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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⑨

쓰레기더미에서도 장미가 필 것이다, 한국처럼

아홉 번째 르포 : 네팔의 한국인 천사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쓰레기더미에서도 장미가 필 것이다, 한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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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에서도 장미가 필 것이다, 한국처럼

이용만 박사(왼쪽)가 순마야 따망을 진료하고 있다.

열여섯 살인 순마야 따망이 침대에 누워 있다. 그녀도 럭시미처럼 따망족이다. 부족 이름을 성으로 삼는 예가 많다. 네팔은 70개 넘는 부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 생김새가 민족에 따라 제가끔 다르다.

순마야는 산골마을에서 1시간을 걸어 내려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5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호르몬 이상으로 젖가슴이 거대해지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 유방 축소술을 검토 중이라고 이용만 박사는 말했다.

한국-네팔 친선병원이 터 잡은 티미는 인구밀도가 1㎢당 4298명에 달하는데도 3곳의 보건지소와 2곳의 보건소를 제외하면 의료시설이 전무했다. 2009년 4월 이 병원 개원식 때 람 바란 야다브 네팔 대통령이 참석해 원조에 감사를 표했다.

순마야가 병원을 찾은 것은 이번이 난생처음이다. 농구공 크기로 부푼 젖가슴을 내려다보는 표정이 안쓰럽다. 빈혈을 앓고 있는 탓에 혈액도 투여받고 있다.

충만한 삶



이용만 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순마야의 젖가슴을 살펴본다. 정종하(61)씨가 네팔말로 순마야를 위로한다. 정종하씨는 32년간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치료방사선사로 일했다. “슈바이처 같은 분”이라고 그가 이용만 박사를 추어올린다.

이용만 박사가 멋쩍게 웃는다. 그는 돈 잘 버는 개업의였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다 1993년 KOICA 봉사단에 지원해 방글라데시에 둥지를 틀었다. 1997년 네팔 박타풀국립병원으로 옮겼다. 2009년 한국-네팔 친선병원이 개원할 때 이곳으로 왔다.

“처음엔 한국이 그립더군요. 한국에 전화하려면 사흘씩 기다려야 했어요. 지금은 한국에 가면 불편해요.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이용만 박사가 KOICA로부터 받는 활동비는 월 940달러. 50세 넘은 시니어 단원은 940달러, 50세 미만 일반단원은 470달러를 생활비로 받는다. 이용만 박사는 한국을 떠날 때 전 재산을 처분했다. 지갑은 얇지만, 마음은 부유하다.

이용만 박사의 부인 박영례(61)씨는 2002년부터 네팔에서 고아원을 운영한다. 2층 주택을 임차해 고아원을 꾸몄다. ‘자식’ 12명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부부를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따른다. 의사가 되겠단 녀석도 있다.

부부에게 충만한 삶은 그저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다.

KOICA 단원 여섯 명이 한국-네팔 친선병원에서 일한다. 조지훈(31·외과 전문의)·김정현(31·마취과 전문의)씨는 군의관·공중보건의 복무 대신 KOICA 협력의사를 선택했다. 조지훈씨가 말했다.

“외과는 선발인원보다 지원자가 적었어요. 이등병으로 입대해 외교부 소속으로 일하다가 이등병으로 제대하는 형식이에요. 환경이 열악하지만 배우는 게 적지 않아요. 진료 외의 것에서 느끼는 게 많습니다. 아내와 두 살 된 딸도 함께 왔어요. 난방이나 전기 이런 게 아무래도 불편하죠.”

임상병리사 강하나(29)씨가 너스레를 떤다.

“전기 나가면 전 그냥 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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