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 주류는 이상득-박영준-이재오-정두언 4인 체제 성격이었다. 사실 이들 간 카르텔은 2007년 대선 승리 직후부터 일찌감치 붕괴 조짐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첫 조각(組閣)과 청와대 참모진 구성,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싸고 이들 이너서클은 극심한 헤게모니 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이 대통령 취임 불과 1개월 만에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18대 총선 공천에 반대하는 ‘55인 반란’이 일어났다. 취임 4개월 만에 친이계 핵심 정두언 의원이 이상득 의원과 이 의원의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 대해 ‘권력 사유화’ 직격탄을 날려 여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후 이재오 현 특임장관의 자의반 타의반 미국행, 이상득 의원의 정치 2선 후퇴 선언, 박 전 차관을 겨냥한 영포게이트 파동 등 이상득-이재오-정두언 간 서로 물고 물리는 권력투쟁의 부산물이 쏟아졌다. 친이계는 집권 4년차를 맞은 올해 들어 구심력을 잃고 자멸하다시피 하고 있다. 4·27 재·보선, 6·5 원내대표 경선, 7·4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는 전패했다. 속으로 곪아왔던 상처가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득-박영준-이재오-정두언 4인 체제
이재오 장관이 당으로 복귀하면 친이계가 복원될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내년 19대 총선에서 살아남는 게 지상과제인 친이계 의원 상당수는 공천과 당선에 유리하다면 계파 같은 것은 언제든 버릴 태세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친이계와 친박(친박근혜 전 대표)계가 대립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말한다.
정권 창출의 주역인 친이계 핵심 3인도 마찬가지다. 총선 공천 등 정치생명을 건 마지막 혈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55인 선상반란’을 주도했던 정두언 의원이 이번에도 선제적으로 내부 암투의 장을 열어젖히고 있다.
정 의원은 ‘탈(脫)MB’를 선언한 상태다. 2010년 6월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 출마하면서 “이제 이명박 정치에서 나와서 정두언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후 ‘MB맨’에서 ‘MB 저격수’로 변신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주군이던 이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쏟아낸다.
“현안마다 장관 목소리는 없고 대통령 얘기만 있다”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잘못한 것에 대해 승복하지 않아서 그 부담을 당이 다 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최근의 민심은 노무현 정부 말기와 거의 같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문제점을 한마디로 말하면 민심 무시다.”
이런 정 의원에게 총선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 최근 당직 인선에서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은 것이다. 여의도연구소는 총선 공천을 앞두고 각 선거구의 여론을 수렴하면서 전반적인 선거전략을 짜는 곳으로, 공천심사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의도연구소는 현역 의원 지지도 등 ‘교체지수’를 살피기 위해 올 12월과 내년 1월쯤 지역구별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유력하던 친박계 최경환 의원을 제치고 정 의원이 이 자리를 맡은 것은 ‘탈계파’를 선언한 홍준표 대표와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칼자루의 일부를 쥐게 되자 당장 ‘공천 물갈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그는 8월7일 트위터에서 “친서민 정책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친서민 정책을 안 써서가 아니라 전혀 친서민이 아닌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며 “정부·여당이 친서민으로 가려면 정체도 모를 정체성이나 따지며 실은 뒤에서 대기업 옹호하는 사람들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