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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다큐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고 스커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

1920년대 서울

  • 박윤석│unomonoo@gmail.com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고 스커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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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1929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고 스커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
올 연말 서울에서는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경찰서를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보내져 경성지방법원의 검사와 판사의 손에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전국으로 우송된 격문 중 일부가 신문사로 보내진 것도 경찰은 문제 삼고 있다고 한다. ‘조선에 자유 있거라, 조선에 행복 있거라.’ 독자에게 보내는 신년인사가 신문 한 귀퉁이에 실려 있다.

한림은 편집국 문을 밀고 나가 어두운 복도를 건너 계단 입구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나무 격자에 세로 두 줄로 사단씩 끼운 정방형의 창틀 너머로 북악과 북한산이 가득 펼쳐진다. 그 연봉들 위로 습기 가신 겨울의 하늘이 암청색 막판 빛을 떨어뜨리고 그 아래 경복궁, 총독부 그리고 태평통 거리가 인왕산 넘어가는 낙조를 반사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북향인 이 화장실의 시야를 한림은 좋아한다. 거세지는 서북풍에 유리창은 가볍게 떨고 있다. 기온은 이제 떨어지고 있다.

어디로 갈까. 실내에도 거리에도 발길이 분주하다. 남이 자는 시각 밤을 새웠지만 한림은 해 기울어도 남들처럼 서둘러 가야 할 어디가 없다. 어두운 하숙집 골방 낮은 미닫이문 드륵 소리 내고 들어가 냉기 가득한 허공에 팔 저어 십 촉 전구 켜는 일은 오늘 싫다. 식구란 무엇인가…. 이웃은 무엇이며 민족은 또 무엇인가. 결혼하고 가정 꾸려 줄줄이 자식 생산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독립운동 하러 떠난 사람들은 가족도 버리고 가는 용기가 우러러 보이고, 여기서 식구와 엎드려 사는 사람들은 그 끈기가 존경스럽다.

창문 아래 태평통 네거리 비각(碑閣) 앞길에 한림 또래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어깻죽지 늘어뜨린 채 망연히 서 있다. 땅바닥에 쓰러진 쌀 봉지를 바라보는 그의 낯빛은 불콰한 듯 흙빛이다. 일찌감치 취한 석양 술에 쌀 한 봉지 사들고 귀갓길에 오르다 그만 놓쳐버린 모양이다. 흩어진 쌀알들이 칙칙한 포장도로 위에 희게 빛나고 옆으로 행인들이 종종걸음으로 지나친다.



계단을 내려서며 한림은 처음 이 계단을 올라오던 3년 전을 떠올린다. 이전에 신문사는 저 경복궁 동쪽 북촌 구석에 단층 한옥 두어 채를 이어붙인 집이었다.

현관을 나서는데 수위가 쪽지를 건넨다.

- adiau 1929

만년필 펜촉에 남색 잉크로 씌어 있는 낯익은 글씨다. 잘 가라 1929년. 그런 뜻이다. 유행이 식지 않는 에스페란토다. 아듀, 혹은 아디오스 같은 유럽어의 변형인데 아디아우-라 발음한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막연하고 긴 이별, 사전 풀이는 그렇게 전한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

종로 네거리에 해가  저물고 스커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

1920년대 사진기자들. 경성지방법원에서 독립운동 인사들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옛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했다. 내 생명은 폐허로부터 온다,”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양대 거성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구에서 따왔다는 폐허(廢墟)라는 이름의 동인지에 안서(岸曙) 김억(金億)이 자작시 폐허(Ruino)를 에스페란토로 써 발표한 것이 1920년이다. 10년 가까운 보급으로 이제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도 아디아우,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 정도가 되었다. 에스페란토 강습소를 만든 기자 김억 외에도 편집국장 이광수와 기자 박헌영은 신문의 에스페란토 강좌란에 기여했고, 옛 편집국장 홍명희는 자기 호를 에스페란토의 선구라는 의미를 담아 벽초(碧初)라 지었다 한다.

한때 이 만국어를 구국운동의 진보적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에스페란토를 제2 국어로 하자는 여론이 일본 일각에서 일어났을 정도였다. 조선의 신문과 방송은 새로운 문화로서 에스페란토 강좌를 실시해왔다. 일어와 영어와 한어가 비슷한 세력 균형을 보이는 조선에서 에스페란토는 새 희망과도 같은 신비한 색채로 다가왔다. 마치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가 그러했듯이.

한 10년 위력을 발휘한 사회주의운동이 정점을 지나는 듯 보이는 것처럼 에스페란토의 인기도 전만은 못해 보인다. 에스페란토 이니셜을 따 카프(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 부르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이 힘을 잃어가는 모습도 에스페란토와 닮았다. 조선공산당이 창건되던 1925년 카프 결성을 주도한 박영희(朴英熙)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지도적 지위에서 내려서면서 요즘 카프 활동에 회의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올해 카프의 동경(東京)지부에서는 임화(林和)가 주동이 되어 ‘당(黨)의 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주도권을 거둬갔다.

“항상 프로예술운동에 대해서 비관과 탄식만 하고 앉았을 따름입니다.”

지난해 이맘때 서대문 밖 그의 천연동(天然洞) 집을 방문한 부인기자 최의순(崔義順)을 냉기 사르르 도는 문간방 서재에 앉혀놓고 박영희는 그렇게 심정을 토로했다.

“아주 냉방이올시다. 하루에 한 번씩은 땝니다만…. 이 방석이나 깔고 앉으십시오.”

그는 방 아랫목 쪽에 외따로 놓인 책상 앞 하나뿐인 방석을 내주며 그렇게 말했다. 회월(懷月) 박영희의 명성 앞에 다소곳이 앉아 그의 다정한 어조와 태도에 감격하면서 최의순은 “아-과연 정신이 나는 방이다. 그러나 좀 컴컴해서 너무 침울한 기분에 싸이게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방에서 훗날 무용가 최승희는 배필이 될 안막(安漠)을 대면하게 된다. 박영희가 중매를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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