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감찰이나 사찰을 어느 정권에서 했는지가 아니다. 그 감찰이나 사찰이 적법한 것이었는지가 핵심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차분하고 냉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야당이 이 문제를 총선 이슈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헌정 질서에 관한 문제가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변질되어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4·11총선이 끝났다고 묻힐 성질이 아니다. 끝까지 파헤쳐야 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민주주의의 기본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합법 감찰과 불법 사찰을 구분해 이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감찰과 사찰은 모두 감시 또는 조사해 살핀다는 의미다. 법률에서는 감찰이라는 용어를 쓴다. 즉 감찰은 감사원법, 국가정보원법 등의 법률에 근거한 용어다.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직무감찰이라고 한다. 사찰은 직무감찰에 해당하지 않는 감시를 일컫는 용어로 통용된다.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다만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비밀이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반드시 법률에 의해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만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범죄 수사 목적으로 사생활을 조사하고 통화 내용을 살펴보려면 반드시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법률과 명령은 이와 같은 헌법의 규정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전쟁이나 계엄 상태가 아닌 평상시라면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 이러한가.
감찰이든, 사찰이든 적법한 감시이기 위해서는 법률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조사목적이 정당해야 한다. 조사의 주체, 방법, 절차가 적법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의 요건이라도 갖추지 못하면 감시는 불법감찰, 사찰이 된다.
“소주를 마시며 애원하듯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모 공무원 미행 조사보고서.
문제가 된 국무총리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경우 감찰권한을 부여받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국무총리실 직제규정에 의하면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 및 소관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나 조사권한은 법무감사담당관에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법무감사담당관실이 아닌 부서의 공무원은 감찰권한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법무감사담당관실조차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 및 소관 공공기관의 공무원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외 공무원에 대해선 조사권한이 없다. 민간인에 대한 조사는 말할 나위도 없이 불가능하다.
박원순 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현 서울시장)는 2009년 9월경 국가정보원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국가정보원은 박 전 이사에 대해 2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불법사찰 주장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있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이러한 폭로 행위는 국가기관에 대한 감시와 비판으로서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