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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사상이나 신념보다 중요한 건 죽음 앞에 놓인 사람 구하는 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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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치료의 힘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파업 당시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쌍용차 해고자들은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됐다. 77일간 극단적인 폭력의 공포를 겪다가, 결국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얻어맞으며 끌려나왔다. 이때 육체적 상처보다 깊은 정신적인 내상(內傷)을 입었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라고 여겼던 믿음이 부서진 데서 온 충격은 쉬 회복되지 않는다.

“PTSD는 가벼운 병이 아니에요. 당시 관련자 중 많은 분이 쌍용차라는 말만 들어도, 쌍용차 정문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고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고 고백해요. 나중엔 ‘쌍시옷’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거예요. 지금도 꿈을 꾼대요.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최루탄이 떨어지고, 회사 동료였던 사람이 자기를 향해서 새총을 쏘는 겁니다. 지금 자살뿐 아니라 돌연사, 심장마비 같은 스트레스 질환으로 사망하는 분도 참 많은데 다 젊어요. 몸집 크고 힘도 세요. 그런데 쓰러지는 겁니다. 지금 그들의 상태는 정신적으로 피폭을 당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저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고통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건 ‘도망’이다. 사력을 다해 그때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 가장 친했던 회사 동료, 이웃조차 만나지 않는다. 그러니 정씨를 만날 리도 없다. 3월 초 첫 상담을 하러 평택에 갔을 때 모인 사람은 8명이 전부였다. 상담을 원하는 부인들까지 더해 13명으로 집단 상담 팀을 꾸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인인 MC 김제동은 평택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연예인을 보러 모인 이들에게 정씨는 딱 10분, 심리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가수 박혜경과 자원봉사모임 ‘레몬트리공작단’은 매주 평택에 와서 쌍용차 해고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봉사를 한다. 이때 정씨는 또 10분쯤, 왜 심리치료가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심리 상담 강요가 또 다른 폭력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그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이가 많아졌고, 집단상담장 앞을 서성이며 다른 이들의 상담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도 생겼다. 8주 과정의 첫 코스를 마친 뒤에도 그는 매주 토요일 평택을 찾고 있다. 지금은 2기 팀을 꾸려 오전 10시부터 12시30분까지는 해고 노동자, 오후 2시부터 4시30분까지는 해고 노동자의 아내를 만난다.



“극단적인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게 돼요. 너무나 남루하고 더 이상 초라할 수가 없고, 정말 버러지만도 못하다는… 그런 느낌을 아주 뼛속 깊이 새기게 되지요. 지금 쌍용차 분들이 그래요. 말씀을 나눠보면, 이분들이 죽고 싶다고 하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살 충동과 전혀 달라요.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갖게 마련인 심리적인 긴장, 죽을까 말까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어요. 굳이 살 이유가 없으니,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상태인 거죠. 다들 자기도 모르는 새 넥타이 매듭에 목을 걸고 있거나, 옥상 위에서 뛰어내리려 하다가 깜짝 놀란 경험을 갖고 있어요. 문제는 저한테 그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해고자 중에서는 심리적인 힘이 아주 강한 분들이라는 거죠. 그 말조차 안 하는, 심리 상담 장소에 나타날 생각조차 못하는 나머지 2000여 명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생각하면 아찔할 수밖에요.”

‘와락’ 안아주기 위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정씨는 “성장판이 닫히기 전 아이들은 심리적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평택에서 만난 여섯 살짜리 한 아이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 네 살 때 아빠가 경찰버스에 실려 가는 걸 본 충격 때문이다. ‘레몬트리공작단’에서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가려고 버스를 대절했는데 그 아이는 끝내 못 갔다. 또 다른 한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에도 1년 정도를 옷을 입을 때마다 허리에 무장을 했다. 막대기와 장난감 칼 등을 꽂고, 엄마에게 “내가 나중에 크면 꼭 경찰특공대를 죽여주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이다. “경찰특공대가 잠자고 있을 때 큰 바위로 내리치면 될까”하며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는 아이에게서 심리적인 내상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다섯 살 난 한 아이는 세 살 난 동생을 내내 업고 다닌다. ‘레몬트리공작단’이 도시락을 주면 아빠 것까지 챙긴다. 정씨가 보기엔 그 나이에 벌써 부모를 돌보려 하는 마음, 그 정서도 상처로 인해 생긴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부모는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지죠. 내가 못나서 저런 상처를 입혔구나…. 더 큰 아이들,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의 가출·비행문제도 심각합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거예요. 평택에 사는 사람들, 쌍용차 파업 문제에 연관됐던 사람들이 지금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거죠. 국가 정책이나 노사 문제, 그런 건 제 관심사가 아니에요. 모든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다쳤을 때는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 특히 그런 상처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 경우에는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씨의 바람은 평택에 이 아이들을 ‘와락’ 안아줄 수 있는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세우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 60여 개국에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 PTSD를 치유하기 위한 전문센터가 있다. 파병 군인이나 대량 살상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끔찍한 자연재해를 겪은 사람들, 혹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과도한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공간이다. 우리나라에 그런 공간이 마련된다면 지금 평택에, 아이들을 위해 지어져야 한다는 게 정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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