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LH 경영 반드시 정상화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뚝심의 리더십’ 이지송 LH 사장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2-01-20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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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업조정, 구조조정으로 금융부채 증가세 크게 줄어
    •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위해 22조 원 집행
    • 인적 구조조정 “엄청나게 어려웠다”
    • 돌부처 이미지와 달리 감성 경영
    • 130억 원 스톡옵션 포기 “공직자로 할 일 했을 뿐”
    “LH 경영 반드시 정상화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이지송 LH 사장은 지난해 60년 역사의 대한토목학회가 선정한 ‘4인의 토목인’에 올랐다.

    나눔에 대한 훈훈한 이야기가 종종 알려지지만 새해 초 LH(한국토지주택공사) 이지송(72) 사장의 사례는 특히 신선하고 감동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 사장은 지난해 말 130억 원 규모의 현대엔지니어링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5만 주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이는 2006년 그가 현대건설 사장을 퇴임할 때 워크아웃에 들어간 회사를 3년 만에 정상화한 데 대한 보답 차원에서 채권단이 준 것이다. 그의 취임 당시 920원 선이던 현대건설 주가는 퇴임 때 5만 원까지 올랐다.

    이 사장이 스톡옵션을 포기한 것은 자신이 공인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는 스톡옵션은 현대건설 임직원이 다 같이 고생한 대가이니 그들에게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1월 9일 오후 4시 경기 성남시 분당 LH 사장 집무실. 점퍼 차림의 이 사장은 스톡옵션을 포기한 배경에 대해 묻자, 묻는 사람이 불편할 만큼 손을 내젓는다.

    “그 얘긴 하지 마십시오. 정말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어요. 기자들이 어떻게 알아서 썼는데…. 저는 공인 아닙니까. 공직자는 공직자답게 행동하는 게 제일입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 돈을 받아서 좋은 데 쓰는 것도 좋았을 텐데요.

    “그러면 또 생색내게 되고…. 그런 게 더 안 좋아 보입디다. 아, 그 얘긴 그만합시다. 미국서 잠시 귀국한 큰딸이 힘을 실어줬고 가족도 쾌히 동의한 것이에요.”



    그의 집무실 책상 뒤에는 서류가 작은 트럭 한 대분 정도 쌓여 있었다. 다른 방에 그 정도 분량이 더 있다고 했다.

    ▼ 저 많은 서류를 읽고 판단할 때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요?

    “일이관지(一以貫之)입니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하나 서면 그대로 가야 합니다. 옆으로 새면 안돼요. 그 기준은 국민이에요.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게 중요해요. 국민 편에서 생각하면 (판단하기가) 가장 편해요.”

    ‘일이관지’는 올해 그가 내세우는 경영 화두이기도 하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과 이인편(里仁篇)에 나오는 문구다.

    양복은 어색, 늘 점퍼 차림

    이 사장은 건설인으로 살아온 지난 50년 동안 늘 점퍼 차림을 선호했다. 지금은 공적인 자리에 나가는 일이 많아 넥타이를 매는 경우가 있어도 겉에는 점퍼를 주로 입는다. 사진 연출을 위해 양복 재킷을 입게 하자 매우 어색해했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 사장의 소박하고 꿋꿋한 성향이 드러나는 듯하다.

    ▼ 건설인이라 해도 관리자는 직접 땅을 파거나 굳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점퍼 차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 듯한데요.

    “건설 현장에 나가 있는 소장들은 직접 막일하는 것보다 고생이 더해요. 제가 건설인으로 해외생활을 11년 했어요. 해외의 건설현장은 대부분 오지였지요. 이라크에 가 있을 때는 그 나라가 전쟁 중이었어요. 죽음의 문턱에도 가봤지요. 지금 살아서 이렇게 멀쩡하게 웃고 있지만요.”

    1987년 이라크 현장소장 시절 쿠르드 반군에 납치된 현대건설 근로자를 구출하기 위해 쿠르드인 복장을 하고 반군과 만나 인질들을 구해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폭염 속에 자재를 구하러 나섰다가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것도 이라크에서의 일이다.

    이 사장은 오전 7시에 출근한다. 첫 경영자 회의는 7시 반이다. 점심은 늘 식당에서 먹는다. 일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이고, 사업자와의 만남 등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9일 오전에는 노조 측의 요청으로 면담이 있었다. LH에는 통합 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노조의 뒤를 이은 노조가 두 개 있다.

    이 사장의 업무 스타일은 현장 중심이다. 전국 수백 개 사업지구를 구석구석 방문한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지원 창구에 다녀왔다.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은 정부와 LH가 대학생의 주거안정을 위해 저렴하게 공급하는 주택(전용면적 40㎡ 이하)이다. 여기에 당첨된 학생이 대학 인근에 거주할 전셋집을 물색한 뒤 LH에 신청하면 LH가 주택소유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학생에게 최대 80%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새해 공급예정인 대학생 전세임대는 서울 3300가구 등 총 1만 가구다.

    “지원 열기가 뜨거워서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희 공사가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서 뿌듯함도 느꼈고요.”

    ‘대학생 전세임대 1만 호’ 프로젝트는 올해 LH의 공적 역할 확대 정책의 일환이다. LH는 전·월세난을 겪는 서민들을 위해 다가구·전세임대로 약 2만9000호를 공급할 계획도 갖고 있다.

    ‘실버 사원’ 2000명 뽑아

    LH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적 역할 확대 정책을 위해 약 22조 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이는 공공기관 재정 집행액 53조 원의 41%에 해당한다. 올해 LH는 전년보다 8000호 늘어난 7만1000호를 착공하고, 공사발주도 2조 원 늘려 14조 원을 집행한다.

    올해 LH의 잠정 사업비 규모는 약 24조4000억 원 안팎으로 지난해보다 약 2조 원 많은 수준이다. 수입은 대금회수(18조2000억 원), 채권발행(14조 원), 주택기금 출자 및 융자(6조3000억 원) 등 40조5000억 원이 예상되며, 지출은 원리금 상환(13조4000억 원) 등 모두 16조6000억 원 수준이다.

    “LH 경영 반드시 정상화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12월 26일 충남 연기군 세종시 첫마을 입주와 진입도로 개통식에서 이지송 LH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주택 착공 물량을 늘려 일자리 40만 개를 새로 만들 계획입니다. 내부적으로는 통합 이후 처음으로 신입사원 500명을 뽑고, 청년인턴 500명, 노인층 일자리 제공과 서민주거 복지강화를 위해 임대사업 인력 도우미로 ‘실버 사원’ 2000명도 채용할 계획입니다.”

    ▼ 새해 경영의 방향은 무엇인지요?

    “많은 변화와 불확실성이 예상되는 한 해입니다. 부동산시장 정상화, 건설경기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이 LH에 맡겨진 공적 소임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그동안 추진해오던 사업조정을 마무리하고 재무개선 등 변화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 LH의 공적 소임에 충실하려 합니다.”

    ▼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들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요?

    “올해는 그동안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여온 보금자리주택, 세종시, 혁신도시 등 정책 사업들이 점차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시기입니다. 무엇보다 전월세 안정 등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해 주택건설 착공, 주택 신규 공급, 다가구나 전세 공급 등 전 부문에 걸쳐 지난해보다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LH에는 ‘천문학적 부채 기업’이라는 오명(汚名)이 따라다닌다. 이 사장이 취임할 무렵 LH의 부채는 100조 원이 넘었다. 게다가 하루에 이자만 100억 원씩 불어나고 있었고, 금융부채도 매년 20조 원씩 증가하는 형편이었다. 특히 2010년 7월 LH에 5000억 원의 채무를 지고 있던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LH의 재무 부실 우려가 금융시장에 확산되면서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사실상 막히는 위기상황에 도달했다.

    ‘회사 이름 빼고 다 바꾸자’

    “저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재무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원인과 대책을 밝혀 국민께 소상하게 알려드렸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사명(社名)만 빼고 다 바꾸는 개혁으로 돌파구를 찾았지요. 최근 토지와 주택 판매 실적이 올라가며 부채비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희생하며 열심히 따라와준 직원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2010년 말에는 손실보전 관련 LH법이 개정돼 숨통이 트였다. 이후 지난해 4월 공사법 시행령 개정으로 LH가 발행하는 채권의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위험가중치가 국채 수준인 0%로 적용되면서 LH 채권발행 정상화와 발행금리 인하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내부개혁과 정부지원의 결과 2010년 말 559%이던 부채 비율이 지난해 458%로 떨어졌고, 금융부채 비율도 2010년 405%에서 지난해 말 348%로 하락했다.

    “빚도 예쁜 빚이 있고, 미운 빚이 있습니다. 우리 빚은 국민을 위해 사업을 벌이다가 생겨난 예쁜 빚입니다. 하나의 사업이 진행되면 투자에서 회수까지 7~10년 걸리니까 그동안은 빚으로 남게 됩니다. 하나의 사업이 끝나갈 때쯤 새 사업이 시작되는 식으로 선순환 구조가 되면 좋은데 제가 와 보니 사업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LH 경영 반드시 정상화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사업 조정 외부 압박에도 꿋꿋

    이 사장은 그동안 방만하게 전개돼온 사업 재조정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2010년 6월 말 현재 LH의 사업총량은 414개 지구에 총사업비가 425조 원 규모였다. 이 가운데 276개 지구는 이미 보상이 이뤄진 진행사업이었고, 138개 지구는 신규사업이었다. 당시 계획된 모든 사업을 추진할 경우 연간 45조 원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예상됐고 2014년에는 총부채가 2010년의 두 배 수준인 254조 원으로 늘어나 국민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사장은 LH의 재무역량 범위인 30조 원 내외로 사업을 조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장은 사업 조정의 원칙을‘선(先)재무 후(後)사업계획’으로 잡았다. 우선 자금 유동성 위기를 막고, 중장기적으로 재무구조 개선과 안정적 사업기반을 구축하는 게 목표였다. 전 사업지구를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개발 수요와 사업 타당성에 따라 공정과 일정을 조정했고, 신규사업의 가부를 차분히 따져보았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자 이 사장은 ‘뚝심의 리더십’으로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다. 사업조정이 알려지자 연일 LH 관련 기사가 언론 지면을 장식했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졌다. 이 사장은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정공법을 택했다. 지방자치단체, 국회, 정부,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사업조정에 대한 이해를 구한 것이다. 2010년 8월과 9월 사이 한 달도 넘게 그는 매일 국회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지역구의 이해를 넘어 더 크게 생각해달라며 협조를 구했고, 아들뻘 되는 의원들에게도 90도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이 사장은 의원들에게 “나라를 위한 일이니 LH의 사업조정에 힘을 보태달라”고 읍소했다. 목표를 정하면 열과 성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이 사장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 지난해 3월 27일 LH 본사에서 열린 ‘LH 경영정상화 워크숍’에서 국토해양부가 ‘LH가 빚을 더 내는 한이 있어도 예정된 대로 사업을 수행하라’는 주문에도 재무여건상 사업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만 전하고 돌부처처럼 5시간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 가운데 사업 보류지구로 결정된 파주 운정3지구의 주민들은 LH 앞에서 연일 시위를 이어갔다. 주민들은 이미 적기에 이주지와 대토를 구입하기 위해 토지를 담보로 과도한 대출을 받은 상태였다. 그 액수가 8000억 원(주민대책위 1조2000억 원 추산)에 달했다.

    운정3지구 주민들의 단식농성과 집회에도 이 사장은 주춤하지 않았다. 2010년 12월 그는 오히려 농성장을 찾아가 “파주운정3지구는 사업성이 너무 없습니다. 사업을 계속 추진하다가는 LH가 망할지도 모릅니다. LH가 망하면 나라도 국민도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업을 하겠습니까?”라며 주민들에게 하소연했다. ‘자살조’라며 이 사장을 위협하는 농성자들과의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 사장은 심지어 농성장 옆에 텐트를 치고 주민들과 같이 추위를 견디며 노숙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진심 어린 모습에 주민들은 농성을 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운정3지구 주민과 LH 간의 긴 싸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에 국토해양부, 경기도, 파주시, 주민대책위, 국회(황진하 의원), LH 등 6자 협의체가 발족돼 지속적인 협의를 해왔고, 지난해 10월 광역교통개선대책 조정, 남측녹지대 계획변경, 과다한 기반시설 축소 등 사업성 개선과 관련한 현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했다. LH는 국토해양부로부터 사업 추진을 위한 실시계획승인을 신청해 2년 만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재추진하게 됐다. LH는 올해 2월까지 보상계획을 완료하고, 상반기에 보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LH 경영 반드시 정상화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2014년부터 흑자 기대

    파주 운정3지구 등 LH의 사업조정 사례는 사업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을 사업 시행자, 지자체, 지역주민이 양보와 협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갈등을 해결해나간 경우다.

    “사업조정에 대해 정부, 국회, 지자체, 지역주민 모두 처음엔 반대도 많이 하고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 길만이 LH도 살고 정부의 재정부담도 줄여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습니다. 사업지구 하나하나마다 수만 명의 재산권 행사와 관련된 사항이라서 정말 신중을 기했습니다. 전국의 수백 개 사업지구를 모두 둘러보았고,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어 한 걸음씩 어렵게 나아갔습니다. 이제는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주변에서도 그것이 바른 선택이었다고 격려도 많이 해주십니다.”

    LH의 사업조정은 2012년 1월 현재 행정절차상 완료까지 포함해 121개 지구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 사업조정이 완료되면 70조 원 내외의 사업비가 줄어들고, 40조 원의 사업비 지출이 연기되는 등 모두 110조 원 안팎의 사업조정효과가 기대된다. LH는 2014년부터 사업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2016년부터는 금융부채가 감소세로 전환돼 안정적 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 경영정상화는 어느 정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요?

    “통합 이후 사업조정과 내부개혁으로 물리적 통합을 넘어 화학적 융합을 완성하고 어느 정도 재무적 기반을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LH가 진정으로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1호를 건설할 때마다 9000여만 원의 부채가 늘어나는‘임대주택의 구조적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투자와 회수가 맞물려 돌아가는‘선순환 사업구조’를 정착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LH 스스로 사업성을 제고해야겠지만, 임대주택사업의 구조적인 부채 누증 문제에 대한 정부의 근본대책 마련과 정책사업 손실분에 대한 교차보전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LH를 이끌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화학적으로 통합하는 문제였습니다. 통합 이전부터 골이 깊은 두 회사를 하나로 만드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회사 출신 사람들이 한 회사에서 둥지를 트는 일이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 인적 구조조정은 어땠나요?

    “직원들의 생존에 위협이 온 것이니 엄청난 일 아닙니까? 지금은 그런 희생 덕분에 그래도 (LH가) 일어서서 걸어다녀요. 통합한 직후에는 거대 공룡 기업이 되었으면서도 일어나 앉지도 못했지요.”

    입찰 심사 CCTV로 공개

    이 사장은 경영정상화의 길을 LH 내부에서부터 찾기 위해 모든 시스템과 관행을 쇄신하려 했다. 방만경영·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상황은 머리 숙여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무구조 개선과 조기 경영안정을 위해 2009년 10월부터 15개월간 임금의 10% 정도를 반납하게 했다. 1,2급의 75%인 484명을 교체했고, 인력 786명을 감축했다.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10만 원 이상 금품을 수수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외부감찰단과 지방감찰분소를 설치했다. 또 입찰제도 개혁을 위해 입찰 심사 전 과정을 CCTV로 공개하는‘LH클린심사제’를 도입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기존 관행을 뒤엎고 선정위원들도 사전에 공개하고 심사과정도 CCTV로 생중계하니 입찰비리가 존재할 여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LH가 입찰에 참여한 70여 개의 건설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6%가 공정하다고 평했다. 최근에는 건축물 설계용역심사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게‘국민참여형 열린심사제’를 도입해 투명성을 더욱 강화했다. 이런 노력으로 LH는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의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청렴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과거의 불명예를 씻어냈다.

    LH는 또 기획재정부가 주관한 공기업 고객만족도평가에서 3년 연속 최고 등급을 달성했다. 노숙인쉼터, 대학생 보금자리 등 맞춤형 주거복지지원 사업, 기동보수반 운영, KS 인증을 받은 LH 콜센터와 종합 민원실 설치 등 대고객 서비스가 강화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 본사 지방 이전 추진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1월 12일 국내 최초로‘국민참여형 열린심사제’를 통해 진주 신사옥 설계공모 당선작이 선정되었습니다. 올해 안에 착공하고 2014년 10월까지는 진주시로 이전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LH의 토지·주택 판매 실적은 총 22조2000억 원으로 이전보다 38% 늘어났으며, 대금 회수 실적도 25% 늘어난 17조 원에 달한다. LH의 이런 실적 증가는 주택건설 경기 회복을 예고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동주택지의 판매실적이 좋아지면서 올해 주택건설사업의 인허가 및 착공물량도 늘어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주택건설 경기가 활성화되고 일자리 창출 등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판매실적 증가는 ‘시장중심, 고객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전환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장 개발사업단의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전체 인력의 57%인 3750명을 현장으로 전진 배치했습니다. 보상과 개발 업무만 보던 관행에서 탈피해 현장 사업단에서 토지개발, 주택건설, 토지·주택 판매 등 사업의 전 과정을 일괄수행(one-stop service) 할 수 있게 한 겁니다.”

    수인사대천명

    LH 사장 취임 전에 이 사장은 경복대 총장(토목설계과 교수), 현대건설 사장, 경인운하 사장, 건설부 직원 등을 거쳤다. 사실상 토목이라는 한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 사장은 지난해 대한토목학회에서 60년 토목학회를 빛낸 ‘4인의 토목인’에 선정되기도 한 토목계 거목이다.

    50년 가까이 건설인으로 살아온 이 사장은 주로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인식된다. 업무 스타일은 돌부처처럼 우직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에게 의외로 잔정이 많아 ‘감성 경영’의 면모도 자주 보였다. 얼마 전에는 한 여직원에게 피부 마사지를 받으라며 금일봉을 줬다는 사연이 직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이 사장은 개인 카드에서 돈을 찾아 봉투에 발신인 이름도 없이 ‘피부관리’라고만 적어 비서실 직원을 통해 그 돈을 전달했다고 한다.

    “복도에서 우연히 그 여직원과 마주쳤는데 얼굴에 빨간 뾰루지가 많이 돋아 있어 왜 그렇냐 물었더니‘야근과 주말 근무로 바빠서 며칠째 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회사일 열심히 하다가 그리 된 것인데, 사장인 제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요, 하하.”

    이 사장은 또 불의의 암 투병으로 고생하는 LH 직원이나 가족이 50명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 사비를 털어 각 가정에 위로 편지와 100만 원이 담긴 봉투를 전달하기도 했다.

    “후회 없이 살아왔어요.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현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대해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영원한 건설인, 숙명적인 건설인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그의 임기는 올해 9월 말이다. 1962년 10월 1일 당시 국토건설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말 그대로 건설 인생 50년이다.

    이 사장은 우리 나이로 올해 일흔셋이다. 그 나이에도 꼿꼿하게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이 편하니 수면시간이 적어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운동은 점심 먹은 뒤 LH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것이 전부다.

    “임기가 끝나면 후배나 친구들과 자주 만나는, 편안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이 자리에서 떠나갈 때 직원들이 ‘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는 말과 함께 손 흔들어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소망이에요. 이제 아내에게도 더 잘 해주고 싶고. 이렇게 좋은 꿈이 있으니 저에게 연임하라고 하는 것은 나쁜 거지요, 하하.”

    현대건설을 그만둘 때 노조에서 그와 부인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반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그의 좌우명인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과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것이 자신의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그는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LH의 경영을 반드시 정상화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누구에게서나 존경받고 신뢰받는 회사로 만들고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명(召命)’임을 강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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