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노란 은행잎이 길을 포근히 덮은 11월 초,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KESCO) 사장은 여직원 12명과 사옥 앞을 걸었다. 근처 메밀국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공원 벤치에 둘러앉았다. 여직원 한 명이 “사장님, 시 한 수 읊어주세요” 했다. 박 사장은 멋쩍게 웃으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읊었다. 박수를 치던 여직원 한 명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그거 ‘작업’하실 때 외우신 시 아니에요?”
6월1일 박철곤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KESCO 14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후 150일을 가까이서 지켜본 조민현 홍보실장은 “‘총리실 해결사’라는 별명답게 일을 할 때는 철두철미하면서도 일선 직원에게까지 마음을 쓰는 열린 CEO”라고 평가했다. 박 사장은 취임식 직후 사무실을 돌면서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은 직원들을 일일이 찾아내 악수를 건넸다. 그는 종종 직원들과 ‘번개 맥주모임’을 갖고 밤낚시도 함께 간다.
11월3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KESCO 집무실을 찾았다. 박 사장은 그 주 주말에 KESCO가 주최하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에서 어떤 시를 낭독할지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낭만 CEO’, 박철곤 사장이 구상하는 KESCO의 큰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박 사장은 전북 진안 출신으로 부산진고교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다니다 한양대 행정학과에 편입했다. 졸업과 동시에 행정고시 25회에 합격해 27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국무조정실 복지노동심의관, 총괄심의관, 심사평가조정관, 규제개혁조정관과 국무차장 등을 거쳐 2009년 2월 퇴임했다.
퇴임 이후 KESCO 사장에 임명되기까지 2년4개월 동안, 그는 한양대에서 특임교수직을 맡았다. 그간의 생활에 대해 물으니 그가 “백수에도 네 가지 등급이 있는 것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에 따르면 은퇴한 후 밥 먹자는 전화도 많이 오고 같이 골프 치자는 사람이 있으면 ‘화백(화려한 백수)’, 점점 부르는 사람이 줄어들고 의기소침해지면 ‘준백(준수한 백수)’, 찾아가도 사람들이 잘 안 만나주면 ‘불백(불쌍한 백수)’이다.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 하도 빈둥거려 아내도 귀찮아하는 백수는 ‘마포불백(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이란다. 그는 “다행히 2년 반 동안 ‘화백’으로 지냈다. 아내도 ‘어째 차관 그만뒀는데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이렇게 없느냐’고 희한해했을 정도”라며 웃었다.
총리실 과장 시절, 청와대 수석 찾아가 담판
박 사장은 25년 총리실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은 업무로 1997년 직업교육훈련촉진법자격기본법 등 ‘신(新) 직업법 3법’을 제정한 일을 꼽았다. 그는 15년 가까이 지난 일을 완벽히 기억하고 있었다. 날짜, 시간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타고난 ‘스토리텔러(storyteller)’였다.
당시 학교 교육과 산업 현장에 간극이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기업에 들어가도 산업 현장에 배치하기까지 별도 교육이 필요한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전제하에, 산업현장의 인력 수요와 학교 교육을 잇는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이해당사자인 교육부와 노동부가 힘을 겨루느라, 합의점을 못 찾고 있었다. 그때 박철곤 당시 국무총리실 교육정책과장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