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서울 출생<br>●서울대 법대 졸업<br>●1996년 사법시험 합격<br>●2000년 변호사 개업<br>●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br>●2008년 18대 국회의원<br>●현 민주노동당 대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좋은 시다.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라는 구절이 바람처럼 가슴을 휘저어놓는다.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라는 대목에선 가슴이 미어진다. 다들 그렇게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정희(42)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 시를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즐겨 읽었다고 했다. 20대 중반 사법시험 공부할 때도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되게 막막했어요.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5년, 10년씩 공부하다가 포기하는 분 많잖아요. 그런 길을 걷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그러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막막함이 있었어요. 그때 자주 읽었죠. 위안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대표에게 사전에 보낸 질문지엔 정치 관련 질문이 많았다. 왜 종북(從北)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북한을 감싸는지, 안 맞을 것 같은 유시민씨의 국민참여당과 합치려는 이유가 뭔지, 범야권 통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익과 관련해서는 현 정권에 협조할 생각이 없는지…. 의무방어전 같은 이런 공식 질문을 한 다음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본다는 게 애초의 구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정치적 견해보다 삶을 더 궁금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발머리의 앳된 여고생 이미지와 국회에서 거칠게 싸우는 투사 이미지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거리감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삶의 우연성에 대한 고민
그녀는 서울 토박이다. 봉천동에서 태어나 남현동, 사당동, 신림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충북 청원이 고향인 부친이 청년 시절 상경해 자리 잡은 곳이 그 일대였다. 아버지는 30세 때부터 두부를 만들었다. 처음엔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나중엔 손수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았다. 당시 아버지의 두부 배달 수단은 자전거였다. 자전거 뒤쪽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나무판이 있었다. 어린 딸은 달리는 자전거의 나무판에 올라타 있을 때 마냥 행복했다. 아버지는 지금도 두부 장사를 한다. 공장을 운영하는데, 그녀 말로는 “수금에 허덕이는” 영세한 규모다.
그녀의 집안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편도 아니었다.
“대학 갈 때까지 냉면을 먹은 적이 없어요. 부모님이 일하느라 바빠 외식이나 노는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지요. 그런데 책은 많이 사주셨어요. 친구들이 과외하는 걸 보고 고민했는데 다행히 중학교 때 과외가 없어졌어요. 그 덕에 서울대 갔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