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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대중교통 사각지대에 갇힌 택시 24시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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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액관리제 도입한 택시회사 10% 미만

▼ 사납금 내고 집에는 얼마나 갖다주나요.

“주간근무 때는 1만~2만원, 야간근무 때는 4만~5만원을 갖다줘요. 손님이 어디서 많이 타는지, 어느 시간대에 많은지를 알면 한 달에 150만원은 벌더라고요. 딱 한 번 250만원까지 벌어봤는데 그 정도 벌려면 식사도 생리현상도 제때 해결할 수 없어요. 하지만 사납금을 못 채우거나 회사가 임금을 부당하게 깎아 60만~70만원을 버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해도 처우는 막노동꾼만도 못하죠.”

그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지난해 10월까지 서울 강동구에 있는 D택시회사에 다닌 이관수씨는 “사납금을 다 채워도 회사에서는 70여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벌이가 괜찮은 달에도 월수입이 80만~90만원 수준이었다. 2009년 12월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21일밖에 일하지 못했더니 198만원을 입금하고도 급여로 22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D사는 사납금을 받지 못하는 일요일에는 도급 방식으로 택시를 1만9000원에 빌려준다고 한다. 문제는 기사가 일요일에 차량을 빌리든 안 빌리든 4주치 차량 대여료가 ‘기타공제’ 명목으로 급여에서 공제된다는 점이다. 이씨는 D사가 전액관리제 시행 법규를 위반하고 임금과 부가가치세 환급금 등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행위에 대해 서울시에 진정을 냈다. 하지만 문제가 시정되기는커녕 도리어 그가 쫓겨났다. 그는 “민원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200만~30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문제 있는 기사로 낙인찍혀 다른 회사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았다. 4개월 전 경비원으로 취직했는데 택시를 몰 때보다 월급도 더 많고 몸과 마음도 훨씬 편하다”고 털어놨다.



이쯤에서 ‘전액관리제’가 뭔지 살펴보자. 전액관리제는 기사가 번 돈을 회사에 몽땅 입금하고 회사는 그 대가로 납입 총액의 50% 이상을 급여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회사는 이밖에도 연료비 전액과 차량수리, 사고처리까지 지원한다.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세금과 4대 보험료도 많이 내야 하지만 그만큼 더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한 주 근무일수는 대체로 5일을 기본으로 한다.

현행법에서는 택시회사의 운영방식으로 전액관리제만을 허용하고 있다. 전액관리제는 택시업계에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사납금제의 병폐를 없애고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1997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내 250여 개 택시운수회사 가운데 전액관리제를 실시하는 회사는 10% 미만이다. 전액관리제 실시는 선택조항이나 권고조항이 아니다. 법으로 정해 무조건 따르도록 한 강제조항이다. 그런데도 진전이 없는 건 왜일까.

“전국 택시운수회사의 90% 이상이 사납금제로 운영돼요. 전액관리제를 실시하면 회사는 모든 운영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수익이 줄어드니까 위법인 줄 알면서도 사납금제도를 버리지 못하는 거죠. 사납금제를 유지하면 기사가 나가서 열심히 하든 안 하든, 경기가 좋든 나쁘든 매일 같은 금액이 들어오니까 회사로선 손해날 게 없거든요. 대신 기사는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하죠. 몸이 아파도 손님이 없어도 어떻게든 사납금을 맞춰야 하니까요.”

사납금을 채우려면 목 좋은 곳을 많이 알아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택시는 버스나 지하철과 달리 승객을 찾아다녀야 한다. 대부분의 승객이 정류장을 이용하지 않고 도로변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기 때문이다.

“주간에는 주로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나 시청 근처 파이낸스빌딩, 강남파이낸스센터 앞에 서 있어요. 업무상 멀리 가는 분이 많거든요. 밤 9시가 넘으면 술집 밀집지역으로 가요. 강남역과 종로 일대, 여의도, 영등포, 홍대 앞, 신사역이 그런 곳이죠.”

그와 함께한 9시간 동안 차에 오른 승객은 모두 10명. 도로가 붐비는 퇴근시간대에 탄 승객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담담하게 기다리거나, 아니면 길이 막히는데도 빨리 가자고 막무가내로 보채거나. 승객 일부는 취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택시 안 청문회’의 도마에 오른 건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 정부의 부동산 대책, 수도권 지하철 문제, 청년실업, 저축은행 부실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이었다.

“택시 안에도 CCTV 필요”

황씨는 어떤 손님을 만나든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도로변에서 손 흔드는 사람을 지나쳤을 때도 미련을 갖지 않았다.

“어느 택시를 타느냐는 승객 마음이에요. 내가 지나쳤다면 그분은 내 인연이 아닌 거죠. 요즘은 세상이 하도 험하니까 기사의 외모를 살펴보고 타는 승객도 적지 않아요. 인상이 험상궂으면 아무래도 꺼려지겠죠.”

▼ 인상이 험악한 손님을 만나면 어떤가요.

“무섭죠. 한번은 여의도에서 덩치가 산만한 운동선수 4명을 태웠어요. 경기도 부천시로 가자는 걸 안 된다고 했죠. 서울 택시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 대해선 승차를 거부할 수 있거든요. 그럼 오류역까지 가자고 하더니 뒤에서 육두문자를 퍼붓더라고요. 그래도 대꾸 안 하고 운전만 했죠. 앞에 탄 승객이 부천 가자고 얼렀지만 거절하고 내려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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