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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어떤 타락한 청년의 초상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벨아미, 어떤 타락한 청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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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뒤루아는 모파상의 분신으로 작가의 숨길 수 없는 기질과 사생활을 반영한다. 개인의 이력, 특히 여성 편력을 그대로 풀어놓을 경우 자칫 삼류 소설로 전락할 수도 있을 여지가 있지만, 모파상은 다행히 외삼촌이나 어머니와 친분이 각별했던 플로베르로부터 일찍이 철저하게 소설 수업을 받은 덕분에 통찰력이 돋보이는 문장과 인물의 형상화로 하나의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번에 번역 소개된 ‘벨아미’는 2년 먼저 발표된 ‘어떤 인생’(한국어 번역으로 소개된 바로는 ‘여자의 일생’, 1883)과 함께 모파상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주목을 요한다.

‘어떤 인생’이 모파상이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노르망디의 해안가 마을 에트르타를 무대로 잔느라는 한 여자의 꿈과 결혼, 그리고 슬픔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나갔다면, ‘벨아미’는 조르주 뒤루아라는 잘생긴 청년의 3년간에 걸친 파리 여성 편력기이자 출세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그리는 갈피마다 작가의 실제 여성 편력 경험이 유감없이 발휘돼 탄복을 자아낸다.

더불어 이 소설에서 주목할 대목은, 부르주아 시민사회 세력의 성장과 자본력의 팽창으로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던 1880년대 신문 및 잡지 매체에 대한 모파상의 스케치다.

두 친구(주인공 뒤루아와 그의 옛 군대 동료 포레스티에/필자 주)는 푸아소니에르 대로의 커다란 유리문 앞에 이르렀다. 유리 뒤쪽으로 신문을 펼쳐 양면이 보이게 붙여놓았고, 세 명이 서서 읽고 있었다. 문 위쪽으로 흡사 무슨 구호를 걸어놓은 것처럼 가슴 불꽃으로 ‘라 비 프랑세즈’(프랑스의 삶)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번쩍거리는 이 세 단어가 던지는 빛을 받아 한순간 대낮처럼 환한 빛 속에 선명하고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방 안에는 편집실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냄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떠다녔다. 뒤루아는 약간 기가 죽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놀라워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 모파상, 앞의 책 중에서



20세기 초 더블린의 제임스 조이스가 광고쟁이 주인공 레오폴트 볼름을 내세워 1904년 6월16일 더블린에서의 하루 방랑(스케치)이라는 고현학적 소설 쓰기의 획기적인 창작 방법론을 내놓기 전, 또한 조이스의 흔적을 좇아 우리의 박태원이 도쿄 유학생 출신의 고등 룸펜 구보씨를 앞세워 1930년대 식민지 수도 경성의 이모저모를 대학노트에 스케치하기 훨씬 전, 모파상은 19세기 세계의 지적(知的) 수도(首都) 파리와 유럽 각지에서 출세의 꿈을 안고 파리로 몰려든 인간 군상의 욕망과 허위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뒤루아는 모파상이 즐겨 사용하는 카메라 포커스 기법 중에 포착된 인물로, 오직 수려한 외모 하나로 귀족 계급을 획득하는데, 처음 소설에 등장할 때의 이름은 조르주 뒤루아. 그러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의 이름에는 프랑스에서 귀족의 칭호로 쓰이는 드(de)가 붙여져 조르주 뒤 루아가 되고(뒤 루아의 뒤는 프랑스어의 de와 la의 합성), 끝날 즈음에는 드 마렐 부인과의 재혼으로 ‘뒤 루아 드 캉텔 남작’이 된다.

밖으로 나오니 성당 앞에도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바로 그를, 조르주 뒤 루아를 보려고 군중들이 시커멓게 몰려와 시끌벅적하게 모여 있었다. 파리 사람들 모두가 그를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 뒤 루아는 양쪽으로 울타리처럼 둘러싼 구경꾼들 사이로 긴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과거로 돌아가 있었고, 햇빛에 부신 눈에는 거울 앞에 앉아 관자놀이 위의 곱슬머리를 매만지던 드 마렐 부인의 모습만이 아른거렸다. - 모파상, 앞의 책 중에서

모파상의 소설은 19세기 말 근대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 놓인 인간 군상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주인공은 순수가치가 자본의 교환가치에 의해 훼손되는, 곧 타락해가는 행로를 고스란히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설이 한 편의 문학(예술) 작품인 이상,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식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의 성패야말로 지난 세기까지, 소설이 사회학을 넘어 진정한 문학 작품으로 생명력을 획득하는 관건으로 작용한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운 구현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완벽한 소설로 평가받는 ‘마담 보바리’가 작품의 속성 한가운데에 통속성을 거느리고 있는 이유, 그 옆에 ‘벨아미’가 타락한 어떤 청년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유를 초가을 혼잡한 저잣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해볼 일이다.

신동아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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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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