.

    기계들 상단엔 잭팟 상금액이 반짝거린다. 33만유로가 걸린 모토사이클 기계 옆에서는 천으로 된 화염이 활활 솟구친다. 조명과 바람을 이용한 특수효과다. 가장 큰돈이 걸린 게임은 ‘Wheel of Gold’. 97만9722유로다. 터지면 한 번에 15억원 이상을 딴다는 얘기다.

    할머니 손님이 많다. 그들은 주로 1회 베팅액이 0.2유로, 0.5유로인 소액 게임을 한다. 적은 돈으로 오랫동안 노는 것이다. 사실 이거야말로 카지노를 진정 즐기는 자세다. 거액을 따려는 욕심을 버리고 일정 시간 게임을 즐기겠다고 마음먹으면 카지노만큼 좋은 오락거리도 없는 것이다.

    기자가 60유로를 머신에 넣어 3배가량 딴 것은 짧은 행운이었다. 게임을 시작한 지 20분이 채 안 돼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기계는 땄을 때 일어나야 돼”라고 중얼거리며.

    3만여 명의 모나코 국민 중에서 국적자는 7200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외국인 영주권자다. 내국인은 카지노에 출입할 수 없다.

    중세 유럽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출입 규정이 까다롭기로 소문 난 곳이다. 초창기엔 여성의 출입이 금지됐다. 복장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장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사람은 메인 룸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규정이 완화돼 넥타이를 안 매도 정장 분위기만 갖추면 된다고 한다. SBM 언론담당 임원인 미레이어 르보도 마티니는 이에 대해 “시장의 변화 요구에 따라 모나코 카지노도 변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모나코 내 다른 카지노들과 달리 10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물론 호텔 투숙객은 무료다. 홍보담당 미셀 막세즈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았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카지노 앞에 고급 승용차가 많지는 않았다.

    내부 실내장식이 무척 고풍스럽다. 대리석 기둥이며 청동 샹들리에며 화려한 조각상들이며… 왕실 연회장이나 고급 미술관 분위기다. 대부분의 카지노는 단일 룸 구조다. 입구를 통과하면 하나의 큰 공간이 펼쳐지고 그 안에 기계와 테이블이 일정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의 방을 통과하면 또 다른 방이 나타나는 식이다. 이런 방들에선 테이블 게임만 가능한데 방마다 게임 내용이 다르다. 이를테면 포커 방, 블랙잭 방, 룰렛 방 따위로 구분돼 있는 것이다.

    슬롯머신 게임 룸은 확실히 구분돼 있다. 카지노 입구 오른쪽에 기계가 모여 있는 방이 따로 있다. 몬테카를로 카지노에는 기계 300대, 테이블 30개가 있다. 테이블 게임의 매출액이 47%를 차지한다. 머신게임의 승률은 93%라고 한다.

    모나코 최고의 딜러들

    테이블 게임 방들의 천장은 성당처럼 높고 둥글다. 대형 샹들리에와 거울이 반짝거리고 벽면에는 르네상스풍의 화려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천장엔 감시용 카메라 3대가 달려 있다. 이전엔 직원이 문 위에 작게 난 창틈으로 감시했다고 한다. 미셀 막세즈는 “테이블 밑에도 소형 마이크가 부착돼 있다”고 귀띔했다.

    비수기이고 해가 지기 전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다. 놀고 있는 딜러가 많다. 미셀 막세즈는 “여름에 큰 행사가 열릴 때는 룸에서 룸으로 이동하는 데 20분씩 걸릴 정도로 손님이 꽉 들어찬다”고 말했다.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페어몬트호텔 지하에 있는 선 카지노 입구.

    테이블마다 세 명의 직원이 배치돼 있다. 한 명은 감독이고 두 명은 딜러다.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딜러들도 나이가 지긋하다. 하나같이 검은 양복에 흰색 나비넥타이를 맸다. 미셀 막세즈에 따르면 이곳 딜러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취업경쟁이 세고 임금이 높기 때문이다. 딜러를 하려면 먼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딜러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졸업을 해도 곧바로 몬테카를로 카지노에는 취직하지 못한다. 그보다 한 등급 아래인 선 카지노나 카페 드 파리 카지노에서 몇 년간 딜러 경력을 쌓아야 한다. 미셀 막세즈는 “몬테카를로 카지노의 딜러들은 모나코 최고 실력자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밤 10시40분. 다시 선 카지노를 찾다. 왠지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아서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심상찮다. 저녁에 들렀을 때 서툰 솜씨로 우리를 기쁘게 했던 여성 딜러가 보이지 않는다. 고객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라 노련한 딜러들만 배치한 듯싶다. 최소 베팅액도 5유로에서 10유로로 바뀌어 있다.

    저녁 때 했던 것처럼 100유로로 시작한다. 두 명의 딜러가 교대로 투입되는데 다행스럽게도 그중 한 딜러가 약해 보인다. 100유로로 한 시간 반을 버티다니, 이만하면 선전이다. 한때 500유로 가까이 따기도 했다(카지노 문을 나설 때야 깨달았다. 그때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을).

    스플릿(Split)으로도 종종 재미를 봤다. 스플릿은 딜러한테 받은 카드 두 장의 숫자가 같을 때 카드를 나눠 각각 진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판에 두 패를 받는 것이다. 기자는 돈을 따면 다음 판에 베팅액을 두 배로 올리고, 잃으면 베팅액을 최소 베팅액(10유로)으로 낮추는 작전을 썼는데 그런 대로 재미를 본다.

    블랙잭은 슬롯머신처럼 대박의 달콤한 환상은 없지만 두뇌를 쓰는 스릴이 있다. 욕심만 안 부리면 적은 돈으로 오랫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테이블 게임의 묘미다.

    늦은 밤 카지노에 나타난 미녀들

    뉴요커 노인이 다시 나타나 합류한다. 이번엔 60대로 보이는 어떤 여성과 함께다. 뉴요커는 실속파다. 돈이 꽤 있어 보이는데도 결코 무리한 베팅을 하지 않는다. 얼마 뒤 짙은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중년 신사 한 명이 끼어든다. 그는 한 판에 500유로, 700유로씩 베팅해 끽해야 40유로를 거는 우리 일행의 기를 팍팍 죽인다.

    베트남계로 보이는 한 동양여성도 합류해 한번에 100유로씩 질러댄다. 이 여성과 구레나룻 남성은 두세 패를 받아 각각 돈을 건다. 베팅액이 크다 보니 한번에 1000유로를 따기도 한다. 가만히 보니 이 여성은 임신한 상태다. 배가 꽤 불러 있다. 두 사람은 게임 요령을 잘 모르는 우리의 베팅 스타일에 대해 몇 번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딜러에게 숫자 6인 카드가 돌아간 경우엔 카드를 더 받지 말라고 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충고를 무시한 경우엔 대체로 돈을 잃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 시간 이상 판을 휘젓고 나서 다른 테이블로 옮겨갔다. 수준 낮은 사람들과 같이 못 치겠다는 뜻으로 읽혀 괜히 자괴감이 든다. 뉴요커 노인은 벌써 가버렸다.

    자정이 넘었다. 눈이 피곤하고 콧물이 찔끔거린다. 바야흐로 체력전이다. 새로운 손님들이 판에 합류한다.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본전 생각에 엉덩이를 계속 붙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젊고 늘씬한 여성 2명이 나타나 주위를 산만하게 한다. 복제품처럼 비슷한 부류의 여성이 계속 나타난다. 세어보니 9명이나 된다. 미모의 그녀들은 게임은 하지 않고 테이블 주변에서 맴돌거나 바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알고 보니 직업적으로 손님을 유혹하는 여성들이다. 몇몇 손님이 게임을 잠시 접고 그녀들과 한쪽 구석에 가서 얘기를 나눈다. 새벽 1시10분.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이제 ‘모나코의 행운’과 작별할 때다. 마지막 베팅. 상당히 괜찮은 패인데 한 끝 차로 진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카지노를 나서는데 입구 쪽 바에 앉은 두 여성 중 한 명이 싱긋 눈짓을 보낸다. 어떡하라고!!

    밖으로 나오니 찬 공기가 뜨겁게 달궈진 눈을 식혀준다. 모나코의 밤하늘을 보려고 그랬던가보다. 이 늦은 시각까지 게임을 안 했더라면 검푸른 지중해 위에서 보석 빛을 뿌려대는 저 찬란한 별들을 보지 못했을 테니. 문득 ‘벽암록’의 경구가 뇌를 때린다. ‘얻었다 한들 원래 있던 것이요, 잃었다 한들 원래 없던 것이라.’

    방 하나 혼자 쓰는 슈퍼 VIP들

    몬테카를로 카지노의 테이블 게임은 부자들을 상대로 하는 만큼 베팅액수가 크다. 최대 베팅액은 최소 베팅액의 30배다. 예컨대 여기서 푼토 방코(Punto Banco)라 불리는 바카라 게임의 경우 최소 베팅액이 100유로일 때는 한 번에 3000유로까지, 1000유로일 때는 3만유로까지 베팅할 수 있다. 아메리칸 룰렛 게임은 한 번에 최대 1만유로까지 걸 수 있다.

    바카라 방의 다음 방에는 슬롯머신 기계들이 눈에 띄었다. 현재 입구 쪽 슬롯머신 룸을 개조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임시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우측의 룰렛 게임 테이블이 있는 방에 들어서자 대형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대부분의 카지노엔 유리창이 없다. 밖을 못 내다보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시계도 없다. 거울도 없다. 초췌한 자신의 모습을 못 보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고급 카지노라 그런지 다르다. 유리창도 있고 벽시계도 있고 거울도 있다. 카지노 카펫은 대부분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마음을 들뜨게 하고 흥분시킨다. 그런데 이곳엔 파란색 카펫이 깔려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중해는 가슴이 시릴 정도로 새파랗다. 야자수들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이어 블랙잭 방이 나타난다. 최소 베팅액이 25유로이고 한 번에 최대 2만유로까지 걸 수 있다. 혼자서 7명 몫의 베팅까지 가능하다. 이 경우 판마다 최대금액으로 베팅을 하면 판돈이 14만유로다. 거기에 매번 더블(Double Down)을 치면 28만유로다. 여기서는 이렇게 혼자서 몇 개의 판을 벌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더블은 카드 두 장을 받은 후 한 장을 더 받아 승산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판돈을 두 배로 올리는 것이다. 예컨대 처음에 50유로를 베팅한 상태에서 더블을 걸면 베팅액이 100유로가 된다. 더블 상태에선 한 장의 카드만 더 받을 수 있다.

    맨 안쪽에는 프라이빗 방이 있다. 이곳에선 특별한 고객이 혼자 게임한다. 50만유로를 카지노에 예치한 고객에게 방 하나를 통째로 내주는 것이다. 이른바 슈퍼 VIP다. 미셀 막세즈에 따르면 전세계에 이런 슈퍼 VIP가 150명가량 된다. 이들은 전세계의 고급 카지노들을 돌면서 매출액을 올려준다. 카지노 측은 이들에게 항공 표를 끊어주고 공항에서부터 리무진으로 모셔온다.

    현재 전체 고객의 10%가 VIP다. 하지만 이 10%의 손님이 카지노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VIP란 자주 오고 베팅액과 예치금이 큰 손님을 일컫는다. 한국인 VIP도 10명쯤 된다는데, 이들은 국적은 한국이지만 거주지는 유럽이라고 한다. 카지노 측에 따르면 한국인 VIP의 재력은 ‘예치금 3000만원’ 정도다.

    테이블 게임 손님은 카지노 내 식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식당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특급열차 객실처럼 아담하고 고급스럽다. 카지노 고객의 70%가 이탈리아 사람이라 주 메뉴가 이탈리아식이라고 한다.

    모나코의 전설 그레이스 켈리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지중해의 조용하고 작은 도시국가인 모나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데는 할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공이 컸다. 키 170㎝의 늘씬한 금발미녀 그레이스 켈리는 1955년 영화 ‘갈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와 모나코 왕 레니에 3세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1956년 4월. 기록에 따르면 이날 전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관광객들로 도시 전체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우아함과 호화로움의 대명사이던 그레이스 켈리가 영원한 전설이 된 데는 비극적인 죽음도 한몫했다. 1982년 갓 운전면허를 딴 딸 스테파니의 승용차를 타고 외출했다가 차가 절벽 아래로 구르는 바람에 지상에서 영원으로 떠난 것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별이다. 육체는 사라졌지만 영혼은 모나코인들의 가슴속에 스며 있다. 모나코 관광을 하면서 그녀를 떠올리지 않거나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왕궁과 시내 곳곳에 그녀의 사진이 내걸려 있다. 현 모나코 국왕인 알베르 2세가 그녀의 아들이다.


    “상류층 겨냥한 세계 최고급 카지노 시장 변화에 맞춰 문턱 낮추는 중”

    베이 카지노가 있는 몬테카를로 베이 호텔은 지중해를 끼고 있다.

    수영장, 바다, 갈매기, 일광욕…

    마지막으로 오페라 극장에 들어가 봤다. 극장 관계자는 “유럽 최고의 음향을 전달하는 홀”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1878년에 문을 연 이 극장에선 오페라뿐 아니라 발레공연과 관현악 연주회도 열린다. 좌석은 550석.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금잎과 금종이 장식이 눈길을 끈다. 카지노 관계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오자 고급차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007 시리즈’로 유명한 애스턴 마틴,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포르셰, 페라리, 아우디…. 막 승용차 한 대가 카지노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정장 차림의 노인과 젊은 여성이 함께 내린다.

    베이 카지노는 몬테카를로 베이 호텔 내에 있다. 모나코 서쪽 끝 국경지대에 위치한 베이 호텔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깔끔한 현대식 건물이다. 호텔 뒤쪽에 야외 수영장이 있다. 바다가 바로 옆이라 수영장 위로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한적하고 따사롭다. 한 여성 투숙객이 호텔 발코니에서 상의를 벗고 일광욕을 한다.

    베이 호텔 뒤 바다 쪽으로 스포팅 카지노가 자리 잡고 있다. 여름에만 개장하는 카지노라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외관만 구경했다.

    베이 카지노는 몬테카를로나 카페 드 파리, 선 카지노에 비해 작다. 저녁때인데도 손님이 적어 한산하다. 안쪽 테이블 게임 좌석들은 텅 비어 있다. 명색이 카지노 취재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슬롯머신 기계 앞에 앉는다. ‘Triple Lucky 7’이라는 게임이 뜻밖에도 재미있다. 점수가 바닥으로 내려갈 때마다 보너스를 제공해 버티게 해준다. 100유로로 시작했는데 한때 300유로를 따기까지 했다. 돈을 따거나 적어도 본전을 찾고 발걸음 가볍게 카지노를 나설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쉽게 엉덩이를 들지 못한다. 두 시간이 언제 지났을까. 결국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오니 어두컴컴하다. 모나코에서 칸으로 넘어가는 해안도로는 좁고 위태로웠다.

    Tip

    칸에서 혹시 카지노를 하게 될 분들에게 주는 팁 하나. 칸 영화제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옆 크로와제트 카지노에서는 웬만하면 블랙잭을 하지 마시라. 딜러가 대단한 고수다. 머신게임은 그나마 해볼 만하다. 소액이라도 땄을 때 곧바로 일어날 수 있는 자제력이 있다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칸 해안가 인근 멍들리외에 있는 로열 카지노는 그냥 지나치는 게 좋다. 그럴듯한 외양과 007영화 제목에 이끌려 들어갔다가는 개털 되기 십상이다. 머신게임 위주인데 무조건 털린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골동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계는 낡아빠졌고 프로그램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결정적인 문제는 승률이 턱없이 낮아 수십 번 베팅해도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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