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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거리의 사제’ 박문수 신부

“약자 편에 서는 게 정의구현, 정치적이지만 정당정치는 아니다”

  • 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거리의 사제’ 박문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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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그는 하와이 주립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사제 서품을 받은 이듬해였다. 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될 도시사회학을 공부하며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빈민운동 소식을 꾸준히 전해 들었다.

“1975년 제정구 선배가 서울 양평동 뚝방동네에 들어가 빈민들과 생활했어요. 1977년 강제철거가 시작되자 정일우 신부와 함께 철거민들을 이끌고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에 ‘복음자리’ 마을을 세웠죠. 그곳에서 한국 빈민운동의 전략이 발생했죠.”

1979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도시빈민의 대부’로 불리던 고(故) 제정구 의원과 교류하며, 처음엔 학자로서 도시 빈민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하지만 나약한 대학교수로서 연구만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1985년 제정구 선배가 정일우 신부와 함께 ‘천주교 도시 빈민회’를 만들었어요. 저는 대학원생들과 빈민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며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상계동에서 철거 깡패들이 대규모로 침입해 아주머니들을 때리고 상처 입히는 광경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빈민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연구가 현실과 유리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제정구 선배도 제게 ‘연구만 하지 말고 단체에 들어오라’고 권유했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뛰기 시작했어요.”

철거 현장 강의



서강대 교수 시절 그는 철거 현장에서 내쫓기는 주민들의 고통과 투쟁을 직접 체험케 한 ‘현장 강의’로 명성을 떨쳤다. 참여 관찰 수업은 주로 대학원에서 진행됐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빈민 지역에 들어가 그곳 주민들의 삶을 관찰했다. 도시 계획과 빈민 문제를 다룬 학생들의 리포트는 생생한 현장을 담고 있기에 더 큰 울림이 있었다.

“한번은 서강대 인근 도화동 재개발 지역의 지원 요청을 받고 학생들과 급히 현장에 달려간 적이 있어요. 그때 철거 깡패 수가 많지 않았어요. 학생들이 건물을 부수려는 포클레인 기사를 끌어내리고 기계를 점령해 성공적으로 철거를 막아낼 수 있었죠. 주민들이 고맙다고 수제비도 만들어주고, 학생들과 막걸리를 먹으며 자축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5년 그는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완전한 한국인이 됐다.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끝까지 한국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박문수’라는 이름은 류장선 예수회 신부(전 서강대 총장)가 지어준 것이다.

“제 이름이 ‘부크마이어’인데 부크마이어(Buchmeier)에서 독일어 ‘Buch’는 책이니까 글월 ‘문(文)’을 썼죠. meier는 책임지는 하인이란 뜻이 있어서 지킬 ‘수(守)’를 가져왔고요. 한국에 ‘북’씨가 없어서 ‘박’씨가 됐어요. 조선시대 정의를 구현했던 암행어사 박문수도 생각나 그 이름을 쓰게 됐어요.”

1987년 천주교 서울교구는 도시빈민사목위원회를 설치했다. 교회가 철거민의 아픔에 동참하며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그는 도시빈민사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개발 지역을 찾아다녔다. 그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 때로는 그들이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돼주었다.

박 신부의 업적 중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독립문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이끈 일이다. 1990년 그는 독립문 지역 철거에 앞서 예수회 신부들과 전세방을 얻어 살면서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한데 힘을 모은 덕분에 200여 가구의 세입자가 무사히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제정구 선배를 비롯해 ‘복음자리’에 머물던 활동가들은 ‘강제 철거가 이뤄질 곳에 미리 들어가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빈민운동은 밖에서 하는 게 아니라, 이웃으로서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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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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