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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박원순·노무현과의 만남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박원순·노무현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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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이라는 자리

박원순·노무현과의 만남

2006년 10월 안경환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인권위 위원장 임명장을 받고 있다.

조 변호사는 1988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뒷마무리에 관여해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기인 1986년 6월 일어난 성고문의 주범이었던 문귀동은 1987년 시민항쟁의 결과로 기소된다. 대법원은 불기소처분에 대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재정신청을 받아들인다. 인천지방법원은 검사 역을 맡을 변호사를 구해야 했고, 조영황은 자신의 표현대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그 역할을 맡았다. 대부분의 ‘인권변호사’가 원심에 관여했기에 검사 역을 수행할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변협 지도부의 호소와 간청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맡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는 문귀동의 유죄판결을 얻어냈다.

그러나 조영황 위원장도 1년6개월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는 게 후일 필자에게 털어놓은 그의 고백이다. 처음부터 그는 인권위원장 자리에 애착이 없었다. 전문지식과 경험도 모자란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당초 그는 인권위원장을 비교적 한가한 ‘비상근’ 정도의 자리로 기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취임해보니 거의 매일 언론과 시민단체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각기 입장이 다르고 개성 강한 위원들의 성가신 주문과 공격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참여정부에 기용되기 전 이미 은퇴해 향리에서 군법원의 판사로 근무하며 순박한 촌로를 자처한 그였다. 그런 그가 연일 부대끼다보니 지병도 도졌다. 버티다 못해 어느 날 ‘느닷없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노무현 대통령도 기관으로서 인권위를 크게 중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정치철학과 노선이 같은 전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설립됐고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자신의 경력과 이상에도 부합하는 기관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대의와는 무관하게 인권위는 성가신 존재였고 따라서 때때로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위의 불평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심혈을 기울였던 교육전산망(NEIS)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다는 의견을 인권위가 공개적으로 표명하자 대통령은 크게 노했다고 한다. 또한 인권위를 주도하는 인물들이 선배 법조인이라는 사실에 심리적인 불편함도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노 대통령에게 인권위원장은 자신의 측근을 앉힐 정도로 중요한 자리는 아니었다.



현재까지 위원장에 임명된 다섯 사람 모두 법률가라는 사실은 인권위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물론 법률가 출신 인권 수장은 장점이 크다. 선진국을 봐도 법률가가 인권전문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직 대법원장 중 인권위원장을 임명하도록 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와 정서가 확대되면 검찰이 바로 인권옹호기관이고 법무부가 인권업무를 총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비약할 수 있다. 인권은 법의 문제이지만, 법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단체, 노조지도자, 언론인, 성직자, 정치가, 외교관 출신도 인권위원장이 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만 한다.

갈라진 세상

2009년 6월30일, 인권위 위원장 3년 임기를 몇 달 남기고 나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종전의 교수생활로 즉시 복귀할 것으로 기대했다. 자유롭게 읽고 쓰고 말하는 교수의 특권을 되찾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정부에 동원된 3년 정도야 짧은 시간이 아니겠느냐? 떠나는 순간 뒤돌아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도 했다. 젊은 시절의 군대 생활처럼 되돌아보지 말자. 내가 잊으면 세상도 나를 잊을 것이다. 이렇게 다짐하면서도 나는 언젠가는 인권위 시절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요량으로 약간의 메모를 해두고 있었다. 실제로 쓰는 일은 한참 후의 일로 예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다짐해도 헛된 일이었다. 세상은 나의 다른 측면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전직 인권위원장, 이명박 대통령과 ‘맞짱 뜬’ 투사로 기억하고 끊임없이 그 사실을 환기시켰다. 갈라진 세상의 인심과 정서가 고스란히 나의 일상에 투영됐다.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인류보편의 가치”라는 내 믿음과 주장은 양쪽에서 다 배척받았다. 종전에는 그처럼 빈번하게 들어와서 사양하기에 바빴던 주요 언론의 기고 요청과 대학 및 기관들의 강연 요청도 딱 끊어졌다. 나의 과민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한 일도 더러 일어났다. 출국수속을 하러 공항에 나갔다가 비로소 유효기간이 한참 남은 내 여권이 나도 모르게 ‘직권말소’된 사실을 알게 된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내 스스로 인권위와 정서적으로 완전히 절연하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재임 중 기구가 축소되는 수모를 겪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자괴감이 나를 심히 괴롭혔다.

지난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주위의 요청에 따라 박원순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오랜 세월에 걸친 그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후 나도 박원순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운동의 표적이 됐다. 젊을 때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정치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거나, 박사학위도 없이 박사 행세를 한다거나 등등의 인신공격이었다. 정년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꾸할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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