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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⑧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지리산에서 산야초 차 · 효소 만드는 전문희

  • 김서령 |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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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소는 주로 뭘 넣고 만들어요?

“봄부터 가을까지 산과 들에서 나는 초목들 가운데 뿌리, 순, 잎, 껍질, 열매, 꽃을 100가지 이상 따서 넣지요. 100가지가 들어갔다고 100초 효소라고 불러요. 개복숭아, 버찌, 오디, 으름, 산사과, 돌배 같은 산열매와 여러 가지 꽃이 들어가야 맛이 좋아져요.”

그의 직업은 이제 차와 효소를 만드는 사람이다. 첨엔 그저 산이 좋아 헤매면서 산야초를 뜯었다. 산에 살다보니 아는 스님도 많아 전통 제다법을 배워 손으로 공들여 차를 덖었다.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차를 대접하고 선물도 했더니 거기 들인 막대한 공을 아는 이들이 찻값을 놓고 갔다. 그게 규모가 차츰 커져버렸다. (오래 숙성 발효시켜야 하는 효소는 아직 판매하지 않는다.)

▼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요?

“산청에 터 잡고 산 지도 인제 8년이 됐네요. 남원골, 뱀사골, 피아골, 화개골, 구례까지 지리산 구석구석을 옮겨 다니며 살았거든요.”



▼ 왜 그렇게 옮겨 다녀요?

“내가 원래 바람 같은 사람이니께. 같은 지리산이라도 골짜기마다 그 느낌과 기운이 달라요. 꽃피는 시기와 겨울이 찾아오는 시기도 다르고 골짜기에 따라 사람들 성정과 사는 방식도 쪼깨씩 다 차이가 있더만요. 골마다 계곡마다 나무도 다르고 깃들여 사는 짐승도 다 다르당게로! 무슨 나무, 어떤 바위가 어디에 사는지 인제는 훤하게 다 꿰고 있제요. 고라니, 노루, 토끼, 오소리, 뱀, 벌, 나비, 멧돼지들은 가는 곳마다 만나요. 짐승들도 자주 보니까 이제는 식구 같아요. 처음에는 겁도 먹고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위나 고라니가 그저 지리산에 깃들여 사는 나랑 똑같은 생명으로 보이제요.”

바위도 생명이다

바위도 생명으로 보이다니 이런 도를 통한 사람을 봤나. 눈감은 내 곁에서 그가 자신의 책을 낭독한다. 책 속에 노래가사가 나오자 낮은 음성으로 노래를 한다.

“어릴 때 업어주시던 어머님 모습/ 달처럼 곱던 그 모습/ 지금은 사라졌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눈물이 솟을 것 같은 노래다. 이렇게 편안한 자세의, 그러면서 마음이 북받치는 인터뷰는 처음이다.

▼ 7남매 가운데 유복자로 태어났다면서요? 어머니가 행상을 하셨어요?

“예. 갱엿을 만들어 함지에 이고 팔러 다니셨어요. 시골 장날이면 장에 가는 어머니를 몰래 따라 나섰거든요. 어머니는 짐도 많은데 데려가기가 번거로우니까 집이나 보라고 자꾸 나를 쫓았제요. 내가 쉽게 포기하나요? 팥죽이나 아이스께끼 하나라도 얻어먹을 욕심으로 엄마 뒤를 몰래 살금살금 쫓아가지요. ‘이 호랭이 물어갈 년아! 에미 애간장 그만 녹이고 얼릉 집에 가그라.’ 엄마는 나를 쫓으려고 돌멩이를 던지고 나는 돌멩이에 발목을 맞고 펄쩍펄쩍 뛰면서 울고….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땐 틈만 나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어요. 맞춤법이 엉망인 구어체 문장으로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셨어요. 그 답장이 어떤 세련된 글보다 나를 감동시켰지요. 사람이 평생 변하지 않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목소리고 다른 하나는 성정이란다. 그런 말씀도 하시면서 내게 세상 사는 도리를 가르치려고 애쓰셨지요.”

그랬던 어머니가 덜컥 임파선 세포 상피암이라는 병이 나셨다. 열세 시간 수술을 마치고 입원 6개월 만에 퇴원을 했는데 반년도 되지 않아 잇몸에 다시 종양이 생긴 게 발견되었다. 종양을 떼어내자 미음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때 형제들에게 선언을 했어요. 어머니는 내가 맡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전라도 장흥 산골로 내려갔지요.”

산에서 살게 된 이유가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다. 열아홉에 아버지를 만나 서른셋에 홀몸이 되어 갱엿 함지를 이고 7남매를 손색없이 키워내신 어머니셨다. 전문희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마론핸즈라는 인테리어 가구 업체였고 한창 날개 돋친 듯 제품이 팔려나가는 중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열정을 쏟았던 사업을 접었다.

“어머니를 살려보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필사적으로 자연치료 공부에 매달렸네요. 책 들고 다니며 암에 좋다는 약초를 캐러 남도에 있는 큰 산은 거의 다 헤집고 다녔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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