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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인권위원장 취임과 곽노현과의 인연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②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인권위원장 취임과 곽노현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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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해, 흑색선전 난무하는 정치의 고단함
  • ● 야당·정부부처·인권단체에 둘러싸인 동네북 인권위
  • ● 독립기관 인권위원장의 이유 있는 ‘오만’
  • ● 서울대 법대 72학번의 리더, 6년 후배 곽노현
인권위원장 취임과 곽노현과의 인연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은 2006년 제24대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당시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총장후보 대상자 소견 발표회에 참석한 모습.(왼쪽에서 두 번째)

인권위원장직 제의를 받고 며칠 생각할 말미를 달라고 했다. 고민하다 몇몇 가까운 지인과 상의했다. 모두 한결같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는 이미 본부의 기획실장과 법대학장을 지낸 터라 더 이상 할 일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해 봄 총장선거에서 낙선했고 4년 후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선거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학 총장 선거도 정치인의 선거와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 자신의 역랑도 역량이려니와 유권자의 표를 구걸하며 매달려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상식인데도 그 상식이 내게는 체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선된 이장무 총장이 부총장직을 제의했지만 사양했다. 대신 서울대의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는 위원회를 맡기로 했다. 선출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총장이 되면 실현하고 싶던 내 이상의 일부라도 계획 속에 반영하고 싶었다. 10년 전에도 총장의 측근, 기획실장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서울대인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살리면서도 특권의식은 불식하는, 그런 정신자세가 필요했다. 그러나 양자를 나누는 것도 결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위원회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인권위원장 제의를 받았다. 법조개혁과 인권을 강조해온 나의 행보를 감안하면 인권위원장 직책은 매우 적격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물론 가족과도 상의했다. 갖가지 일상의 불편함이 따를 터이니 각오해야 한다는 다짐도 했다. 마침내 인사검증동의서에 서명할 것에 동의했다.

내가 경합자 없는 단독 후보라는 언질을 받았지만 청와대 내부의 인사검증과정에서 불편한 일도 있었다. 나의 집안 내력과 사생활에 관해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언짢아하면서 후보 사퇴의 뜻을 밝히자 이내 사과하면서 물러섰다. 나를 이미 내정했기에 호의를 갖고 넘겨준 일도 있을 것이다.

아내를 폭행하는 위선자

그런데 나한테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실로 황당한 일이 있었다. 내가 술을 마시면 상습적으로 아내를 구타한다는 제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인권위원장으로서는 치명적인 결격사유다. 설령 익명의 제보라고 해도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중대한 사안이었다. 서울대 법대 학장 재직 중에 역사상 최초로 여성교수를 채용해 여성단체연합회의 상까지 받았던 페미니스트 법학자의 위선적인 사생활! 실로 주간지 기삿거리다. 스치듯 지나가는 말이 아니고 여러 차례, 그것도 집요하게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진원지가 어디인지 후일에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는 기막혀 했다. 이런 걸 보면 한동안 공공연한 사실처럼 떠돌던, 모 정치인이 아내를 폭행한다는 풍문도 믿을 수 없겠다고 했다. 정식 청문회 자리에서라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기야 총장 선거 과정에서도 구구한 네거티브성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그해 초 ‘조영래 평전’이 출간되자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반정부, 운동권 인사였던 조영래를 추모하는 책을 낸 것이 곧바로 내가 좌파라는 증거라고 규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를 잘 모르는 의대, 치대, 공대에서는 내가 노무현의 측근이라는 소문이 횡행했다고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중·고등학교를 장악했듯 좌파 정부가 나를 앞세워 서울대를 장악하려 한다는 괴담이 돌았다. 내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회원인 것과 직원들 사이에서 비교적 평판이 좋았던 점도 서울대 교수 사회 주류의 분위기에서는 감표 요인이 됐다.

이후 서울대 총장 선거에 떨어지자 즉시 인권위원장에 임명된 것을 보면 소문이 사실이었다며 소급해 확신을 다진 사람도 있었다. 또한 평전 내용에 불만을 가진 유족이 법정소송을 고려한다는 신문기사가 나간 터라 나의 도덕성 내지는 인화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도 돌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이 싫거나 자리를 두고 경쟁하면 별별 이야기를 던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정부의 모든 자리에는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정권 탄생에 기여했거나, 자신이 그랬다고 믿는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바란다. 또한 세력권 밖에 있던 사람이 자리에 ‘밀고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자리에서 떠나기를 기다리는 내부인이 많다. 정무직은 대체로 그런 것 같다.

내가 참여정부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성향임을 내세워 반대한 청와대 인사도 있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나의 인권위원장 임명은 일종의 타협책이었을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고위직 인사를 할 때마다 야당과 언론의 시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라당도 심하게 반대하지 않을 사람을 구했고, 차선으로 나를 택했을 것이다. 부차적으로 학자출신 인사에게 으레 문제되는 논문 표절이나 연구비 부적정 사용 등의 잡음 소지가 없을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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