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불의한 정부에 대한 도덕적 저항의 근거

  • 김학순│언론인·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입력2012-01-19 16:4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불의한 정부에 대한 도덕적 저항의 근거

    ‘시민의 불복종’<br>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31쪽, 1만 원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 개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인류 역사가 불복종 행위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발 나아가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확언한다. 프롬은 ‘불복종에 관하여’란 역작에서 ‘신화’를 동원해 자신의 논리를 풀어나간다.

    “아담과 이브에 관한 히브리 신화와 마찬가지로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그리스 신화는 인간의 모든 문명이 불복종의 행위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서 불을 훔침으로써 인류의 진보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만약 프로메테우스의 범죄행위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담·이브와 마찬가지로 프로메테우스도 불복종으로 인해 벌을 받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후회하지도 용서를 빌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 있게 말했다. ‘신들에게 복종하는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있겠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를 선정한 걸 보며 프롬의 통찰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기존 체제에 불복종을 선언한 시위자들은 지난해 벽두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을 필두로 중동을 넘어 지구촌의 정치질서를 다시 짜고 ‘민중의 힘(피플 파워)’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정립했다. 튀니지 국민은 “우리는 이 정권(벤 알리 대통령 정권)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거리에서 ‘시민불복종’ 행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한 뒤 끝내 뜻을 이루어냈다.

    이 같은 현대의 시민불복종운동은 19세기 미국 문필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월든’과 더불어 소로의 2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세계 역사를 격변시킨 선구적 저작으로 손색이 없다. ‘시민의 불복종’은 50여 쪽(편집에 따라 20~30쪽이 되기도 한다)에 불과한 짧은 팸플릿 분량이지만 영향력의 무게는 10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과 견줄 수 없을 정도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 인도독립운동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영웅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멘토 역할까지 하게 된 한 권의 책이 역사의 거대한 물굽이마저 돌려놓을 수 있음을 명증해준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



    소로는 6년 동안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다 경찰에 붙잡혀 하루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그가 세금 납부를 거부한 것은 흑인 노예제도를 고수한데다 멕시코 침략전쟁까지 일으킨 당시 미국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소로는 개인의 자유에 대립되는 국가 권력의 함의를 진중하게 성찰했다. 결과는 대중 강연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강연문을 일부 고쳐 ‘미학’지에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라는 제목의 글로 발표했다. 이 글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시민의 불복종’이란 제목의 책과 개념어로 더 널리 전파됐다.

    이 책은 정당하지 못한 정부에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개인은 저항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소로는 정부가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법을 어기라고 단호하게 충언한다. 책에는 핍박받는 이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명구가 가득하다.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역시 감옥뿐이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이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조차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다.”

    “정부의 성격과 처사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으면서도 충성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정부의 가장 성실한 후원자들이고, 따라서 개혁에 가장 심각한 장애가 될 경우가 많다.”

    “오늘날 이 미국 정부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자세일까? 나는 대답한다. 수치감 없이는 이 정부와 관계를 가질 수 없노라고 말이다.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책은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말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소로의 다른 저작이 그랬듯이 당대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글에 담긴 메시지와 소로에 대한 당대의 평가가 턱없이 야박했던 탓이다. 그의 멘토였던 랠프 월도 에머슨과의 불화, 멕시코 침략전쟁으로 불거진 미국의 애국주의적 분위기 등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의 저자 앤드루 커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예언자가 자기 나라에서는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는 격언의 본보기를 찾는다면 소로 만큼 딱 들어맞는 경우도 없으리라. 그때도 소로는 주로 자립적인 삶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낭만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소로의 이념과 철학은 50년 뒤인 19세기 말 톨스토이의 눈에 띄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20세기 초에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의 독립운동을 전개 중이던 간디에게 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톨스토이는 “왜 당신네 미국인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나 군인들 말만 듣고 소로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거요?”라고 타박했을 만큼 소로를 숭앙했다.

    간디와 킹 목사의 멘토

    소로가 세계 역사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간디를 통해서였다. 간디는 이 책이 자신의 이념을 세워 준 교과서와 같은 저작이라며 소중히 여겼다. 간디는 “나는 소로에게서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의 불복종’에서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땄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간디가 펼친 운동은 ‘사티아그라하’를 말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진실의 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티아그라하는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간디는 1907년 자신이 편집하고 있던 ‘남아프리카에서의 인도인의 견해’에 ‘시민의 불복종’을 발췌해 싣기도 했다.

    미국에서 ‘시민불복종’이 정치사상과 법철학의 주제로 떠오르고, 일상적인 낱말로 자리 잡은 것은 1950년대부터다. 이 무렵 소로의 성가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학에서 ‘시민의 불복종’을 접한 킹은 더없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킹이 흑인민권운동과 ‘시민의 불복종’의 관계를 인식한 것은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벌어진 버스 안 타기 운동을 통해 민권운동이 시작된 직후였다.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여성이 불을 붙인 투쟁이다.

    킹이 저술과 연설에서 ‘시민의 불복종’을 자주 언급하면서 소로는 흑인민권운동, 나아가 1960년대의 반체제·저항문화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계됐다.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도덕적인 의무다. 소로만큼 이러한 사상을 유창하게 열정적으로 전파한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소로의 저술과 그가 몸소 보여준 행동 덕분에 우리는 창조적인 항의라는 유산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은 영국의 노동운동가들, 나치 점령하의 레지스탕스 대원들,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가들과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중국 대학생들, 부도덕한 정권을 무너뜨렸던 필리핀 국민 등 불의한 권력과 싸우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반전 시위대, 환경운동가, 평화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나체주의자, 히피 등이 서로 앞 다퉈 소로를 자기 이념의 일원으로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소로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은 ‘비폭력주의자’라는 호칭이다. 소로가 비폭력주의자란 가면을 쓰게 된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시민운동 진영에서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소로가 살던 19세기 시민불복종운동에서 비폭력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이런 오해 때문에 소로는 실제보다 간디와 킹 목사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시민의 불복종’은 ‘월든’만큼이나 소로의 명성에 기둥이 되었다. 1968년 판본은 통상적인 순서를 바꿔 ‘시민불복종·월든’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에서는 신학자, 역사학자, 정치사상가, 법이론가, 연구원, 대법원 판사들이 ‘시민불복종’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을 붙여 100여 권의 책을 출간했을 만큼 유행의 중심에 섰다. ‘시민의 불복종’은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수십 종의 판본이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각급 학교의 커리큘럼에 들어 있다.

    한국에서도 1986년 KBS 시청료 거부운동, 2004년 총선시민연대 낙천낙선운동,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등 크고 작은 시민운동이 논란 속에 ‘시민의 불복종’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소로의 외침은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