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자 클로드 스틸은 술이 사회적 인지 능력과 행동에 미치는 효과를 ‘알코올 근시’ 이론으로 설명한다. 술에 취하면 근시가 된다는 것이다. 멀리 넓게 보지 못하고 지금 눈앞에서 경험하는 것에만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즉흥적 감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숙고할 때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이러한 숙고를 방해함으로써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한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술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알코올 근시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술을 마시고 후회막급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과음하는 이유
술이 부정적인 효과만을 낳는다면 사람들은 음주를 법으로 금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시피 술은 긍정적인 효과도 미친다. 술은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약간 몽롱하면서도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처음에 마시는 술 두세 잔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러한 효과는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지혜와 통찰력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사람은 이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느껴보기 위해 계속 술을 마시고 결국 과음에 이르는 것으로 가정될 수 있다.
술은 두려움도 없애준다. 1975년 미국의 한 연구진은 술 시음회를 한다고 남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연구진은 이들을 두 무리로 나눴다. 한 무리에는 시음회 뒤 여학생 사진들을 놓고 매력도를 평가하는 실험을 한다고 말해줬다. 다른 집단에는 여학생들과 대화 시간을 가진 뒤에 서로의 매력을 평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후자에 속한 남학생들이 술을 더 마셨다. 남학생들은 술이 용기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믿고 있었다.
2007년 뉴질랜드의 연구진은 적당한 술이 기억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였다. 신경세포의 연결을 강화해 기억력 증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는데 적절한 양의 알코올이 이 단백질의 활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때의 음주량은 사람으로 따지면 한두 잔에 해당한다.
문제는 술이 증진시키는 기억이 반드시 좋은 기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술을 마시면 주로 좋은 기억보다는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촉진된다고 말한다.
술과 관련해 희소식도 있었다.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것이 술을 안 마시는 것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연구 결과다. 100여 년 전 의사들은 지나친 음주로 간이 손상되어 사망한 사람을 해부했다가 깜짝 놀랐다. 혈관이 이상하리만큼 깨끗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술이 혈관의 콜레스테롤을 다 녹인 것일까?
1960년대 미국의 게리 프리드먼은 심장마비의 위험 인자를 파악하기로 했다. 그는 흡연, 콜레스테롤, 운동 습관 등 예상 가능한 모든 요인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이어 심장마비의 예측 지표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금주가 오히려 심장마비 위험을 높인다고 나왔다.
그전까지 이 점을 몰랐던 이유는 음주와 흡연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가 많아 흡연의 부정적인 영향이 음주의 긍정적인 영향을 가렸기 때문이다. 흡연 변수를 제외하니 술이 심장마비 발병 위험을 줄인다는 점이 뚜렷이 드러났다. 그 뒤의 많은 연구도 비음주자가 술을 적당히 마시는 사람보다 관상동맥심질환 발병률이 높다고 밝혔다. 하루에 술을 약 두 잔씩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마비 등 주요 심질환 발병률이 20%포인트 더 낮았다.
적절한 음주는 관상동맥심질환 사망 위험을 거의 3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적절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개인의 나이, 건강 상태, 운동, 직업, 생활 습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의학은 대개 하루 두 잔 정도라고 본다. 그보다 많아지면 전반적으로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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