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작 ‘도시의 사냥꾼’에서 신성일은 미녀 배우 정윤희와 짝을 이뤄 무기력한 중년 지식인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청춘이 떠난 뒤 얻게 된 것
영화 ‘장남’에서 신성일은 고향이 수몰돼 서울의 아들을 찾아온 황정순의 큰 아들로 나온다. 40대 초반의 신성일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빠듯한 살림살이와 중산층이 되기를 열망하기에 불만이 가득한 아내와 아이들, 아파트 생활이 불편한 노모. 그 사이에서 신성일은 무기력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슬픔을 진하게 표현한다. 자신의 일과 가정 때문에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동생들한테 떠맡기기 위해 무더운 서울의 거리를 걷는 피곤한 얼굴의 신성일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걱정 말라’는 배려와 미안해하는 마음, 끊임없이 ‘네가 장남인데’ 하는 장남 타령이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고, 그래서 화가 나고, 동생들의 ‘딱한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맡을 수 없다’는 거절의 말과 함께 ‘큰형이면 큰형답게 알아서 하라’는 듯한 무언의 질책에 화가 난다. 늙은 어머니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걷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어머니의 말에 화를 내고 소리치려다 참고, 자신의 무기력에 화가 치밀어 오르다 참는 그의 연기는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은 과장된 몸짓이나 표정 연기가 아니었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아주 최소한으로만 움직여 주인공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 이듬해 상영된 ‘길소뜸’에서 신성일은 그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역시 무더운 여름. 한눈에 보기에도 고단하고 가난한, 서울 생활에 지치고 지친 중년의 40대가 분명한 신성일이 여의도의 한 방송국 광장에 서 있다. 광장에는 지난 30여 년간 헤어져 살았던 혈육, 또는 친구들을 찾기 위해 쓴 게시물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신성일은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길소뜸에서 전쟁 때문에 헤어진 여자와 아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다. 이미 중년의 여인이 된 김지미다. 그 서먹한 순간. 그 당시 수많은 만남이 있었겠지만, 모두가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적인 만남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지미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제법 성공했지만, 신성일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의 가정을 가난하고 어둡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의 행동을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아내 오미연의 푸념과 질책에 신성일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에게서 등을 돌리고 담배를 피운다. 어두운 방 안에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신성일이 피우는 담배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저렇게 쓴 담배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지미와 신성일은 그들의 아들 한지일을 찾아간다. 시골 어느 변두리의 개장수가 돼 가난에 찌든 험한 인생을 살아온, 천하고 상스럽게 되어버린, 이제 서로의 간격을 결코 좁힐 수 없게 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 한지일과 신성일은 집 뒤편 음지에서 5m 간격을 두고 서로 바라본다. 그들 사이로 매미가 청승맞게 울어댄다. 저 사람이 내 아들이라니, 도저히 인정하기 힘들다. 험한 인생을 살며 망가진 저 사람이 내 아들이라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전쟁 탓으로만 돌리기엔 자신의 죄가 크다. 하지만 아들 한지일을 밑바닥 삶에서 구해내기에 신성일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생활고에 찌들어 있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만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을 아버지의 고통을 축 처진 어깨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 더러운 손수건으로 표현한다. 한때 싱그럽고 사랑의 열정으로 환하게 빛나던 소년이 세월을 겪으면서 몰락하고 몰락해 여기까지 왔다. 주름살이 진 그의 얼굴과 슬쩍 치켜뜨는 눈. 그렇게 그립고 안타까워 찾아 헤맸지만, 신성일은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